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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43화 (143/152)

아포칼립스(3)

까마귀 길드 본부.

그곳은 더 이상 빌딩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마수의 습격을 대비해, 최상의 장인 클래스들이 만들어 낸 요새로 변모해 있었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전투기로 5분 남짓한 시간만에 본부에 도착한 이진영이 주변을 살폈다. 좋은 변화였다. 과거와 달리 세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의 일부기도 했다.

본부가 건재한만큼 주변 건물들도 하나 같이 멀쩡했다.

‘방금 전 구역에서 만났던 헌터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크게 상심한 것 같지는 않았어.’

멸망을 앞두고 있는 침울함이나 절망 따위는 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실질적 대한민국의 수장 역을 맡은 까마귀 길드의 길드장을 만나 나눠봐야겠지만.

“길드장님! 정말로 진영씨에요!”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유수아 헌터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그녀는 지난 S급 게이트 공략시에 함께 했던 헌터였다.

이윽고 임재천이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정돈 되지 못한 더벅머리와, 듬성듬성난 수염이 그가 얼마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하···. 정말 살아 있었을 줄이야.”

연락을 미리 받았기에 이 정도였지, 그게 아니었다면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킨 임재천이 진영을 바라왔다.

“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하고 있었던 겁니까?”

궁금증과 타박 그리고 감사함이 담긴 물음이었다. 지금의 까마귀 길드의 위상은 진영이 미리 알려주고 간 정보에서 기인했다. 그만큼 임재천은 진영을 높이 살 수 밖에 없었다.

“지훈이나, 염태준이랑 마찬가지로 공허에 있었죠.”

진영은 간략하게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런 일이···. 수호자들하고는 확실히 다르네요.”

임재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지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돌아온다고 했죠? 제 말이 맞았잖아요.”

“그래, 정말 다행이야. 그보다 두 분 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얼마나 파악하고 계십니까?”

기다리던 이야기였다. 진영이 답했다.

“회귀 전, 탑 아래서 보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 정도 말고는 모릅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다행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잘 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임재천이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멸망의 탑이 붕괴도는 72%, 대한민국의 영토 소실률은 14%에 머물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잘 방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예, 두 분이 방금 계셨던 서울 일부 지역을 빼앗기긴 했지만 수호자 김지훈군을 파견한 뒤로 현재 탈환 중에 있습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힘을 양분하는 것은 그랑블루와 까마귀 그리고 레드 리버라고 했다. 방식 자체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마수 출몰지에 헌터들을 파견하는 것으로 대다수의 일이 해결된다.

“다양한 클래스와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늘면서 시민들의 대피나, 복구에 있어어도 효율이 굉장히 좋습니다.”

시간 그리고 인력.

멸망의 탑이 무너지며 플레이어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 덕에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했다.

“또 정부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상태입니다. 마수들에게는 시스템의 영향 받지 않는 현대 병기가 통하지 않으니까요.”

즉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건 실질적으로 길드나 마찬가지였다.

“혹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미국 같은 경우는 대예언자 리암을 필두로 활발한 마수 토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몰지와 습격지를 예상하고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등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한국에 특히 강한 플레이어가 많이 모여있다. 최후의 6인이 한국인이었던 것도 그저 신화준의 변덕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만 살아남아서는 의미가 없다.

진영이 눈빛이 깊어졌다.

“준비가 되면 멸망의 탑을 공략하러 나설겁니다. 공략대가 필요합니다. 조만간 리암 쪽에서도 연락이 올겁니다. 10명 정도의 최후의 공략대와 함께 끝을 봐야겠죠.”

6개월 간의 공백. 헌터로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진영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그에게서는 아무런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운.

그렇기에 임재천은 그가 또다른 경지에 올랐음을 느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진심이군.’

탑을 공략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허황된 부분은 일절 느낄 수 없었다. 임재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 주변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김지훈이 돌아왔다.

“저, 그런데 태준이 형은 어디에 있나요? 전혀 안보이네요. 받아야 될 것도 있는데.”

“아, 염태준 수호자는 지금 파견 상태야.”

“갑자기요?”

“그래. 그랑블루에서 급한 지원요청이 있어서 말이지.”

임재천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진영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곧이어 그의 시선이 진영에게로 향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염태준 수호자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임재천의 예상이 맞다면 그곳은 곧 SSS급 위험지역으로 분류 될 것이다.

그곳에 숨어 있던 초월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므로.

* * *

콰아아앙!

하늘과 이어진 새하얀 빛의 기둥이 일대를 집어 삼켰다. 빛이 닿은 곳은 모조리 가루처럼 바스러져 공기 중으로 흩날린다.

【 되먹지 못한 놈들 같으니라고! 한낱 버러지에 불과한 발악이 어디까지 먹히나 보자꾸나! 】

퍼버벙!

온 몸이 빛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손을 휘두르자 근처에서 섬광이 연달아 터진다. 건물이 무너지고 미처 피하지 못한 헌터들의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광멸자 요자도르.

그의 빛은 존재를 멸하며 살아 있는 자들에게 죽음의 철퇴를 내린다. 초월자의 명성에 걸맞는 압도적인 빛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무력했다.

그러나 그런 초월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달려드는 이가 있었으니.

“이 형광등 새끼가!”

한 번의 도약으로 허공으로 높이 날아 오른 염태준의 등 뒤에는 수 백 개가 넘는 무기가 떠올라 있었다. 발사 직전의 미사일처럼 고고히 떠있는 무기들.

그 하나 하나의 등급은 레전더리. 그러나 초월자 앞에서 쓸만한 무기는 안되는 것이다.

【 네가 인간들이 칭하는 수호자인가! 겨우 그 정도 힘으로 날 쓰러뜨리고자 하는가? 어리석구나! 】

초월자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염태준은 멈추지 않았다. 움찔하는 기척조차 없었다.

따악!

염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새하얀 빛이 무기를 감싸고 돌았다. 그가 가진 모든 무기가 일제히 빛을 발하며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어느새 초월급의 위력을 가지게 된 무기들이 염태준의 뒤를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산 하나를 단번에 평지로 만드는 ‘대지검 트레이드’.

대상의 마력을 폭발력으로 승화하는 ‘폭파검 알타’.

수 많은 초월자의 목을 베어낸 ‘초월살해자’.

···

..

.

다른 세계에 전설로 존재했으나 멸망의 탑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던 무기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세기도 벅찬 수의 초월급 무기들이 흉흉한 기세로 광멸자 요자도르를 향하고 있었다.

요자도르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 네, 네 놈 간악한 수작을 부리는구나. 그 따위 환술에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아느냐? 】

그러나 그의 몸을 꿰뚫는 무기들 하나 하나는 진짜였다.

퍼버버벙!

맹렬하게 퍼부어지는 병장기 세례 앞에 요자도르의 몸이 비틀렸다. 초월자조차 받아내기 힘든 공격에 그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에도 그의 몸에는 회복할 수 없는 구멍이 수 백 개가 생기고 있었다.

【 크허억! 네, 네 녀석 여기서 기다려라! 】

파아아-!

그의 혼신의 힘을 다한 빛이 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어찌저찌 도망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젠장.”

염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그런데, 이질적인 기운이 그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채앵!

염태준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애검 엑스칼리버는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어···? 뭐, 뭐야? 내가 지금 잘못 보는 거 아니지?”

엑스칼리버와 마주한 것은 진영의 룰 브레이커.

"염태준, 잘 지냈어?"

진영이 옅은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상상치도 못한 손님의 등장에 염태준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김지훈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형, 내기는 제가 이겼어요. 진영이 형 살아 있을 거랬죠? 빨리 아이템 내놔요.”

"꼬맹아, 한 번만 봐주라."

* * *

초월자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긴 했지만, 아직 위험 지역에서 모든 마수가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랑블루의 헌터들이 나머지 잔당들을 소탕하러 들어간 사이, 염태준과 진영 일행은 근처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꼬맹이처럼 공허에 들어간 뒤, 시험을 받기는 했지. 근데 문제는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였어.”

염태준은 자신이 팔에 차고 있던 팔찌를 빼내 일행에게 보여줬다.

“근데 원래 주인이 영원불멸의 고리에 아예 들러 붙어 버린거야. 지금도 시끄러워 죽겠다니까.”

보물에 주인의 영혼이 깃든 모양이었다.

“말하는 아이템은 칼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야. 덕분에 나는 완전 미칠 지경이야. 두 놈이 서로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착하게 행동해라. 잔소리가 장난 아니라니까?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니네가 겪어 봐야 안다니까!”

염태준이 머물렀던 세계는 정령과 영혼을 다루는데 친숙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에고 아이템을 두 개나 가지게 된 것이었다. 에고 아이템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템의 자아가 너무 강하면 사용자의 자아를 침식하기도 한다.

덕분에 울며겨자 먹기로 수호자역을 자처하고 있다는 게 염태준의 설명이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처음부터 이진영 널 만난 게 내 생애 최대 실수였다고 할 수 있지. 암.”

혼자 고개를 끄덕이던 염태준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물론 농담이고. 가장 큰 이유는 그거지. 이 세계가 멸망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서 뭐하겠어? 다 같이 살아 남아야 의미가 있는거지.”

“형, 지난번엔 수호자가 되면 온갖 아이템을 공짜로 받을 수 있어서 하는 거라면서요.”

“야, 그건···!”

얼굴이 붉어진 염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수호자역에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진영이랑 주오령, 너희 둘은 그 동안 많이 강해졌냐. 나보다 약해 진 거 아니야?”

염태준이 씩 웃었다. 확실히 6개월이란 시간은 길다.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기에 충분한 시간.

쿠구구구···.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입으로 할 게 아니었다.

"이런···."

하늘에서 수 천 다발의 빛 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광멸자 요자도르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 온 듯 했다.

빛 줄기 하나 하나가 빛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 으아아아아!

빛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여기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염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예상외의 상황인데. 꼬맹아, 까마귀에 연락 넣어라. 니 형도 와야 될 것 같다.”

“네, 지금 연락중이에요.”

초월자 하나를 상대하는 것과 그가 거느린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여지껏 초월자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광멸자 요자도르가 열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두둑.

그러나 주오령은 개의치 않고 몸을 풀었다. 적이 하나건 일백이건 일천이건 녀석의 방식은 같을 거다. 상황을 지켜보던 진영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임재천에게 지원은 필요 없다고 말해.”

“네? 진짜요?”

“아무리 그래도 저 많은 수를 혼자 상대하겠다고?”

김지훈과 염태준이 벙찐 표정을 짓는 사이, 진영과 주오령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 으아아!

- 으어어!

빛의 병사들의 무리가 일대를 집어 삼키며 전진하고 있었다. 수 천에 달하는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콰아앙!

주오령이 뛰어들자, 수 백의 병사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길이 열리자 진영은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어느새 그 뒤를 김지훈과 염태준이 쫓아 오고 있었다.

진영이 발에 힘을 주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 공간도약

한 순간에 그가 공간을 넘어 병사들의 중심부로 뛰어 들었다.

크어어!

빛으로 이루어진 거인 한마리가 진영을 향해 투박한 손을 휘둘렀다. 가볍게 공격을 제치며 다시 한 번 공간을 도약한 진영이 땅을 향해 왼손을 펼쳤다.

“룰 오버.”

모든 병사들의 마음을 일제히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극의.

[ 빛의 군단 - 광병사가 당신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

진영의 왼손이 향한 장소에 있는 자들은 어김없이 그 마음을 빼앗긴다.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거인조차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린다.

[ 빛의 군단 - 광거인이 당신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

쿠구구구···!

정확히 진영이 손을 뻗기 시작한 지점부터 병사들이 진격을 멈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천히 뒤를 돌아, 지금까지 자신들과 같은 편이었던 병사들을 향해 무기를 내밀었다.

쿠우웅!

진영을 향해 손을 휘둘렀던 거인 또한 다른 병사들을 향해 주먹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끊임 없이 멸광자 유자도르의 군대가 진영의 손에 훔쳐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초월자의 것이 아니다.

“병사들이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내가 말 실수를 했네. 이진영이 나보다 약해졌을 리가 없지.”

경악에 물든 염태준과 김지훈을 뒤로하고, 수 많은 병사들의 진영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

[ 이제 ‘빛의 군단’이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칩니다! ]

위험구역에 직접 달려 온 것은 단순히 염태준을 돕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적의 힘을 흡수하고, 적의 군단을 훔치기 위해 진영은 여기에 서 있었다.

멸망의 탑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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