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2)
쿠구궁!
떨어져 내리는 압도적인 크기의 빌딩에 뱀 마수는 그대로 짓이겨졌다.
CG가 아닐까 착각이 드는 광경 앞에 강문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아···. 이걸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우연화는 그런 그의 머리를 툭하고 쳤다.
“야, 너 지금 이 둘을 앞에 두고 그런 소리가 나와?”
“멸망의 탑의 전설인 건 알겠는데, 솔직히 지금 수호자님들하고 비교하면···.”
“니가 멸망의 탑에 없어서 모르나본데···.”
둘의 티격태격 되는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지훈이 내려 꽃은 빌딩 사이에서 자그마한 크기의 뱀들 수 십만마리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이런···.”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수였다.
근처의 건물을 파먹으며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기생충과도 같았다.
우연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게 이야기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일단 넌 이 두 분 모시고 안전구역으로 가서 다시 보고해. 나랑 다른 헌터들은 예정대로 움직일테니까.”
“흡, 알겠습니다!”
벌써 이 근처까지 뱀 무리가 모여들고 있었다. 우연화가 검을 꺼내들며 빛과 함께 뱀 마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영은 그와 비슷한 일들이 도시 전역에 이뤄지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대로 잘 대처하고 있는 모양이라 다행이야.’
멸망의 탑 축 붕괴가 효과적이었단 뜻이었다. 시민들이 대피한 뒤, 헌터들이 순차적으로 투입되며 효율적인 토벌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쪽으로 오세요!”
진영과 주오령은 강문수를 따라, 폐허가 된 건물의 틈으로 이동했다. 안전 구역으로 이어지는 최단거리의 길이었다.
“이런, 잠시만요!”
물론 그건 마수를 만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크어어!
우글대는 뱀에 감싸인 좀비 한 마리가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강문수의 표정이 곤란해 보였다.
“최상급 좀비···. 거기에 뱀까지 달라 붙어 있다니. 이거 아무래도 저희가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짐짓 진중한 얼굴을 했다. 확실히 최상급 좀비는 까다로운 존재다. 보통 인간을 뛰어 넘는 신체 능력과 전투 센스. 생전에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자의 시체인만큼 그 힘도 강력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제 뒤를 부탁드립니다.”
강문수는 이진영과 주오령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다. 그가 헌터가 된 것은 세계 공식 아포칼립스 선포 이후였으니까.
‘멸망의 탑에서 이름을 날렸다곤 해도, 시간이 너무 지났어.’
그 때에 비하면 출몰하는 마수들의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니 여기에서 자신이 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셋 다 죽은 목숨일테니까.
일말의 각오와 함께 강문수가 좀비를 향해 달려나갔다.
카악!
강문수가 휘두른 검을 좀비가 팔로 가볍게 막아냈다. 녀석의 팔에 매달린 뱀들이 공격을 막아줬기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예상하고 있었다.’
강문수도 나름 전투 경험이 있는 헌터였다. 그는 좀비가 막은 검을 빠르게 버리고, 아이템 주머니에 숨겨둔 다른 검을 꺼냈다.
휘익!
그대로 좀비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콰득!
공격은 적중했다. 교묘하게 뱀들을 피해 강문수의 검이 좀비의 머리를 우그러뜨렸다. 하지만 좀비가 어떤 존재인가. 팔이 하나 없거나 머리가 반파 되어도 끝까지 인간을 노리는 집요한 놈들이다.
심지어 눈 앞의 좀비는 최상급.
- 크어어어!
녀석이 팔을 양 옆으로 펼치자, 녀석을 감싸고 있던 수 많은 뱀들이 모든 방향으로 쏘아졌다.
콱! 콱! 콱!
열 마리도 넘는 뱀들이 강문수의 몸 곳곳을 물었다.
‘나는 어차피 독 내성 스킬이 있어서 괜찮아. 그보다는, 그 둘이!’
진영과 주오령을 지켜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강문수가 뒤를 돌았다. 그러나 그게 실책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행동한 직후였다.
‘아차.’
최상급 좀비가 아직 죽지 않았다. 녀석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손톱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녀석의 스펙은 자신보다 월등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이대로 치명타를 맞았다간 죽게 된다.
“사, 살려!”
비명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검은 뱀들이 이미 진영과 주오령을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그저 본능적인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 외침과 동시에 뒤쪽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콰직!
“어?”
강문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눈 앞에서 뱀들에 둘러 쌓여 있던 주오령이 사라졌다.
진영을 향해 다가가던 수십 마리의 뱀들도 말끔히 동강 난 채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뚜둑.
좀비의 머리를 쥔 주오령이 고개를 까닥였다.
“일부러 안 죽이던 게 아니었나?”
* * *
“제 생각보다 상당히 강하시군요···.”
괜히 앞에서 나댔던게 부끄러웠는지 한 없이 쪼그라든 강문수가 중얼거렸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나대서 죄송합니다!”
강문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했다. 진영은 무덤덤하게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안전구역이란 곳으로 가죠. 상황을 보니 빨리 움직이는 게 좋아보이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수호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체 뭡니까?”
강문수는 분명 김지훈을 보고 ‘수호자’라고 불렀다. 진영이 알고 있는 과거에 그런 말은 없었다. 강문수는 금새 당당하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자랑인마냥 입을 열었다.
“아! 두 분은 6개월 간 다른 곳에 있다 오셨다고하니 모르시겠군요. 특정 길드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가장 강한 세 명. 대한민국에서는 그 분들을 수호자라고 부릅니다. 아까 보셨죠? 그 분들은 진짜 대단하거든요.”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설명하듯 강문수의 말에 거침이 없었다. 진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그 세 명의 이름이 김지훈, 염태준, 김영훈입니까?”
“헉,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알고 계셨군요! 지금 그 세 분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이걸로 확실해 졌다. 함께 공허에 빨려 들어갔지만, 그 세 명은 더 이른 시기에 밖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진영이 공허에서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것처럼, 일행들도 더 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김영훈이나 김지훈은 그렇다쳐도 염태준까지 수호자라고 불리고 있을 줄이야. 의외인데.’
그 놈 성격상 사람들을 구하고 다닐 리가 없는데 말이다.
“거의 다왔습니다!”
멀리 떨어진 장소에 노란빛의 반구가 생성되어 있었다. 보호막으로 안전지대를 생성한 모양.
‘도착하면 빠르게 연락을 취해야겠어.’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절실히 필요했다. 특히 그랑블루나 레드리버가 그대로 남아 있어야했다.
진영은 건물 틈새로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 멸망의 탑을 바라보았다.
‘대략 60층부터 100층까지만 남았나.’
멸망의 탑이 모두 무너지게 되면 세계와 탑의 일체화가 완료되는 격이다.
‘그 전에 끝내야한다.’
아포칼립스가 장기화 되고, 초월자들이 지상에 강림하기 전에 공략대를 모아서 멸망의 탑을 공략하고 이 싸움을 끝낸다.
그것이 진영의 목표였다.
“까마귀 길드, 강문수입니다.”
노란 에너지 방어막 앞에 선 강문수가 아이디 카드와 함께 이름을 말하자, 그 일부가 자동문처럼 열렸다. 보호막 내부는 첨단 과학 기지에 버금갔다. 다양한 기계들이 즐비해 있었고, 밖을 볼 수 있는 커다란 화면도 있었다.
그곳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자가 의자를 돌려 강문수를 바라봤다.
“그래 문수야, 시민분들 잘 데리고 왔어? 니가 그렇게 보고 싶다던 수호자님도 지금···.”
“그, 그게 알고보니 이 분들 그냥 시민이 아니셨습니다. 예전에 멸망의 탑에서 사라졌다는 이진영 플레이어랑, 주오령 플레이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지금···. 잠깐 근데 뭐라고 하셨습니까?”
수호자가 여기에 왔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헌터가 된 뒤로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내심 고대하고 있던 만남이었다.
그런 강문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진짜 김지훈이 서 있었다.
“와아, 진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
그러나 김지훈의 다른 곳에 고정된 채였다.
툭.
김지훈이 들고 있던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진영과 주오령을 바라 본 그가 못 믿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형···? 진짜 형이에요? 두 사람 다 살아 있던 거였어요?”
* * *
“그랬던거군요···. 그런 일이···.”
강문수가 다시 타 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 길드 상부에도 연락 넣어 놨습니다. 편히 얘기 나누시고,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주십쇼!”
강문수는 경례까지 하고서 방 밖으로 나갔다. 믿지 못하겠다는 중얼거림은 덤이었다.
“그 분이 수호자님들의 리더였다니···. 대박···.”
그가 나가자 김지훈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분이네요. 그보다···. 형들 이야기는 들었으니 이제 제 이야기를 해야겠죠. 일단 이걸 봐주세요.”
김지훈은 자신의 오른쪽 귀를 보여주었다. 보물 육망성의 귀걸이가 있던 자리가 신비한 문신으로 대체 되어 있었다.
“보물이 흡수 된 건가?”
“네, 맞아요.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지금 저희가 수호자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에요. 하지만 이 힘을 얻는게 쉽지는 않았어요.”
“공허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구나.”
잠시 코코아를 한 입 마신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 보물의 주인이었던 자와 만났어요. 그러다가 시험을 받았죠. 성공하면 새로운 힘을 얻고 공허에서 나가게 되지만, 실패하면 죽게 되는 그런 시험이었죠.”
김지훈이 떨어진 세계는 마법대신 연금술과 증기기관으로 이뤄진 기계 장치들이 존재하는 세계였단다. 육망성의 귀걸이의 주인은 어떤 연금술사였는데, 그의 밑에서 제자로 일하며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고 한다.
“그 분은 좋은 분이셨지만 마지막에 치뤘던 시험은 가혹했거든요. 어쨌든 통과하고나니, 저희 형이랑 태준이 형을 볼 수 있었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남은 둘이 한참을 지나도 보이지 않자, 거기에 모인 그들은 잠정적인 결론을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지만 있을 수 있는 일.
진영과 주오령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죽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언제까지 멸망의 탑에서 기다리고만은 있을 수 없었기에.
“태준이 형은 형이 분명히 죽었을 거랬어요. 물론 저는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김지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고맙다. 근데 염태준은 어떻게 수호자가 된거야? 그럴 성격이 아닐텐데.”
“그건···.”
그때였다.
벌컥하는 소리와 함께 강문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임재천 길드장님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그러면···.”
그때 김지훈이 손을 들었다.
“아뇨, 지금 간다고 말해주세요. 까마귀 본부에 태준이 형도 있을 거에요. 태준이 형도 형을 보고 싶어할거고요. 어쩌다 수호자가 됐는지는 직접 듣는 게 좋겠죠.”
김지훈에게서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수호자로 활동하며 보내는 동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상당한 성장이 있었던 모양.
‘일행들이 전부 수호자가 되어 있을 줄이야.’
어서 염태준과 김영훈의 성장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힘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상당했다.
‘내 상상 이상으로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이제 진영은 오로지 공략에만 신경쓸 수 있다는 의미였다. 까마귀 길드에서 마지막으로 상황을 살피고, 마지막 탑 공략 준비를 하는 것만이 남았다.
주오령과 이진영은 김지훈을 따라 안전구역 밖으로 나왔다. 김지훈은 순식간에 건물 잔해들을 치워 평평한 땅을 만들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본부는 걸어가려면 꽤 멀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가야하는 것인가.
진영이 의문이 짙어질 때 즈음 김지훈이 손을 앞으로 펼쳤다.
샤아아!
“오.”
주오령도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멋진 외관이었다.
조종석에 올라탄 김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짐꾼 특성 ‘다재다능’으로 까마귀 길드 본부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