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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40화 (140/152)
  • 주오령(3)

    ‘통했다.’

    공허룡이라고 불리우는 본 드래곤이 진영을 태운 채 하늘 높이 비상했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숲이 조그맣게 느껴졌다.

    ‘이거라면 초월자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스리엘과의 전투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공허에 들어 와서 얻어낸 보상은 아이템 뿐만이 아니었다.

    ‘룰 오버.’

    새롭게 얻은 부가효과를 다시 확인하는 진영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 부가효과 설명 ]

    이름 : 룰 오버

    효과 : 대상의 마음을 훔쳐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만든다. 대상의 강함에 따라 마력과 초월력이 소모된다.

    특성이 가진 이계의 힘이 완전히 개화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시스템에 종속된 능력이 아니었다. 탑이 부여해준 것이 아닌, 이계에서 가져온 특수한 힘.

    ‘99층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는 이걸로 끝났다.’

    콰아아!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오는 공허룡이 거센 울음 소리를 토해냈다. 오든에 따르면, 본래 이성을 잃은 채 공허를 좀 먹는 생물이었다고 하나 그런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충직한 부하처럼, 부드럽게 땅에 안착해 진영이 내려갈 수 있도록 머리를 내려 주었다.

    “고맙다.”

    슥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진영이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공허룡의 포효가 이어지자 녀석을 지키고 있던 본 수 십 마리의 와이번들도 일제히 그 뒤로 내려 앉았다.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라곤 생각했지만, 정말 놀랍군. 놀라워.”

    오든은 무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공허룡과 진영을 바라보았다. 탑의 시스템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공간 속에서 오든과 어린 주오령은 오랜 시간 수련해 왔다.

    그럼에도 공허룡은 넘지 못할 장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계 어딘가에서, 멸망의 탑에 이끌려 둥지를 튼 녀석의 힘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녀석은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양, 진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정말로 대단해.”

    오든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곳에 들어 올 때도 자네 덕분에 올 수 있었는데, 여기까지 도움을 받다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진영이 돕지 않았더라도 이 공간에 들어 오는 것까지는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죽음의 사도를 가까스로 물리치고, 그의 연인이 남겨 둔 보석의 힘으로 주오령과 함께 아공간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공허룡을 무릎 꿇린 일은 이 세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일. 주오령이 오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됐군.”

    물론 이곳은 실제 세계가 아니다. 적어도 주오령의 세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주오령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공허룡을 처리하자고 한 건 전적으로 이 녀석 때문입니다.”

    “그렇구만···. 정말로 고맙네. 생면부지의 남을 위해서, 이런 결단을 내려줘서.”

    오든의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크오오!

    공허룡이 가진 힘을 이용하면 그가 가진 시간의 보석에 남은 마력 또한 충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꼬맹이 주오령과 오든은 이제 함께 다음 세계로 나갈 수 있다.

    “하, 이럴 게 아니지. 숨겨 놓았던 술이라도 꺼내야겠네. 자네들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아니 급하더라도 식사만이라도 하고 가게.”

    오든이 주오령의 손을 붙들었다. 녀석은 물끄러미 오든을 바라보다가, 진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바깥에 나가면, 제대로 된 식사를 취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지막 만찬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 게다가 오든의 마음이 간절해 보이기도 했고.

    “먹도록하지.”

    “그래, 그래. 이리 오게! 자네는 어쩐지 낯설지가 않아. 이진영군도 어서 오게나. 비장의 술이 준비되어 있거든.”

    * * *

    다시 한번 모닥불에 불이 오르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오든이 주오령의 목에 팔을 걸었다.

    “자네들을 만난 건 정말이지 천운일세. 자, 멸망의 탑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다시 건배하지!”

    숲에 나오는 걸로만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진수성찬이었다. 꼬맹이 주오령은 사냥을 하러 나가 있었다.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영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오든과 술잔을 부딪혔다.

    “정말로 두 번이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 아니, 만나게 될 줄조차 몰랐지.”

    얼굴이 벌게 진 오든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자네들이 왔다는 미래는 대체 어떤 모습인가? 자네 둘 같은 플레이어가 있다면, 이미 상당히 진척이 되고도 남았겠군.”

    이전 만남에서 진영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오든에게 밝혔었다. 오든 입장에서는 기대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대부분은 20층에 거주하고 있고 그마저도 슬슬 바깥으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공략대는 저와 제 일행이 유일했습니다.”

    정확히는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에 가까웠다. 성장하는 일행의 능력을 따라 올 수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 술이 확깨는군. 그러니까 자네는 인류가 20층 대에 있을 때부터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군. 정말···. 미쳤다고는 밖에 말이 안나오는군.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바깥으로 나가고 있단 말은 무슨 의민가?”

    “그대로입니다. 제가 탑의 축을 부숴 붕괴를 가속화 시켰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오든의 눈이 동그래졌다.

    “허, 그런 방법이. 그러면 바깥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아포칼립스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겠군.”

    탑의 붕괴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내부와 외부의 간극 때문이었다. 제대로 탑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가 되면 헌터들과 플레이어들의 역량 차이가 심해지는 지경에 다른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속절 없이 무너지고 만다. 회귀 전의 인류가 그러했다.

    “그래도 자네들에게서는 희망이 보이는군.”

    오든은 다 먹은 고기 덩어리의 길쭉한 뼈를 사용해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간단한 동그라미였다.

    “이 공간에 숨어 있으면 탑의 일면을 볼 수 있단 이야기는 했었지? 유리엘과 폭룡왕이 탑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도 나는 지켜보고 있었네.”

    탑의 꼭대기.

    그곳에는 가늠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

    다름아닌 수 많은 회귀를 통해 정점에 도달했던 신화준이 했던 말이었다.

    그 존재를 오든 또한 보았다.

    “탑의 의지.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더군. 멸망의 탑을 끝까지 오른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네. 플레이어들은 선택을 강요받았지. 탑의 일부인 초월자가 되어 영생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보았기에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다.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자를 쓰러뜨려야하네. 동시에 탑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네. 유리엘은 아쉬웠어. 공허 마법을 완성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늦은 탓에 자신의 것으로는 만들지 못했으니까.”

    그의 눈이 차분하게 빛났다. 숲 너머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다정함이 어려있었다.

    “내 아들 놈에겐 다양한 걸 가르치고 있지. 시스템이 없는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마력을 다루는 법, 신체를 단련하는 법, 힘을 사용하는 방법···. 탑이 세계를 집어 삼키기 전까지 유용하던 것들이었지.”

    이내 오든은 고개를 들어 진영과 주오령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방법이 미래에서도 잘 먹힐지는 솔직히 모르겠군. 자네들 눈치를 보아하니, 우리 부자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 같은데.”

    진영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뭐, 빙빙 돌려 말하긴 했지만 자네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보인단 말을 하고 싶었네. 시스템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도 그 힘을 증명해내지 않았나.”

    그렇다.

    진영이 가진 이계의 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원인이자, 신화준이 탑의 정점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

    시스템 바깥의 힘이 진영과 주오령에게는 존재했다.

    “잘 되길 바라겠네.”

    * * *

    부슬비가 내리는 다음날 아침.

    오든의 오두막집에서 나와 떠날 채비를 하는데, 주오령이 말했다.

    “비슷하군.”

    “뭐가?”

    “파트너, 너를 돕던 이계의 존재들과 이곳의 기운은 비슷하단 뜻이었다.”

    그래서였나. 이계의 존재들을 직접 만났을 때, 주오령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던 것은.

    탑의 아이템을 거부하던 주오령도 오든의 유품이나 다름 없는 ‘타이탄의 창’만큼은 받아 쥐었다.

    그 덕에 공허 속에서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이어져 있는 것들이 많았다.

    벌컥.

    그때 오두막 집 안에서 꼬맹이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주오령에게로 달려 들었다. 주오령은 피하지 않고, 녀석의 공격을 받아주었다.

    뒤늦게 나온 오든이 중얼거렸다.

    “그새 정든 모양이군.”

    어젯밤까지 주오령이 꼬맹이를 상대해준 탓이었다.

    콰앙! 쾅!

    정들었다기엔 퍼붓는 공격에서 살기가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주오령은 이미 익숙해진 이곳의 환경에 맞춰 꼬맹이를 가볍게 제압했다.

    “그러면 이제 저희는 가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 오령아, 그만하고 이리와라. 네가 형을 이기려면 한참은 더 수련해야할 거다.”

    그 말에 어린 주오령이 오든의 옆으로 도망쳐왔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무슨 동물인가 싶었지만 이렇게 보니 썩 귀여웠다.

    “아, 그러고보니···. 이거라도 가질래?”

    진영은 꼬맹이에게 간식 하나를 건넸다. 언젠가 김지훈한테 받았던 거였다. 녀석은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하더니 냉큼 집어갔다. 그걸 지켜보던 오든이 꼬맹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너도 나중에 이 형처럼 좋은 파트너를 찾아라. 그래야 멸망의 탑을 공략할 수 있을테니까.”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탑의 의지에 관한 정보도 얻었고, 남은 건 정말 빠져나가는 것 뿐이었다.

    “공허룡, 나갈 수 있는 포탈을···.”

    그때였다.

    샤아아-!

    진영과 주오령이 들고 있던 보물에서 빛이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전해야할 것들을 전부 전했다는 듯, 보물은 떨림과 함께 포탈 하나를 만들어냈다.

    ‘완전 제멋대로군. 위험성이 있는 공허룡의 포탈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벗어나야했다. 더 이상 공허 속에 발 묶여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런 진영을 부정하듯 보물이 떨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공허를 빠져나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럼 잘 가게나. 정말 고마웠네.”

    오든과 꼬맹이 주오령의 배웅을 받으며, 진영과 주오령은 포탈 앞에 섰다.

    이제 진짜 세계로 나설 차례였다.

    “파트너, 출발하지.”

    “그래.”

    둘은 포탈 속으로 발을 옮겼다.

    새하얀 포탈이 진영과 주오령을 감쌌다.

    * * *

    [ 모든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존재를 찾아냈습니다. ]

    [ 모든 이계의 존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

    머리가 어지러웠다. 공허를 넘어 온 충격에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제대로 돌아오긴 한 모양이야.’

    이계의 존재들과의 연결은 진영이 공허를 탈출했다는 증거였다.

    “······.”

    그런데, 주오령이 굳은 듯 멈춰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에 고정 되어 있었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탑과, 피처럼 붉게 물든 하늘.

    높히 솟은 빌딩과, 반쯤 폐허가 된 아파트들.

    이곳은 탑 바깥이었다.

    한국이 맞았고, 진영이 원래 있던 세계가 맞았다.

    그러나 뭔가가 달랐다.

    멸망의 탑이 절반이 넘게 줄어 있었고, 붉은 하늘 저 멀리에서는 붉은 유성이 수 십 개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도시 어디에서도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오령이 담담하게 말했다.

    “파트너,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흐른듯 하군.”

    공허 속을 헤매다 빠져나온 지금.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세상이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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