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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35화 (135/152)

공허의 기억(3)

폭룡왕 벨카론을 처치하고 빼앗은 힘 그리고 죽음의 사도에게서 방금 훔친 따끈따끈한 힘.

【 프, 플레이어 중에 이렇게 강한 분이 계셨다니···! 】

진영은 초월자급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죽음의 사도의 힘은 약화 되었다.

죽음의 사도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릉-!

진영이 단검을 꺼내들자, 죽음의 사도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상대의 능력을 잴 줄 알았다. 진영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 큭, 오든···.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

그러나 도망조차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죽음의 사도가 진영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양 손에 검은 불꽃이 맺혔다.

닿는 것만으로 상대의 마력과 정신력을 앗아가는 죽음의 불꽃.

오든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죽음의 사도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정도라니? 그렇다면 지금만한 기회도 없는 셈이었다.

콰직!

【 크헉! 】

오든이 가진 타이탄의 창이 사도의 몸 중앙을 꿰뚫었다. 창에 담긴 마력이 관통한 부분을 마구 헤짚기 시작했다.

【 가, 감히! 】

촤르륵!

죽음의 사도의 손 끝에 맺혀 있던 검은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며 오든을 집어 삼켰다. 검은 불은 신체를 태우는 불이 아니다. 심지어는 물을 부어 끌 수 있는 형질의 불이 아니었다.

당하는 존재의 정신과 마력을 모두 태운 뒤에야 사라지는 저주의 불이었다. 정신이 통째로 타오르는 아득한 고통 앞에서 오든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죽음의 사도 죽어라!”

푸슉! 푸슉!

플레이어로서 쌓아온 불굴의 정신력과 강철과도 같은 마력이 사도를 집요하게 찔렀다.

【 크헉! 】

죽음의 사도는 치명적인 일격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방어를 할 여력이 없었다. 이미 그의 등 뒤까지 다가온 이진영을 막아내야한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컸다.

【 일어나라! 지옥에서 돌아온 나의 종들이여! 】

진영이 다가오기 직전, 죽음의 사도가 소리쳤다.

땅속을 뚫고 검은 거죽을 뒤집어 쓴 각종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말을 탄 채 검을 든 데스 나이트, 목 없는 기사 듀라한, 리치까지.

최상위 언데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진영을 향해 달려 드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남짓.

“고맙군.”

진영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죽음의 사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대는 능력치를 빼앗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마수들을 소환해 주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 도, 돌아가! 지옥으로 돌아가십시오! 】

“이미 늦었다.”

능력치를 흡수하며 더욱 강해진 진영의 움직임을 마수들의 실력으론 쫓을 수 조차 없었다.

부웅!

데스 나이트의 검을 유유자적하게 진영이 피하고 한 걸음 걸었다. 리치의 강력한 마법과 듀라한의 공포 또한 진영에게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슥-!

진영이 검날이 서늘한 궤적을 그렸다.

콰직!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으며, 사도의 팔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 크아악! 】

죽음의 사도는 언제나 플레이어들의 우위에 서서, 그들이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그런 자신이 이런 꼴이라니. 뒤는 진영, 앞은 오딘으로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 오, 오든! 거래, 거래를 하자! 】

사도 말은 이미 오든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두고 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연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다니.

함께 죽더라도 구하러 왔어야 했다.

그런 후회 앞에서 오든의 창이 사도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콰앙!

번개와 같은 금빛 마력이 하늘 위로 뻗어나갔다.

[ 죽음의 사도를 처치하셨습니다. ]

[ 검은 불꽃이 사라집니다. ]

“······.”

오든은 그 자리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최소한 함께 죽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때 진영이 입을 열었다.

“오든씨. 집 안을 살펴 보세요. 희미하게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응애.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했다.

아기의 울음 소리였다.

* * *

오든이 다가가 결계에 손을 대자, 폐가를 감싸고 있던 마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여성과 살아있는 갓난 아이가 있었다.

“흐흑···. 일렌···.”

오든은 이미 온기가 가신 여성을 껴 앉은 채 흐느꼈다. 그녀는 언젠가 오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자신의 수명을 대가로 강력한 결계를 만들어 낸 듯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아이는 지켜낼 수 있었다. 외부와의 시간을 차단시키는 결계 덕이었다.

“······고맙네.”

시간이 흐른뒤, 오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없었다면 나 혼자서는 불가능했을거야.”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눈가에 맺힌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실 죽을 셈이었네. 죽음의 사도와 맞서 싸우고, 끝까지 싸워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죽을 셈이었지.”

아이를 안아든 오든의 눈빛은 전에 없이 필사적이었다. 그는 결심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셈이었지만, 이젠 아닐세. 하지만 그렇다고 전장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어.”

세계는 멸망한다. 폭룡왕과 아스리엘의 전쟁은 아스리엘의 승리로 끝난다. 탑은 어김없이 다음 세계를 삼키기 위해 움직인다.

“자네 때문이 아닐세, 나는 원래부터 이리 생각하고 있었어. 이미 우리들은 시스템에 얽매여 있는 존재, 폭룡왕조차 결국에는 탑의 규율에 메인 초월자이지 않은가.”

탑은 플레이어들이 탑을 공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초월자들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탑은 공략되지 않았다.

탑 스스로가 공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탑의 시스템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들이 탑을 공략할 수 있는가?

오랜 기간 품어 왔던 의문에 오든은 답을 내린 셈이었다.

“그러니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오든은 여성의 손에 놓여 있는 붉은 보석을 주워들었다.

그러자 그의 창 위로 검보랏빛 마력이 파직 거리기 시작했다.

“자네는 미래의 인간이라고 했지? 운이 좋다면 볼 수도 있겠군. 아니지, 날 만났단 이야기가 없으니 난 죽은건가?”

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마력이 타이탄의 창 끝으로 향했다. 그렇게 모인 검은 점은 위에서 아래로 긴 직선을 만들어냈다. 오든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멸망의 탑을 오르는 중에 발견한 공간이지. 의외로 멸망의 탑에는 숨겨진 공간이 많아. 어쩌면 나와 같은 이들이 의외로 많을지도 모르겠어.”

억지로 열어낸 공간은 다시 닫히려하고 있었다. 오든은 아이를 데리고 그 검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고마웠네. 언젠가 볼 수 있다면 좋겠군.”

이곳이 정말로 과거인지, 진영이 과거에 개입해 역사를 바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 속에 잠긴 기억인지 진영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진영은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네. 그러면 다음에 보죠.”

멸망이 집어 삼킨 세계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게 최선일지도 몰랐으니까.

오든은 이계의 존재들처럼 탑의 비밀스런 공간에 숨어 다음 세계로 향할 것이다. 그는 전쟁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윽고, 검은 공간의 입구가 완전히 닫혔다.

파앗!

타이탄의 창을 향해 뻗어 있던 미약한 빛줄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강력한 빛줄기가 어딘가로 이어졌다.

* * *

공허를 빠져나가,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선 아리엘을 만나야했다.

‘지도 덕분에 쉽게 온 것 같군.’

오든이 표시한 지점 근처에 다다르자 하늘을 배회하는 드래곤들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고성 하나를 중점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과거에 있던 것보다 훨씬 많네.’

진영의 본 폭룡왕의 부하는 300마리에 불과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는 그의 부하들의 수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100마리였으며, 전장에서 보였던 수도 상당했다.

그렇게 고성을 향해 산 오르고 있는데, 드래곤 한마리가 진영을 발견하고선 다가왔다.

“네 놈!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있느냐?”

“폭룡왕 벨카론의 성이 여기가 아닌가?”

“맞다. 네 녀석이 함부로 올만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지.”

동맹이라고한들, 녀석들이 플레이어와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했다.

진영은 나지막이 말했다.

“유리엘은 이 성에 있나? 공허에 먹힌 자가 찾아왔다고 유리엘에게 전해라. 폭룡왕에게 전해도 좋아.”

“······. 네 놈이 뭔데?”

드래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녀석들은 의외로 힘의 논리에 익숙하다. 그들의 대장격인 로드도 힘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고 온 몸에 멍이 든 레드 드래곤이 경례까지 해가며 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잠깐, 어딜가는거야?”

“예? 말씀을 전해달라 하셔서 시키는데로 하러 가는데요.”

“날 태우고 가야지.”

진영은 단번에 땅을 박차고 녀석의 위에 내려 앉았다.

“크윽······. 우선은 정문까지만 가겠습니다. 그 이상은 안됩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자존감 넘치는 드래곤들에게 있어 인간을 등에 태우는 일만큼 수치스러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반항하지 않을만큼 진영에게서 격의 차이를 느끼고 있다는 의미였다.

샤아아-!

단숨에 드래곤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하늘 위의 구름을 지나쳐 고성이 위치한 산 꼭대기에 순식간에 도달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말씀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녀석은 꽁지가 빠져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기까지 날아 오는 동안, 통신 마법으로 다른 드래곤들과 의사소통은 충분히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정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적도 아니지만, 같은 동맹인 것도 확실치 않은 플레이어.

그게 지금의 진영이었다.

‘때로는 그게 더 확실한 신분 증명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그때였다.

끼이익!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숨어 진영을 확인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의외로 고성의 병사들은 인간, 드래곤, 마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때의 폭룡왕은 정말로 인간의 편에 서려고 했던 건가.’

진영은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고성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벨카론의 초월력으로 지어진 성 안은 이 세계에 맞지 않게 세련된 풍미가 있었다.

몇 번이고 복잡한 복도를 지나치고나서야 진영은 유리엘과 마주할 수 있었다.

“······.”

고풍스런 방 안에 앉아 있던 유리엘은 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 나름대로 진영이 거짓된 자인지를 판별하려는 시도였다.

“···역시 모르겠군요. 무례한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럴만한 상황이니까요.”

아스리엘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적인지 아군인지를 판별하는 것조차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플레이어라 해서 모두가 세계를 구원하고 싶은 것은 아닐테니까.

마족을 증명하는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유려한 외모.

마족임을 감안해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상당한 마력.

그녀가 유리엘 본인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면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진영은 폭룡왕 벨카론과의 전투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벨카론과는 연인관계에 있을 그녀가 듣기 거북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순화를 거쳤다.

“그런거였군요···. 저희 입장에서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니군요.”

미래의 벨카론의 존재는 그녀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리엘의 눈에 실망이나 슬픔의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 말에 따르면 이곳은 공허의 일부 확률이 높아요. 즉, 이 공간에서 무슨 짓을 한다고 한들 미래는 바뀌어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거였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가짜라는 말도 아니에요. 어쩌면···. 저희도 엄연히 존재하는 가능성의 일부일테니까요. 동시에 이건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눈에는 오히려 생기가 넘쳤다.

“공허 마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미래의 벨카론이 썼다는 공허 마법조차도 굉장히 불완전해 보이네요. 아마도 끝까지 완벽하게 완성시키진 못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유리엘이 흥분한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마법사로서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만약 초월자 아스리엘의 신전에서 태고의 조각을 가져 올 수만 있다면···. 진짜 공허 마법을 완성 시킬 수 있을 거에요. 그게 불가능하니까, 미래의 저희들도 패배한거였겠죠?”

그녀가 아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아스리엘 몰래 그의 신전에서 태고의 조각을 가져 올 수 없을까요? 그것만 있으면 당신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을 거에요.”

“몰래 가져 오면 되는 겁니까?”

“네? 당연하죠. 알게 되면 아스리엘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몰래 숨어서 아이템을 훔쳐온다.

“한 번 해보죠.”

그건 진영의 전문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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