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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30화 (130/152)

용들의 만찬(3)

멸망의 탑이 무너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건물의 붕괴와는 달랐다.

1층부터 6층까지 순서대로 한 층씩 허물어져 내렸다.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공중에 떠 있는 셈.

쿠구궁!

세계 곳곳에 위치한 탑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지금 탑 무너진 자리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온다던데?

- 그래서 군인들 움직이고 있는 건가?

- 우리 지역 벌써 난리났음. 경보 엄청 울리고, 군인이랑 헌터들도 보임. 시민들 전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던데.

각 지역의 상황은 인터넷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멸망의 탑이 자리 잡고 있던 대부분의 지역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 나 방금 고블린이랑 눈 마주쳤음. 우리 집 3층인데 설마 여기까지 올라오진 않겠지?

ㄴ뭔데 마수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냐; 거긴 헌터 없음?

ㄴ없음. 아래층에서 소리나서 나 잠깐 확인 좀 하고 옴.

ㄴㅋㅋㅋㅋㅋ 설마;

갑작스런 이상 현상, 기존에 있던 게이트의 수도 늘어난 가운데 모든 길드가 총력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수가 너무 많은데? 헌터들 밀린다.

ㄴ 헌터가 왜 밀림ㅋㅋㅋ 밥만 먹고 마수 잡는 사람들인데.

ㄴ 음모 조장하네 저거ㅋㅋㅋㅋ

ㄴ 진짜다, 동영상 올린다. 봐라.

여러 사이트에서 동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을 가릴 것 없이 전 세계적으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다양했지만 그 내용은 비슷했다.

- 헌터들이 지고 있는 거 아냐?

- 뭐냐. 지금.

그제서야 사람들은 실감하기 시작했다.

- 설마, 영화처럼 마수들한테 세상이 초토화 되진 않겠지?

- 지금 인터넷 다 난린데.

여지껏 헌터들에 의해 유지되었기에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었다. 인류는 멸망의 탑을 관리하고 있다고, 통제하고 다뤄내고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모두 착각이었다.

심상치 않은 조짐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멸망의 탑의 정보 시스템을 교묘히 조작해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네트워크 또한 실시간으로 불타 오르는 중이었다.

- 나 지금 바깥인데, 바깥 상황 장난 아니야. 헌터들 모자라니까, 지원 와줄 수 있는 사람 빨리 와라.

- 거기가 문제냐 지금 여기가 무너지고 있는데ㅋㅋㅋ

- 그랑블루도 멸망의 탑 손절하고 나간다던데.

- 벌써 클랜들 대부분 바깥으로 나갔음. 지원 준비중임.

긴박한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찾기 마련이었다. 플레이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에는 이진영을 찾는 글도 많았다.

- 이진영은 지금 어디서 뭐함? 탑 무너지는데 왜 소식이 없냐.

- 이진영 소식 아는 사람?

ㄴ 한국 플레이어라 좋아했는데 그새 죽었나. 죽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지.

ㄴ 이진영은 플레이어 커뮤 안보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진영을 알고 있었다. 20층부터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준 이진영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감히 살아 있다고 짐작키는 어려웠다.

- 이진영이 층 공략했다고 알림 안 뜬지도 좀 됐던데.

- 26층 공략된지 얼마 됐다고ㅋㅋㅋ

- 나, 이진영 마지막으로 26층에서 봤어! 계속 공략하고 있는 거 아닐까?

ㄴ 이진영 죽었음. 내가 봄.

멸망의 탑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 이진영 타령 그만하고 바깥 나와라, 지금 마수 막는다고 국가에서 돈 뿌리는 중 ^오^

- ㅋㅋㅋ돈이 종이쪼가리 되게 생겼는데 뭔 소용, 차라리 멸망의 탑이 안전한 거 아니냐.

ㄴ 이게 맞다.

플레이어들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탑의 최하위 층이 무너진 지금이 이 정도다. 탑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쏟아져나오는 마수의 수와 강력함이 차원이 달라질 게 분명했다.

- 아직은 막을만 하다잖아. 빨리 내려와. 탑은 나중에 들어와도 되니까.

- 우리 목숨도 소중한데, 괜히 바깥에서 웨이브 막아야 되냐?

- 이진영이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한 번에 해결해 줄 듯.

ㄴ 이진영이 뭐 신도 아니고ㅋㅋㅋ

- 예언가 리암이 멸망의 탑이 공략 되면, 웨이브도 끝날 거라던데.

ㄴ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함.

ㄴ 이진영이 공략하길 기도해야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 내려가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은 끝까지 내려가지 못할 것이고, 지금 나가는 자들은 계속해서 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불안함과 긴장감, 초조함이 감도는 커뮤니티의 글 위로 하나의 덧글이 보태졌다.

ㄴ 나 이진영 일행 염태준인데 지금 49층에서 드래곤 삼 백 마리랑 싸우러 가는 중^^ 곧 초월자랑 붙으러 가니까 다 닥치고 바깥이나 지켜.

ㄴ ㅋㅋㅋㅋㅋ나는 이진영 일행 주오령임ㅋㅋㅋ

ㄴ 초월자가 뭐임?

ㄴ 와, 진짜면 좋겠다. ㅍㅇㅌ

* * *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드래곤들이 진영 일행을 찾고 있었다.

- 크아아!

개체 하나 하나의 크기도 대단하지만, 그들이 내뿜는 마력은 주변의 마수들조차 바닥을 기게 만들었다.

놈들은 진영 일행이 있었던 40층부터 지나쳐 오는 모든 층을 초토화 시키며 올라왔다. 그들이 모인 49층 이곳도 곧 브레스에 의해 초토화가 될 예정이었다.

‘충분히 모여들었다.’

진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드래곤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종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간혹 한 명의 뛰어난 인간이 드래곤을 처치하기도 하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일이었다.

인간 하나가 드래곤을 죽였다고 해서 인간이 드래곤보다 강한 종족인 것은 아니다.

‘생물의 정점이 바로 드래곤.’

멸망의 탑이 존재하기 이전 세상을 주름 잡고 있던 인간이 그러하듯이.

드래곤에게 천적이란 없었다.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같은 드래곤 뿐.

‘그래서 준비했다.’

[ 대상으로부터 드래곤 피어(S)를 훔치셨습니다. ]

[ 훔쳐낸 스킬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

[ 드래곤 피어(S)가 드래곤 프레셔(SS)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

아래층에서 삼 백 마리의 드래곤이 모두 모인 그 순간 진영은 드래곤 프레셔를 사용했다.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로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그 스킬이 진영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 !!!

현란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드래곤들의 날개짓이 일순 멈췄다.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려던 그들이 가까스로 다시 날아 오르지만, 마법이나 브레스를 뿜을 순 없었다.

“프레셔?”

“로드께서 직접 오셨다!”

“어디에 계신거지?”

막대한 착각과 함께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주오령, 부탁한다.”

“알았다.”

이어서 주오령의 양손이 진영을 붙잡았다.

지금은 폭룡왕이라는 강력한 로드를 중심으로 뭉쳐 있지만, 그들 모두가 조직 생활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실질적인 지휘를 맡고 있는 녀석을 먼저 죽인다.’

사령탑 노릇을 하고 있는 놈을 찾는 것은 간단했다. 프레셔에 혼란스러운 순간 드래곤들의 시선이 하나의 드래곤을 향한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쉬익!

주오령이 있는 힘껏 진영을 하늘 위로 던져 올렸다. 공기를 가르며 은폐 지대를 벗어난 진영은 곧장 그들의 지휘자인 골드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

진영조차 견디기 힘든 무지막지한 속력. 골드 드래곤이 진영을 발견하는 것과 드래곤 슬레이어가 녀석의 심장을 꿰뚫는 것은 동시였다.

“커헉! 어, 어떻게?”

드래곤 사냥이 시작 됐다.

* * *

“저, 저 놈이다! 잡아라!”

“죽여라!”

“쫒아가! 바닥으로 내려가!”

“브레스를 쏴!”

아니나 다를까 골드 드래곤이 죽자 드래곤들의 의견이 순식간에 갈리기 시작했다.

- 콰아아!

골드 드래곤의 시체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진영을 향해 강렬한 브레스가 발사 되었다. 진영은 타이밍에 맞춰, 서큐버스 루시에게서 빼앗아 온 스킬을 사용했다.

- 공간 도약.

브레스가 진영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해, 해치웠나?”

블루 드래곤이 기쁨의 미소를 짓는 것은 잠시였다.

촤악!

푸른 검날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단숨에 블루 드래곤의 목을 베어냈다.

어떠한 금속보다 단단하고, 튼튼하다고 여겨지는 드래곤의 비늘도 드래곤 슬레이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쏴라! 마법을 퍼부어야 한다!”

“■■■!”

당황한 드래곤들이 하늘을 향해 서로 용언, 마법과 브레스를 퍼부었지만 진영은 잽싸게 드래곤들 위를 옮겨다니며 하나씩 드래곤들을 해치웠다.

촤악!

검 한 번에 수 백 년을 살아 온 드래곤 한 마리가 사라졌다. 고작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드래곤들의 마음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촤악!

다섯번째 드래곤의 목이 떨어졌다.

“모두 모여라!”

“뭉쳐서 피어를 발산해!”

“놈은 강하다! 모여야 잡는다!”

그제서야 진영을 단순한 사냥감이 아닌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뭉친 드래곤들에게서 강렬한 파장이 발산 되었다.

- 파아아아!

파장은 중첩되며 49층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막대한 규모의 숲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 다수의 드래곤으로부터 피어가 발산 됩니다. ]

[ 피어의 영향을 받은 생물들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하며,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

49층에 있는 한 드래곤의 피어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래야했는데.

“사, 사라졌다!”

진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사라진 게 아니다. 바닥을 봐라!”

진영은 어느새 드래곤에게서 떨어져내려 일행과 함께 숲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피어가 안 통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하고 일단 쫓아!”

사아아!

전투기처럼 쏘아진 수 백 마리의 드래곤이 진영 일행의 뒤를 쫓았다.

“■■!”

“가속 마법 중첩 시키게나!”

“나머지는 브레스를 쏴라!”

마법의 발동을 알리는 형형색색의 마력이 드래곤들의 뒤를 수 놓았다.

전열의 드래곤들이 토해낸 브레스가 숲을 녹였다.

그러나 진영 일행에게는 닿지 못했다.

닿더라도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 듯 브레스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진영 일행이 반격을 펼치거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묵묵히 도망만 치고 있었다.

“이러다간 놓치겠다! 일제히 브레스를 쏴라!”

“이 쥐새끼 같은 놈들!”

- 콰아아!

- 콰아아아!

수 백 줄기의 브레스가 땅을 녹이고, 숲을 태우며 진영 일행을 덮쳤다. 그러나 진영 일행의 도망을 막을 순 없었다.

“왜지? 왜 못 잡는 거지?”

“심지어 저 자들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네. 이게 무슨···.”

가속 마법에 날개를 강화하는 용언까지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의 달리기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다 잡은 일행을 놓아줄 수도 없는 일.

“······. 저 놈들이 빨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느려진걸세.”

늙은 드래곤이 자포자기한 듯 중얼거렸다.

진영 일행은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계획에 의한 일이었다. 드래곤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 것을 확인한 진영이 일행에게 손짓했다.

“드래곤들이 쫓아 올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추자.”

“네! 뒤도 걱정마세요! 브레스나 마법은 제가 다 인벤토리에 수납해 놓을게요!”

모든 드래곤을 처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훔친 능력치 죽이면 대부분 사라진다. 남는 건 극소량이다. 게이트 때와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의 주의를 끌 정도만 드래곤을 처치한 뒤, 능력치를 훔쳐 달아난다. 달아나면서도 계속해서 능력치를 훔친다.

[ 신화급 아이템 ‘지혜의 왕관’의 효과로 마력의 농도가 짙어집니다. ]

능력치를 훔치기 위한 마력은 충분했다. 거듭해서 드래곤들에게 능력치를 훔칠 때마다 강해지는 것이 체감된다.

[ 초월의 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

[ 대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폭룡왕과의 전투를 기대합니다! ]

“이대로 축까지 달린다.”

“알았다.”

55층, 두번째 축을 지키고 있을 폭룡왕을 향해 달린다.

[ 대부분의 능력치가 10단계에 근접했습니다. ]

[ 초월의 좌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충족했습니다! ]

그 앞을 막는 건 모조리 치워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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