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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29화 (129/152)
  • 용들의 만찬(2)

    “네 놈, 웃기는 짓을 하고 있구나.”

    레드 드래곤 감블의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지상 최강의 생물 드래곤. 그 앞에서 펼쳐지는 촌극은 그들에게 모욕이나 다름 없었다.

    화르륵!

    감블의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붉은 화염이 그가 쥔 검을 감쌌다.

    “누가 이진영이든 상관 없다. 네 놈부터 죽여주지.”

    “크윽, 이게!”

    콰앙!

    그러거나 말거나 염태준은 초월급 아이템을 길들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감블이 움직이기 전에 이진영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내가 이진영이다. 저 녀석은 무시해라.”

    “하, 네 놈이 이진영인가···.”

    파직!

    레드 드래곤의 눈 위로 작은 스파크가 터졌다.

    “큭, 정보를 숨기고 있다니. 좋다. 본대가 오기 전에 네 녀석들을 상대해 주도록하지.”

    드래곤의 눈으로도 진영의 정보는 꿰뚫어 볼 수 없었다. 히든 피스와 이계 존재들의 가호 덕분이었다.

    “본대···?”

    김지훈이 놀라며 말하자, 감블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너희를 발견하는 순간 연락을 넣았다. 곧 있으면 삼백에 달하는 드래곤들이 이곳으로 몰려 올거다.”

    “그 정도 수인가, 알려줘서 고맙군.”

    그런데 진영의 반응이 예상 외였다. 두려워하기는 커녕 고맙다니. 마치 드래곤들과 전쟁이라도 치루려는 듯하지 않은가.

    “네 놈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아니면 이 세계의 인간들은 드래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건가?”

    “길게 갈 것 없이 우리 손에서 정리하는 게 좋겠구만.”

    레드 드래곤 감블의 시선이 염태준에게로 향했다.

    “우선은···. ■■■!”

    콰앙!

    감블이 용언을 내뱉자 허공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런 미친!”

    “칫.”

    염태준이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해냈다. 기적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놀라운 곡예였다.

    “저,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창은 뭐죠?”

    “용언. 마법보다 강력하고 발동이 빠르니까 조심해.”

    오랜 시간을 살아 온 드래곤들은 마법과 검술 같은 각종 무예에도 통달해 있다. 특히 마법에 있어서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경우가 대다수.

    용언의 마법에 직격한 저택의 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콰아앙!

    “크윽!”

    - ■■■!

    콰과광!

    공격은 끊임 없이 쏟아졌고 급기야는 저택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네 놈. 쥐새끼 같이 잘도 도망치는군!”

    극히 짧은 시전 시간과 예고 없는 마법이 쏟아지는데도 염태준은 귀신 같이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저게 초월급 아이템이 가진 힘인가?”

    김지훈이 중얼거리는 말소리를 들은 드래곤들이 술렁거렸다.

    “뭐라고? 초월급? 초월급 아이템을 저 놈이 들고 있다고?”

    일순 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초월급 아이템은 멸망의 탑 상위 층에 있는 존재들도 얻지 못해 안달이 난 등급이다.

    “그렇군! 네 놈! 초월급 아이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 검은 내가 잘 다뤄주도록 하지!”

    “어허, 어디서 선수를 치시려고 그러십니까. 공평하게 저 녀석을 먼저 죽이는 놈이 가지는 걸로 합시다.”

    그들은 초월급 아이템이 눈이 돌아가 진영 일행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멋대로 이야기를 결정한 드래곤들의 일제히 염태준을 향해 달려 들기 시작했다.

    “앗, 태준이 형!”

    터억.

    염태준을 도와주려던 김지훈의 어깨를 진영이 붙잡았다.

    인간 모습이었던 다크 드래곤이 자신의 손만 드래곤으로 바꾸어 염태준을 덮쳤다. 수 백 년을 단련한 검술로 염태준의 목을 베어버리고자 하는 놈도 있었다.

    허리, 목, 심장, 다리···.

    동시에 여섯 곳을 노리고 달려드는 드래곤들의 공격 앞에 빠져나갈 공간은 없어 보였다.

    “어, 어?!”

    심지어 염태준은 검에 휘둘려 넘어지는 중이었다. 그를 덮치는 모든 드래곤이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이었다.

    서걱-!

    검붉은 궤적이 드래곤들의 목을 점처럼 이어 놓았다. 그들이 노리고 있던 염태준은 이미 포위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

    후두둑!

    염태준이 뒤를 돌자 여섯 마리의 드래곤이 머리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스로가 한 일에 놀란 염태준이 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테, 템빨 죽이네.”

    * * *

    그 시각, 드래곤들의 본대는 술렁이고 있었다.

    “······.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닐겁니다.”

    폭룡왕의 바로 아래에서 그들을 이끄는 골드 드래곤 류젠이 눈을 껌뻑였다.

    죽임을 당한 6마리의 드래곤들은 탐욕에 눈이 멀었을지언정 자신들의 임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있던 시야는 마법을 통해 본대로 착실히 전송 되고 있었다.

    “아냐, 내가 잘못 본 게 틀림 없어. 여섯의 드래곤이 고작 인간 플레이어 하나에게 전멸 당했잖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충격.

    “문제는 그 놈이 이진영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같이 다니는 동료. 떨거지에 불과한 그 놈이 왜 우리 대원들을 썰어버리냐는 거야!”

    이진영의 부하가 저렇게까지 세다면, 초월자를 쓰러뜨린 이진영 그 놈이 가진 힘은 얼마나 강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사령관님. 괜찮습니다. 녀석들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하고 있었으니까요. 제대로 된 힘은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폴리모프 스킬.

    그러나 그 스킬을 사용하면 생물이 가진 본연의 한계가 생기고 만다.

    드래곤으로서의 본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6명의 대원들은 방심했던 것이다. 상대를 얕잡아 봤다.

    “······자네 말이 맞아. 모든 드래곤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전해라. 로드께서는 이진영 일행의 말살을 원하셨으니까.”

    작전을 바꿔야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실력이 아니었다. 이진영의 존재 자체를 지워 없앨 수 있는 압도적인 힘뿐이었다.

    “공중에서 드래곤 브레스와 대(對)요새 마법으로 요격한다. 녀석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철저하게 유린해야한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위치한 플로어 자체를 태워버릴 기세로 브레스를 뿜어야했다.

    “탑의 제재는 어떻게 할까요? 50층 이하로 내려가면 제재가 심해질겁니다.”

    “패널티는 로드께서 전부 감당해 주신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임무에만 집중하면 된다.”

    - 크오오오!

    이리저리 흩어졌던 드래곤들이 공중에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까마귀떼처럼 잔뜩 모인 그들이 향하는 곳은 진영 일행이 있을 40층이었다.

    * * *

    “장소를 옮기자. 루시, 지름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예? 40층의 지름길을 이용하려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문을 열려면 시련을 거쳐야하니까요.”

    “이진영님은 관리자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 잔말말고 안내나 해라.”

    염태준이 드래곤들을 썰어 재낀 후, 일행은 작전을 다시 세웠다.

    ‘모두가 신화급 장비를 제대로 착용했다. 초월자의 격에 눌리지 않을만큼 성장했어.’

    하지만 300마리의 드래곤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만약 광활한 평야를 두고, 하늘을 나는 드래곤들과 싸운다면 승산을 점치기 힘들었다.

    ‘아무리 강력한 탱크라도 전투기 수백 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 정도의 싸움이었다. 놈들의 진가는 하늘을 자유롭게 부유하며 고위급 마법과 브레스를 쏘아댈 때 나타났다. 거대한 제국도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이 드래곤 놈들이다.

    루시의 안내를 따라 진영 일행은 빠르게 장소를 옮겼다.

    [ 관리자의 열쇠를 사용해 잠긴 지름길을 엽니다. ]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바깥으로 나오자 간만에 정상적인 푸른 하늘이 보였다.

    [ 49층 : 마녀 퇴치 - 고대의 숲 ]

    지형보다는 층수가 중요했다.

    50층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50층에서는 한 층 떨어진 장소였다.

    초월자의 힘이 닿기 힘든 딱 그 곳.

    불필요한 방해를 방지할 수 있다. 진영은 모두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게 될까요?”

    “마수 유자벨, 감히 말씀드리건데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폭룡왕을 쓰러뜨리려면 이 방법 밖엔 없어.”

    꿀꺽.

    폭룡왕이 어떤 자인지 알기에 루시와 유자벨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일단은 드래곤 피어만 조심하면 돼.”

    드래곤이 가진 특수한 능력 중 하나.

    드래곤 피어(Dragon Fear).

    모든 생명체의 본능을 압도하는 그 스킬엔 일반적인 디버프 해제가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훈의 디버프 해제 스킬이라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피어에 걸린 순간, 얼마나 잘 해제 해주냐가 관건이 되겠어.”

    보고 피할 수 있는 성질의 스킬의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김영훈이 각오를 증명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진영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다시 이었다.

    “폭룡왕과의 싸움도 지금 말해둬야겠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 될 것이다.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각자가 맡은 역할이 중요해.”

    진영 일행이 가진 밸런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주오령의 탱킹, 염태준의 딜링, 김영훈과 김지훈의 서포팅. 이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졌다.

    “여기까지 뭔가 틀린 점이나 추가해야 할 점이 있나?”

    진영은 허공을 향해 물었다. 대답은 곧장 왔다.

    [ 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 일행이 보여줄 연계를 기대합니다. ]

    [ 소수 이계의 존재들이 폭룡왕의 특수 능력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

    ‘능력?’

    회귀 전에도 폭룡왕에 대해 밝혀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축을 지킨다는 것과 빈틈 없는 성격을 지녔다는 것. 그 외에는 진영도 그다지 아는 게 없었다.

    그러나 각 시간축과 탑의 역사를 함께한 이계의 존재들이라면 폭룡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 이계의 존재들이 폭룡왕의 능력 ‘디멘션’에 대해 경고합니다. ]

    ‘디멘션이라.’

    공간 계열 최상위 스킬이 바로 디멘션이었다. 공간을 찢고, 떨어진 공간을 자유롭게 이어 상대를 농락한다. 이 능력을 사용하는 마수가 80층에 있었다. 다만, 초월자에 비하면 미숙한 사용이었을 것이다.

    “계획을 전면 수정 해야겠다.”

    “크윽, 이계 놈들 진작에 설명했어야지!”

    불평을 하는 염태준은 아직까지도 검을 검집에 집어 넣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진영은 차분히 계획을 다시 설명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드래곤 무리가 오는 걸 기다리는 것 뿐이군요.”

    “그래. 그 동안 잠깐 자도 괜찮아.”

    “아뇨, 중요한 결전을 앞뒀으니까요. 긴장되서 잠도 안와요. 오령이 형이 특이한 거에요. ”

    쿠울···.

    주오령은 이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여전히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놈이었다. 주오령은 이진영이 준 보물 ‘타이탄의 창’을 배에 놓은 채 잠에 빠져 있었다.

    진영의 눈빛이 깊어졌다.

    ‘내 추측이지만 이 녀석도 이계의 존재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탑의 아이템은 모두 사용하지 않는데, 보물은 잘만 들고 다닌다. 이계의 존재들을 만났을 때도 꽤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 그보다.’

    “염태준, 이것 좀 감정해 줄 수 있겠어?”

    “······. 그게 뭔데?”

    진영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무지개빛 물약을 염태준에게 전했다.

    “감정 스킬이 없어서 확인할 수 없는 모양이던데, 왠지 너라면 무슨 효과인지 알 것 같아서 말이야.”

    절대자의 비밀창고에서 훔쳐온 아이템인만큼, 무언가 사기적일 능력이 숨겨져 있을 확률이 컸다. 진영의 예상이 맞았는지 아이템을 살피는 염태준의 눈이 커지고 있었다.

    “······!”

    아쉽지만 물약의 정체는 곧바로 들을 수 없었다.

    - 크오오!

    - 크아아!

    그 순간 드래곤들이 49층의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드래곤들의 울부짖음이 대지를 물들였다.

    “시작됐군.”

    우우웅.

    드래곤들의 출현에 진영이 쥔 드래곤 슬레이어가 가볍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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