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28화 (128/152)

용들의 만찬(1)

‘문제는 한 번 훔쳐오면 돌려줄 수 없다는 거야.’

스킬 스틸의 치명적인 단점.

훔치는 것이지 빌려오는 게 아니다.

돌려주고 싶다고 마음대로 돌려줄 수 없다.

‘그래도···. 필요하다.’

초월자에게 대적하기 위한 격의 수준을 맞추려면 필요한 일이었다.

“지훈아, 그 합성 스킬 내가 가져가도 될까?”

“앗, 설마···.”

타인의 스킬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이미 일행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가져간 스킬은 기존보다 훨씬 강해져. 다만 한 번 결정하면 돌이킬 수 없어.”

두 가지의 아이템을 합성해 확률적으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뽑아낸다. 얼핏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아보여도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일반을 레어로, 레어를 유니크로 유니크를 레전드로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 그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특히 무너지기 시작한 탑의 세계에서는 김지훈의 위상을 한 층 끌어 올릴 강력한 힘이었다.

그럼에도.

“당연하죠. 다음 축을 무너뜨리려면 필요한 거잖아요.”

김지훈은 흔쾌히 허락하며 손을 내밀었다. 지훈의 눈에는 한치의 의심이나 아쉬움도 담겨 있지 않았다. 탑을 오르는 처음부터 각오했던 ‘진영을 따른다’는 그의 의지는 여전했다.

“고맙다.”

지훈과 마주 잡은 진영의 손으로 푸른 빛이 흘러 들어왔다.

[ 짐꾼 클래스의 스킬 ‘합성(A)’를 훔치셨습니다. ]

[ 훔친 대상의 효과가 매우 좋아집니다. ]

[ 합성(A)가 초합성(S)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

‘됐어.’

스킬명의 변화와 등급의 상승이 동시에 일어났다.

[ 스킬 설명 ]

이름 : 초합성(S)

설명 : 고대 연금술사 지크프리드가 만들어낸 공전절후의 합성 기술

효과 : 정해진 확률에 의해 상위 단계의 아이템을 합성한다.

스킬 설명을 확인한 진영이 근처에 있는 레전더리 아이템들을 끌어 모았다.

‘스킬은 확실히 랭크가 올라가지만, 아이템은 훔친다고 등급이 오르진 않는다.’

바닥에 놓인 레전더리 아이템은 총 16개.

순서대로 합성하기만 하면 됐다.

스킬을 사용하자 선택한 두 개의 아이템이 빛으로 감싸였다.

[ 초합성을 사용해 두 개의 레전더리 아이템을 합성합니다. ]

[ 50% 확률로 신화급 아이템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

‘미···. 미친건가?’

신화급 아이템은 80층까지는 너끈히 사용하며, 성능이 좋다면 100층까지 착용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 신화급 템을 고작 레전더리 두 개를 통해 50%로 얻을 수 있다니?

“왜 그러는데? 우리도 좀 알자.”

염태준의 독촉에 진영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 보고 있어 봐. 뭐가 나오는지.”

이윽고 두 개의 빛이 합쳐지며 하나의 아이템으로 변화했다.

결과는.

[ 초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

[ 명계의 신발(신화급)을 획득하셨습니다. ]

가뿐한 성공이었다.

“와, 한 번에···! 형 확률이 몇 퍼센트에요?”

“설마 100%?”

“그 정도는 아니고 정확히 50%야.”

꿀꺽.

진영을 바라보는 김지훈의 눈이 커졌다. 본래 김지훈이 가지고 있었던 합성 스킬에서 신화급을 뽑아낼 확률은 2%였다. 일행이 모두 레전더리를 착용하고도 아이템이 남아 시도해 본 것 뿐이었다.

그런데 50%라니!

“여, 역시 형한테 넘기길 잘했어요.”

“야, 야! 이것도 빨리 해 봐!”

아이템이라는 사족을 못쓰는 염태준이 바닥에 놓인 레전더리 아이템을 집어 들며 말했다.

“좋아.”

[ 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

이어지는 합성쇼.

일행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총 8번의 합성 중에 6번이 성공했다.

합성에 실패한 레전더리는 사라졌지만, 일행의 수중에는 6개의 신화템이 남아 있었다.

“안되겠다. 이걸 어떻게 참아.”

주섬, 주섬.

합성을 지켜보던 염태준이 몸에 걸친 장비들을 전부 풀기 시작했다. 그가 금이야 옥이야 아껴온 레전더리급 아이템들이었다.

염태준의 아이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투자해야 할 때를 모르는 쫌생이는 아니었다.

“이것들 전부 합성해 줘!”

“터져도 난 책임 안진다.”

“······. 다, 당연하지. 남자답게 가보자!”

퍼엉!

일단 첫번째 합성은 실패했다.

* * *

“허억, 허억···. 이 정도면 괜찮아. 견딜만 해. 오히려 좋아.”

“태준이 형, 안색이 너무 나쁜데요? 합성 그만할까요?”

남의 도박을 구경하는 것과, 자신이 그 판에 끼어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특히 아이템을 아끼는 염태준에게는 그 고통이 상상 이상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아이템 합성이 실패할 때는 눈에서 피를 흘릴 듯이 고통스러워했고, 성공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숨을 몰아쉴 정도로 긴장한 것치고 타율은 좋았다.

염태준이 내놓은 14개의 레전더리 아이템 중 10개가 합성에 성공했다. 염태준의 레전더리로 만든 신화급 아이템은 총 5개.

“이제 시작이라뇨?”

“그렇잖아. 신화급 다음 등급···.”

꿀꺽.

“가능한 거 아니야?”

염태준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다.

“초월급···. 가능하지. 네가 견딜 수만 있다면.”

[ 초합성을 사용해 두 개의 신화급 아이템을 합성합니다. ]

[ 5% 확률로 초월급 아이템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

“5%.”

“······.”

확률도 확률이거니와 실패시에는 신화급 아이템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지금 일행의 앞에 모인 신화급 아이템은 총 11개.

“그리고 초월급 아이템은 신화급 아이템과는 성질이 달라. 대부분이 자아를 가지고 있는 에고 아이템이야.”

“아이템에 자아가 있다고요?”

“그래. 물론 대다수는 주인에게 복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을거야.”

염태준이 슬금슬금 자신의 신화급 아이템들을 끌어 당겼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갑자기 내 아이템이 말을 해도 당황스러울 뿐이고···. 합성은 다음으로 미루는 게···.”

척.

옆에 있던 김지훈이 염태준의 팔을 붙잡았다.

“형, 제가 아는 형은 냉혈한에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이자 아이템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쫌생이에요.”

“···너 그냥 욕이 하고 싶은 거 아니냐.”

“하지만 겁쟁이는 아니었어요! 초월급 아이템! 포기하실거에요? 진영이 형조차 초월급 아이템은 없다구요!”

“이 자식이 자기 아이템 아니라고···.”

김지훈의 도발에 염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진영이 입을 열었다.

“나도 여기서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해. 신화급 아이템이 갑자기 엄청나게 늘어서 그렇지 굳이 초월급이 아니더라도 성능은 막강해.”

실패하면 아이템이 사라질 뿐이다. 5%에 거는 것은 도박에 불과했다.

“쳇. 아쉽네요.”

“그러면 모두 각자에게 맞는 신화급 아이템을 나눠가지자.”

이제부터 상대할 적은 차원이 다르다. 두번째 축을 향해 이동하는 난이도로만 따져도 멸망의 탑 70층 이상. 무리한 합성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그런데 포기한 줄 알았던 염태준이 품 속에서 신화급 아이템을 꺼냈다.

“딱 한 번만 해볼까? 혹시라도 되면 진짜 대박이잖아.”

* * *

콰아아!

드래곤 브레스가 지상 위를 휩쓸었다.

로드의 명에 따라 55층을 떠난 드래곤 군단은 이진영을 찾기 위해 뿔뿔히 흩어진 상황이었다.

“로드께서 신경을 쓰실 정도의 플레이어라···.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좀 있나?”

“글쎄, 멸망의 탑이 하나로 이어진 것도 아니고.”

“뭐, 고작해야 40층에 갓 오른 플레이어겠지 않겠나.”

최하층부터 수색을 시작한 6 마리의 드래곤들은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로드가 우리 모두를 보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나?”

“글쎄,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로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모두 잘 알지 않나.”

그 말에 모두가 침묵을 머금었다. 동의하지만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침묵을 깬 레드 드래곤이 말을 이어갔다.

“초월자 아스리엘···. 모든 건 그 놈 때문이지. 로드의 여자를 죽이고 그 심장을 탑의 축으로 박아버린 미친놈.”

그의 말에 주변의 드래곤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을 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원흉에게 향하는 분노는 정당했으니까.

“크윽, 그 전쟁에서 패배만 안했더라도···. 탑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건 우리 로드였을텐데 말이야.”

레드 드래곤의 배에 새겨진 기다란 상처가 전쟁의 증거였다. 폭룡왕은 자신의 여자를 죽인 아스리엘을 공격했으나 참패했다.

“지난 일을 어쩌겠나. 우리는 우리의 일에 집중하자고. 아무래도 우리가 찾아낸 것 같네.”

“오호!”

마수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플레이어의 기운이 느껴졌다. 여섯 드래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아래서부터 찾는 게 정답이었군. 이진영이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곧바로 본대에 신호를 보내면 되겠어.”

속도를 높이며 접근하는 드래곤들의 모습은 미사일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거센 바람과 굉음이 일었다.

“확인하러 내려가자고.”

펄럭!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고풍스런 저택이었다.

입구는 부숴져 있었다.

“40층의 관리자가 누구였지?”

“루시라는 서큐버스 계집이었지. 당했나보군.”

“우리도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 ■■■!

드래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언이 펼쳐졌다. 강력한 마력적 무장이 그들을 감쌌다.

생물의 정점에 서 있었던 드래곤들이다. 그들을 상대할 유일한 천적은 시간 뿐이었다. 때문에 드래곤은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나태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폭룡왕 벨카론을 만난 뒤부터 그들의 모습은 달라졌다.

“로드의 이름으로.”

“로드의 이름으로.”

초월자 폭룡왕은 드래곤들의 천성조차 바꿔놓을 정도로 강대했다. 임무에 있어서라면 그리고 그것이 로드의 명에 의한 특명이라면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흉흉한 기세와 함께 6명의 결사대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에 이진영이라는 플레이어가 있는가?”

그들이 들어오자, 저택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시선이 쏟아졌다.

“헉. 드, 드래곤들이 여기에는 왜?”

서큐버스 루시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드래곤들은 그런 루시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멍청한 꼴이군, 루시.”

“으으, 네 놈들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야.”

드래곤들은 탑의 플로어에서는 벗어난 존재. 폭룡왕의 밑에 있는 그들은 하나하나가 관리자 급에 해당했다. 가지고 있는 힘만을 따지면 루시보다 강력했다.

“유자벨까지···. 하, 참나. 가관이군. 말할 것도 없다. 네 놈들이 있으니 확실히 알겠다. 여기 있는 다섯 명 중 하나가 이진영이겠군.”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건 여전하군.”

“하, 그렇다한들 관리자의 권한도 없는 일반 마수가 할 말은 더더욱 아니지.”

드래곤들의 등장으로 저택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관리자급인 드래곤 6명이 완전히 살기를 드러낸 상태. 관리자들을 입다물게하고 기세가 등등해진 레드 드래곤이 말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하나씩···.”

그때였다.

“크윽, 이 자식! 가만히 있어!”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드래곤을 앞에 두고 긴장감이라고는 하나 없는 목소리.

아니, 사내는 드래곤들이 온 것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사내는 드래곤들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이 새끼가! 내가 주인이라고! 내 말을 들으란 말이야!”

붉은 문양이 새겨진 잿빛의 대검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검이 움직이자 염태준의 몸도 좌우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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