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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24화 (124/152)

붕괴(1)

늦던 빠르던 멸망의 탑은 세계를 집어 삼키기 위해 움직인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세계 곳곳에서 마수를 쏟아내며 지구라는 행성을 뒤덮는다. 이전의 주인들의 흔적을지우려는 듯이.

“이걸 부수면 탑이 무너진다고요?”

“그래. 물론 탑이 공략되는 것과는 다른 일이지만.”

탑의 척추와도 같은 ‘축’을 파괴하게 되면 탑은 무너진다. 그러나 멸망이 탑이 무너지는 것은 일반적인 탑이 무너지는 것과는 다르다.

“공략이 시작되면 어차피 탑은 붕괴하기 시작하거든. 그 시기를 빠르게 하는 거야.”

인위적으로 탑을 부수지 않아도 탑은 스스로를 부수며 내부에 있는 마수들을 뱉어낸다.

그 결과 일어나는 것이 아포칼립스.

진영은 그 아포칼립스를 앞당기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좋은 게 뭔가요···?”

“첫번째로, 바깥의 사람들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거야.”

진영은 아포칼립스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히 시작했다.

아포칼립스가 시작 되었을 때, 멸망의 탑 내부와 외부의 단절은 빠르게 일어났다. 회귀 전 멸망의 탑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40층이 넘어서였다.

“즉, 적응할 시간. 내부와 외부의 격차를 줄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멸망의 탑 내부를 공략하며 올라가는 플레이어들이 40층에 올랐을 때, 바깥에서 헌터로서 군림하던 자들의 실력은 그다지 늘지 않는다.

‘바깥에서 생성되는 게이트는 S급 수준에서 머무는 데에 반해 멸망의 탑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계속해서 올라갔으니까.’

그 격차가 바깥의 헌터들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아포칼립스를 제대로 막아내야할 외부의 헌터들이 견뎌내지 못하니 세상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몇몇 식견 있는 까마귀 길드의 임재천과 같은 자들이 잠시나마 아포칼립스의 왕으로 군림하기는 하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다를거야.’

이진영은 임재천에게 미리 아포칼립스에 대한 언질을 해둔 상황. 그뿐아니라 대예언가 리암 또한 이러한 아포칼립스의 도래를 알고 현재 다른 클랜들과 아래층을 클리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총 세 개의 축을 파괴 할 때 마다 멸망의 탑에 존재하는 초월자들의 영향력이 약화된다는 것.”

초월자들의 힘이 약화되면 멸망의 탑을 공략하고 힘을 쌓아나가기 용이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신화준도 축을 부술 수는 없었다.’

탑을 공략하면 탑은 아래층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0층, 1층, 2층···. 순서대로 무너지기 시작하여 축이 있는 부분에 도달했을 때 초월자들의 힘이 점차 약화된다.

마지막 축을 부수기 위해 온간 힘을 다하던 신화준은 중얼거렸었다.

- 쳇, 이건 어떻게 해도 부술 수가 없어. 뭐, 이런 게 다 있냐. 역시 29층처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나···.

압도적인 무력과 힘을 자랑하며 전설을 직접 써내려가던 무한의 회귀자 신화준조차 축을 무너뜨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축이 그만큼 단단하게 탑을 떠받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 진영조차 축을 부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수는 게 아니라면. 가장 중요한 내부의 핵을 훔쳐내는 일이라면.’

진정한 도둑의 방식에는 힘이 필요하지 않다. 주변을 부수고,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강도짓이지 진짜 도둑이 아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 숨어 들어 중요한 물건만을 훔치는 것이야말로 진짜 도둑. 그가 훔쳐갔다는 것을 주인조차 모른다면 더더욱 좋았다.

터억.

진영이 기둥 위로 왼손을 올렸다.

- 스틸

푸른 빛이 연속에서 퍼져나가고, 탐욕의 왼손이 발동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이윽고 진영의 손 위에 붉은 보석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 탑의 축의 중요 부품을 훔치셨습니다. ]

[ 탑의 첫번째 심장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

이어지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산함을 느끼게 하는 경고 메시지였다.

[ 멸망의 탑이 당신의 행동에 위협을 느낍니다. ]

[ 멸망의 탑 : 자체 방어 시스템이 발동됩니다. ]

[ 살아 남으십시오. ]

* * *

쿠구구구···!

0층부터 100층까지, 탑 모든 곳에서 깊숙한 진동이 일고 있었다. 멸망의 탑 자체 커뮤니티에서는 실시간으로 난리가 나는 중이었다.

- 이거 괜찮은거야?

- 멸망의 탑에 지진났나본데? 지금 모든 층에서 다 느꼈데.

- 무너져서 우리 다 깔리는 거 아님?

- 멸망의 탑이 그냥 건물도 아니고 뭘 무너져 ㅋㅋㅋ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해 대예언가 클랜은 당황하지 않았다.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채 담담하게 부하들을 불러 보았다.

“이진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 길드와의 연락은 끝났나?”

“네, 그렇습니다. 물론 모두가 협력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저희 계획에 동의했습니다.”

탑은 거꾸로 무너진다. 탑이 0층부터 하나둘씩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예언을 통해 확인한 예언가 리암은 누구보다 아포칼립스의 대비에 진심일 수 밖에 없었다.

“현재 내부 클랜들의 상황은 어떻지? 각국 0층에 있는 플레이어들 구제 조치에 동의한 자들은 많나?”

“꽤 있습니다. 아포칼립스 이후 멸망의 탑 바깥으로 탈출을 계획하고 있는 클랜도 상당히 많습니다.”

탑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탑은 더 이상 플레이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깥의 아포칼립스에 사람들은 멸망의 탑으로 도망칠 수 없다.

동시에 멸망의 탑에 있는 플레이어들 또한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그 사실을 진영에게 들었을 때 리암은 깊은 숨을 머금었었다.

‘결국에는 인류를 위해 탑을 공략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남게 된다.’

동시에 바깥에서도 전력은 필요했다.

“탑을 공략하기를 원하고자 하는 자들은 놔두고, 다른 이들에게는 어서 바깥으로 나가길 권유해. 아직 내 명성이 부족한 탓에 믿지 않는 자들도 있겠지만 내 예언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들 믿기 시작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벌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부하 하나가 헐레 벌떡 뛰쳐왔다.

“예언가님! 그랑블루의 간부가 방문했습니다.”

“오, 민아영인가?”

“그렇습니다. 당장 안으로 부를까요?”

“그래주면 고맙겠네.”

다시 부하가 뛰쳐나가고 다시 방으로 들어 온 것은 그랑블루의 간부 민아영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탑이 계속해서 무너진다는 게 정말 사실인가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긴가민가하고 있는 사실을 직접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도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이진영이지.”

이진영. 그 이름에 민아영은 경악했다.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그 남자는 뭐하던 사람인거야?’

이진영은 민아영에게 큰 문제가 생기면 리암을 찾아가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탑이 무너지는 것조차 이진영이 하는 일이라니. 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진영은 진심으로 탑을 공략하고자 한다네. 멸망의 탑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야. 진심이 아닌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된다는 거지.”

“······. 그랑블루에서도 결정을 해야겠군요.”

리암의 파란 눈이 민아영을 주시했다.

“결정···. 좋은 말이지만 사실 나름 포함한 모두에게 선택권은 없을지도 몰라.”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민아영의 물음에 리암이 재차 대답했다.

“부와 권력, 명예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 아포칼립스를 대비하겠지. 그 속에서도 사람들만 있다면 사회는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다만 멸망의 탑을 구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대의와 정의를 위한 일. 거기에는 알아주는 사람도 그들의 노고를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을 게 분명하지. 사람들이 어디를 택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래 분명 사람마다 다르겠지···.”

리암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다만 내 생각에 이진영은 다른 이들을 탑으로 올려보내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아서 말이지. 어쩌면 그들 일행만으로 혹은 진영 혼자서 탑을 오르려하는 걸지도 모른다네.”

그것이 진영의 진짜 뜻일지도 몰랐다.

* * *

그오오!

크르르!

파도와도 같은 마수 무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9층 히든 플레이스에서 한 번 겪었던 일이기에 당황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촤아악!

29층과 달리 통로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진영 일행은 송곳처럼 마수의 무리를 뚫어내기 시작했다.

“따라와라, 파트너.”

그 선두에는 주오령이 서 있었다. 타이탄의 창 허리에 매달고 주먹으로 눈 앞의 마수를 해치우는 주오령의 모습은 흡사 지옥의 대장군과도 같았다.

든든한 탱커의 역할을 해주는 주오령을 따라 팀원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다.

‘히든 플레이스 이후로 상당히 전력이 강화 됐다.’

콰과과!

마수들을 향해 마력을 방출해 내는 염태준이나, 계속해서 버프를 걸어주는 김영훈. 이전보다 더 화려한 짐꾼의 싸움을 보여주는 김지훈.

“자, 잠시만요. 저, 저 버리지 마십쇼!”

오히려 유자벨이 이 기세에 눌려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놔, 이 놈들아! 같은 마수끼리 무슨 짓이냐!”

소리를 지르면서 그 끝을 간신히 막아내며 일행을 쫒아오고 있었다.

축을 파괴하고 나자 쏟아지기 시작한 마수들을 뚫어내며, 진영 일행은 결국 도착했다. 활짝 열린 거대한 문이 진영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늑대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콰직!

[ 대상의 능력치를 훔쳤습니다. ]

[ 대상이 쓰러져 영구적으로 0.004 단계의 기력, 힘, 체력이 증가합니다. ]

···

..

.

진영은 단검으로 마수들을 가르면서도 계속해서 능력치를 빼앗고 있었다.

‘탑을 오르는 동안 계속해서 쉴새 없이 능력치를 획득해야한다.’

초월자들과 맞서 싸우려면,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존재와 싸우려면 끊임 없는 성장만이 살 길이었다.

그리고 이내 문 앞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진영이 말했다.

“주오령! 잠시 시간을 끌다가 뒤로 빠져!”

“알았다. 그렇게 하지.”

진영의 주변으로 하얀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성이나 능력치와는 달리 스킬을 훔치는 것은 영구적이다. 때문에 좋은 스킬들을 조합하기만 한다면 최강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 스킬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 모든 스탯이 1.5 단계 상승합니다. ]

여기에 소드 오러를 더한다.

[ 스킬 : 소드 오러 ]

[ 검에 강력한 마력이 둘러집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 고유 능력 : 개화를 사용합니다. ]

[ 당신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립니다. ]

[ 해당 초월자의 초월력이 한계에 달해, 더 이상 해당 고유 능력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훔친 고유 능력이 좋은 이유는 소모 되는 것이 해당 고유 능력을 준 초월자의 초월력이라는 것이었다.

파앗!

진영의 몸 주변을 하얀 빛의 꽃봉우리가 감싸고 돌았다.

[ 당신의 마력에 보물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

동시에 뒤쪽에서 상쾌한 마력이 진영의 몸을 감쌌다. 김영훈이 보내준 버프 스킬이었다.

[ 모든 능력치가 매우 증가합니다. ]

맺혀 있던 꽃 봉오리가 아름답게 피어나며, 진영의 일격이 눈 앞의 마수들을 향해 쏟아졌다. 새하얀 빛이 군데 군데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 빛에 조금이라도 닿은 마수들은 단숨에 사그러져 갔다.

“미, 미친···.”

염태준이 기겁하고, 유자벨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켜보았다.

‘이게 초월자를 쓰러뜨린 플레이어의 실력···. 나는 대체 뭐랑 내기를 했던 거지? 이 괴물이랑? 내가 미쳤었지.’

빛이 잦아들고, 전투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멸망의 탑의 자체 방어 시스템을 돌파하셨습니다. ]

그렇게 40층으로 이어진 길이 훤히 들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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