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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23화 (123/152)
  • 초월자의 분신(3)

    [ 능력치를 훔친 상대를 쓰러뜨렸습니다. ]

    [ 훔친 능력치가 소멸 됩니다. ]

    [ 영구적으로 마력이 1단계 상승합니다. ]

    푸른 기운이 진영의 몸에 스며들었다.

    하늘 위의 검은 먹구름이 걷혀지고 있었다.

    ‘다들 잘 막아낸 모양이야.’

    구덩이 바깥으로 나가자, 이계의 존재들과 진영의 일행이 달려오고 있었다.

    “진영이 형!”

    “이진영이다! 이진영이 이겼나봐!”

    “진짜로 이긴거야? 초월자를?”

    이계 존재들의 새하얗던 로브에 탄자국이 가득했다. 김지훈을 비롯한 일행의 옷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칼몬이 소환한 뱀을 막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겼다. 모두가 이겼다.

    [ 이계 시간축 최초로 지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

    [ 모든 이계 존재들이 환호 합니다. ]

    “이진영이 29층에서 칼몬을 쓰러뜨렸어!”

    “미쳤어! 미쳤다고!”

    각자의 무기를 쥐어든 이계의 존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진영을 둘러쌌다. 그 때 승리에 취한 분위기를 뚫고 특유의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길 막지 말고 비켜! 이진영 좀 보러가자.”

    염태준이 이계의 존재들을 밀쳐내며 김지훈과 김영훈을 데리고 진영 앞으로 다가왔다. 염태준은 말 없이 엄지를 치켜 들었다. 김지훈과 김영훈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걸 이겼네. 고생했다.”

    그 말에 진영도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도 모두 고생했어.”

    29층에서 초월자를 쓰러뜨린다는 것.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이다. 아무리 탑의 규율의 영향을 받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초월자의 분신일지라도, 29층의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한 없이 강력한 존재이다.

    그런 초월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계 중심부를 지켜내는 것 또한 본래대로라면 말이 안되는 이야기.

    그런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진영 일행과 이계 존재들은 이뤄냈다.

    “근데, 하나 걱정 되는 게 있습니다.”

    김영훈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쓰러뜨린 건 초월자의 분신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직 본체가 남아 있다는···.”

    “아뇨. 그 점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뒤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계의 존재들이 갈라지며 길을 비켜줬다. 그 사이에 이계의 절대자가 서 있었다.

    “엇!”

    신전에서 느꼈던 격의 차이를 떠올린 일행이 주춤거렸지만, 이전과 달리 지독한 압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짧은 사이에 일행이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그런 일행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절대자가 말을 이어갔다.

    “분신 상태에서 초월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칼몬은 초월의 좌에서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제 그는 초월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초월자들은 움직이지 않는 겁니까? 같은 초월자가 쓰러졌는데요?”

    “초월자들은 본래 오만하고 고지식한 존재죠. 그들은 칼몬의 추락을 초월자의 위협이 아닌, 칼몬 개인의 실수로 여길 것입니다.”

    김영훈의 물음에 답하는 절대자의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녀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수 많은 시간축을 들여다 본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29층에서 초월자들이 공략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죠.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탑을 올라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들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기 전에 말이죠.”

    이계의 절대자의 말 그대로였다.

    탑을 오르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 가까이 다가서는 자도 있었다. 이진영을 포함한 최후의 6인 또한 꼭대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존재였다.

    고작 6명이었다. 초월자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워진다는 의미였다.

    ‘어렵다. 어렵지만, 그 어려운 일조차 목적지는 아니다.’

    진영은 그것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물어보아야했다.

    “······. 이계의 절대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탑의 정점에 올라 본 신화준의 말에 따르면 초월자은 문제가 아니었다.

    초월자들을 뚫고, 그 정점에 도달했을 때 만난게 되는 무언가.

    “탑의 끝에는 뭐가 있지?”

    그것이 문제였다. 모든 시간축을 들여다 본 이계의 절대자라면 그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 * *

    멸망의 탑 50층.

    【 으하하! 그렌달에 이어 칼몬까지 쓰러지다니! 】

    근육질의 남성이 배를 잡고 호탕하게 웃어 재끼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강력한 격이 담겨 있었다.

    그 격은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신체와 정신을 뒤흔들 정도. 실제로 50층에 거주하고 있는 인간형 마수들이 온 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은 채 쓰러져갔다.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초월자는 그제서야 무언가 실수 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이쿠,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진언을 내뱉었군.”

    그러나 남성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입맛을 다시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띄웠다. 이곳은 탑이 초월자들에게 부여한 제한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50층.

    본체에서 나온 진언 앞에 제정신을 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나약해서야 원.”

    그는 자신의 초월력으로 만들어 낸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더니 다시 한 번 웃었다.

    【 뭐가 그렇게 우습지? 】

    그 때 다시 한 번 강력한 진언이 50층을 뒤흔들었다.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사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 왔는가. 자네라면 올 줄 알았지. 이런 재미난 행사에 빠질 위인이 아니니까.”

    【 네 놈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군. 나는 네 놈처럼 단순한 여흥을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 】

    “여전히 재미 없는 놈이구만.”

    창백한 얼굴의 남성이 사내의 말을 무시한 채 어딘가를 주시했다.

    “오, 다들 오는군.”

    사내의 말대로 초월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이번에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신들의 정원이 아닌 50층이었다. 때문에 그 수도 이전과는 터무니 없이 적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참석하는 초월자들은 다들 미소를 띄고 있었다. 50층에 모여든 압도적인 격의 향연.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있군.”

    50층의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추락한 그것은 굉음과 함께 땅에 불시착했다.

    콰아앙!

    충돌 과정에서 생긴 흙먼지 따위는 없었다. 초월자들의 격이 그런 불순물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피부의 사내는 곧바로 땅에서 일어섰다. 그리고선 그를 둘러싼 열 명의 초월자들을 마주했다.

    【 칼몬. 네 놈은 초월자의 이름을 더럽혔다. 】

    초월의 좌에서 떨어져 내린 자에 대한 응징. 누군가에게는 여흥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사명과 같은 일이었다. 칼몬은 뒷걸음질쳤지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격의 차이 때문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입 뿐이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소리쳤다.

    “이진영, 이진영을 죽여야 해! 그 놈에 대한 정보를 내가 줄테니 날 살려줘!”

    안타깝게도 그 말에 흥미를 가지는 이는 없었다.

    【 멸망의 탑이 고작 플레이어 하나 때문에 무너지리라 생각하는 게 안타깝군. 】

    【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칼몬, 그 망상이 널 초월의 좌에서 끌어내렸도다. 】

    “이진영, 그 놈은 훔칠 수 있다! 이미 그 놈은···!”

    칼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를 향한 초월자들의 응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 *

    “히익!”

    진영 일행이 배 위로 뛰어 올라오자 기다리고 있던 유자벨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봤다는 듯한 눈빛.

    “어, 어떻게? 대체 어떻게 살아 계신겁니까?’

    “우리가 죽기라도 바랬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저, 절대로 아닙니다!”

    차라리 이진영이 살아 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정말로 살아올 줄은 몰랐다. 그 유자벨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정도였으니까.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유자벨이 비틀거렸다.

    이진영이 이겼다. 멸망의 탑을 호령하고 지배하는 초월자를. 자신이 언젠가 오르려 했지만 결코 오르지 못한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를 쓰러뜨렸다.

    “가토는 어떻게 된거지?”

    “그 놈은 칼몬 손에 죽었습니다.”

    “······.”

    일행의 시선이 유자벨에게로 모였다. 초월자가 지나간 자리에 가토는 죽고 유자벨은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하는 건···.

    그 시선을 의식한 유자벨이 소리쳤다.

    “맹세코! 탑의 규율에 맹세코! 여러분이 계신곳을 전 말 안했습니다!”

    진영 의외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유자벨이 일행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할 정도였다.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염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짠가 본데.”

    “엥.”

    이제 시선은 염태준에게로 향했다.

    “뭐야, 왜 쳐다봐? 아까 각성의 기운인가 뭔가 맞고 나서, 정보에 관한 거면 아이템 말고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그런거야. 아무튼 저 녀석이 거짓말 하는 게 아닌 건 확실해.”

    “가,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 이진영님을 따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따른다는 건지. 그래도 25층 위조 성좌들을 관리하던 유자벨 급의 관리자는 흔치 않다. 잠시 유자벨을 바라보던 진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30층으로 향하는 포탈로 배를 움직여.”

    “알겠습니다! 유령 놈들아 움직여!”

    이제는 충실한 종이 된 유자벨이 유령선의 유령들에게 명령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근데, 아까부터 저 녀석 상태가 이상하던데.”

    염태준이 뱃머리에 앉아 있는 주오령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뱃머리에 앉아 진영이 건네줬던 보물인 타이탄의 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모양새였다.

    ‘주오령 고민이란 걸 할 줄이야···.’

    솔직히 말해 녀석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처음에는 그저 미치광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모습을 지켜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때였다.

    “앗, 저기!”

    말을 걸어 보려는 찰나 거대한 괴수가 바다를 뚫고 솟아 올랐다. 지성이 없어 관리자의 명령도 듣지 않는 종류의 괴수. 생각에 잠긴 듯 하던 주오령은 괴수를 발견함과 동시에 뛰어 올라 녀석의 머리에 창을 박아 넣었다.

    “이거 한 두 마리가 아니구만.”

    “여러분 모두 쉬셔도 됩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어디선가 다시 날아 온 유자벨이 괴수들을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상태가 안좋은 건 아닌 것 같군.’

    그 둘의 활약과 염태준의 기상변화 구슬 덕분에 배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

    철썩!

    파도가 부딪히는 거대한 절벽 위.

    진영 일행은 배에서 내려 포탈 앞에 서 있었다.

    “관리자 권한으로 포탈을 활성화 시키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습니다!”

    유자벨의 설명과 달리 진영은 포탈을 활성화 시키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땅에 꽂힌 관리자의 열쇠가 빛을 발했다.

    탑의 모든 지름길과 숨겨진 장소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열쇠를 꽂은 채로 돌리자 진영의 마력이 빠져나갔다.

    철컥!

    평범한 땅에 불과했던 바닥이 거대한 문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29층에 이런 게 있었을 줄은···.”

    유자벨도 처음 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했다. 플레이어들도 나중에 가서야 알아낸 지름길이었다.

    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행의 입에서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각종 금은보화로 치장된 벽면과 아름다운 조명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집어 넣어.”

    “간만에 형이랑 마음이 맞네요.”

    신이난 염태준과 김지훈이 보물을 집어 넣고 있었다. 완전히 도굴꾼 집단이었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멸망의 탑 입장에서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아이템을 가져가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

    이윽고 일행은 거대한 홀에 도착했다. 그 가운데 놓여 있는 거대한 기둥.

    기둥의 중심부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자신의 왼손이 아이템을 훔쳐낼 수 있단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곳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기둥 앞에 선 진영이 입을 열었다.

    담담하지만 중요한 말이었다.

    “이제부터 멸망의 탑을 공략하는 건 시간 싸움이 될거야.”

    진영은 왼손을 기둥 위에 올렸다.

    “멸망의 탑을 지지하는 축. 이걸 무너뜨릴 거거든.”

    줄곧 생각해 왔다.

    멸망의 탑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공략하는 방법은 이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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