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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21화 (121/152)
  • 초월자의 분신(1)

    진영이 훔쳐낸 확신의 돌을 바라보는 이계의 절대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상치 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도 잠시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다워서 좋습니다. 이계에서 가져 온 힘은 저희조차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존재할 때가 있죠. 당신의 그 왼손처럼 말이에요.”

    절대자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녀에겐 이번에야말로 탑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계의 힘이야말로 유일하게 멸망의 탑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당신은 그 힘을 누구보다 잘 다루고 잠재울 줄 아는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출발하세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진영은 이계의 절대자를 마주보았다.

    탑에 집어 삼켜진 세계의 생존자들. 그들은 탑의 규율을 비틀어 이계의 규율을 만들어냈다. 그 힘은 힘을 가져 온 이들조차 예측 불허하다.

    ‘확실히 다르다. 회귀 전에 상상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상황을 앞서 있어.’

    탑을 공략할 수 있는 확실한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회귀를 반복한다고 해도, 이계 존재들의 힘이 무한하지 않으리라.

    콰아아앙!

    그 때 거대한 진동이 신전을 뒤흔들었다. 옅은 파열음과 함께 돌 부스러기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 아무래도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네요. 칼몬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잡으러 온 것 같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진영이 몸을 돌렸다. 이제는 격의 차이에 익숙해진 일행들도 몸을 일으켰다.

    “잘 보고 있으라고. 이번 탑 공략은 무조건 성공 시킬테니까.”

    [ 이계 시간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알겠습니다. 저희도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할 때가 왔으니까요.”

    이계의 존재들이 주시하고 있던 수 많은 시간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신전의 외벽에 걸려 있는 반투명한 시계의 시침이 뚝뚝 움직이기 시작했다.

    [ 당신의 시간축에 이계 시간축이 맞춰집니다. ]

    [ 모든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 *

    푸른 섬광이 대기를 찢어 놓자, 수 십 채의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뿌드득.

    칼몬은 손가락을 틀어 손을 풀었다. 이계의 근원, 감시자와의 전투는 준비 운동도 되지 않았다는 듯 언짢은 표정이었다.

    “이계의 존재들···. 쓰레기들이 이런 곳에 옹기 종기 모여 있었군.”

    이계의 근원의 금빛 머리카락은 온통 흙투성이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했다.

    “네 놈들의 세계는 이미 끝났다. 얌전히 탑에 일부가 되거나, 공허로 돌아갔어야지. 이런 곳에 숨어 있는들 뭔가 바뀔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멍청하다.”

    퍼억!

    거센 발차기가 이계의 근원을 후려쳤다.

    “크악!”

    초월자의 분신임에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멸망의 탑 29층이라는 리미트가 걸려 있는데도 칼몬의 무력은 막강했다. 그가 지속해서 초월력을 지불하고 있단 의미였다.

    “이진영을 잡는 김에 여기에 있는 쓰레기들도 모두 정리 해야겠어.”

    “큭···.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당신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실제로 칼몬의 행위는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 이미 초월의 좌에 오른 그가 탑의 하위층에 내려올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칼몬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만 년 전 탑의 꼭대기에 올랐던 녀석을.”

    셀 수 없이 많은 세월 속 초월자들은 시간의 감각을 잊는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탑이 공략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사실 뿐. 때문에 믿고 있다. 탑은 공략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비교적 초월의 좌에 늦게 오른 칼몬은 기억하고 있었다.

    “멸망의 탑은 언제든지 공략 될 수 있다.”

    젊은 초월자이기에 그 위기를 뼈저리게 느꼈다. 초월자들이 신경쓰지 않는다면 종래에 멸망의 탑은 무너지고 말 것이란 것을.

    “그리고 이진영이란 플레이어의 성장은 비정상적이다. 아직 멸망의 탑이 세계에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기도 전인데 최상위 관리자들을 수하로 부릴 정도.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는가.”

    즉 칼몬이 나서는 것은 멸망의 탑을 위한 일종의 정의 집행이었다. 이진영을 죽이고, 탑의 공략을 막는다는 그 나름대로의 대의가 존재했다.

    파지직!

    푸른 전기가 뱀처럼 칼몬의 팔을 타고 올랐다. 그의 푸른 문신이 빛을 발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마력이 응축되고 있었다.

    이계의 근원에게 피할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계의 감시자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

    “너무 섭섭해 하지 마라. 곧 다른 동료들도 보내줄테니. 네 놈들이 좋아하는 이진영은 물론이고.”

    한계까지 압축된 마력에 칼몬의 팔이 떨려 온 그 순간이었다.

    서걱-!

    그의 팔이 잘려나갔다.

    콰아아앙!

    분출되지 못한 마력이 역으로 칼몬을 덮쳤다. 그 탓에 검은 증기가 솟아오르며 주변을 뒤덮었다.

    스스-.

    이윽고 증기가 걷혔을 때 칼몬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한 쪽 팔의 절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왔구나. 이진영.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은신 능력이군.”

    감탄과 함께 칼몬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는 뒤로 스텝을 밟으며 공중 제비를 돌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상대하는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 아!”

    무슨 상황인가 지켜보던 이계의 근원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설마, 공격을 다 피해내고 있는건가?”

    진영이 가진 절대 은신은 냄새도 소음을 포함한 모든 기척을 남기지 않는다.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감에 의한 것 뿐.

    스슷!

    초월자가 가진 절대적인 감각으로 칼몬은 진영의 공격을 모두 예상하며 피해내고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의 능력.

    ‘예상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군.’

    쾅!

    어쩌다가 진영의 단검이 칼몬에게 닿아도 피해를 입히진 못했다. 두터운 마력 층이 진영의 공격으로부터 칼몬을 완벽히 보호했다.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하는군.”

    휙! 휙!

    칼몬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잽을 날렸다. 이계의 근원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 진영의 이마로 한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절대 육감이 아니었다면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관리자 가토에게서 뺏어낸 특성 덕에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칼몬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

    스윽-!

    ‘그렇다면’

    진영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칼몬이 가지고 있을 특성, 스킬 그리고 아이템을 훔치기 위해서.

    그때였다.

    칼몬이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과과과!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땅을 산산조각 내며 무너뜨렸다. 진영의 중심이 흔들리며 왼손의 조준이 어그러졌다. 그 사이 칼몬은 빠르게 진영의 뒤로 이동했다.

    “네 놈의 잔재주는 이미 다 파악 하고 있다. 특성과 스킬을 훔쳐가는 능력이지?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빼앗을 수 있으면 빼앗아 봐라.”

    콰아앙!

    칼몬의 주먹이 진영의 칠흑의 갑옷을 두드렸다. 미처 흡수 되지 못한 충격이 진영의 내장을 파고 들었다.

    “커허억!”

    진영이 붉은 피를 토해냈다. 형용할 수 없는 격통에 진영이 비틀거렸다.

    ‘크윽···.’

    진영은 거리를 벌린 뒤, 절대 은신을 해제 했다. 진영의 위치를 확인한 칼몬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네 놈에 대한 대비책은 완벽히 해 놨다. 나에게서 훔쳐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그러나 칼몬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글쎄, 그런 것치고는 쉽게 당해주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진영이 훔칠 수 있는 것은 특성과 스킬 뿐이 아니다. 아이템 또한 진영이 훔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칼몬은 그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가 지켜본 시점부터 진영은 물건을 훔치지 않았으므로.

    [ 아이템:지혜의 왕관(신화급)을 획득하셨습니다. ]

    [ 아이템:완고의 각반(신화급)을 획득하셨습니다. ]

    “좋은 걸 가지고 있더군.”

    진영이 미소지었다.

    * * *

    신화급 아이템의 성능은 레전더리를 가뿐히 뛰어 넘는다. 본래라면 50층은 넘어야 볼 수 있는 아이템인만큼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칼몬의 분신이 강한 힘을 낼 수 있던 것은 지혜의 왕관과 완고의 각반 덕도 있었다.

    그러나 칼몬은 아이템을 빼앗기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더더욱 내 생각에 확신이 생기는 군. 네 녀석은 여기서 처리하는 게 맞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푸른색의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낙뢰는 칼몬을 향해 정확히 적중했다.

    스스스-.

    칼몬의 어깨 위로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푸른 마력은 이내 수 십마리의 뱀이 되어 칼몬의 몸을 뒤덮었다.

    “초월력으로 빚어진 순수한 마력이다. 이것 또한 훔칠 수 있다면 훔쳐봐라.”

    그의 눈에서는 푸른 안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쿵. 쿵.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푸른 마력의 파동이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파앙!

    마력으로 만들어진 푸른 뱀이 칼몬이 손에서 쏘아졌다.

    [ 특성 : 절대 육감이 발동합니다. ]

    콰아앙!

    단순한 마력의 사출에 거대한 뱀이 땅을 파먹은 듯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공격을 피해낸 진영의 온 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칼몬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 들며 진영을 향해 발차기와 주먹을 휘둘렀다. 무예가 담기지 않은 단순한 공격이지만 순수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격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쉬익-! 쉬익-!

    진영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전부 피해내며 뒤로 물러섰다. 점점 진영의 숨이 가빨라 오고 있었다.

    ‘육감에 의지하는 건 기력 소모가 심해. 그렇다고 보고 피하기에는 능력치의 차이가 너무 커.’

    모든 스탯을 1.5단계 올려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이 정도 차이였다. 칼몬의 입가에 있는 미소가 진해졌다.

    “이게 바로 초월자와 플레이어 간의 차이다. 어쩌면 네 놈이 닿을지도 모르는 경지이나, 넌 여기서 죽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 번개가 칼몬을 감쌌다. 그렇게 모인 막대한 에너지를 쏘아 내기 위해 칼몬이 팔을 뒤로 뻗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진영의 절대 육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막아내더라도 그 일대가 완전히 소멸되는 압도적인 에너지량이 칼몬의 손에 맺혀 있었다.

    그 순간 진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파삭!

    진영은 줄곧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을 꽉 쥐어 깨뜨렸다.

    [ 이계 규율 - 확신의 보석(EX)를 사용하셨습니다. ]

    [ 당신의 의지에 따라 ‘각성의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

    처음 진영이 받으려했던 가능성의 돌이 플레이어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을 주는 거라면.

    확신의 보석은 그 순간에 가장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한다.

    샤아아-!

    한 순간에 새하얀 기운이 넘실거리며 주변을 뒤덮었다.

    [ 탐욕의 왼손이 각성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

    [ 특성의 특정 조건이 해금되어 새로운 능력을 획득합니다. ]

    [ 훔친 대상의 능력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

    [ 부가 효과 : ‘스탯 스틸’을 획득하셨습니다. ]

    [ 이제 타인의 능력치를 훔쳐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무슨 수작인지 몰라도 이미 늦었다!”

    이미 만들어진 마력의 덩어리는 어찌할 수 없었다.

    진영의 눈은 여전히 칼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칼몬 또한 진영을 주시한 채로 손을 뻗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운이 진영을 향해 쏘아지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

    “진영이 형! 갑니다!!”

    칼몬과 진영이 전투 중인 바닥 아래로 뛰어내린 김지훈이 소리쳤다.

    [ 스킬 : 아이템 수납이 발동됩니다. ]

    [ 각성 : 모든 대상을 수납합니다. ]

    짐꾼 클래스 김지훈의 가방이 칼몬과 그의 마력을 집어 삼켰다.

    그의 눈에는 각성의 증표인 하얀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꿈틀 꿈틀!

    가방이 거세게 꿈틀 거렸다. 가방을 붙잡고 있는 김지훈의 코와 입에서 피가 끊임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혀, 형. 빨리···.”

    녀석을 가둘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간 진영이 가방 위로 손을 올렸다.

    꿈틀!

    인벤토리화 된 가방 안을 빠져나오려는 칼몬의 몸부림에 가방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빠져나오려는 듯 미친 듯이 마력을 쏘아대고 있을 것이리라.

    가방에 올려진 진영의 왼손 위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 대상과의 격차가 지대하여 스틸에 실패합니다. ]

    [ 대상과의 격차가 지대하여 스틸에 실패합니다. ]

    ···

    ..

    .

    콰직!

    칼몬의 검은 팔이 가방을 뚫고 나왔다. 그의 팔이 붙잡을 것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쿨럭.

    동시에 마력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김지훈이 피를 토해냈다. 일분 일초가 급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스틸의 실패가 이어졌다.

    “되라!”

    [ 대상과의 격차가 지대하여 스틸에 실패합니다. ]

    탐욕의 왼손이 발동할 10%의 확률.

    콰지직!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그 확률을.

    콰지지직!

    “이 새끼들 감히 나를 가둬! 남김 없이 태워주마!”

    진영은 결국 뚫어냈다.

    [ 부가효과 : 탐욕의 왼손이 발동 되었습니다. ]

    [ 대상의 능력치(마력)을 훔치는데 성공했습니다. ]

    [ 훔친 능력치의 효과가 매우 좋아집니다. ]

    [ 마력 스탯이 10단계 : 초월(超越)에 도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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