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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18화 (118/152)
  • 이계의 절대자(4)

    [ 29층 : 폭풍우 바다 - 유령 해적단 섬멸 ]

    꽈르릉!

    어두운 하늘 위로 번개가 끊임 없이 내리치는 바다.

    거센 파도와 함께 쉴 틈 없이 흔들리는 유령선 내부로 유령이 아닌 자들이 발을 딛었다.

    이질적인 존재들을 확인하고 수 십의 유령들이 무기를 들고 떼거지로 달려나왔지만, 그들 중 누구도 침입자를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꾸벅 인사하더니, 갑판에 가지런히 도열 하기 시작했다.

    “관리자를 뵙습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모자를 쓴 선장 유령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우욱, 잠시만 토할 것 같아.”

    꽤나 볼만한 상황이었으나 상황을 음미할 여유가 없는 자도 있었다. 염태준은 갑판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디스펠을 사용하면 잠시나마 효과가 있을 겁니다.”

    “너 천재냐?”

    김영훈이 염태준을 부축하며 디스펠 스킬을 사용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진영에게 끌려 온 유자벨과 가토의 표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선장, 배를 가장 파도가 심한 곳으로 옮겨라. 유자벨과 가토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바다에서 나타나는 대형 마수들을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크윽, 유자벨 네 놈은 자존심도 없냐?”

    가토 또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관리자의 권한을 진영에게 내놓았다. 가토가 담당하고 있던 구역은 30층부터 40층까지. 이로써 진영은 25층부터 40층까지의 관리자 권한을 손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선실 안으로 들어가서 쉬자.”

    “주오령 형은요?”

    주오령은 어느새 뱃머리에 올라서서, 마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고 그래.”

    “그래, 우리는 들어가서 쉬자고.”

    디스펠 마법으로 멀미에서 벗어난 염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궂은 일은 전 관리자들이 해결해 줄테니, 일행은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선체 내부로 들어 온 일행을 유령 단원들이 극진히 대접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령선인만큼 기껏해야 어디서 났는지 모를 차 정도의 대접이었다.

    “진영 형, 지금 저희 어디로 가는 거에요?”

    “29층의 히든 플레이스. 말로만 들었지 나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탑에는 숨겨진 히든 피스가 있다고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영훈의 말에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15층을 돌파한 뒤로 굳이 히든 피스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졌다. 중요한 히든 피스는 아래층에 몰려 있었고, 신화급 아이템의 성능이 히든 피스를 능가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히든 피스는 다같이 얻을 수 있는 물건이야. 물론 내 목적은 거기에 있는 성좌들을 만나려는거고.”

    “설마, 이번에 형을 도와줬던 성좌들이요? 그 성좌들은 위조 성좌가 아닌거에요?”

    진영의 주변을 밝게 메우던 이계의 존재들을 일행도 기억하고 있었다.

    “맞아. 초월자도 아닌 것 같긴하지만.”

    “형,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김지훈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회귀 전에는 초월자셨던 거에요?”

    손가락을 튕기는 김지훈이 자신의 추리에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돼요. 관리자를 부하로 삼고, 이제는 성좌들을 만나러 가겠다니···. 어때요? 제 말 맞죠?”

    그때였다.

    수상한 냄새의 차를 홀짝이던 염태준이 거미줄이 쌓인 선실 한 구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잠깐만···. 저거 뭐냐.”

    “에이, 중요한 순간인데. 뭔데요?”

    “아니, 저 상자 안에 든 거···. 레전더리급 아이템 같은데?”

    * * *

    크오오!

    거센 폭풍를 뚫고 나아가는 유령선의 앞으로 거대한 마수들이 이빨을 냈다. 거대한 문어 ‘크라켄’의 촉수가 순식간에 유령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촤아악!

    촉수가 유령선에 닿자마자 마력의 섬광이 번쩍이며 크라켄의 촉수가 순서대로 잘려나갔다.

    “문어 대가리가 건방지게 어딜!”

    콰앙!

    한 때 존재만으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던 거대 괴수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다 속으로 스멀스멀 사라졌다.

    “젠장, 더럽게 많네.”

    “29층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새끼를 이렇게 친거야?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너 같으면 바닷 속에 처박힌 놈들 관리가 하고 싶겠냐?”

    가토와 유자벨은 계속해서 몰아치는 폭풍우에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벌써 해치운 마수만해도 스무 마리가 넘었다.

    더욱이 파도와 풍랑이 거세지고 있었다. 파도 한 번에 배가 하늘 높이 치솟으며 뒤집힐 지경이었다.

    물론 진영 일행이 불편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배 내부는 평화로운 상태가 항시 유지 되고 있었다. 허공을 부유할 수 있는 유자벨이 배가 뒤집히지 않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리자였던 우리가 겨우 플레이어의 종노릇이라니. 한숨 밖에 안나오는군.”

    가토가 자신의 사자 갈기와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하자 유자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이미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일단 네 놈의 불평은 잘 들었다.”

    “이, 이 자식이···.”

    “내려와서 배를 같이 밀면 한 번 봐주지.”

    콰아아아!

    그때 파도가 갑판을 휩쓸기 시작하고, 배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유자벨이 배를 잡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흔들림.

    “도착인가보군.”

    뱃머리에 앉아 명상을 취하던 주오령이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선실에 있던 진영 일행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오셨습니까?”

    “말씀하신대로 파도가 가장 심한 곳으로 왔습니다. 근데 대체 왜 여기에···?”

    유자벨과 가토가 부리나케 진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파도 너머를 살펴보던 진영이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제대로 온 것 같군.”

    29층의 히든 플레이스 ‘이계 중심부’.

    신화준은 모든 히든 피스를 모으고 다녔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이곳도 그 중 하나였다.

    - 29층······. 거기를 가 본 건 멸망의 탑에서 나 밖에 없을거야. 대체 누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 미친 생각을 하겠어? 크라켄한테 잡혀서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간 얼간이 덕분이 아니었으면 찾기 힘들었을거야. 응? 내가 방금 나만 히든 플레이스에 가봤다했냐?

    지난 정보들을 따져보면 신화준이 말해 준 정보에는 결함이 많았다.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어.’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고 히든 플레이스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크라켄에게 끌려가는 게 방법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바다 속으로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곳 바다는 특히 파도가 심해서 위험합니다. 마수들도 통제가 잘 안되고요. 물론 진영님이시라면 단번에 제압하시겠지만요. ”

    유자벨이 설명을 마쳤다. 이번 히든 플레이스는 관리자조차 존재의 유무를 모르는 장소였다. 그만큼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 수 없었다.

    일행은 그러한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했다.

    염태준이 선실에서 레전더리급 아이템을 발견하지만 못했더라면.

    “부탁한다, 염태준.”

    “오케이. 내 차례인가.”

    진영의 말에 염태준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선실에서 발견한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염태준의 눈은 보물의 능력으로 각성된 상태였다. 심지어는 그가 평소에 집착하던 아이템과 관련된 능력이 대폭 향상된 상황.

    그런 그가 손에 쥔 보옥을 들어 올렸다.

    “이게 말이지, 근처의 날씨를 조절할 수 있더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자벨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 플레이어. 그걸론 어림도 없다. 근처의 날씨를 바꿔도 그 외의 날씨가 너무 난폭해서 무의미 해.”

    자신의 관리 구역에 있는 레전더리 아이템이니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무용지물이기에 선실 한 쪽에 쳐박혀 있던 것이다.

    “난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내기라도 할래?”

    “크윽···.”

    염태준의 내기라는 말에 유자벨이 주춤거렸다. 이제는 내기라는 말만 나와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보라고.”

    오색빛의 보옥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거뿐이었다면 특별할 것도 없었겠지만, 그 빛 무리 속에는 염태준의 오른눈에서 시작된 새하얀 빛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보물의 능력으로 아이템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

    솨아아!

    하늘 가득했던 검은 먹구름이 물러가고, 풍랑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사라진 구름 사이로 새하얀 빛무리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일어 났다.

    콰아아아!

    바다의 양 면이 좌우로 갈라지며, 해저의 바닥이 드러났다.

    “마, 말도 안돼···. 고작해야 레전더리 아이템일텐데?”

    아이템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유자벨이 기겁하며 염태준을 쳐다봤다.

    염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된다고 했잖아.”

    바다의 아랫면에는 새하얀 포탈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히든 플레이스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 * *

    [ 히든 플레이스 : 이계 중심부 종말의 땅 ]

    종말을 연상시키는 검은 흙과 붉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삭막하네. 여기에 정말 그 이계의 존재들이란 놈들이 있는 거야?”

    염태준의 눈으로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생명체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장소였다.

    “여기에는 없지.”

    아무것도 없는 땅, 여기서부터 이계의 땅에 진입하기 위한 시험이 시작된다.

    - 그렇게 나타난 마수를 모두 처치하니까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더라. 이계 중심부라고해서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라 허망한 거 빼곤 나쁘지 않았지.

    [ 이계의 절대자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

    이계의 존재들은 멸망의 탑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멸망의 탑을 유지하고 지키고자 하는 탑의 의지와는 달리 탑이 공략되기를 바라며, 시간축을 주시하는 존재들.

    그들은 그들의 땅 어딘가에 숨어 있다.

    쿠구구구구!

    “뭐죠, 저 검은 구름은?”

    사방에서 몰려 오는 검은 구름을 확인한 일행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염태준이었다.

    꿀꺽.

    그가 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구름이 아니야. 전부 마수야. 그리고···. 40층급 마수라는데 내가 잘못 보는 거 아니지?”

    “진영이 형, 설마 저걸 다 잡아야 되는 건 아니죠? 관리자들도 없는데···.”

    히든 플레이스에서는 관리자의 권한이 닿지 않는다. 때문에 유자벨과 가토는 배에 대기 시킨 상황. 일행끼리 이 모든 마수를 쓰러뜨려야했다.

    [ 모든 적을 섬멸하고, 살아남아라. ]

    - 보상 : EX급 아이템

    그 순간 떠오른 정보창이 진영의 답을 대신했다.

    “바로 출발하지.”

    주오령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뛰쳐나가려는 찰나, 진영이 주오령의 어깨를 붙잡았다.

    “주오령 이걸 받아라. 가지고 있기만해도 충분할 거야.”

    “흠······.”

    인벤토리에서 꺼내 건네준 아이템은 창이었다. 5개의 아이템 중 마지막 보물인 타이탄의 창. 주오령이 받아든다면 전력은 압도적으로 향상된다.

    “······.”

    문제가 있다면 주오령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물끄러미 아이템을 바라보던 주오령이 창을 집어들었다.

    처억.

    “!”

    주오령은 탑을 오르며 아무런 아이템도 사용하지 않았다. 진영이 그에게 아이템을 건네었을 때조차 그는 아이템을 거절했다.

    그런 그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해방된 보물을 받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염태준이 소리쳤다.

    “야, 그걸 준단거는 설마···.”

    “어?”

    그러나 염태준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검은 마수들이 몰려들었다.

    기괴스런 형태를 한 고블린, 늑대, 오크···.

    각양 각생의 마수들이 흉측한 마기를 뿜어내며 개떼처럼 달려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주오령의 주먹에 마수의 무리가 홍해처럼 갈라졌다. 허공을 날아간 마수들이 떨어져내리며 언덕을 이뤘다.

    “······.”

    그 모습을 본 염태준이 입을 떡벌렸다.

    “자, 잠깐 저 녀석이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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