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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12화 (112/152)
  • 대립(3)

    멸망의탑 26층 영원한 왕의 도시.

    충직한 세 부하와 탐욕스런 왕을 쓰러뜨려야하는 이 곳의 난이도는 그야말로 극악.

    도시의 수많은 NPC들은 플레이어를 악령이라고 인식하고 압박해온다. 플레이어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특히 클랜 단위로 행동하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더욱 문제였다. 도심 한 가운데에 마수 무리가 나타난 셈인데, 그것을 도시의 수호자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문제는 그 수호자들이 가지는 힘 하나 하나가 강한 플레이어 수 십에 맞먹는다는 것.

    소드마스터, 보우마스터, 엘레멘탈 마스터.

    어쩌다가 이 세 명의 수호자가 한 곳에 모이기라도 한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저 자식···. 역시 회귀자라는 건가. 너무 잘 알고 있어···.’

    이진영은 유자벨이 만들어낸 현상금 사냥을 역으로 이용해 플레이어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그 결과 수호자 하나를 플레이어들에게 맡기는 셈이 되었다.

    그 소동은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들까지 전선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의 동료들을 보우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보내 각개 전투를 할 모양.

    “이진영!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 같지만 그래 봤자다.”

    유자벨은 첨탑에서 빠르게 떨어져내려, 이진영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진영은 유자벨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고, 소드마스터가 있는 장소를 향해 달렸다.

    “너야말로 초조한 모양이군. 관리자면 관리자답게 구경이나 하는 게 어때?”

    “네 놈······.”

    진영의 말에 유자벨의 표정이 구겨졌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플레이어에게 직접 손을 쓰기는 힘들었다.

    관리자인 유자벨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진영을 향한 도발 뿐.

    그걸 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유자벨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위압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 내기가 끝나고도 네 놈이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도발한만큼의 대가는 충분히 치르게 해줄테니.”

    이번 내기에 이진영은 자신을 직접 걸었다. 유자벨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제안.

    동시에 이진영은 넌지시 알려준 것이다.

    ‘이진영을 종복으로 삼게 되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초월자의 권한 또한 내 손에 들어 온다.’

    그에 비해 유자벨이 패배 시에 지급해야 하는 것은 25층부터 30층까지의 관리자 권한.

    물론 그에게도 죽음이나 다름 없는 조건이기는 했다.

    ‘다시 탑의 부속품으로 돌아갈 바에는 죽는 게 낫지.’

    그렇기에 유자벨은 이번 내기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야말로 대박의 기회가 굴러들어 온 격.

    ‘물론 이겼을 때의 이야기지만···.’

    소드마스터가 있을 성의 중심부로 향하는 진영의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콰아앙!

    진영은 어느새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 앞에 도달했다.

    그가 휘두른 단검에 성문이 힘없이 쓰러졌다.

    “침입자다!”

    “침착해! 뒤에 그란님께서 계시다!”

    침입에 당황하는 병사들 뒤쪽으로 은빛 무장을 갖춘 남성이 서 있었다.

    양손으로 검을 맞잡은 그는 당당한 표정으로 진영을 바라보았다.

    “······. 네가 그 지독한 악령인가. 결국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군.”

    스윽-.

    검을 겨눈 채 자세를 잡은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그란. 그 놈을 죽여라! 그 악령 놈을 처치해라!”

    유자벨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그란의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콰아앙!

    중간보스 그란과 진영의 승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보스.

    탑의 최정상에 있는 녀석들은 동레벨대의 다른 마수보다 더 많은 체력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보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중간 보스가 일반 잡몹들과 차별되는 점이기도 했다.

    심지어 플레이 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수가 늘어날 수록 보스의 힘도 그만큼 대등하게 강력해져야했다.

    만약 플레이어의 수는 늘어나는데 보스의 힘은 그대로라면?

    모두가 한 대씩만 치더라도 순식간에 쓰러지는 연약한 보스가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밸런싱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멸망의 탑에도 그러한 밸런싱적인 요소가 존재했다.

    콰아앙!

    지금 진영이 마주하고 있는 소드마스터 그란이란 놈이 그 밸런싱의 수혜자였다.

    멸망의 탑은 싱글 플레이 게임이 아니다.

    수 백 명의 플레이어가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런만큼 그란의 힘은 여타 보스에 비해 훨씬 강하게 설정 되어 있었다.

    플레이어 하나가 맞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아니, 그래야만했다. 그게 밸런스라는 것이었고, 멸망의 탑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라 불리는 이유였으니까.

    그런데···.

    “그란, 뭐하는거냐!”

    콰아앙!

    무자비한 연격이 소드 마스터 그란을 향해 쉴새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유자벨의 외침이 무색할 정도로 그란은 진영의 공격을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란 그도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소드마스터로서 쌓아 올린 모든 기술과 힘이 마치 백지가 된 듯 새하얘져 있었다.

    콰앙! 콰앙!

    중간보스가 가지는 기본적인 능력치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반면 진영의 공격은 여유로웠다.

    [ 특성 ‘소드 마스터’를 훔치셨습니다. ]

    [ 훔친 특성의 효과가 더 좋아집니다. ]

    [ 검과 관련된 행동의 효율성이 100% 증가합니다. ]

    [ 검과 관련된 공격의 데미지가 2배로 증가합니다. ]

    촤악! 촤악!

    진영이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강력한 마력이 일대를 장악했다.

    [ 스킬 ‘소드 오러’를 훔치셨습니다. ]

    [ 훔친 스킬의 효과가 더 좋아집니다. ]

    일반 경비병들은 진영이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 여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 스킬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발동 됩니다. ]

    [ 모든 능력치가 1.5 단계 상승 됩니다. ]

    먼치킨 클래스인 시몬에게서 빼앗은 스킬 또한 여전히 유효했다.

    특성과 달리 스킬에는 시간 제한 따위는 없었으므로.

    쩌저적!

    그란이 미처 막아내지 못한 충격은 기둥과 벽을 뒤흔들었다.

    [ 성좌 푸른 달의 악마가 관리자에게 분노합니다. ]

    관리자를 향한 초월자의 꾸짖음.

    어째서 중간 보스에게 제대로 된 준비를 시키지 않았느냐는 말이기도 했다.

    ‘했어, 했다고 빌어먹을 초월자 새끼가. 공허의 반지까지 쥐어줬는데 저 지경이잖아!’

    그만큼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공허의 반지의 효과는 착용자가 가진 스킬의 효과를 1.5배로 극대화 시켜주는 특수한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지금 그란의 상태가 스킬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

    ‘이대로면 그란이 밀리고, 그대로 다른 중간보스들도 죽는다.’

    유자벨의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진영이 그란의 특성과 스킬을 빼앗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이 내기에서 어떻게 승리할 지를 생각할 뿐.

    ‘그래, 이진영을 죽일 필요는 없다. 3일이라는 시간을 버티기만 하면 된다.’

    고작 플레이어 따위에게 이러한 방법을 써야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진영은 고작 플레이어 따위가 아니었다.

    초월좌 그렌달도 잡아 먹은 괴물.

    그걸 인정하면 작전은 바뀌기 시작한다.

    솨아아-!

    유자벨의 붉은 팔찌가 빛을 발했다.

    [ 성좌 검은 그림자의 신이 일방적인 싸움을 지루하게 생각합니다. ]

    [ 다수의 성좌가 난이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

    위조 성좌들을 통한 여론 만들기가 다시 한 번 시작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관리자로서의 간섭을 타당하게 만들어준다.

    유자벨은 뻔뻔한 연기를 시작했다.

    “아, 알겠습니다, 난이도를 대폭 올리도록 하죠.”

    초월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 이외에도 위조 성좌들을 조종하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위조 성좌들이 아우성 치기 시작하면 관리자가 무슨 짓을 하든 탑의 규율에 따라 적법한 일이 되므로.

    [ 다수의 성좌가 압도적인 플레이어들의 활약에 불만을 가집니다. ]

    [ 성좌 푸른 달의 악마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

    “이진영, 네 놈의 힘에는 놀랐다. 어쩌면 정말로 가레논을 쓰러뜨렸을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소드 마스터 그란의 힘을 아무리 키운들 네 놈을 이길 거라는 생각은 안든다.”

    “······.”

    [ 관리자가 26층의 난이도를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

    [ 중간 보스들의 능력치가 조정 중에 있습니다. ]

    “그런데, 다른 플레이어들과 네 놈의 동료들은 이 난이도를 버틸 수 있을까?”

    진영과 검을 맞대던 그란의 눈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능력치가 대폭 상향되며, 이성을 잃게 되는 광화의 징조였다.

    “······.”

    진영의 대답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눈 앞의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검을 휘두를 뿐.

    승리를 확신한 유자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 *

    “보인다···. 보인다!”

    염태준의 눈에서는 새하얀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솨아아-!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화살이 일행을 향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태준은 그런 화살비 속을 뚫고 거침 없이 달려 나갔다.

    “보인다고!”

    스슥!

    신들린 듯한 움직임 앞에서 염태준은 보우 마스터가 쏘아낸 모든 화살을 보란 듯이 피하며 전진했다.

    “저거 괜찮은거냐?”

    “글쎄···.”

    김영훈이 펼친 새하얀 장막 속에서 형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염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살은 모두 장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나갔다.

    문제는 이 안전한 장막을 빠져나간 염태준이었다.

    “진영이 형이 경고하던 게 저거였던 것 같은데.”

    보물의 과잉 사용.

    그로 인한 부작용은 진영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염태준의 모습은 일전의 김목성과 똑같았다.

    보물 능력의 폭주.

    “원래 태준이 형은 좀 이상했으니까, 냅둬도 괜찮지 않을까.”

    “지훈아, 농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근데 혹시 말이야. 만약에 그게 폭주가 아니라 정말로 각성 같은 거였다면.”

    꿀꺽.

    김영훈이 자신이 가진 보물 영혼 파쇄자의 투구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뛰쳐나간 염태준을 바라보았다.

    “아이템 정보가 모두 보인다고! 어디로 올지, 어떻게 공격할지, 어느 정도의 파괴력인지···. 이야, 미치겠네 이거.”

    홀린 듯 화살을 피해내던 염태준이 대검을 아래서 위로 세차게 휘둘렀다.

    콰직!

    보우 마스터가 쏘아 낸 화살이 반으로 쪼개지며 염태준을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치켜 올린 대검이 보우 마스터의 팔을 정확히 잘라냈다.

    “크아악!”

    고통과 함께 주저 앉는 보우 마스터.

    “버프는 이미 걸어뒀습니다. 마무리를 지어주세요!”

    “오케이!”

    김영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염태준은 망설임 없이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고오오···.

    보우 마스터의 눈가에 붉은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녀석의 잘려나간 팔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요동쳤다.

    염태준이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야, 도망칠 준비 해야겠는데···.”

    보물 영원 불멸의 고리를 각성 시킨 염태준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보우마스터의 능력치가 무섭게 치솟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

    “뭔데요?”

    “다가오지마!”

    염태준의 진지한 모습에 김지훈과 김영훈도 상황을 인지했다.

    고오오!

    중간보스였던 보우마스터가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메시지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염태준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 우리 실력으로는 이제 못막아.’

    만약 일행의 전력이 중간보스에 못 미칠 경우, 25층으로 도망치는 것이 기존의 계획.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이미 우리는 도망조차 못친다. 이진영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해.’

    염태준의 눈에 하얀 안광이 점차 사그라 들고 있었다.

    어느새 한 쪽 눈의 불길로 변한 보물 해방의 증거는 똑똑히 말해주고 있었다.

    강화된 중간 보스의 능력은 그들로도 어쩌지 못한다는 걸.

    “각오 단단히 해.”

    간만에 보는 염태준의 진지한 모습에 김지훈과 김영훈 또한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그때였다.

    일행의 눈 앞으로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 다수의 성좌들이 현재의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합니다. ]

    [ 상당수의 성좌들이 이전의 난이도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

    “어?”

    관리자의 의도와는 완벽히 다른 메시지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그 물결은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 성좌 이계의 근원이 난이도 개입에 불같이 화를 냅니다. ]

    [ 성좌 이계의 본질이 이런 식의 조작은 부당하다고 의견을 표출합니다. ]

    [ 성좌 이계의 유령이 난이도를 복구하라고 독촉합니다! ]

    이계의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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