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11화 (111/152)

대립(2)

포탈을 통과한 유자벨의 시야에 익숙한 중세의 도시가 펼쳐졌다.

[ 26층 - 영원한 왕의 도시 ]

‘한시라도 빠르게 이진영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해.’

유자벨은 이진영의 능력을 완벽하게 가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조치.

그게 지금 유자벨에게 필요한 방식이었다.

‘녀석의 클래스는 회귀자. 그걸로 긁어 모은 코인과 아이템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돌게 분명해.’

관리자의 무덤을 지키던 악어 가레논을 처치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심지어 마지막에 녀석이 보여줬던, 다른 성좌의 고유 능력.

‘다른 사람의 스킬을 사용하다니, 멸망의 탑에 존재하지도 않는 능력이다. 내가 모르는 아이템이라도 있는 건가?’

멸망의 탑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가 가질 수 있는 클래스는 단 하나.

거기에 더해, 회귀가 가능한 것은 오로지 회귀자 클래스 뿐.

다른 방식의 회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탑의 권한을 벗어난 일이었으므로.

머리를 굴리던 유자벨은 이내,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녀석은 26층의 공략 방법도 이미 알고 있을 게 분명해.’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이진영의 예상을 웃도는 무언가였다.

처억.

중세 도시의 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러 유자벨이 내려 앉은 곳은 어느 방 안이었다.

은빛 갑옷을 걸친 기사 하나가 명상에서 깨어나 유자벨을 향해 경례를 했다.

“유자벨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재 이곳으로 침투 중인 다수의 악령들을 감지했습니다.”

“······.”

유자벨은 말 없이 기사를 바라보았다.

26층의 중간보스 격인 소드마스터 ‘그란’.

인간형 NPC 인 그는 지금 26층으로 올라오는 플레이어들을 악령이라 인식하고 있다.

‘지금 이 녀석이라면 플레이어 1천명이 와도 버텨낼 수 있겠지.’

소드 마스터 그란.

그가 살아 생전 이룩한 검의 경지는 인간을 초월했다 여겨졌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일화는 전설이나 다름 없었다.

수 만의 대군이 맞부딫히는 전장에서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수 천의 일반 병사가 목숨을 잃었으니까.

밀려 오는 수 백의 플레이어들을 막아내기에도 이 녀석만한 NPC가 없었다.

‘아니, 한참 모자라. 이 놈도 이진영은 못이겨.’

우웅.

유자벨은 허공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파지지직!

물결처럼 흔들리는 허공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유자벨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크윽···.”

“······!”

전격에 유자벨의 팔이 검게 변했을 즈음, 그의 손에 반지가 쥐어졌다.

“자, 받아라.”

“이, 이건···.”

반지를 확인하는 소드마스터 그란의 눈동자가 떨렸다.

감각적으로 반지의 가치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겨우 NPC한테 끼워줄만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쩔 수 없겠어.’

유자벨이 꺼낸 반지는 신화급 아이템 공허의 반지였다.

신화급 아이템.

그 효과는 레전더리를 가뿐히 씹어 먹는다.

본래대로라면 26층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등급의 아이템.

아무리 빨라도 50층은 올라야 볼 수 있는 성능의 물건이었다.

‘내기의 보상을 생각하면 이 정도 규율은 어길만 해.’

유자벨이 검게 변한 한쪽 팔을 보며 생각했다.

탑은 무자비한 듯 보여도, 플레이어들에게 상당히 관용적이다.

‘크윽, 이진영 그 놈은 플레이어란 이유만으로 신화급 아이템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데 말이야.’

멸망의 탑의 관리자들은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일정 수준의 난이도를 지켜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절대 지지 말아라.”

유자벨의 목소리에는 소드 마스터가 공포심에 짓눌릴 정도의 마력이 담겨 있었다.

소드 마스터 그란이 침을 꿀꺽 삼키며 힘겹게 대답했다.

“하사하신 반지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진영 일행은 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곧장 26층으로 들어왔다.

[ 26층 - 영원한 왕의 도시 ]

설명 : 세 명의 충직한 부하와 부도덕한 왕의 목을 취하십시오.

“야, 잘 먹었다. 짐꾼 클래스란 거 진짜 편하네. 너, 아예 집도 넣었다 꺼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염태준이 웃으며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미리 준비 해두었던 각종 장비와 식재료로 호화스러운 식사를 마쳤기에 나온 말이었다.

심지어는 정리도 순식간이었다.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캠핑카. 그 이상이었다.

“헤헤.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만하세요.”

“고맙다, 지훈아.”

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방된 보물의 효과는 진영의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새로운 스킬을 부여하고, 숨겨진 능력까지 이끌어내고 있었으니.

특히 김지훈은 전투 능력과 서포트 능력이 극대화 되었다.

보물을 좋은 쪽으로 잘 다루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는데?”

포탈을 뚫고 나오자 보이는 건, 중세의 시장이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열매가 굉장히 쌉니다!”

“고급 문양이 새겨진 팔찌 팔고 있습니다!”

“와, 그 고양이 예쁘네요.”

멀리 떨어진 진영 일행의 눈에도 활기가 느껴질 정도.

“간만에 숨 좀 돌릴만한 층에 온 건가? 시장 좀 구경하자고. 쓸만한 아이템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긴장을 놓치지는 말죠.”

염태준이 미소를 지으며 시장 쪽으로 다가서려는 그 때였다.

“아니, 우리는 이 쪽으로 간다.”

진영이 일행을 골목 쪽으로 이끌었다.

“왜? 온 김에 시장에 희귀한 아이템이 있으면 싹 다 쓸어가야 될 거 아니야.”

“태준 형, 진영이 형이 이러면 이유가 있겠죠.”

진영이 상황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일행보다 먼저 26층에 들어왔던 플레이어 하나가 시장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악!”

“저, 저게 뭐야!”

“······?”

플레이어가 시장에 나타나자,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비병! 경비병 불러!”

“무기가 될만한 걸 가져와!”

NPC들은 플레이어를 보고, 마치 마수라도 발견한 양 소리를 쳤다.

사건의 중심에 선 플레이어는 어리둥절한 채로 소리쳤다.

“어이, 난 싸울 생각이 없어!”

저 멀리서 무장한 경비병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죽어라!”

“죽어라, 이 악령 녀석!”

플레이어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경비병들은 곧장 창을 휘둘렀다.

“크윽, 이런!”

그제서야 대충 상황을 이해한 플레이어가 피가 나는 팔을 부여잡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진영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사람으로 안 보이는 모양이네요.”

“그래. 아마 악령 비슷한 마수로 보이겠지.”

대형 클랜들은 현재 26층 공략을 미루자는 제안에 동의했지만, 그와 별개로 26층에 올라 온 플레이어들은 꽤 있었다.

그들 모두가 방금 전 플레이어와 같은 꼴을 당한 채 도시를 숨어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곳을 3일 안에 공략하겠다니···.”

염태준이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숲을 돌아다니는 마수 하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눈에 띄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덤벼 들지 않는 이상 피해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이런 인구가 가득한 도시 한 가운데 떡하니 마수가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번 발견되면 기를 쓰고 찾아내서라도 죽이려든다. 도시의 치안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니까.

그걸 알기에 일행의 시선이 진영에게로 모였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3일. 그 안에 26층을 공략해야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조차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염태준의 물음에 진영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일단은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그래.”

일분 일초가 아까운 시간에 기다린다는 것.

그게 진영의 대답이었다.

* * *

기다린다는 것은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

“정말 기다리면 되는 거 맞아?”

어느새 하늘에는 새하얀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외곽, 버려진 장소.

진영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편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태준 형, 그만하고 형도 누워요. 이제 쉬는 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댔잖아요.”

“그건 그런데···. 거의 반나절이 지났다고. 이대로 그 관리자가 가만히 버티기만하면 내기에서 지는 거잖아.”

“누가보면 형이 내기한 줄 알겠어요.”

“그렇네···? 내기는 관리자랑 이진영 저 놈이 한 거잖아. 내가 뭐하러 열내고 있었지.”

그 때였다.

콰앙!

도시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그게 신호였다.

“다들 준비해. 유자벨이 움직였다.”

진영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정말인가···?”

염태준이 긴가민가 하고 있는 사이, 모두의 앞으로 홀로그램 창이 솟아났다.

[ 다수의 성좌가 이진영 일행의 끔찍한 악행을 목격했습니다. ]

[ 이진영 일행(이진영, 염태준, 김지훈, 김영훈)에게 현상금이 붙습니다. ]

“지, 진짜 뭔가 시작 됐네. 그것도 우리들한테 안 좋은 쪽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설명한 건 모두 잘 기억하고 있지?”

“네, 당연하죠.”

“저도 준비 됐습니다.”

스윽-.

진영이 손을 뻗어 설정해 두었던 절대 은폐 구역을 해제했다.

유자벨은 반나절 동안 진영 일행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유자벨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증거가 지금의 알림이었다.

[ 성좌 푸른 달의 악마가 미션의 보상으로 ‘26층 NPC 우호권’을 내걸었습니다. ]

“위조 성좌들이라더니, 정말 말도 안되는 누명을 씌워버리다니.”

일행에게 걸린 누명. 성좌들은 직접 목격한 척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26층에 오른 플레이어들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믿지 않더라도 현상금과 보상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한 일.

“이제 도시 중심부로 움직이자.”

모습을 드러낸 진영 일행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성좌 무료한 관찰자가 진영 일행의 위치를 찾아내 공유합니다. ]

[ 성좌 잊혀진 도시의 패자가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 봅니다. ]

‘찾아냈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첨탑에 서서 이 모든 걸 지휘하는 유자벨의 눈이 빛났다.

‘녀석이 플레이어인 이상 평판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이 모든 게 조작된 성좌들의 여론이라는 것을 모르는 플레이어들은 진영을 오해할 수 밖에 없다.

메시지를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진영 일행을 향한 성좌들의 비난은 커졌을 것이다.

성좌들이 진짜라고 믿는 플레이어들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할 터.

아니 적어도 의심은 할 것이다.

‘물론 보상이 걸린 시점에서 해명이고 나발이고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이미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진영 일행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상 앞에서는 살인도마다 않는 자들은 여전히 있는 법이었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녀석을 죽이려하는 건 아니지.’

유자벨의 미소가 깊어졌다.

위조 성좌들의 여론을 사용한 작전은 완벽했다.

진영 일행은 적과 아군, 그리고 중립의 플레이어를 구별해가며 싸워야 할 것이다.

“이진영 플레이어!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죄 없는 플레이어를 죽였다는 게 사실입니까?”

이미 각자의 위조 성좌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전달 받은 플레이어들이 무섭게 진영 일행의 뒤를 따랐다.

“멈춰라, 악령들!”

“세상에 악령들이 떼거지로···!”

“죽여야 해!”

반대편에서 부딪혀 오는 많은 수의 경비병들까지.

그러나 진영 일행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놓쳤어! 그 쪽으로 간다!”

“걸리적거리는 NPC들은 치워버려!”

진영 일행은 도심을 가로질러 계속해서 뛰어나갔다.

일 백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근처의 경비 NPC들을 베어나가며 진영 일행을 추적했다.

일행은 미리 정해둔 경로를 일정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로의 끝에 다다랐을 때 플레이어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허억, 허억···.”

“어째 우리만 개고생한 기분인데.”

그들 덕에 도시 전역에 있는 경비 NPC들을 진영 일행은 힘들이지 않고 정리할 수 있었다.

[ 대부분의 경비병이 정리되어 중간보스 ‘엘레멘탈 마스터 클레아’가 등장합니다. ]

콰아앙!

거대한 화염이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그러나 26층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도 만만찮은 실력자들이었다. 공격을 막아낸 그들의 시선이 중간보스에게로 향했다.

“크윽, 일단은 저 녀석부터 상대해야겠는데?”

“그래, 그 놈들은 나중에 붙잡아도 상관없으니까.”

눈 앞에 나타난 위협적인 적.

중구난방이던 플레이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건 26층을 공략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걸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진영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상대로 잘 풀리는군.’

26층의 보스를 잡기 전에 잡아야한 중간 보스 셋.

그 중 하나는 플레이어들의 손에 맡겼다.

체력과 마력 모두 온존하면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과인 셈이었다.

“이제 저희도 움직일게요.”

“좋아, 이진영 없어도 우리가 쩐다는 걸 보여주자고.”

진영을 제외한 일행이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보우 마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제 남은 건 소드 마스터인가.’

세 명의 중간 보스 중에서 가장 강한 능력을 가진 존재.

진영이 직접 상대할 적이기도 했다.

유자벨은 여전히 진영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파악했다면, 이런 식의 대처는 있을 수 없는 일.

플레이어 수 백 명을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

그 녀석이 가진 스킬과 특성 또한 상상을 초월할 터.

물론 유자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언가 조치를 취해두었을 것이다.

그 조치란 게 만약 아이템이나 스킬이라면···.

‘잘 차려진 밥상을 받는 기분이군.’

진영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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