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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10화 (110/152)

대립(1)

“내기···? 네 놈과 내가?”

유자벨이 눈가의 상처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그 섬뜩한 눈빛에 염태준이 저도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관리자랑 내기라니,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관리자 유자벨과 진영의 대립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일행에게는 관리자의 존재만해도 사실상 넘어 설 수 없는 벽과 같았다.

“형···.”

초월자를 직접 마주한 적 없는 일행이 보기에는 관리자만큼 강력한 존재도 없었다.

그러나 진영은 그런 관리자를 마주하고서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내기. 초월의 좌에 발을 딛고 싶다면 너도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겠어?”

초월의 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유자벨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그, 그렇군. 네 놈 회귀자인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해야 플레이어에 불과한 이진영이 자신의 바람을 눈치챌 리가 없었다.

실제로 진영이 회귀자인 것은 맞으니, 그의 예상은 절반은 맞은 셈이었다.

그 점에서 진영은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에 서 있었다.

‘유자벨은 초월의 좌에 오르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었지.’

자신의 잔학함을 숨긴 채 플레이어들을 응대하는 토끼 유자벨.

그러나 회귀 전 녀석은 자신의 욕망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초월의 좌에 오르는 방법 중 하나는 초월자에게 직접 힘을 부여 받는 것이다.

유자벨은 한 초월자의 종복으로 일하며, 초월자로서의 신분 상승을 꾀했다.

그 당시의 유자벨은 초월자의 명령에 따라 ‘신화준’을 죽이고자 했었다.

‘그 끝은 신화준의 승리.’

99층에서 진영을 배신했고,

지금은 진영의 손에 죽은 그 녀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회귀를 반복한 신화준을 죽이는 일은 가능할 리가 만무.

유자벨은 역으로 죽임을 당한다.

‘신화준은 지금 생각해도 미친 놈이군.’

물론 25층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유자벨의 관리 지역인 30층을 벗어날 즈음에 일어난 일.

그리고 지금 진영과 신화준의 상황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애당초 내 공략은 신화준보다 2년 이상 빠르다. 몇 가지 히든 피스도 생략했고.’

대신 초월자의 권한과, 관리자의 열쇠라는 특별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 무력만 놓고본다면 무신(武神) 클래스의 신화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니 정면대결 대신 내기라는 방법을 택했다.

‘······. 이 놈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그리고 그 방법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나한테는 기회야.’

유자벨의 눈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맞았다.

그는 크나큰 오해를 하나 하고 있었으므로.

‘저 놈은 가레논을 쓰러뜨린 플레이어다. 우습게 볼 게 아니야.’

가레논의 언월도와 관리자의 열쇠.

진영은 그 두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가레논을 처치할 정도로 실력을 쌓은 플레이어라는 것.

‘크윽, 아쉽지만 내 구역에서 감당이 되는 놈이 아니야.’

유자벨의 관리 구역은 25층부터 30층.

이 구역에서는 초월자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성좌로서 미션을 내어주는 게 전부니까.

‘나한테 말도 안되는 일을 시켜놓고, 초월의 좌에 올려주겠다 농락해?’

유자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영을 처리하라고 했던 초월자에 대한 분노.

심지어 다른 초월자들의 눈을 피해서 처리하기까지 하라는 명이었다.

으득.

자연스레 이빨이 갈렸다.

이미 가렌논까지 상대하고 온 플레이어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쨌든 주인의 목적과, 내 염원을 이루려면 하는 수 밖에 없다.’

결론은 하나였다.

“좋아, 내기하도록 하지. 그 편이 빠르게 끝날 것 같으니.”

“현명한 선택이군.”

유자벨을 바라보는 진영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 갑작스럽게 열린 25층, 완전 격파!

- 대한민국의 플레이어 이진영의 압도적 활약

- 성좌들의 출현, 맥 실버 “도움만 된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을 것”

25층이 격파 되었다는 사실은 삽시간에 알려졌다.

새로운 존재인 성좌들이 나타났다는 소식과 공략 소식이 동시에 알려졌을 정도.

그에 따라 탑 공략을 주도하는 클랜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이번 회의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최상위 길드들의 모임이 그 증거였다.

그 모임을 주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그랑블루 길드였다.

“다들 바쁘실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세련된 회의실 내부.

간부 중에서도 최근 입지를 완전히 다져가고 있는 민아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곳에 자리한 클랜은 총 5개였다.

미국의 실버 건, 한국의 레드 리버와 그랑블루, 영국의 빅 벤 마지막으로 미국의 그랜드 크로스.

그들 모두가 20층부터 활약을 보여준 쟁쟁한 클랜들이었다.

민아영은 그들 앞에서 당당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멸망의 탑 공략은 이진영이라는 플레이어에 의해서 독보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진영의 압도적인 능력.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다른 클랜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일전에 그는 그랑블루의 소속으로 행동하기도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 지금의 이진영은 별다른 소속 없이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하고 있죠.”

이번의 25층 공략 또한 갑작스러웠다.

성좌들이 아니었다면, 20층에서 단번에 25층의 난이도를 견뎌내는 건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 제안하는 바입니다. 26층부터 멸망의 탑을 통제하고, 공략을 최대한 늦추도록 해야합니다. 대형 클랜끼리의 이득 싸움에서 벗어나, 플레이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합니다.”

21층부터 24층까지라는 아직 공략되지 않은 층 또한 존재했다.

여기서 클랜들끼리 경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저 경쟁뿐이 존재하는 치킨게임이 될 확률이 컸다.

민아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여기에 동의할 것인가.

이것은 모두 이진영의 조언에 따른 제안이었다.

26층을 먼저 공략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이득을 포기하자는 제안.

클랜의 존재 의의도 바깥의 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멸망의 탑을 공략하는 이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

강한자가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되는 구조.

때문에 이러한 제안은 성사 되기 어려웠다.

“아니, 우린 빠지지. 성좌들과 계약을 통해서 우리 클랜은 이미 충분한 성장을 이뤘어. 25층 이하 구역은 너희들이 가져도 좋아. 대신 26층부터는 우리가 가지도록 하지. ”

공략이 끝난 플로어는 플레이어들이 자원을 획득하는 중요한 파밍 장소가 된다.

먼저 독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막대한 자원을 얻게 되는 셈.

“빅 벤도 그 제안에 동의할 필요를 못느끼겠군요.”

“레드 리버는 그랑블루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진영의 입김이 닿아 있는 레드 리버만이 동의할 뿐인 제안.

‘이건 안 좋은데···.’

민아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대형 클랜들의 움직이면 하위 클랜들 또한 모두 비슷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의미한 희생과 충돌을 막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그랜드 크로스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민아영의 시선이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지 않은 그랜드 크로스를 향했다.

그들은 뒤늦게 올라온 신흥 강자였다. 아쉽게도 이진영에게 묻혔지만 25층에서의 활약은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제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여태껏 잠자코 있던 외국인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 의견이 갈리는군요. 실버 건, 빅 벤. 미안하지만 그 쪽의 공략은 실패할겁니다. 현명하다면 향후 다가올 더 큰 파도를 대비하는 게 좋을겁니다.”

“윽···.”

“큭, 당신이 그런 말을 꺼낼 줄이야.”

어찌보면 도발에도 가까운 말.

그러나 실버 건과 빅벤은 쉽게 반발하지 못했다.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보통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얀 양복을 입은 대예언자 리암 스미스.

“곧 탑 공략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길 겁니다. 공략은 이진영 일행에게 맡겨두면 충분합니다.”

그가 푸른 눈을 빛냈다.

“저희가 진짜 대비해야 할 것은 탑의 붕괴와 아포칼립스. 그 두 가지입니다.”

* * *

“탑의 규율에 걸고 맹세하지.”

“탑의 규율에 걸고 맹세한다.”

내기의 조율이 끝났다.

두 사람의 맹세가 끝나자 검은 빛이 두 존재의 팔목을 휘감았다.

[ 플레이어 이진영과 관리자 유자벨의 내기가 시작됩니다. ]

내기의 결과에 대해서는 탑이 공평하게 관여한다.

내기가 시작되자, 성좌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위조 성좌들의 반응 따위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월자.

[ 성좌 푸른 달의 악마가 미소 짓습니다. ]

진영을 적대시한 그 놈이었다.

그의 웃음은 진영에게 있어 좋은 뜻이 아니었다.

초월자가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반면 유자벨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저 더러운 초월자 놈···. 자기 일 아니라고 웃어?’

진영과 직접 승부를 하게 된 유자벨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내기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자벨.

내기에 패배 해도 리스크를 지는 것은 유자벨이었다.

[ 성좌 행성의 창시자가 흥미를 가집니다. ]

[ 성좌 잊혀진 도시의 패자가 새로운 구경거리에 초월자들을 부르러 사라집니다. ]

[ 다수의 성좌들이 승부에 관심을 가집니다. ]

유자벨이 지끈거리는 눈가의 상처를 붙잡았다.

‘괜찮다, 내기 내용만 놓고보면 내가 유리하다. 아무리 회귀자라고 한들, 무력이 강하다고 한들 소용 없어.’

내기의 내용은 26층의 공략 여부.

26층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플로어가 아니었다.

유자벨이 긴장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사흘 안에 26층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너희 패배다.”

주어진 기간은 단 3일.

그 동안 유자벨은 관리자의 권한 내에서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좋아···. 그리고 넌 관리자의 열쇠를 사용하지 않기로도 약속했다. 초월자의 권한과 탑의 주인으로서의 권한도 말이지. 즉 편법을 사용할 여지는 없는 거야. ”

유자벨은 내기를 받아들였다.

이진영이 가레논을 쓰러뜨렸을 수 있단 것은 충분히 감안했다.

그의 꿍꿍이는 명확했다.

‘네 놈이 몇 층에서 회귀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해주마.’

내기를 빌미로 유자벨은 마음껏 진영의 공략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진영이 죽더라도 다른 초월자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고작해야 후원이나 좀 하는 정도.

뒤에 말이 나올 걱정도 없었다. 이진영 스스로가 선택한 내기였으므로.

“내가 포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니, 알아서들 들어오라고.”

26층으로 통하는 포탈.

본래 거대한 문으로 굳게 닫혀 있던 그곳으로 유자벨이 먼저 발을 들였다.

‘응?’

그런 유자벨의 눈에 부자연스런 무언가가 들어왔다.

포탈로 이어지는 문이 부서진 흔적이었다.

‘쳇, 아까 이진영의 공격에 부서진건가?’

25층의 보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일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다음층으로 향하는 문이 부서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때문에 유자벨은 그 구멍의 크기가 사람 하나가 딱 지나갈 정도라는 것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 틈을 향해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스륵-!

포탈을 통과하는 유자벨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진영 일행을 효과적으로 처리할지 뿐이었다.

‘이번 내기를 승리하게 되면 초월의 좌는 내 것이다. 그래···. 그게 좋겠어. 그 놈에게 신화급 아이템을 들려주면 되겠어. 이번 내기만 승리하면 더 이상 내게는 필요 없는 아이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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