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성좌들의 밤(3)
20층에서 막 올라 온 플레이어들은 25층의 첫번째 시련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젠장, 이런 난이도를 어떻게 공략하라는 거야?”
“우리가 낄 수준이 아니잖아. 일단 후퇴해!”
그들이 공략하며 보상을 획득했어야 할 층을 전부 스킵 하고 올라왔으니, 그만큼 공략이 힘든 것은 당연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갑작스레 고레벨 사냥터에 떨어진 셈.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어? 이러면 해볼만할 것 같은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플레이어들은 가능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성좌 덕분이였다.
그들이 만들어진 가짜라고 한들, 명백한 성격과 개성이 깃든 존재들이었다.
성좌들이 플레이어들이 몰살 당하는 결과를 지켜보고 싶어할 이유는 없었다.
“아이템을 후원 받았어. 이러면 이제 할만해진다. 나를 중심으로 모여!”
“나는 코인···. 이 정도 양이면 단숨에 6단계로···.”
어쨌든 그들은 초월자를 대신해 플레이어들을 탑 위로 이끌 책임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부족한만큼, 성좌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화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단독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들은 더욱 빠르게 파워업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들의 상향 평준화.
그렇지만, 지금 시몬이 상대하고 있는 마수들은 한 층 더 강화된 놈들이었다.
단독 계약으로 모든 것이 상향된 시몬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힘과 양.
“갑니다!”
진영 일행이 전투에 가세 했을 때 시몬은 소리쳤다.
“이제와서 뭘 돕겠다는 거야! 꺼져!”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안도의 기색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더 끌면 다시 한 번 고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조금의 시간도 버틸 수 없던 상황이었다.
‘너무 쉽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함정이 있었을 줄이야.’
새로운 힘에 취해 마구잡이로 밀고 가던 시몬을 가로막은 것은 성좌들의 불평이었다. 고작 그 한마디에 관리자는 등장하는 마수들의 힘을 강화 시켰다.
콰아앙!
진영 일행과 마수들의 무리가 격돌하자, 시몬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의 클랜도 그를 따라 전투에서 잠시 빠져 한숨 돌릴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이 놈들 실력으로는 버텨봤자 수십 초면 끝난다.’
관리자의 말과 놈들의 태도를 보면, 멸망의 탑에서 나름 한 가닥하는 놈들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해도 눈 앞의 마수들은 차원이 달랐다.
컹컹!
광화된 다크 오크와 다크 울프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고유 능력을 받고, 성좌로부터 후원을 받은 자신조차 밀릴 정도였다.
보아하니 저 놈들은 단독 계약도 맺지 못한 상태.
녀석들이 죽는 건 시몬의 예상 속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꼴이 볼만하겠군.’
물론 이미 전투에서 발을 뺀 시몬에게 진영 일행을 도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 때쯤이면, 고유 능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테니 녀석들의 시체와 함께 한 번에 정리 해주면 되겠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시몬이 눈을 감고 검을 가다듬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고유 능력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크, 클랜장. 저 놈들···.”
“뭐야? 벌써 죽었어? 30초는 버틸 줄 알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좀 보시죠.”
부하가 가리킨 방향에선 여전히 전투 중인 진영 일행이 있었다.
“뭐야, 뭘 보라는···.?”
자신을 방해한 부하에게 한마디 쏘아주려던 시몬의 눈이 커졌다.
진영 일행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마수들을 하나씩 처치해나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콰직! 콰악!
그들은 에스프리 클랜보다 능숙하고 확실하게 마수들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진영의 움직임은 더더욱 남달랐다.
시몬의 미간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저 놈들 정체가 뭐야?”
* * *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것은 다른 플레이어들 뿐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좌들의 후원 덕에 진영 일행 또한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이진영은 쏟아지는 알림이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띠링! 띠링! 띠링!
[ 성좌 이계의 근원이 당신이 활약에 1천 코인을 후원합니다. ]
[ 성좌 이계의 감시자가 5천 코인을 후원합니다. ]
[ 대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12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
그 대부분은 이계의 존재들이었다.
진영이 전투에 뛰어 들자마자 이계 존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코인을 쾌척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도 25층에 들어서면서 제한이 풀린건가.’
이계 존재들도 25층 이전에는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었던 모양.
25층에 들어서며 그 고삐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 성좌 이계의 본질이 발재간이 화려하단 이유로 1천 코인을 후원합니다. ]
[ 성좌 이계의 유령이 당신의 검이 멋지다는 이유로 500 코인을 후원합니다. ]
문제는 이 녀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 온다는 점이었다.
‘응원해주는 건 고맙지만, 정도가 심해.’
[ 성좌로부터 미션이 도착했습니다. ]
[ 개인 미션 ]
미션 정보 : 1분 내로 4번 숨쉬기
미션 보상 : 2만 코인
미션 후원 성좌 : 이계의 근원, 이계의 본질, 이계의 파수꾼···.
진영은 빠르게 네 번을 숨 쉰 뒤, 정보창을 닫아버렸다.
물론 이계 존재들의 후원자체는 좋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진영에게 투자하는 것에 고심하던 근원과, 본질도 지금은 계속해서 코인을 보내고 있었다.
‘녀석들은 나를 통해 탑 공략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정보창을 닫아둔다고 해서, 후원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콰직!
진영은 코 앞까지 다가온 다크 울프의 머리를 강하게 찍어 내렸다.
시몬이 고전했던 마수 무리였지만, 진영 일행에게는 적수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할만한데? 야, 꼬맹이 고개 숙여라!”
콰득!
그 말에 김지훈이 고개를 숙이자, 염태준의 검이 다크 울프의 머리를 꿰뚫었다.
염태준의 팔목을 감싼 보물 ‘영원 불멸의 고리’가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전보다 보물을 활용하는 일행의 실력이 향상 되어 있었다.
보물의 힘에 먹혀 버린 김목성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홀리 인챈트.”
A급 빛의 사제 김영훈의 버프가 발동 되었다.
일행의 무기를 소용돌이처럼 감싸고 돌았다.
한층 더 강한 절삭력과 파괴력이 추가 되자, 이제 진영의 일행이 마수 무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쿠웨엑!
놀라운 사실은 일행 중에 그 누구도 전투 계열 클래스가 없다는 것.
특히 가장 빛나는 건 김지훈의 전투 센스였다.
그의 클래스는 짐꾼.
본래대로라면 파티의 뒤에서, 아이템의 수집과 보급을 담당하는 클래스다.
그러나 김지훈의 손에서 짐꾼 클래스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콰직!
갑자기 허공으로 솟아난 검이 마수의 몸을 꿰뚫었다.
검은 순식간에 회수 되더니, 또 다른 자리에서 생겨난다.
크르륵!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티의 사각을 노리고 휘두른 다크 오크의 검 앞으로 수 십장의 가죽이 펼쳐졌다.
공격의 허무하게 막힌 다크 오크의 목덜미를 김지훈의 검이 그대로 꿰뚫었다.
‘대단한데.’
진영이 감탄할 정도의 전투 센스였다. 김지훈뿐 아니라 염태준과 김영훈의 성장도 놀랄만했다. 단순히 보물의 힘에 휘둘리는 게 아닌,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 싸우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진영이 마지막 다크 오크를 베어내는 순간까지, 일행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전투를 구사했다.
마수들이 재료 하나까지 싹 쓸어갔기에 진영 일행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전투였다.
“이제 두 번째 시련으로 가면 되겠어.”
진영이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행을 에스프리 클랜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뿐이었다.
* * *
진영 일행의 전투 능력에 놀란 것은 시몬의 에스프리 클랜 뿐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던 유자벨 또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놈들 무슨···.’
갓 25층에 올라 온 플레이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였다.
광화된 마수들은 자신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달려든다.
초월자와 계약을 맺은 시몬이 죽기 직전까지 몰렸으니, 난이도 상승은 확실했다.
그런데, 녀석들은 그 마수들을 싸그리 잡고 첫번째 시련을 통과했다.
[ 성좌 영원히 타오르는 꽃이 언짢은 분노를 표합니다. ]
초월자가 불만을 표시했을 때는 이미 첫번째 시련이 끝난 상황.
결국에는 자신이 계약한 플레이어가 활약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초월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 다음 시련부터가 진짜지요.”
다행히 아직 보여줄 것은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시련부터는 모든 플레이어가 한 자리에 모인다.
‘이제는 주인께서도 보고 계실테니 진짜로 이진영 저 놈을 처리해야한다.’
대놓고 죽일 수는 없었다. 탑의 규율은 관리자의 개입을 금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개입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뤄야했다.
동시에 다른 초월자들의 눈치도 봐야했다.
‘아직까지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초월자분들도 계시니···. 이거 더 어려워지네.’
그 중에는 이진영이라는 존재를 아직 더 관찰하고 싶어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처리하려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쿠구구!
신전 복도 끝에 있던 문이 열리며 두번째 장소가 드러났다.
거대한 공터의 중심에는 여신의 석상이 새겨져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박혀 있는 밤하늘 아래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충분한 수가 모였을 때 유자벨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멘트를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다들 첫번째 시련을 돌파하셨군요! 모두 성좌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두번째이자 마지막 시련이 시작됩니다.”
첫번째 시련을 건너오며 플레이어들은 성좌 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적응했다.
“두번째 시련은 생존 게임입니다. 여러분이 겪은 튜토리얼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난이도가 올라갔을 뿐이죠. 그리고 맵도 더더욱 커집니다.”
첫 대면 이후 성좌들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성좌들이 두번째 시련이 시작되자 하나둘씩 빛을 내며 밤하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 많은 별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것이 두번째 시련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어?”
“넓어지고 있어!”
“지금부터 움직여야 유리하다!”
원형의 스테이지가 끝도 없이 사방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른 플레이어들은 새롭게 생겨난 땅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10분 뒤 마수들이 등장합니다. ]
[ 등장할 마수의 수는 7천 마리입니다. ]
경이로운 숫자 앞에 플레이어들이 숨을 삼켰다.
제대로 된 지형조차 없는 이곳에서 7천 마리의 마수를 피해 살아남으라니?
그래도 몇몇 플레이어들은 자신 있다는 듯 미소를 삼켰다.
에스프리 클랜의 시몬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처럼 강화된 마수만 아니라면 몇 마리가 와도 상관 없지.’
자연스레 그의 시선은 이진영을 향했다.
‘아까 있었던 굴욕은 잊지 않겠다. 언젠가 갚아주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닌 듯했다.
시몬의 눈 앞으로 정보창 하나가 떠올랐다.
[ 성좌 영원히 타오르는 꽃이 미션을 제안합니다. ]
정보창을 확인한 시몬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 뭘 좀 아는 놈이네.”
아무래도 방금 전 일로 자신의 성좌도 단단히 열을 받은 모양이었다.
미션을 수락하는 것만으로도, 20 만 개의 코인과 아이템을 후원을 해주겠단다.
성공시의 보수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이런 기회를 시몬이 걷어찰 리가 없었다.
이익이 된다면, 플레이어 하나 죽이는 것 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그였다.
[ 단독 미션 : 플레이어 ‘이진영’의 살해 ]
“수락하도록하지.”
동시에 그의 손에 검은 반지가 하나 쥐어졌다.
일행 전체의 전투력은 에스프리 클랜보다 강할지 몰라도, 시몬이 확인한 이진영 개인의 전투력은 그저 그렇다.
이 반지까지 착용한다면, 자신이 질리는 만무.
특히 생존 게임이라는 혼란을 틈타기만하면 암살 정도는 그에게 간단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공략이 늦어진 것은 개별 층의 공략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각 클랜 간의 치열한 전쟁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은 어쨌거나 시몬이었기에.
“거저 먹기네.”
시몬의 입가 위로 탐욕스런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