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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05화 (105/152)

위조 성좌들의 밤(1)

25층의 관리자 유자벨은 사람의 몸에 토끼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다해서 토끼의 귀여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붉은 눈 위로 찢어진 상처도 그렇고, 검은 양복 조끼 또한 조직 폭력배의 두목을 연상케 했다.

“이번 연회에는 초월자들께서도 참가하신다는 말이군요.”

실제로 그의 무력은 관리자들 가운데서도 최상위권.

초월의 좌에 오르기 직전의 그는 초월자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헌데, 감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그가 고개를 숙이고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명령을 받고 있었다.

초월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자벨이 물었다.

“그 플레이어가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까?”

질문을 받은 초월자는 격한 웃음을 터트렸다.

거센 웃음 소리가 관리자의 방을 뒤흔들었다.

고작 웃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유자벨의 귀와 눈에서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자벨은 빳빳한 자세를 유지했다.

“초월자들께서도 의견이 갈리시는 문제군요. 잘 알겠습니다. 저는 제 주인의 판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층에 숨겨져 있던 지름길이 열리고, 플레이어들이 25층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쪼록 다른 초월자들께서도 연회를 즐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탑의 규율에 묶인 초월자들은 탑의 하층부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25층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좌’라는 형태로 초월자들도 플레이어들에게 간섭할 수 있게 된다.

25층의 관리자인 유자벨에겐 그들이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했다.

“그렇군요, 이번에는 네 명의 초월자께서 참가하시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초월자들이 그러한 유희를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자벨에게는 소수의 초월자를 보필할 의무가 있었다.

자신의 주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유자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영. 그 플레이어만큼은 꼭 배제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초월자의 전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러가지 말이 오고 가던 가운데, 고통에 잠겨 있던 유자벨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저, 정말입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관리자의 방안에서 초월자의 기운이 완벽히 사라졌다.

그저 본체를 마주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유자벨의 몸이 격통에 떨리고 있었다.

초월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유자벨이 중얼거렸다.

“으윽, 늙은이가 더럽게 말이 많군. 죽는 줄 알았어.”

그는 기어가듯 테이블로 다가가서, 방에 놓인 유리병의 뚜껑을 땄다.

목구멍으로 엘릭서를 부어 넣자 몸에 생기가 돌았다.

몸을 회복하자, 유자벨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중얼거렸다.

“고작 플레이어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꼴하고는, 그게 초월의 좌에 오른 놈들이 할 소린가?”

물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이번 일만 성공적으로 마치면 유자벨 자신 또한 초월의 좌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이다.

초월자의 맹세가 있었으니 확실했다.

수천년 동안 녀석의 발 밑을 기며, 고생해 온 보람이 있었다.

“플레이어 이진영이라···. 플레이어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

물론 아직까지는 이진영이라는 플레이어를 지켜보고 싶어하는 초월자도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일처리는 자연스럽게 이뤄져야했다.

그리고 그건 유자벨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철컥.

방 한 켠 전시대에 존재하는 붉은 팔찌를 유자벨이 집어들었다.

25층의 연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내 마지막 제물의 낯짝을 보러 가야겠군.”

그의 눈에서 탐욕스런 안광이 번뜩였다.

* * *

[ 25층 : 성좌들의 밤 ]

[ 충분한 성좌와 플레이어가 모였습니다. ]

[ 관리자가 등장합니다. ]

삼 백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25층에 모이자, 홀로그램 창의 내용이 바뀌었다.

“역시 여기에도 관리자가 있는 모양이군.”

“모두 준비해.”

관리자라는 단어에 플레이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20층까지 그들이 보아 온 관리자는 결코 우호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새로운 규칙에 대해 설명 드리려는 것 뿐이니까요.”

신전의 아름다운 조각 사이로 양복 조끼를 걸친 토끼 마수가 걸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플레이어 여러분. 저는 유자벨이라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관리자는 처음이었다.

플레이어들에게 격식을 따지는 관리자라니?

고갤 들어 플레이어들이 술렁이는 것을 확인한 유자벨은 말을 이어갔다.

“아마, 궁금하신 게 많을 겁니다. 가령 여러분의 주위를 맴도는 빛의 정체라던가, 제가 왜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지도 말이지요.”

유자벨의 말대로였다.

먼저 그들의 주변을 떠다니는 형형 색색의 광채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주변을 맴돌던데.”

“내 주변에는 하나도 안오네.”

“내 근처에는 더럽게 많네.”

25층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미션과 관련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 할 뿐, 그 누구도 빛의 정체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유자벨의 눈을 번뜩였다.

“언동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성좌’들이시니까요.”

성좌라는 단어 자체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생소했다.

“탑의 정점에 서 계신 분들께서 친히 여러분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어느 시대의 대영웅, 잊혀진 세계의 정점, 세계를 공포에 떨게한 마왕···. 그런 대단하신 분들께서 여러분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빛들은 주변을 이리저리 맴돌며 각각의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저, 정말인 것 같은데?”

“잠깐만, 나 코인을 후원 받았다는데?”

“얼마나 받았는데, 호들갑이야.”

“5만 코인···.”

“뭐? 잠깐만 어떻게 했어?”

그 말을 시작으로 플레이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정보창을 확인하며,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빛 무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후원 받는 이들도 있었고, 코인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자벨이 씩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겠죠. 여러분을 맘에 들어하는 성좌분들이 계실겁니다. 25층부터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그 분들의 총애를 받으며 훨씬 빠르게 탑을 공략하시면 됩니다.”

듣기에는 좋은 이야기였다. 플레이어를 돕는 존재라니. 여태껏 멸망의 탑에 그런 친절한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저, 저 사람 좀 봐.”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네.”

그 속에서 진영의 존재는 더욱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성좌가 많을수록 다양한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플레이어들은 진영을 바라보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진영이 가지는 감정은 우월감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히 이곳에도 있을 거다.’

진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계의 존재들을 제외한 주변의 빛무리들을 훑었다.

그들을 바라 볼 때마다 홀로그램 창 위로 그들의 수식언이 떠올랐다.

[ 불굴의 전투광 ]

[ 푸른 빛의 지배자 ]

[ 전설 속의 검투사 ]

···

..

.

“와! 빛이 많이 모이네요. 세계를 짊어진 대영웅이라는군요.”

“오, 나도. 세계를 속인 사기꾼? 뭐야, 이름이 뭐 이러냐.”

“태준이 형한테 딱 맞네요.”

진영 일행에게도 여러 성좌들이 모이고 있었다.

플레이어와 비슷한 성격을 띄고, 비슷한 행보를 걸어 온 성좌들이 근처에 모이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근처를 훑어본 진영이 입을 열었다.

“단독 후원만 받지 않으면 됩니다. 성좌는 차고 넘치니까, 모든 성좌에게서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아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신의 주변에 모인 빛무리들은 관찰하던 염태준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근데, 진짜 네 말대로라면. 이 놈들이···.”

“태준 형!”

“아, 미안.”

김지훈이 소리치자 염태준이 황급히 말을 멈췄다.

진영도 염태준을 한 번 째려보고선, 다시 빛무리들로 눈을 돌렸다.

‘여기 모인 성좌들은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가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조 성좌(僞造 星座).

진짜인듯 메시지를 보내오고, 플레이어에게 후원을 보지만, 그 실체는 탑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그들의 메시지에 흔들리거나, 좌지우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이용할수 있을 때까지 이용하고, 뜯어먹야할 존재에 불과했다.

일행에게는 그 점을 미리 설명해 두었다.

- 그런데, 그게 전부 가짜라면 대체 왜 성좌라는 게 존재하는 건데?

- 그렇네요. 태준이 형 간만에 예리하네요.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초월자들이 위조 성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 초월자들이 맡아야 할 역할을 위조 성좌들이 대신하게 했던거야.

소멸을 앞둔 초월자에게 들었던 말이니 거짓은 아니리라.

위의 사실을 거꾸로 하자면, 위조 성좌들 사이에 ‘진짜’가 섞여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진영이 눈빛이 깊어졌다.

‘그렌달이 초월의 좌에서 떨어졌으니, 하나 둘 쯤은 상황을 보러 왔을 거야. 날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 수 많은 빛 중에는 진짜 살아있는 초월자가 존재할 확률이 컸다.

빛들을 살피던 진영의 눈이 관리자 유자벨에게로 향했다.

진영은 한동안 유자벨의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찾았다.”

진영이 나지막이 말했다.

* * *

[ 25층 첫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 ]

쿠구구궁!

둥근 신전의 중앙 홀 벽면의 벽들이 일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자벨이 설명을 시작했다.

“원하시는 길을 택해서, 그 끝에 도착하시면 됩니다. 성좌들의 후원과, 미션을 클리어하시면서 가시면 더 쉽게 클리어 가능할 겁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에 플레이어들은 꺼려하면서도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25층에 올라 와, 새롭게 등장한 성좌 시스템.

이것은 하나의 기회였다.

20층에서 이미 결정된 클랜간의 서열을 뒤바꿀 수도 있는 새로운 환경.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저희는 어디로 갈까요?”

사라지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김지훈이 말했다.

진영은 잠시 고민하는 척 턱을 괴었다.

‘아까 전부터 관리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

진영이 초월자 그렌달을 처리한 시점에서, 관리자에게 언질이 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진영 또한 유자벨의 행동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저희는 저 쪽으로 갈까요.”

“어, 저긴.”

진영이 가리킨 방향은 공교롭게도 유명 플레이어가 향하는 곳이었다.

“프랑스 에스프리 클랜의 시몬이네요.”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데 괜찮···. 당연히 괜찮겠지.”

염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영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당연해진 상황 속에서 일행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몬에게 두 명의 초월자가 붙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성좌들을 살피는 동안, 진영은 관리자 유자벨의 시선을 살폈다.

이 곳에 초월자가 있다면, 그의 시선이 좀 더 오래 머물 수 밖에 없다.

이곳은 오롯이 그들을 위한 장소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진영은 어렵지 않게 어떤 빛이 초월자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면 저도 돌아다니면서 플레이어들을 구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영이 움직이자 그에 맞춰 관리자 유자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진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러면 더욱 확실해지는군.’

무슨 속셈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진영은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허공을 날아 다가온 유자벨이 흥미를 표했다.

“오, 저쪽은 마침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모였군요. 재밌겠네요. 이런 큰 이벤트일수록 성좌들께서는 들썩이시기 마련이죠.”

그렇게말하며 관리자 유자벨은 팔에 찬 붉은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희미한 붉은 빛이 팔찌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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