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03화 (103/152)
  • 내기의 결과(3)

    철컥!

    인고의 저울은 은빛 섬광과 함께 마지막 정보창을 내뱉었다.

    [ 승자 ‘플레이어 이진영’ 은 초월자의 권한과 주인의 자격을 획득합니다. ]

    주인의 자격.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탑의 주인’으로서 군림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했다.

    【 이럴 리가 없다. 무언가 잘못 된게 분명하다! 대답해라! 인고의 저울! 】

    초월자 그렌달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패배의 결과는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눈 앞의 필멸자에게 저만한 가치가 있다니?

    그러나 그렌달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탑의 규율에 따라 정당하게 조율된 보상입니다. ]

    이진영의 뒤를 가득 메운 이계의 존재들이 그렌달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녀석은 극히 우수한 플레이어가 아니면 주목조차 주지 않는 이계의 존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플레이어.

    그게 문제였다.

    대수롭지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 그렇다곤 해도 이건···. 】

    그렌달이 목이 막힌 듯 말을 멈췄다.

    이번에는 그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 권한과 자격의 양도를 위해, 초월자 그렌달의 힘을 소모합니다. ]

    수만 년간 쌓아 올린 마력이 단 한 번의 내기를 통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초월자인 그렌달의 정신이 아찔해 질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었다.

    “안 돼, 안된다···.”

    그가 만들어낸 분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분신에 마력을 담아 진언을 낼 힘조차 없었다.

    샤아아-!

    그렌달에게서 빠져나온 마력은 인고의 저울로 향한다.

    마력은 저울에서 순수하게 정제되어 진영에게로 이동한다.

    “이 놈! 죽이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놈을 죽이겠다!”

    그렌달은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눈을 번뜩이며 악담을 쏟아냈다.

    [ 초월자의 권한의 양도에 성공했습니다. ]

    초월자 하나가 플레이어를 노린다면, 그를 탑에서 지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영은 그렌달의 협박에 동요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렌달에게서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그렌달도 눈치채기 시작할 것이다.

    “왜, 왜···. 마력이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거지?”

    초월자가 아닌 자에게 초월자의 권한과 탑의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양도한다.

    본래대로라면 이치에 맞지 않은 일.

    그러나 탑의 규율에 걸고 행한 내기의 징수는 엄격했다.

    불가능한 이치는 그렌달이 가진 초월자의 힘으로 대신 하게 된다.

    그가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초월자로서의 힘이 모두 소모 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 주인의 자격의 양도에 성공했습니다. ]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그렌달은 자신에게 깃든 힘이 대부분 빠져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는 잔혹했다.

    [ 초월자에 어울리는 격을 갖추지 못한 초월자 그렌달이 초월의 좌에서 박탈 됩니다. ]

    “뭐, 뭔가가 잘못 되었어. 고작 카드 게임 한 번이었을 뿐인데, 그렇지? 자네, 자네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렇지?”

    [ 모든 이계 존재들이 그렌달의 몰락에 기뻐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뻔뻔한 그렌달을 향해 코웃음을 칩니다. ]

    [ 이계 존재들에게 당신의 활약상이 더욱 널리 알려집니다. ]

    이계 존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글쎄.”

    진영의 차가운 눈빛이 그렌달에게 닿았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이······!”

    분신을 유지한 힘을 잃은 그렌달은 빠르게 녹아 내렸다.

    녀석은 자신의 말조차 끝마지치 못했다.

    ‘그렌달은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거다.’

    초월의 좌를 잃어버린 자의 최후에 대해서 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그렌달은 초월자가 아니었고, 탑의 주인들은 초월자를 욕보인 자를 가만 놔두지 않을테니까.

    스스스···!

    인고의 저울이 보상을 지급하는 동안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사라진 안개 사이로 플레이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어림잡아 수 백명의 시선이 진영에게로 모였다.

    “저, 저 사람은!”

    “이진영! 한국의 이진영이다!”

    “이진영이 보스를 처리한 거야?”

    안개에 가로막혀 진입하지 못하던 수 백의 플레이어들이 이진영을 보고 한마디씩 외쳤다.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20층의 보스가, 진영의 근처로 날아가 소멸되었다는 게 전부였다.

    공터에 남은 것은 이진영 뿐, 다크 스컬의 수장도 초월자의 분신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진영을 향해 부산스럽게 다가오던 무리들이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다가서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그들을 감쌌다.

    “대체······.”

    눈 앞에 있는 이진영이 도무지 같은 플레이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가가려해도 그들의 발걸음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은 계속 되었다.

    침묵을 깬 것은 이진영 본인이었다.

    “보스는 공략 됐습니다. 모두 메시지를 받으셨을 겁니다. 다들 돌아가시죠.”

    진영의 존재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 * *

    백색으로 물든 정원.

    그곳으로 거대한 기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 하하, 재밌는 농담이군. 그렌달의 초월의 좌에서 떨어져? 】

    【 겨우 이런 장난이나 치자고 우리들을 불러 모은 건가? 】

    탑의 주인.

    초월자 중에서도 그 자격을 갖춘 자들은 많지 않다.

    그런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단 하나의 초월자였다.

    그가 머리에 쓴 붉은 왕관이 그가 정점 중의 정점이라는 증명이었다.

    【 그대들도 보려고 하면 볼 수 있을테지. 그렌달은 주인의 자격을 잃고, 초월자의 권한을 잃었다. 하물며 더 이상 초월자도 아니지. 】

    탑의 내부를 구름처럼 떠도는 정보가 금세 초월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렌달의 소식을 전해 받는 초월자들의 얼굴에 다양한 빛이 떠올랐다.

    당황, 경악, 분노, 비웃음, 조롱.

    【 그렌달 녀석이 가소로운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군.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 아닌가? 】

    【 20층부터 플레이어들에게 간섭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생각이었나본데···. 】

    【 초월자의 이름을 더럽힌 놈에게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지.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하지 않겠나. 】

    그렌달의 본래 계획대로였다면, 다크 스컬은 최후의 최후까지 존재하며 그의 수족으로 자리 매김한다.

    심지어 플레이어와의 협력으로 근처의 초월자들을 하나하나 집어 삼키는 데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만약의 이야기.

    그렌달의 계획은 진영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는 더 이상 초월자가 아니었다.

    쿠웅!

    탑의 주인들이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붉은 왕관을 쓴 초월자가 검을 내리쳐 이목을 끌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별거 없네. 】

    강인한 눈빛이 초월자들을 훑었다.

    탑의 주인으로서 군림해 온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 곧 있으면 그렌달을 무너뜨린 플레이어가 25층에 오를 것이니, 살필 수 있는 자는 그의 동향을 살피도록. 】

    감시할 수 있다면 감시해라.

    어느 초월자들은 흥미로운 기색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불만을 내뱉는 초월자들도 있었다.

    【 나는 그런 놈 흥미 없소. 】

    【 고작 플레이어 하나를 신경써야한다는 게 거슬리는군. 】

    각자 초월자로서 살아 온 세월이 셀 수 없이 길었다.

    그들이 하나의 의견으로 뭉치는 일은 손에 꼽을 것이다.

    【 어디까지나 권고다. 선택은 각자에게 맡기도록 하지. 】

    멸망의 탑은 수 많은 세계를 흡수했고, 이번 세계 또한 그런 수 많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었다.

    탑은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은 초월자의 터전.

    필멸자에 불과한 플레이어에게 공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초월자가 있는가하면.

    【 나는 흥미가 생기는군. 25층부터 놈을 지켜보겠어. 】

    【 차라리 놈을 후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 관리자로 만들기에 적합한 인재가 아닌가? 】

    탑의 유지와 자신의 명성을 위해 진영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초월자들의 시선은 하나의 플레이어를 향해 모이고 있었다.

    * * *

    염태준의 의뢰소.

    그곳에 있는 여러 개의 방 중 하나.

    보스의 공략이 끝난 뒤, 진영은 곧장 의뢰소로 돌아왔다.

    “야! 어디가! 어떻게 된건지 설명은 해줘야 될 거 아니야!”

    “그래요, 궁금해요!”

    “피곤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할게.”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둘을 떼어 놓고 진영은 방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일 대예언가 리암이 왔을 때 할 것이다.

    지금은 확인해 두어야 할 게 있었다.

    ‘해방된 보물은 이걸로 총 네 개째.’

    진영은 염태준이 조심스레 전시해 둔 보물 중 하나를 가져왔다.

    창조자의 걸쇠 주변이 빛나고 있었다.

    보물의 제 성능이 발휘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마지막 하나만 더 해방되면 정말로 플레이어가 초월자가 될 수 있는 건가?’

    물론 진영은 초월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초월자가 가지는 수많은 제약을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차라리 따로따로 보물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다섯 개의 보물이 모두 해방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했다.

    ‘탑을 공략하는데 핵심적인 아이템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생각을 마친 진영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동했다.

    “보물은 이걸로 됐고···.”

    [ 대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의 활약에 찬사를 보냅니다. ]

    [ 이계 규율을 따르는 자에게 합당한 보상이 제공됩니다. ]

    보상창의 수령을 확인하자, 은빛 돌 하나가 침대 위로 툭하고 떨어졌다.

    [ 소멸의 돌과 당신의 특성이 공명합니다. ]

    이계의 존재들이 쥐어주는 특성은 항상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 되는 부분이었다.

    특히 이번 보상은 백에 달하는 숫자의 이계의 존재들이 빚어낸 보상.

    달라도 무언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진영은 자그맣게 떨리는 은빛 돌을 집어들었다.

    샤아아-!

    동시에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 EX급 도둑의 고유 특성 ‘이계 규율 - 탐욕’의 효과가 향상 됩니다. ]

    [ 훔친 대상의 효과가 상당히 좋아집니다. ]

    가지고 있던 특성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뒤이어 떠오른 메시지가 조금 이상했다.

    [ 스틸의 부가효과 ‘탐욕의 왼손’이 당신을 집어 삼킵니다. ]

    “······?”

    진영을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진영의 왼손의 끝에서 붉은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으윽!”

    팔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엄습했다.

    누군가가 쇠로 팔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진영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졌다.

    [ 대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합니다. ]

    진영은 오른팔로 왼팔을 부여 잡았다. 당장이라도 팔을 뜯어 내버리고 싶은 고통이었다.

    그런 진영의 눈에 창조자의 걸쇠가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진영은 창조자의 걸쇠를 집어들었다.

    스스슷!

    [ 해방된 보물이 플레이어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립니다. ]

    동시에 격통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왼손에 돋아난 붉은 핏줄은 여전히 조금씩 위를 향하고 있었다.

    진영은 필사적으로 왼팔에 마력을 흘려 보냈다.

    파지직!

    마치 타인의 것과 같은 마력이 충돌하며 붉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크윽!”

    창조자의 걸쇠를 쥔 채 진영은 모든 마력을 왼팔로 쏟아부었다.

    차도가 있었다.

    올라오던 핏줄이 정말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푼다면, 금세 다시 핏줄이 진영을 집어 삼킬 듯 올라왔다.

    수 분, 수 십 분 아니 몇 시간도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허억···. 허억···.”

    비오듯 쏟아진 땀으로 침대가 흥건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던 진영이 왼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는 듯 싶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달라졌다.

    [ 탐욕의 왼손의 폭주를 막았습니다. ]

    “이게 무슨···.”

    불평을 하려던 찰나, 진영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 뿐아니라 정보창을 확인하는 진영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방금 전까지의 고생이 한 순간에 잊혀질 정도의 내용.

    [ 탐욕의 왼손의 제한이 일부 해제 됩니다. ]

    진영이 훔칠 수 있었던 것은 물건과 상대의 특성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다음 단계가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