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의 결과(2)
거대 악마의 입에 맺혀 있던 광선이 쏘아졌다.
거센 충격파가 몰아닥쳤다.
콰아아앙!
“흐허억!”
바닥에 주저 앉은 염태준이 기겁했다.
광선이 향한 곳은 염태준의 뒤쪽이었다. 나무로 가려져 있어 그 너머가 보이지는 않았으나, 방금 공격에 초토화 되었으리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염태준을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또···. 허억!”
숨을 삼킨 염태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악마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빌딩만한 악마가 혹시나 자신에게로 내려 앉을까, 노심초사하며 염태준이 주변을 살폈다.
“끝까지 쫒아가!”
“놓치지마!”
“저 보스 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목청껏 소리치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날아 오른 보스를 쫒아 온 자들이었다.
“태준이형!”
“염태준씨!”
그 무리 안에는 민아영과 김지훈도 있었다.
“멀쩡하네요? 악마가 형 쪽으로 가길래, 형을 노리는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있냐. 저 녀석, 나한테는 신경도 안쓰던데.”
그러는 와중에도 플레이어들이 속속들이 염태준과 김지훈을 지나쳐갔다.
“그럼 저희는 계속 저 녀석을 따라갈게요. 염태준씨는 이진영씨를 찾아주세요.”
“아, 그래.”
“근데···.”
뭔가 촉이 온듯한 김지훈이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민아영과 다른 플레이어들은 대형 악마를 쫒아 뛰어 갔다.
“저 쪽이 진영이 형이 가기로 한 약속 장소 아니에요?”
“그건 그런데···. 지금 네 말은···.”
그 때였다.
“오케이, 멈춰섰다!”
“저기서 확실히 끝내야 돼!”
“크윽, 바람 때문에 다가가기가 힘들어.”
대형 악마가 한 장소에 멈춰섰다.
이제 다가가기만 하면 되건만, 제자리에서 뿜어대는 날개의 바람 때분에 플레이어들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아영 누나!”
김지훈이 바람과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 민아영을 찾았다.
가장 선두에 있던 민아영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진영씨 찾았어?”
그렇게 묻는 민아영의 표정은 복잡했다.
이진영 혹은 주오령.
그 둘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20층에 오르는 게 너무 빨랐을지도 몰라.’
고작 약화된 보스를 상대로 플레이어들은 무력했다.
그들 모두가 각 나라에서 최상위 플레이어로 꼽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악마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플레이어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이 이상의 탑 공략은 어려워.’
지금만 해도 그랬다. 이진영, 주오령이라는 이 두 스타 플레이어 의존하지 않으면 공략이 진척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민아영은 더욱 희망을 찾고자, 김지훈에게 물었다.
“찾은거야?”
“네, 아마도요. 제 느낌에는 그래요.”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소리인 건 알지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그래서 이진영은 어디에 있다는 건지.
민아영의 미간이 자연스레 모아졌다.
김지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 이상이었다.
“저 보스를 불러 들인 게 진영이 형인 것 같아요. 아마 확실해요.”
* * *
내기 게임이 이뤄지고 있는 공원터.
스스스···.
와이번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걸 확인한 그렌달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히, 히익···.”
그런 그렌달의 눈치를 살피는 화이트 보이스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자신의 차례에 소환한 와이번이 죽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
이제 자신이 직접 나가서 싸워야한다는 의미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화이트 보이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야에 꽉 들어 차는 크기의 대형 악마. 녀석의 눈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부, 불가능···. 못이겨···.”
다크 스컬이란 차기 거대 조직의 수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모습은 초췌해져 있었다.
그의 안색을 살핀 진영이 물었다.
“그렌달, 패배를 인정하겠나?”
그렌달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 패배? 한낱 필멸자에게 이 몸이 패배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
이 카드 게임은, 서로의 앞에 마수가 남지 않으면 무승부가 된다. 화이트 보이스가 어떻게든 대형 악마를 처리하기만 한다면 이번 승부는 무승부가 되며, 다음 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다.
【 움직여라, 화이트 보이스. 】
“허···. 허억···.”
그러나 그렌달의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다크 스컬에 투자해 온 힘만 해도 얼마인가.
거기에 더해 필멸자에게 진다는 굴욕감은 그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아악!”
그렌달이 손을 뻗자 검은 기운이 세찬 물줄기처럼 쏟아져나왔다.
기운들은 모두 화이트 보이스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
상상을 초월한 마력이 화이트 보이스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온 몸에서 검은 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 전부 흡수해라! 하찮은 필멸자에 불과한 네 놈이 한 순간이라도 초월의 경계에 닿는 것을 일생의 축복으로 여겨라! 】
곧이어 근처의 검은 물 위로 푸른색의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힘이 느껴집니다!”
이윽고 화이트 보이스의 온몸을 푸른 불꽃이 태우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는 비현실적인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초월자 그 직전의 상태.
강제적인 마력의 주입을 통해, 화이트 보이스는 그 문턱에 도달하고 있었다.
【 이제 저 앞의 마수를 쓰러뜨려라! 】
아무리 계약으로 맺어진 종복이라 한들, 탑의 하층부에서 초월자가 영향력을 끼치려면 상당한 힘을 소모해야 했다.
힘을 쏟아 붓는 그렌달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초월자로서의 자존심이 그를 더욱 부추겼다.
수 만 년의 세월이 그를 현명하게 만들기보단, 초월자로서의 고집만 키운 셈이었다.
번쩍!
화이트 보이스가 있던 자리가 번쩍였다.
녀석은 순식간에 대형 악마의 머리 부근에 도달했다.
몸을 불사른 화이트 보이스에게 이미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눈 앞의 적을 죽이기 위한 광기.
그의 주먹에 검은 마력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 그래, 그거다! 】
그렌달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 승부를 이긴다면 다크 스컬을 다시 재건할 수 있다.
초월자에게 감히 승부를 걸어 온 시답잖은 놈의 영혼과 육체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이 성공한다면, 탑의 주인들을 짓밟고 정점에 속하는 것도 가능했다.
콰아아아앙!
화이트 보이스의 주먹에서 뻗어나간 마력이 대형 악마의 머리에 직격했다.
화산과도 같은 마력의 분출이 이뤄지며 일대를 뒤흔들었다.
검은 마력의 잔해가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그렌달의 힘을 쏟아부은 강력한 공격이었다.
소재의 한계 때문에 초월자의 힘에는 못 미쳤지만, 충분히 강력한 일격이었다.
스스스···.
충격과 함께 대형 악마와 화이트 보이스를 감쌌던 검은 구름들이 점차 걷혔다.
이윽고 들어난 광경 앞에서 그렌달은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 어떻게···? 】
대형 악마의 머리에는 생채기조차 없었다.
“그, 그렌달님···! 사, 살려···. 줘···.”
오히려 힘을 과도하게 발휘한 화이트 보이스의 몸이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펄럭-!
화이트 보이스의 최후는 허무했다.
대형 악마의 날개짓 한 번에 검은 재가 된 화이트 보이스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렌달, 내 승리다.”
단순한 힘의 차이였다.
고작 20층에 도달한 플레이어로서는 그렌달의 마력을 받아들이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네 놈···. 】
그렌달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네 놈 대체 몇 층에서 온 거냐? 탑을 올라와라! 50층까지 살아남아서 올라와라! 네 놈에게 초월자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테니! 】
고작 분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의 값싼 도발에 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진영은 자신이 소환했던 대형 악마를 바라보았다.
스스스···.
게임이 끝나자, 대형 악마는 소멸하고 있었다.
진영이 20층의 보스를 소환한 이유이기도 했다.
[ 20층의 보스가 토벌 되었습니다. ]
[ 모든 플레이어가 21층 입장 권한을 얻습니다. ]
정보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초월자 그렌달과의 내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
[ 이계 시간축 최초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
[ 이계 시간축에서 가장 빠른 승리입니다. ]
[ 대부분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
* *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승리에 통쾌해 합니다. ]
[ 이계의 감시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계의 존재들은 초월자들과 척을 진 사이가 분명했다.
초월자를 쓰러뜨렸다는 진영의 소식에 물 밀듯이 이계 존재들의 수가 늘기 시작했으니까.
[ 대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이계 존재의 수 : 110 ]
물론 진영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었다.
[ 플레이어가 보물의 해방을 인지합니다. ]
[ 다수 이계 존재들의 주시로 보물이 해방 됩니다. ]
추가로 보물까지 해방 되었다.
일행이 모두 나눠가지고도 진영이 사용할 보물이 생겼다.
큰 소득이었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철커덕-!
진영과 그렌달의 보상의 무게를 재고 있던 인고의 저울이 움직였다.
[ 인고의 저울이 승자의 보상을 결정합니다. ]
철컥, 철컥!
저울이 계속해서 서로의 보상을 저울질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진작에 계측이 끝나고 보상이 주어져야 했는데도 저울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렌달이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
【 네 놈···. 뭘 썼지? 】
그렌달은 진영의 육체와 영혼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고작해야 플레이어의 육체와 영혼,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이제 숨길 것도 없었다.
진영이 대답했다.
“초월자의 권한.”
EX급 게이트에서 훔쳐온 관리자의 열쇠를 사용하려면 초월자의 권한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이 초월자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때문에 진영은 그렌달이 가진 초월자의 권한만을 가지고 오고자 했다.
【 크하하! 멍청한 놈! 필멸자의 목숨의 값과 초월자의 권한이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 네 놈은 주제 넘은 요구를 쓴 게다. 뭐든지 쓰라 했다고 그대로 할 줄이야! 차라리 신이 되게 해달라고 쓰지 그랬나? 】
그렌달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소리쳤다.
인고의 저울이 저렇게 들썩이는 것도, 턱 없는 보상을 요구한 진영의 탓일 것이다.
멸망의 탑은 비정하다. 한 플레이어의 목숨을 대가로, 초월자의 권한을 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 주제 넘은 짓이 맞다.
‘한 번 정도만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관리자의 열쇠를 사용하기 위한 단 한 번이면 충분했다.
철컥, 철커덕!
요란하게 움직이던 인고의 저울이 마침내 멈추었다.
아니 멈추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움직였다.
[ 보상의 불균형이 심각하여 재조정에 들어갑니다. ]
그렌달의 웃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 크하하하하! 봐라! 네 놈의 목숨 값에 초월자의 권한이라니! 주제를 알아야지! 】
그러나 웃음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철컥! 철컥!
인고의 저울이 한 쪽으로 점차 기울어지고 있었다.
진영의 목숨과 영혼이 올려져 있는 곳이었다.
【 ······? 】
그렌달은 착각했다.
탑에서 숱하게 죽어나가는 플레이어들의 목숨은 한 없이 가볍다.
그것이 보통 플레이어라면 그러했다.
[ 보상 간의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합니다. ]
[ ‘초월자의 권한’이 ‘플레이어 이진영의 목숨과 영혼’에 걸맞지 않습니다. ]
[ 보상을 지급하는데 초월자 그렌달의 힘이 사용됩니다. ]
백이 넘는 이계의 존재들이 진영의 뒤에 존재하는 지금.
진영의 목숨과 영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쿠웅!
인고의 저울이 한 쪽으로 내려 앉음과 동시에 그렌달의 표정에 절망이 어렸다.
반대로 진영의 얼굴에는 전에 없는 미소가 생겨났다.
【 뭔가, 뭔가가 잘못 됐어! 이럴 리가! 】
“······미쳤군.”
각자의 앞에 떠오른 정보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