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의 결과(1)
[ 몇몇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전략에 감탄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승리의 향기를 맡습니다. ]
[ 이계의 유령이 흐뭇하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
진영이 조커 카드를 뽑자 이계의 존재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진영의 히스토리를 모두 훑어봤다, 진영이 도둑 클래스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반면, 초월자 그렌달은 진영의 클래스가 회귀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굳어진 표정이 그렌달이 애써 무덤덤하게 말했다.
【 자네, 운이 좋군···. 】
운이 좋다면 뽑을 수도 있는 게 당연했다. 카드 뭉치에 숨겨진 카드 중의 하나였으므로.
그러나 그렌달의 마음 속은 복잡했다.
‘어떻게? 어떻게 조커 카드를 뽑은 거지?’
이진영은 초월자와 내기, 탑의 규율에 대해 알고 있었다.
회귀자가 아니고서야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그 뿐이던가.
초월자인 자신을 면전에 대하고서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예언가 부류의 클래스도 아니었다.
녀석은 회귀자였다.
그런데도 조커 카드를 뽑은 것이다.
그렌달이 자신만이 뽑을 수 있도록 카드 뭉치의 밑단에 숨겨 두었던 카드를 말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수염을 고르는 그렌달의 속은 요동치고 있었다.
‘더러운 이계의 존재들만 아니더라도, 녀석의 정보를 확인하면 그만이것만.’
탑의 기생충. 필요악의 존재들.
하필이면 이계의 존재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는 탓에 이진영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놈들은 그럴싸한 플레이어 곁에 붙어, 탑의 멸망을 바라는 모자란 놈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당히 거슬렸다.
【 그러면 어서 결정하게나. 승부를 오래 끄는 건 자네도 바라지 않는 일일테니. 】
그렌달의 등 뒤의 밤하늘에서 불꽃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쿠과과광!
플레이어들이 발사한 마법이 폭죽처럼 터져 밤하늘을 어지러이 빛냈다.
대형 악마도 지지 않고 온 몸에서 붉은 불꽃을 발산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낮처럼 하늘이 환해지는 순간이 여럿이었다.
“그러는 게 좋겠지.”
쿠웅! 쿠웅!
플레이어들이 막아서고 있음에도 대형 악마는 계속해서 진격했다.
약화 되지 않았더라면, 악마는 이곳을 불지옥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던 진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의 마수는 와이번.’
날개가 돋아난 용의 아종. 전에 뽑았던 드레이크보다 훨씬 흉포하고 강력하다.
크기는 조그맣지만 내재한 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
지금 진격하고 있는 대형 악마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진영은 그렌달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지만 그렌달도 동요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 높지 않은 층에서 회귀했다고 생각한 이진영이 점점 많은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진영이 몇층에서 회귀했는지 짐작키 어려운 상황.
【 쓸데 없이 시간 끌지 않는 게 좋을텐데? 】
때문에 그렌달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마수를 소환할 수 있는 조커 카드.
소환 할 수 있는 마수의 폭은 카드를 뽑은 자의 지식에 기반한다.
진영이 높은 층에서 왔을 수록 더 강한 마수를 많이 알고 있을테니.
콰드드득!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나무가 부서지며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대형 악마가 상당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 자네, 얼마나 시간을 끌 셈인가? 】
그렌달이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진영이 짜증난다는 듯 대꾸했다.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렌달의 진언은 상당히 성가셨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마력에 진영이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초조하다는 의미.
그런만큼 진영은 기다렸다.
‘조커 카드를 뽑았으면···.’
대형 악마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제대로 써줘야지.’
* * *
염태준 그리고 김지훈, 김영훈.
의뢰소 멤버들 또한 보스의 활동 소식에 급히 바깥으로 나왔다.
“야! 자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클랜 놈들은 뭐한데? 저 놈 이 쪽으로 오고 있잖아!”
염태준이 호들갑을 떨며 대형 악마를 가리켰다.
이대로 있다간 큰 돈 들여 구매한 의뢰소 건물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일단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으로 저희도 가죠!”
“빨리 움직이죠!”
대형 악마와의 거리는 불과 500m.
녀석의 덩치를 생각하면 지척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바인딩 스킬 가진 사람 없어?”
“방금 프랑스에서 19층 공략했대!”
“일본도 공략 소식 나왔다!”
“일단 발을 묶는데 전력을 다해!”
악마의 최우선 목적은 전진에 있었다. 그 덕에 인명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다만, 녀석을 쓰러뜨리거나 멈추게 하기에는 플레이어들의 힘이 부족했다.
“이거 완전 쌩 난리구만.”
염태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 때,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누군가가 다가왔다.
“염태준씨, 지훈아!”
“오, 아가씨. 간만이네.”
“아영 누나!”
그랑블루의 간부 민아영이었다. 대형 악마를 막느라 그녀의 머리는 그슬려 있었고 옷 곳곳에 탄 자국이 있었다.
“진영씨는 어디에 있어요?”
“그건 이미 말했잖아. 말 해줄 수 없다고.”
“그게 아니라, 저거 막아야 할 거 아니에요!”
쿠우웅!
거대한 진동에 플레이어들이 휘청 거렸다.
대형 악마를 올려다 본 염태준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다 따라와.”
진영은 다크 스컬을 처리하겠다고 나갔다. 문제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
‘설마 당했나.’
상상이 가지 않기는 했지만, 다크 스컬을 처리했다면 진작 돌아와 있어야 했다.
다크 스컬의 모임 장소로 한 번 가본다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조심해요!”
콰아앙!
민아영이 소리침과 동시에 거대한 불덩이가 근처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이 벌겋게 녹아 내렸다.
“크아악!”
“사, 살려줘!
미처 피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고통에 몸부림 쳤다.
“제가 치료하겠습니다!”
김영훈이 곧장 달려가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대형 악마를 피해 뒤로 물러나면서도, 끊임 없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저랑 형은 여기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돕고 있을게요!”
김지훈이 소리쳤다. 해방 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김지훈과 김영훈이 가세한다면 악마의 진격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지 몰랐다.
“저도 현장 지휘를 해야되서 여길 벗어날 순 없을 것 같네요. 염태준씨가 이진영씨 좀 데려와주세요!”
“알았어, 알았다고.”
목숨을 걸고 대형 악마와 싸우는 수 백 명의 플레이어들.
공격이 통하는지 않는지도 모른 채 스킬을 펼치는 그들은 치열하기 그지 없었다.
염태준도 간만에 의협심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조건 찾아서 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러를 흩뿌리며 보스를 막아서는 민아영을 뒤로 하고 염태준이 뛰어나갔다.
‘약속 장소는 여기서 가까워.’
문제는 이진영이 살아 있냐, 죽었냐는 것이다. 솔직히 이진영을 쓰러뜨릴 정도로 다크 스컬 놈들이 강했다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 놈이 뒤질 리가 없지.’
고개를 저은 염태준이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가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염태준이 그렇게 결심한 순간.
콰아아아-!
거대한 광풍이 몰아쳤다. 갑작스레 일어난 강력한 강풍에 염태준이 바닥을 굴렀다.
“아이고, 뭐야?”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연스레 고개는 보스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보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커졌다.
“나, 날개?”
묵묵히 땅을 걸어가고 있던 대형 악마의 등 뒤에 거대한 날개가 돋아났다.
이미 보스는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녀석이 한 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바람이 일었다.
“크윽, 뭐냐···.”
거기까지였다면 염태준은 다시 뒤돌아 달렸으리라.
대형 악마의 입에 검은 마력이 압축 되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이들 모두의 오금을 저려오게 하는 검은 마력.
이 때까지 내뱉었던 불덩이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마, 망했다.”
염태준이 이마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눈이 마주치고 있었던 것이다.
보스는 염태준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콰지지직!
근처의 나무가 박살나며, 거센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대형 악마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금쯤이면 되겠군.’
대형 악마의 위치를 확인한 진영이 카드를 하늘 위로 던졌다.
휘릭-!
“나는 20층의 보스를 소환하겠다.”
그 말에 긴장하고 있던 그렌달이 소리내어 웃었다.
【 하하! 조커 카드를 들고 고작 소환한다는 게 저 녀석이냐! 겉보기에 크고, 강해보인다고 전부가 아닌데 말이야! 】
혹시나 이진영의 높은 층에서 올라왔다면, 강력한 마신류를 소환할 가능성도 있었다.
괜한 긴장이었다. 그렌달은 수염을 쓸어 내리며 승리를 확신했다.
【 크기로 강함을 비교하다니, 어리석구나! 불쌍하니 말해주마. 와이번이 가지고 있는 힘이 지금 저 몸뚱이만 있는 대형 악마를 훨씬 웃돌 거다. 】
그렌달의 설명에 화이트 보이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여, 역시 초월자님!”
크오오!
소환된 와이번이 이빨을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콰앙!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바닥을 부수고 와이번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파아아-!
녀석이 허공에 오르자, 강한 바람이 근처를 훑고 지나갔다.
진영은 그런 와이번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20층의 보스는 저 녀석이 아니다.”
[ 조커 카드의 사용으로 20층의 보스를 소환하셨습니다. ]
【 끌끌, 미안하지만 이제와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네. 자네는 기회를 날려 먹은 셈이야. 아니면 직접 와이번과 대결이라도 할 셈인가? 】
와이번이 가지고 있는 전투력은 20층의 플레이어들 모두를 죽이고도 남을 정도.
승리는 그렌달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진영은 포기한 표정이 아니었다.
“저기 있는 놈은 약화된 보스다. 내가 소환 하려던 것은 원래 20층의 보스고. 그렌달 너는 모를만도 하다. 초월자에도 격이 있는 법이니.”
【 한낱 필멸자 주제에 주제 넘은 소리를 하는구나! 】
그렌달의 눈에 검은 노기가 잔뜩 서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콰아아아-!
지금까지 진격하고 있던 보스의 등에 거대한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녀석이 날개를 펄럭이자 와이번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풍이 몰아쳤다.
“크으윽!”
화이트 보이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하늘로 날아 오른 와이번도 바람의 세기를 견디지 못해 공중에서 비틀 거리다 땅으로 떨어졌다.
[ 근처에 ‘20층의 보스’에 해당하는 마수와 같은 계열의 마수가 존재합니다. ]
[ ‘약화된 20층의 보스’를 ‘20층의 보스’로 강화하여 소환합니다. ]
고오오오!
찌릿찌릿한 마력의 열기가 화이트 보이스의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그렌달조차 느낄 수 있는 절절한 마력이였다.
【 저 놈이 어떻게 저런 마력을···? 】
대형 악마의 입에 맺힌 검은 마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20층의 수준이 아니었다. 50층, 60층 아니 70층을 넘어도 이런 마수는 찾기 힘들다.
이윽고 대형 악마의 입에 맺혀 있던 검은 마력이 한줄기 빛이 되어 발사되었다.
콰아아아앙!
비정상적으로 가늘게 압축된 광선이 와이번을 덮쳤다.
모든 마수의 포식자라고 알려진 와이번이 그 한 방에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펄럭-!
하늘 위로 높이 날아 오른 대형 마수가 진영의 머리 위에 도달했다.
“이게 약화되지 않은 20층의 보스다.”
탑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전에 나왔던 마수들을 마주치게 된다.
약화되지 않은 20층의 보스 또한 진영은 상대해 보았다.
20층에서 한 번 상대해 봤기에, 플레이어들은 자만했고.
그 탓에 수 십의 유능한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곳은 73층이었다.
펄럭-!
300m의 괴물이 진영을 호위하듯 날개를 펄럭였다.
진영이 차가운 눈으로 그렌달을 바라보았다.
“그렌달, 승부를 계속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