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스컬(3)
쩌적.
해골을 베어내자, 화이트 보이스의 하얀 가면에 커다란 금이 생겨 났다.
투둑.
가면은 그대로 절반으로 쪼개지며 땅에 떨어졌다.
완전히 드러난 화이트 보이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 클래스가 대체 뭐야. 도둑?”
완전히 허를 찔렸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아무리 도둑 클래스여도 내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어떻게···.”
인벤토리 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아이템을 도둑 맞았다.
플레이어들이 20층에 갓 오른 현 시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글쎄.”
콰직.
진영은 땅에 떨어진 어둠의 해골을 발로 밟아 완전히 부쉈다.
산산히 부서진 해골의 파편이 바닥에서 반짝였다.
이걸로 더 이상 다크 스컬의 활동은 불가능해졌다.
다크 스컬은 어둠의 해골이란 아이템 덕분에 존재가 가능했던 조직이다.
해골이 깨짐과 동시에 맹약을 맺었던 하위 단원들도 맹약에서 벗어났을 거다.
이제 남은 건 화이트 보이스를 처리하는 것 뿐.
“······. 넌 큰 실수를 한 거야.”
쉬익-!
진영은 곧장 움직였다.
그의 말을 일일히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붉은 궤적이 화이트 보이스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간신히 공격을 회피한 화이트 보이스가 소리쳤다.
“네 놈은, 네 놈은 모를 거다. 네가 한 짓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츠즈즛!
진영의 부쉈던 해골의 파편에서 검은 스파크와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부서진 해골에서 솟아나는 마력에 진영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파괴 되었을텐데. 뭐지?’
슈슉!
시야 바깥에서 마력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단검이 날아왔다.
“죽어!”
진영은 어렵지 않게 녀석의 기습을 막아냈다. 이어서 몇 차례 단검이 휘둘러졌지만, 녀석의 실력은 간부들보다 한 참 아래였다. 화이트 보이스의 실력은 형편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놈이···.’
물론 실력과는 별개로 화이트 페이스가 가진 능력 자체는 눈여겨 볼만 했다.
스르르···.
모래처럼 무너지며 진영을 회피하는가하면, 땅에 스며들었다가 진영의 주위에서 솟아나 공격을 감행해 왔다.
어쩌다 정확한 일격을 먹여도, 녀석은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 듯 다시 모래가 되어 움직였다.
‘화이트 보이스의 클래스는 분명 사이코 패스다. 저건 특성이 아니야.’
저런 식으로 몸의 형질을 자유자재로 변화 시키는 스킬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당장, 당장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앙!
찔러 들어 오는 검을 진영이 힘으로 쳐냈다.
“이, 이 자식이!”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의 화이트 보이스의 공격.
녀석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서려 있었다.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서두르고 있어.’
해골은 파괴 되었다. 실력 또한 진영이 압도적인 우위에 서 있다. 그럼에도 녀석은 진영을 죽이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오랜 기간 다크 스컬을 유지 시킨 수장의 태도라기에는···.’
어딘지 성급했고, 모자라보였다.
카악!
화이트 보이스의 단검이 진영의 칠흑의 갑옷에 가로 막혔다.
“크윽, 대체 무슨 갑옷을 입고 있는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 수가 없네. 이런 놈이 주인의 선택을 받은자가 아니라고?”
싸우는 도중에도 화이트 보이스의 시선은 중간 중간 허공에 머물렀다.
그에게 떠오른 정보창을 읽어 내려가는 게 분명한 눈길.
그리고 녀석이 말한, 탑의 주인의 선택을 받은자.
‘설마···.’
여기까지 단서가 나왔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진영은 단검에 짙은 마력을 둘렀다.
[ 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타악.
여지껏 앞으로 나서며 화이트 보이스를 쫒던 진영이 처음으로 뒤로 한 걸음 내딛었다.
고오오···.
뒤로 내딛은 발에서 푸른 마력이 감돌았다.
멸망의 탑에는 스킬이 아니더라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비주류 클래스가 살아남는 방법은 마력의 운용을 제대로 익히는 것 밖에는 없었다.
쉬익-!
‘모래처럼 공격을 피해 간다면.’
뒤로 뻗었던 다리와 단검을 쥔 진영의 오른팔이 일시에 움직였다.
그러자 응축된 마력이 심장을 타고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그대로 휩쓸어 버린다.’
신화급 단검과 6단계 역사(歷史)급의 마력.
99층까지 도달했던 회귀자의 기술이 맞물려.
콰아아앙-!
거대한 폭탄과도 같은 마력이 진영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 * * *
죽는다.
여지껏 많은 사람을 죽여 왔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
‘어,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다가오는 마력의 광풍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진작에 도망가고 싶었지만 화이트 보이스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앞으로 떠오른 하나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 탑의 주인이 눈 앞의 적을 처치하기를 원합니다. ]
그가 원한다면 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자신의 힘과 스킬과 클래스를 뛰어 넘은 능력 모두가 탑의 주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 선다는 것은 그를 배신한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
‘대체 어떻게 처치하라는 말이야!’
그럼에도 진영은 강력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수를 사용했음에도 발끝만큼도 미칠 수 없었다.
탑의 주인의 선택을 받은 것은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자신을 뛰어 넘는 플레이어가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력이 몰려 오는 마지막 순간에도 메시지는 떠올랐다.
[ 탑의 주인이 당신이 앞으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
“이, 이런 미친!”
자살이라도 하란 말인가. 당황스런 지시였지만 화이트 보이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어차피 도망친다고 해도 탑의 주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지시대로 발걸음 내딛자 온 몸이 찢기는 듯한 격통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뼈마디 마디가 부숴지는 듯한 고통, 그의 몸 전체가 모래알처럼 산산히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스스스···.
지옥 같은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화이트 보이스는 뜨거운 바닥에 쓰러져 손을 떨었다.
떨었다. 그 말인 즉슨 아직 살았다는 증거였다.
“허억, 허억···.”
온 몸이 새까맣게 변해 있기는 했으나 목숨은 붙어 있었다.
아니, 까맣게 변한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쩌적, 쩌적.
껍데기처럼 달라 붙어 있던 검은 조각들이 화이트 보이스의 몸에서 떨어져 내렸다.
“사, 살았다.”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화이트 보이스가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비틀거리며 진영을 바라보았다.
“살았다고 이 새끼야!”
그러나 진영의 시선은 화이트 보이스를 향해 있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껍데기들을 향해 있었다.
“어딜 보는 거야!”
어딘가에 떨어져 있던 단검을 집어 다시 휘두르려는 찰나, 검은 마력이 화이트 보이스의 팔을 꿰뚫었다.
“으윽?!”
바닥에 흩뿌려졌던 검은 껍데기들이 연기처럼 움직여 그를 제지한 것이다.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진영의 미간이 좁아졌다.
“······.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나보군.”
꿀렁, 꿀렁, 꿀렁.
검은 연기는 화이트 보이스를 휘감으며 그의 마력을 식량 삼아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커허헉! 살려줘!”
마력을 급속도로 빼앗기는 화이트 보이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하고 있었다.
진영은 단검을 꽉 쥔 채, 긴장을 놓지 않았다.
‘다크 스컬이 탑의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대예언가의 눈을 피해가면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검은 연기는 검은 구름이 되어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상이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 되었을 때.
진영의 눈 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탑의 주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 *
【 허, 이런 일이 다 있나. 】
흡사 신선과도 같은 모습으로 수염을 길게 기른 존재.
그는 낭패가 다 있다는 듯 혀를 찼다.
“······.”
놀랍게도 진영은 이 자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진영이 알고 있는 모습은 이보다 더 크고 강대했으나.
연기가 만들어 낸 겉모습만으로 정체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녀석이 배후에 있었으니, 다크 스컬이 끝까지 잡히지 않을 수 밖에···.’
[ 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대상을 쓰러뜨리기를 원합니다! ]
[ 다수 이계의 존재들이 대상에게 격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
이계의 존재들과 탑의 주인들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대략 알고 있었지만.
쓰러뜨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도 그럴게 눈 앞의 존재는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멸망의 탑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 중 하나이자 탑의 주인으로 불리는 자.
초월자 그렌달이었다.
【 거기 청년. 자네가 지금 죽이려고 한 사람을 내가 무척이나 아껴서 말일세. 】
“윽···.”
한마디 한마디에 몸이 찢기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초월자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진언(眞言)이었다.
강대한 마력이 담겨 있어, 듣는 이의 격이 낮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커허헉!”
초월자 강림의 매개체가 된 화이트 보이스는 온 몸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아낀다는 것치고는 각박한 대우였다.
진영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아무리 분신이라고는 해도, 초월자는 지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생명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신에 달하는 능력을 부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초월자다.
다크 스컬의 진짜 배후는 이 녀석이었던 셈이다.
오랜 기간 다크 스컬이 잡히지 않았던 것도 전부 뒤에서 그들을 봐주는 초월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25층에 등장하는 가짜 성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탑의 주인 중 하나이다.
【 죽이는 건 곤란해. 】
초월자 그렌달은 별 것 아닌 말에도 진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영으로 하여금 스스로 격차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몸을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흐음···. 】
그렌달은 진영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 그래도 신기하긴하군. 내 계획을 꿰뚫어 본 인간이 있을 줄이야. 다른 주인의 종자라도 되는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닌듯하니. 】
잠시 입맛을 다시던 그렌달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네가 다크 스컬의 수장이 되보지 않겠는가? 】
“커허억?”
강림의 매개체가 되어 마력을 흡수 당하던 화이트 보이스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렌달은 말을 이어갔다.
【 먼저 이 몸을 소개해야겠지. 나는 탑의 주인 그렌달이라고 하네. 멸망의 탑 최후까지 살아 남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종자로 들어오게나. 탑은 나에게 있어 놀이터에 불과하다네. 】
누구나 고개를 저을만한 제안. 그도 그럴게 옆에 떡하니 고통 받는 화이트 보이스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의 생각 따위 초월자에겐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
【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 동의로 알지. 좋아, 내 먼저 자네의 정보를 조금 확인하겠네. 】
그렌달이 손을 움직여 진영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튕겨지는 그 때였다.
[ 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상당수의 이계 존재들이 권한을 행사하여, 주인의 권리를 막습니다. ]
파지직!
검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렌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놀란 건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이계의 존재들이 직접 나설 줄이야.’
얼굴이 구겨진 그렌달은 이빨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 허, 이거 알고보니 호랑이 새끼였군. 】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녀석이 자신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면, 방법이 있었다.
“그렌달, 어차피 네 권한으로 지금의 플레이어들에게 간섭하는데는 한계가 있을테지.”
지금의 플레이어들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오묘해지는 그렌달의 표정을 진영은 놓치지 않았다.
그렌달의 목적은 ‘다크 스컬’이라는 조직을 존속 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진영의 목적은 다크 스컬을 완전히 뿌리 뽑는 데에 있다.
서로의 목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진영은 초월자라면 거절할 수 없을만한 제안을 해야했다.
“내기로 결정하는 건 어때? 탑의 규율에 걸고 말이야.”
【 그걸 어떻···. 하하! 회귀자, 회귀자구나! 40층? 60층? 반푼어치도 안되는 미래의 지식에 자기 목숨을 거는구나! 】
그가 분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안은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신 상태의 초월자라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탑의 주인이라 한들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대로 일 수는 없었으니까.
【 종목은 내가 정하도록 하마. 】
“그래.”
녀석이 정할 내기 종목은 뻔했다.
내기를 좋아하는 초월자. 그의 결말은 회귀 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카드 게임으로 하지. 】
손버릇 나쁜 도둑이 활개치기 더 없이 좋은 종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