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스컬(2)
화이트 보이스의 지시에 다크 스컬 간부들이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마이클의 죽음으로 남은 간부는 총 세 명.
그들이 진영을 둘러싸듯 빠르게 접근했다.
촤르륵-!
쇠사슬이 진영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대예언가가 전해 준 정보대로 그들의 무력은 상당했다.
콰앙!
바닥이 솟아 오르며 진영을 향해 두꺼운 파편들이 쇄도 했다.
‘이 시점에서 다른 클랜들의 수준을 넘어 있던건가.’
진영의 단검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모든 파편을 박살냈다.
다크 스컬 간부 3인의 공격은 솔직히 말해 막아내기 힘들었다.
“뭐야, 별 거 아닌데?”
유일한 여성 간부의 사슬 낫이 진영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카앙!
낫은 푸른 불똥을 토해내며 진영의 갑옷에 튕겨졌다.
확실히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칠흑의 갑옷 덕에 모든 공격을 막을 필요가 없었다.
치명적인 몇 공격만을 막아낸 진영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표식이 뜨지 않는 상대라.’
이들이 진영보다 강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다크 스컬이 오랜 기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들키지 않고,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힘을 숨기고 있을 뿐, 정점에 달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앙! 카앙!
진영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간부들 중 하나가 비웃음과 함께 소리쳤다.
“넌 제 발로 죽으러 들어 온거야!”
간부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숨 쉴틈 없이 치고 들어 오는 공격 앞에 진영의 숨도 거세졌다.
“고맙네.”
“······?”
하얀 가면을 쓴 화이트 보이스가 멀찍히 서서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 너머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클의 맹약이 깨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렇다곤 해도 설마 자신의 발로 소집까지 기어들어 올 줄이야.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다크 스컬의 존재를 사전에 알아채고 있을 정도라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불씨는 재빨리 밟아 끄는 게 나았다.
마이클의 맹약이 깨어진 순간, 화이트 보이스는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직접 간부들을 모아 소집 시기에 찾아 올 외부자를 처단하자는 작전.
스윽-.
화이트 보이스가 손을 들어 올리자 간부들의 공격이 멎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진영은 단검을 내리지 않았다.
“어디서 우리 조직에 대해 알게 된거지?”
“······. 알게 된 건 7년도 더 된 일인가···.”
“재밌는 농담이군.”
화이트 보이스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다크 스컬은 생긴지 3년도 안되는 조직이다.
“우리들에 대해 조사했다면 그런 식으로 반항해도 소용 없다는 것도 알텐데. 네가 입을 열 때까지 가지고 노는 것쯤은 일도 아니거든.”
화이트 보이스가 작은 단검을 휘릭 던져 올렸다.
팅.
허공을 한 바퀴 돈 단검은 그대로 진영의 갑옷에 튕겨져 나갔다.
“갑옷 하나는 좋네. 그럼 버텨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고.”
의협심, 정의, 부당함에 대한 분노···.
필시 저 남자는 그런 감정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이진영을 모르는 화이트 보이스는 멋대로 생각했다.
멍청하게 적의 소집 장소까지 혼자서 달려들다니.
앞 뒤도 구분 못하는 머저리에 불과한 플레이어.
그런 자들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정보는 천천히 얻어도 되니, 반쯤 죽여 놔.”
“알겠습니다.”
“어? 잠깐만···.”
간부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진영의 품에서 새하얀 빛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간부들이 저도 모르게 공격을 멈췄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하얀 빛은 자신들도 잘 알고 있는 빛이었기에.
“코인 강화.”
진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지금껏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스탯은 5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진영이 지금까지 살펴 본 결과 이들은 모두 6단계:역사(歷史)에 달하는 평균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평균 5단계에 근접한 진영이 핸디캡을 지고 있는 셈이었다.
드드득···.
잠들어 있던 진영의 근육이 깨어나며 새로운 신체에 대한 적응을 마쳤다.
[ 모든 스탯을 6단계:역사(歷史)로 강화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한층 냉철해진 진영 눈이 간부들을 주시했다.
* * *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가면 속에 숨긴 화이트 보이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갑옷을 걸친 남자는 간부들의 놀잇감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반대로 되었다.
서걱-!
진영이 단검을 한 번 휘두르자, 간부 하나의 무기가 반토막이 났다.
“이 자식, 힘을 숨기고 있었어!”
촤르륵-!
급하게 물러난 간부를 대신해 사슬낫 하나가 진영을 휘감았다.
“좋았어!”
완전히 포박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영의 단검이 순식간에 모든 쇠사슬을 베어냈다.
촤륵···.
사슬은 힘 없이 땅에 떨어졌다. 잠깐이지만 무기를 잃은 간부의 움직임이 멎었다.
베어진 아이템은 레전더리급 아이템. 이렇게 쉽게 부서질 물건이 아니었다.
“대체···.”
그 틈을 진영이 놓칠 리가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간부들의 품을 파고든 진영의 단검이 그들의 급소를 찔렀다.
“커헉!”
“크헉!”
간부 둘이 쓰러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은 한 명의 간부가 괴기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지! 피가 끓어 오르는 듯한 전율! 이게 승부 아니겠어?!”
환희하는 듯한 간부와 다르게 진영은 무표정 했다.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은 스텝을 밟고 마지막 간부를 향해 달려 들었다.
카앙!
형형색색의 빛이 마주친 단검과 장검 사이에서 눈 아프게 튀어 나왔다.
신화급과 레전더리급 아이템에는 지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이와 어른을 나눌 정도의 크나큰 격차.
기본적인 성능도 성능이나, 담을 수 있는 마력과 기력의 크기가 다르다.
그 차이는 곧장 드러나기 마련이다.
카가각!
간부의 검이 점차 진영의 단검에 잘려나가고 있었다.
“뭐, 뭐야?!”
검의 실력에 의해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닌 무기의 성능에 따라 결정 되는 승부.
간부가 서둘러 검을 떼어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진영의 단검이 그의 머리를 베어낸 순간이었다.
털썩.
마지막 간부까지 힘 없이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였다.
진영은 피를 털어낼 필요 조차 없었다.
날카로운 단검에는 피 한방울 조차 들러 붙지 않아있었다.
“허. 이건 예상 못했는데.”
무표정한 흰 가면과 달리, 그 속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진영이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화이트 보이스는 한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까지 강한 플레이어가 존재한다고?’
간부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자신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그 버거운 일은 눈 앞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내가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건가?’
그렇지 않았다. 설령 플레이어 중의 최고라는 맥 실버가 왔다고 한들 간부들의 공격을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눈 앞의 남자가 터무니 없이 강한 것이었다.
“······. 원하는 게 대체 뭐냐?”
패배를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눈 앞의 남자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심지어 클래스조차 파악할 수 없다.
일단은 그의 바람을 들어 주고, 후일을 기약하는 수 밖에···.
“다크 스컬의 몰살.”
“하······.”
화이트 보이스가 절망한 듯 고개를 떨구는 그 순간이었다.
잠시 허공을 주시하던 그의 눈에 희망이 감돌았다.
“그래! 어디 끝까지 해보자.”
* * *
플레이어가 일으킨 모든 사건의 흑막.
그들의 꼭대기에 있으며, 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라하기엔 화이트 보이스의 태도는 어쩐지 이상했다.
간부들이 모두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를 쓰러뜨리고나니, 오히려 뒷걸음질 치기까지 했다.
‘실제로는 별 힘도 없었던 건가?’
진영은 혹시 모를 화이트 보이스의 공격을 대비해 스틸 스킬까지 숨겨가며 플레이어들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그의 걸음에서는 분명한 공포가 보이고 있었다.
‘어설프게 방심할 생각은 없다.’
진영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화이트 보이스의 앞으로 다가서는 그 때였다.
“날 죽이겠다면, 순순히 당해 줄 수는 없지.”
허공을 바라보던 화이트 보이스의 기세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검을 빼어들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크흑···.”
그런 녀석의 팔과 다리로 검은 문자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진영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다수의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이계 존재의 수 : 43 ]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가 진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다크 스컬의 처치는 이계의 존재들과 관련 있다고 생각키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진영을 바라보는 이계 존재의 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크헉!”
화이트 보이스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꼬았고 검은 글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삼키려는 듯 움직였다.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지.’
진영 또한 처음 보는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진영이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단검이 화이트 보이스의 팔을 베어냈다.
곧바로 상대의 반격이 이어졌다. 녀석이 든 검이 진영의 허리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 이렇게 바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실제로 화이트 보이스는 넋이 나간 듯 눈이 풀려있었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에게 주의를 줍니다. ]
[ 이계의 유령이 대상에게서 떨어지라고 말합니다. ]
떠오르는 정보창을 읽어냄과 동시에 진영이 반사적으로 화이트 보이스에게서 멀어졌다.
콰아아앙!
화이트 보이스에게서 터져 나온 검은 폭풍이 공원 일대를 뒤덮었다. 전조가 전혀 없는 공격이었다. 이계의 존재들이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더라면 진영도 휘말릴 뻔했다.
스스스···.
폭풍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공원에 존재하던 분수대, 벤치, 가로등등 뭐하나 할 것 없이 재가 되어 으스러져버렸다.
“그래, 그래···. 이거지···. 이 힘이지···.”
그 중심에는 약에 취한 것처럼 중얼거리는 화이트 보이스가 있었다.
진영은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타앗!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 진영이 흐릿해졌다.
콰앙!
흐릿해진 잔상은 화이트 보이스의 앞에서 선명해졌다.
진영의 발차기가 녀석의 중앙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놈은 바닥을 세차게 구르며 뒤로 날아갔다.
콰직!
곧바로 따라잡은 진영의 단검이 녀석의 심장을 관통했다.
화이트 보이스는 피를 토해내면 웃고 있었다.
“하, 어지간히 세야지···. 너도 선택 받은 놈이냐?”
진영은 화이트 보이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시 한 번 단검을 박아넣었다.
그리고선 대답했다.
“선택? 그게 무슨 소리지?”
“후, 모르는 척 하기는. 탑의 주인에게 선택 받은 자잖아.”
스스슥!
화이트 보이스의 몸이 검은 모래가 되어 진영의 단검을 빠져나왔다.
잘라냈던 팔도 어느샌가 원상복귀 되어 있었다.
“······.”
진영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해 할 수 없는 힘.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다크 스컬의 간부라고 한들, 불가능한 능력이었다.
“아니야? 뭐, 아니라면 여기서 죽게 되겠지만.”
화이트 보이스는 으스대며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모이는 것도 잠시.
그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만! 뭐야?”
어느새 진영의 손에는 검은색 해골이 올려져 있었다.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진영은 아이템을 찾아올 생각 밖에는 없었다.
다크 스컬의 중심이자, 그들의 맹약의 주춧돌이 되는 존재.
어둠의 해골을 진영이 들어 올렸다.
“멈춰! 이 새끼야! 멈추라고!”
화이트 보이스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러나 진영의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허공으로 던져진 해골을.
서걱-!
진영의 붉은 단검이 단숨에 베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