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잡기(4)
분절의 목걸이로 형성된 아공간.
어둠이 가득한 이곳에서 마이클과 진영 단 둘만이 남았다.
“너 이 새끼 뭐하는 놈이야!”
검에 찔린 상처를 움켜쥐며 마이클이 소리쳤다.
진영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크 스컬.”
이 네 글자에 마이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나 마이클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크 스컬은 아직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비밀 조직.
진영이 직접 물어본다 한들 대답할 리가 없었다.
이것이 다크 스컬의 꼬리를 잡는데 가장 걸림돌이 된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진정하고 이야기좀 하자고.”
눈 앞에서 자신의 클랜장인 맥 실버를 찔러 놓고 뻔뻔한 태도였다.
놈들은 범죄 앞에 죄악감이라는 의식이 없다.
진영은 말 없이 단검을 휘둘러 마이클의 어깨를 베어냈다.
그나마 마이클이 피하려고 했기에 어깨가 살짝 베이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야! 오해라고! 너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아? 실버 건 클랜에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야!”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마치 자신이 오해라도 사고 있는 듯이.
그러나 뒷편으로는 자신의 단검을 꺼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슥-.
뒤로 숨긴 그의 손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날카로운 단검이 쥐어졌다.
진영이 조금이라도 동요를 보인다면, 그 순간 승부가 날 것이다.
“네가 다크 스컬의 간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동요하는 쪽은 마이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저 자식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라는 말이 목 위까지 솟아 올랐지만 마이클은 입을 열지 않았다.
동요한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놀란 가슴을 조용히 진정 시킬 뿐.
“어차피 다크 스컬의 맹약 때문에 네 입으로 정체를 말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진영의 두번째 말에는 마이클조차 동요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마이클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얼어 붙고 말았다.
‘뭐야, 이 놈. 동료인가?’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리가 아예 없는 추리는 아니었다.
다크 스컬의 존재와 맹약을 알고 있다면 같은 일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료간의 살상은 맹약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의문의 빛이 마이클의 얼굴에 떠오르는 순간 다시 한 번 진영의 단검이 번쩍였다.
마이클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일격.
카앙!
마이클은 숨기고 있던 단검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를 공격한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거든?”
결국에는 무력 싸움이었다. 슬슬 촉이 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걸이를 가져갔다는 것에서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상대는 도둑 계열의 플레이어가 아닐까?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진영의 스틸은 Lv2.
기력과 마력을 상당히 소모하지만, 원거리에 있는 물건도 스틸할 수 있는 경지였다.
이것은 탑 30층 가량에서 오를 수 있는 경지다.
현재도 이 단계에 오른 이들은 상당한 극소수.
마이클이 확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지.’
실버 건에 숨어서 오랜 시간 힘을 키워왔다. 이제는 맥 실버의 실력조차 능가할 정도의 무력을 손에 넣었다.
“내 아이템을 사용한 건 허를 찌르는 생각이긴 했는데, 너랑 나 둘만 남으면 더 좋은 쪽이 누구겠어?”
비열한 미소를 지은 마이클은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숨겼다.
- 은신.
이윽고 그의 모습은 감쪽 같이 사라졌다. 마이클의 클래스는 S급 시프 마스터. 도둑들의 정점이자 그들의 왕.
“이 아공간을 해제하지 않으면 넌 내가 어딨는지도 모르고 죽게 될거야.”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클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여지껏 그의 은신 스킬 앞에서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데 어쩔거야.’
살아남기 위해서 상대는 이 아공간을 해제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
진영은 그런 마이클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담담한 태도에 오히려 마이클이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무슨 꿍꿍이라도 있나?’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마이클 앞에서 진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절대 은신
* * *
샤아아-!
마수를 상대하며 입었던 상처와, 소모했던 마력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맥 실버가 멍한 표정으로 김영훈을 응시했다.
“뭘 어떻게 한 거야?”
자신의 클랜인 실버 건에도 치유 계열의 클래스가 존재하지만, 마력과 체력을 동시에 회복 시키는 능력은 없었다.
심지어 기력까지 치유 시키는 김영훈의 능력은 놀라웠다.
“거, 길게 이야기 할 때가 아닙니다.”
염태준이 맥 실버의 등을 떠밀었다.
앞 쪽에서는 여전히 마수들이 촉수를 넘실대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샤아-.
염태준의 주도 아래 김영훈은 순차적으로 플레이어들을 회복시켜 나갔다.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다. 진영이 말한대로였다. 이곳 마수들은 목숨을 단번에 끊지 않는다.
그들의 에너지를 회복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먹이로 남겨둔다.
스윽.
“아,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그랑블루?”
“덕분에 살았어요.”
김영훈의 치유 스킬을 필두로 플레이어들이 완쾌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손에 든 투구가 빛을 발했다.
해방된 보물, 영혼 파쇄자의 투구의 효과였다.
A급 빛의 사제에 불과한 김영훈의 능력을 몇 배는 증폭시켜주고 있었다.
염태준이 눈이 탐욕스럽게 반짝였다.
‘저 다섯개가 전부 모인다면 상상도 못할 힘이 생기겠어.’
해방된 보물은 이미 레전더리급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촤아악!
염태준이 다가오던 마수를 일격에 베어냈다. 그가 가진 아이템의 성능도 보물로 인해 두 세 배 강력해져 있었다.
맥 실버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는 이런 실력자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숨어 있었던건가···.”
“어이, 나도 한국에서는 나름 유명하거든?”
염태준도 뒷세계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을 염태준과, 해방된 보물로 힘을 키운 염태준의 능력은 천지차이였다.
촤악! 촤악!
그의 대검이 시원하게 마수들을 베어냈다. 맥 실버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진영의 일행이 가세하자, 불리했던 플레이어들이 전황이 완벽하게 뒤집혔다.
마수들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버겁던 그들, 조금씩이지만 마수들을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출구도 지금 다시 파내는 중입니다. 조금 버텨주세요!”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마음은 조금 달랐다.
‘아니, 이거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아까랑 확연히 달라.’
‘도망칠 필요 없는 것 같은데···.’
김영훈이 펼친 거대 오오라. 블레싱 필드 안에서 플레이어들의 능력치는 비약적으로 상승되었다.
“일단 밀어 붙여!”
“할 수 있겠다!”
쿠웅. 스스스!
쓰러진 마수의 사체는 걸리적 거리지 않게 금방 분해 되어 짐꾼 김지훈의 인벤토리로 흡수된다.
모든 플레이어가 오로지 전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간거지?’
격렬한 전투의 한가운데에서 사라진 진영과 마이클.
그 둘의 존재를 신경쓰는 것은 맥 실버 뿐이었다.
‘마이클은 어째서 나를 배신한거지?’
동생처럼 친하게 지내왔던 마이클이다. 그가 자신을 배신할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마수들이 차츰 정리 되어 갈 즈음이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영훈아 준비해라.”
옆에서 마수들을 신나게 썰어 재끼던 사내가 치유 클래스의 사내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맥 실버씨, 잠시만 버티고 있으쇼.”
사전에 조율되어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진영 일행이 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웅.
피투성이가 된 채 주저 앉아 있는 마이클과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진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금입니다.”
진영이 영훈을 향해 말했다.
* * *
다크 스컬의 맹약.
레전더리 아이템 어둠의 해골 앞에서 맺은 그들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다크 스컬의 본거지, 그들의 신상 심지어는 그들의 일원이라는 것조차 밝혀서는 안된다.
각종 이득이 되는 능력치를 제공 받는 대신, 맹약을 어기는 순간 그들은 목숨을 잃게 된다.
“크아악!”
마이클이 진영에게 끝까지 당하고도 입을 열지 않는 이유였다.
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열 수 없는 것이었다.
“생사람 잡은 거라고!”
바닥을 구르고, 몸부림 쳐봐도 진영의 단검은 멈추지 않았다. 집요하게 급소가 되는 곳을 피해 마이클을 노렸다.
그의 은신 스킬은 진영 앞에서 완전히 무의미했다.
마치 그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처럼 단검이 날라온다.
반면 마이클은 죽었다 깨어나도 진영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진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지만 그 역시 소용 없는 짓.
다크 스컬의 간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이미 수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의미기도 했다.
진영의 단검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저항도, 반격도 무의미한 채로 마이클은 일방적인 공격을 받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고문.
“제발! 제발!”
그리고 그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 즈음에 진영은 아공간을 풀어냈다.
화아악-!
붉은 동굴의 모습이 마이클의 시야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이 마이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모,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영의 공격은 마이클이 움직임을 완전히 제한했다.
‘후, 그래도···.’
그래도 지옥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이클의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맥 실버를 공격하긴 했지만, 마물의 매혹에 걸려 있었다고 하면 그는 무조건 믿어 줄테지.’
그렇게 되면 눈 앞의 남자는 실버 건의 멤버를 공격한 괴한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에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자신의 승리였다.
스스스-.
그렇게 승리를 자신한 마이클의 몸에 초록빛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 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다쳐있던 상처가 회복되고 끊겨 있던 곳곳의 힘줄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스킬명.
- 홀리 디스펠
샤아아-!
‘어둠의 맹약’이 검은 안개처럼 변해 마이클의 몸 속에서 빠져나왔다.
[ 어둠의 맹약이 정화 됩니다. ]
[ 맹약의 효과를 전부 잃습니다. ]
[ 맹약의 제한을 받지 않게 됩니다. ]
떠오르는 정보창을 보는 마이클은 그제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잠깐, 잠깐!”
상대는 알고 있었다. 다크 스컬의 맹약 때문에 자신이 절대로 다크 스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죽기 직전까지 마이클을 몰아갔다.
그리고 지금 마이클은 치료 받았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지금까지는 선전포고에 불과했다.
다크 스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너를 계속해서 고문하겠다는 의미였다.
회복과 고문.
이 둘이 합쳐지면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테니까.
“내가 왜 살려줘야하지?”
“말할테니까! 다크 스컬이고 뭐고 이제 말할테니까!”
“···그럼 한 번 들어 볼까.”
진영이 마이클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까지 그가 죽여온 인물과 다크 스컬이 본거지로 삼은 장소까지 모두의 앞에서 들어야 했다.
김영훈의 버프 덕에 마수 처리는 수월하게 끝났다.
“마이클···.”
손을 털어낸 맥 실버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대체 왜 나를 배신한거냐?”
“클랜장···.”
여기서 모든 것을 밝히면,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게 무너진다.
당장이라도 거짓을 말하려던 마이클.
그러나 그의 시도는 허무하게 제지 당했다.
파앗!
마이클이 입을 열기 전에 진영이 다시 아공간으로 그를 끌고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