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92화 (92/152)
  • 도둑 잡기(1)

    콰직!

    온 몸이 강철보다 단단한 털로 뒤덮인 늑대가 일격에 바닥에 쓰러졌다.

    20층 외곽 지역에 위치한 푸른 숲.

    누군가 진영 일행의 사냥을 본다면, 기계라고 착각할 정도로 반복적인 학살이었다.

    “의뢰는 어쩌고 주구장창 몬스터만 잡는 거야?”

    염태준이 불평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 나야 좋지만.”

    해방 된 보물의 힘으로 염태준의 기량 또한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보물 육망성의 귀걸이를 장착하는 순간, 그가 가진 아이템들의 효율이 2배 가까이 향상되었다.

    마수를 쓰러뜨리는 맛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재료 회수랑, 코인은 사냥이 끝나고 분배할게요.”

    스스슷!

    김지훈이 손을 들어 올리자, 쓰러진 마수의 사체가 질서 정연하게 분리되며 코인은 물론 값어치 있는 재료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아이템은 순식간에 김지훈의 인벤토리로 흡수되었다.

    “꼬맹아, 좀 하는데?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최고다.”

    염태준이 김지훈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지금까지 진영 일행이 지나오며 쓰러뜨린 마수의 수는 약 70마리.

    직접 아이템과 코인을 회수하는 것만 해도 큰일이었겠지만, 짐꾼 클래스가 있는 한 그럴 걱정은 없었다.

    잡다한 일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사냥의 효율은 더욱 올라갔다.

    거기에 더해.

    “홀리 블레싱.”

    빛의 사제인 김영훈이 스킬명을 말하자, 일행의 머리 위로 반짝이는 가루가 쏟아졌다.

    연이은 전투에 헐떡 거리던 일행의 숨이 다시 편안해졌다.

    “좋네, 좋아. 무한 사냥이라니.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네.”

    염태준은 다시 한 번 더 엄지를 치켜 올렸다.

    해방된 보물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일행이 가진 힘이 모두 조합되자 전투에 막힘이 없었다.

    진영 또한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마수를 베어나갔다.

    ‘반나절 정도만 더 사냥하면 될 것 같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본 하늘에는 대형 악마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20층의 보스 마수다.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3개월이라는 카운트 다운이 끝나면 그 즉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그 전에 보스를 충분히 약화 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정말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것만으로 저 커다란 놈이 약해진다는 거지?”

    “그래.”

    탑은 그 점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회귀 전에는 사냥을 반복하던 와중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참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우연한 기회란.

    [ 마수들의 피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

    20층에 위치한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야, 이거?”

    “설마 저희가 마수를 너무 많이 잡아서 그런건가요?”

    “진영씨, 이대로 계속하면 되는 거죠?”

    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 처치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일대의 마수들의 씨를 말리면 됩니다.”

    마수들은 더 이상 진영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진영의 눈앞에 원하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팅-!

    [ 마수들이 사라진 땅에 악마의 노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메시지가 떠오르자 진영은 사냥을 멈추었다.

    장시간의 사냥. 일행 모두가 다리가 풀린 듯 주저 앉았다.

    “후우···. 이제 지쳤어요.”

    “기력은 네 형이 계속 채워주는데 지치기는 무슨.”

    “태준 형도 바로 앉았잖아요. 정신적으로 지친거죠.”

    “나는 임마, 니가 앉으니까 앉은거지.”

    일행이 잡담을 나누며 잠시 휴식을 가지는 동안, 밤하늘 위로 붉은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상 현상을 발견한 김지훈의 눈이 커졌다.

    “자,잠깐만요! 저기!”

    다급하게 손을 뻗은 김지훈의 손 끝은 대형 악마의 눈동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드드···.

    300m가 넘는 대형 악마가 당장이라도 걸어 나갈 것처럼 고개를 틀었다.

    콰아앙!

    악마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녀석의 눈에 맺힌 붉은 빛은 강한 충격파와 함께 땅으로 쏘아졌다.

    숲 한가운데로 떨어진 붉은 빛에 의해 일대에 폭풍이 일었다.

    콰아아-!

    “크윽! 모두 괜찮으세요?!”

    안위를 묻는 김지훈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

    염태준은 충격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 충격파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런 게 있으면, 미리 말을 하란 말이야!”

    바닥을 한바탕 굴러 코트에 흙을 잔뜩 묻힌 염태준이 불평했다.

    진영은 염태준을 바라보며 무덤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사냥터의 마수들이 다량 소모 되면, 대형 악마는 마력을 끌어 모아 숲의 중심부에 게이트 하나를 생성한다.

    회귀 전 진영은 선발대에 속하지 않았었다.

    이 정도로 강한 충격파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 난리가 나면 다크 스컬을 끌어 들이기 훨씬 쉬워지겠어.’

    지금까지 사냥을 하며 살펴 본 바, 다크 스컬의 일원으로 의심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어차피 도중에 나올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오늘은 이제 돌아가서 쉬면 되겠어. 내일 숲의 중심에서 다시 만난다.”

    숲의 중심에 생성된 붉은 게이트.

    이 정도 폭발이라면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 모든 클랜과 플레이어들이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게이트를 공략하려는 자들 속에는 다크 스컬의 일원이 분명히 존재한다.

    * * *

    다음날 아침이 되자, 각국의 대형 클랜들은 곧바로 숲 중앙을 조사했다.

    간밤에 있었던 메시지와, 거대한 폭발.

    그런 전조들이 빚어낸 붉은 게이트.

    클랜들은 앞다투어 게이트 조사를 준비했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게이트가 20층 공략과 연관성이 있다는 건 어린 아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 국가별 클랜들의 순위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지금, 이번 게이트의 공략이 앞으로 멸망의 탑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열쇠나 다름 없었다.

    “와···. 사람이 잔뜩 있네요.”

    붉은 게이트로 모여든 인파로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각 클랜들이 자신들의 심볼이 새겨진 깃발을 내걸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염태준, 다른 클랜에 소속 된 플레이어도 남기지 않고 확인해서 범죄 관련 클래스가 있으면 확인해.”

    “안 그래도 할 거니까, 명령하듯이 하지말라고.”

    툴툴 거리면서도 염태준은 주변을 샅샅히 확인했다.

    “우리는 조사대 파견 없이 바로 공략대를 보낸다!”

    “우리 클랜 입장 순서까지 얼마 남았어? 준비만 되면 바로 들어간다.”

    이번 게이트는 입장 제한이 없었다. 전체를 통제하는 클랜은 따로 없었고, 각자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고 있었다.

    “아니, 우리도 조사대 없이 보낸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한구석에서는 통신석을 붙잡은 채 짜증을 내는 민아영이 있었다.

    지난번 스파이를 잡아낸 공과 이진영과의 연을 만들어 낸 공을 인정 받아, 그녀는 이미 간부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파격적인 특진이었다. 물론 그만큼 그랑블루에 인재가 없단 말이기도 했다.

    “어, 진영씨. 와 계셨네요.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에요.”

    “반갑네요. 그보다, 그랑블루도 조사대 없이 공략에 들어가는 건가요?”

    “네, 제가 반대하고 있기는한데, 딱히 의미 없을 것 같네요.”

    첫 공식 게이트 공략.

    세계 유수의 클랜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저희 일행도 그랑블루 소속으로 동시 입장이 가능할까요?”

    “네, 물론이죠!”

    그 말에 민아영의 얼굴이 환해졌다.

    게이트 입장 순서는 랜덤으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클랜들이 뒤이어 붙어, 현재 대기열은 세자리가 넘어가는 상황.

    민아영과는 사전에 서로를 돕기로 약속한 상태.

    그랑블루에서는 17층을 넘어선 순간부터 이진영에 대해, 흥미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비록 그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랑블루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

    민아영은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본 진영씨는···. 상상 이상의 사람이야.’

    실제로 17층을 확인하니 그 판단에 확신이 섰다.

    두 눈으로 본 민아영이야 말로 알 수 있었다. 17층에서 회귀했다는 건 진영의 의도적인 거짓이라는 것을.

    “그···. 진영씨. 반갑습니다.”

    그 때, 그랑블루 바로 옆 자리에 있는 레드 리버의 부마스터 유경규가 쭈뼛거리며 진영에게 다가왔다.

    진영과의 대담 이후, 레드 리버는 진영을 향한 공개 사과와 함께 스파이를 심어둔 것을 인정했다.

    레드 리버는 진영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따르기로 한 상황이었다.

    “전에 말씀하셨던 영화수라는 플레이어도 저희쪽에서 영입했습니다.”

    레드 리버라는 한국 2위의 수장이 진영의 눈치를 살피는 상황.

    근처에 있던 클랜들은 유경규를 알아보고, 그 모습을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레드 리버랑은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네요.”

    “오히려 저희 쪽에서 드릴 말입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할 말만하고 유경규는 곧장 뒤로 빠졌다. 진영을 납치 암살하려 했던지라, 마주보는 자리가 가시 방석 같았을 거다.

    “저 분이 저런 사람이 아닌데···. 진영씨 무슨 짓을 하신거에요?”

    민아영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레드 리버 입장에선 손발이었던 외부 조직과 중추나 다름 없는 비밀 간부들이 모두 처리 되었으니, 진영에게 엎드리지 않을 수밖에.

    “그럴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보다 슬슬 그랑블루 차례 아닌가요?”

    “네, 맞아요. 내부에서 행동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저희 일행끼리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다만 진영은 그랑블루 소속으로 움직인다고 분명히 말했다.

    게이트 공략 시의 이점은 그랑블루에서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민아영의 실적이 될 일이었다.

    ‘민아영을 빠르게 그랑블루 부마스터까지 올려 놓아야 한다.’

    그랑블루와 레드 리버는 동일하게 마스터 자리가 공석이다. 즉 부마스터는 실질적인 수장과 다름없다.

    현재 부마스터인 진철은 그랑블루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다.

    대한민국 1위의 클랜은 세계로 치고나가면서, 탑 공략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전혀 그렇질 못하니.

    그때였다.

    “차, 찾았어. 야, 찾았다고.”

    염태준이 호들갑을 떨며 진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 *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를 뽑으라고 하면 누굴까?

    한국의 임재천이나, 프랑스의 시몬 또한 가끔 거론되기는 하지만 유력한 후보는 하나였다.

    바로 맥 실버.

    그의 활동 범위는 탑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다.

    헌터로도, 플레이어로도 활약을 펼치는 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레드 게이트 공략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들어가자.”

    맥 실버의 말에 그가 이끄는 클랜 ‘실버 건’의 클랜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위풍당당, 등을 곧게 편 채 걸어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우리들이 세계 최고다. 라는 압도적인 자신감이.

    이번 레드 게이트 공략으로 자신들의 기량을 세계에 선보이고, 멸망의 탑 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

    그런 의지 또한 엿보였다.

    “우리가 누구지?”

    “실버 건!”

    맥 실버의 질문에 클랜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들 하나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무기이자, 마수를 쳐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살인 기계였다.

    맥 실버 그가 유명한 이유는 뛰어난 헌터이기도 했지만, 그의 독특한 행동 때문이기도 했다.

    게이트 공략을 시작하면, 마치 미친개처럼 마수를 쳐 죽인다.

    뒤를 따르는 클랜원들 또한 수 십 마리의 개가 되어 게이트를 휩쓴다.

    그의 별명이 광견인 이유였다.

    콰아아앙!

    입장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마수 한 마리가 맥 실버의 손에 단숨에 목이 부러졌다.

    ‘음, 이번 공략은 느낌이 좋아.’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기 전,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 시작했다.

    손맛이 착 감기는 게, 느낌이 썩 괜찮았다.

    ‘아, 그러보고니 있을 수도 있겠군.’

    맥 실버는 며칠 전 동영상에서 봤던 남성 하나를 떠올렸다.

    한국의 이진영이라는 인물.

    처음에는 헌터라고 생각했는데, 조사를 좀 해 보니 그도 멸망의 탑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였다.

    ‘있다면 재밌는 승부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맥 실버는 이번 게이트 공략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15층 공략을 미루고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실리적인 측면에서였다.

    높은 층을 공략하는 게 더 큰 이익으로 밝혀진 지금, 그들은 폭주하고 있었다.

    ‘20층까지도 솔직히 어렵지 않았지. 바깥의 게이트가 더 성가실 정도였으니까.’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방심.

    그렇기에 그가 알아챌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그의 클랜 ‘실버 건’에 다크 스컬의 간부 하나가 끼어 있다는 것은 말이다.

    의기양양한 맥실버를 바라보며 다크 스컬의 간부가 잔혹한 눈을 번뜩였다.

    모든 것이 정점으로 치닫는 지금.

    모든 것을 망치기에는 최적의 시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