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90화 (90/152)

월드 에리어(2)

멸망의 탑.

탑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바깥을 나가 근처의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눈에 띈다.

하늘에 맞닿은 검은 기둥은 밤이면 노란 빛줄기로 바뀌어, 누구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멸망의 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하나가 아니었다. 세계에 각 지역에 펼쳐진 각각의 탑들은 플레이어들이 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겉에서 볼 때는 여러 개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진다.’

수많은 층을 포함하고, 다양한 시련으로 플레이어들을 단련시킨다.

단련되지 못한 자들은 죽어 나갈 뿐이다.

빈말로도 인간들을 위한 곳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 곳에 진영은 다시 한 번 발을 들이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보상부터 확인해야지.’

진영이 손을 펴자, 새까만 보석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관리자의 열쇠를 손에 넣은 진영에게 이계의 존재들이 합의 하에 선사한 보상이었다.

그 등급은 최소 신화급.

‘아이템 확인.’

신화급은 레전더리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멸망의 탑 80층까지도 사용되고, 성능이 좋은 것은 99층까지 사용되기도 한다.

회귀 전, 진영이 소지했던 최대 등급은 신화급이었다.

그러니 더욱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불멸의 정수

등급 : 초월

설명 : 사용시 기존 아이템의 한계 효과를 초월합니다. 사용후 소멸 됩니다.

“미쳤군.”

이계의 정수를 손에 쥔 진영이 중얼거렸다. 이 아이템은 90층에서 얻을 수 있는 초월급 아이템이다.

소비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게 있으면···.’

진영은 불멸의 정수를 사용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자신의 장갑에서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추출해 냈다.

[ 아이템의 등급이 레전더리에서 유니크로 하락합니다. ]

[ 이름 없는 신의 에고가 추출 되었습니다. ]

구슬의 형태를 한 에고가 진영의 손에 쥐어졌다.

‘아이템 등급을 하나 올려주는 효과를 가진 히든 피스.’

단점이라고 하긴 애매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이것으로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의 등급은 ‘레전더리’가 한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방금 얻은 불멸의 정수를 사용한다면.

[ 이름 없는 신의 에고에 불멸의 정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

끄덕.

진영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검은 오오라가 이름 없는 신의 에고로 즉시 파고 들었다.

스스스스···.

오오라를 받아들이는 구슬의 색이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완전히 구슬이 색이 칠흑처럼 어둡게 변하는 순간.

[ 이제 ‘이름 없는 신의 에고’로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에 한계가 사라집니다. ]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영이 흡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구슬을 들어 올렸다.

“이제 이걸···.”

가레논의 언월도에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신화급 이상의 무기부터는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초월급 이상의 무기에는 고유한 정신이 깃든다.

일반적인 무기와 다르게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아무래도 가레논의 무기였으니까···.’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었다. 지금 진영의 단계에서는 무기를 제어하지 못할 염려도 있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레전더리급 단검 카른 웨난을 강화하기로 했다.

쿠웅.

구슬을 가져다대자, 단검을 중심으로 강한 파동이 일어났다.

한 차례 떨리기 시작한 단검은 서서히 구슬을 흡수하며 그 힘을 키워나갔다.

두근, 두근···.

신화급 무기를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졌다.

진영은 99층까지 신화급 무기를 사용했었다. 이전의 능력에 한층 더 가까워진 셈.

‘이렇게 빨리 신화급 무기를 손에 쥐게 될 줄이야.’

이윽고.

붉은 빛이 잦아 들며 신화급 단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검날을 간직한 단검을 확인하는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내가 사용했었던 단검인데.”

* * *

까마귀 길드에서는 탑 내부의 정황도 놓치지 않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였다.

까마귀 길드에서 파견한 비밀 단체 흑익.

그들은 그랑블루나 레드리버의 동향을 살피며, 조용히 까마귀 길드에 적임이 되는 자들을 선별해 지원한다.

20층월드 에리어가 열리고, 흑익 또한 거처를 옮겨 잡았다.

“확실히 10층하고는 달라. 20층에 모든 시설이 다 있으니. 난 마수들을 사냥하고 코인을 벌 수 있는 사냥터가 근처에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지만.”

흑익의 간부인 김윤무와 김서윤 남매는 오늘도, 지령을 받고 쓸만한 플레이어를 찾는 중이었다.

전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20층의 사냥터는 그들의 목적에 가장 걸맞은 장소였다.

“잔말 말고 잘살펴봐. 미국이랑 러시아 플레이어들도 슬슬 올라오고 있으니까. 인재는 많아.”

김서윤의 말을 따라, 김윤무가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을 훑었다.

슬금슬금.

김윤무의 시선이 닿자, 잘 사냥하던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래? 아직은 사냥터 통제하는 길드도 없지 않아?”

“니 얼굴이 무서운가 본데.”

“허, 우리 누님은 농담도 잘해.”

김서윤은 질린다는 듯 김윤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자기 동생이라지만, 생김새가 참 위압적이었다.

보디빌더 뺨치는 근육질에, 키는 2m가 넘는다. 결정적으로 얼굴에 새겨진 문신까지.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옮길만도 했다.

“후···.”

김서윤이 한숨과 함께 오늘은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려는 그때였다.

“와, 저 사람 뭐야?”

“너무 무섭게 사냥해서 같이 사냥하자는 말도 못 꺼내겠던데···.”

“그냥 혼자 다 잡는데 무슨. 파티도 필요 없을걸?”

“20층 올라오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벽 느껴진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대화를 나누며 숲 안 쪽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김서윤은 그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옆에 있는 김윤무와 눈빛으로 대화했다. 그도 같은 생각인 듯 했다.

둘은 곧바로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 갔다.

스슥-!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숲 너머로 검은 인영이 눈에 띄었다.

“피냄새가 장난 아닌데···.”

상당히 떨어진 곳임에도 그 냄새는 짙었다.

이미 사냥한 마수의 숫자가 수 십에 달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피냄새는 마수를 불러들인다. 이곳에서 사냥하는 플레이어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마수들을 사냥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명한 플레이어였으면, 아까 그 사람들이 이름을 말 안 했을 리가 없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플레이어일 게 분명했다.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공터가 드러났다.

스슥-! 스슥-!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남매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가벼운 바람 소리뿐이었다.

20층의 마수는 쉬이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특히 다수를 상대로 할 때는 흑익의 남매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대체 이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움직이는 검은 형체는 눈으로 쫓는 것조차 어려웠다.

숲 곳곳의 어둠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은 등장과 동시에 목이 잘려 바닥에 가지런히 놓였다.

“여기···. 원래는 공터가 아니었나 본데.”

주변을 둘러보던 김윤무가 감탄과 함께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다.

이런 식의 전투 스타일은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김서윤이 대박을 예감하며 소리쳤다.

“잠시만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캔 유 스피크?”

혹시 외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는 영어까지 섞어가며 말하자, 이리저리 움직이던 검은 형체가 우뚝 섰다.

그 순간, 김서윤의 눈이 커졌다.

“두 분은···.”

“이진영씨? 그러고보니 들어온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이진영이었을 줄이야. 진영의 전투를 확인한 김서윤은 깜짝 놀랐다.

‘길드장님이 극찬을 하던 이유가 있었어.’

진영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보니 흑익분들이 계셨죠.”

“그쵸.”

임재천이 워낙 내색을 안하길래,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재회에 김서윤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혹시 길드장님 부탁으로 오신건가요?”

“아뇨, 우연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진영의 실력을 직접 보고 나니, 해야 하는 일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하루 정도만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 * *

“일을 해야 돈을 버는데···. 사람이 안 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꼬맹아.”

염태준이 새로 개업한 의뢰소는 줄창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레드 리버를 배신했던 게, 이래저래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정말로 믿을 건 이진영 뿐이게 되버렸다.

“차라리 나가서 사냥이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실력도 있으시잖아요. 저희 세 명이서 진영이 형 올 때까지만 파티를 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빛의 사제에 짐꾼 클래스. 거기에 아이템으로 무장한 염태준까지.

듣고보니 괜찮은 제안이었다.

“······. 근데 사냥하려면 너희 둘한테도 아이템을 좀 투자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러면 좋긴 하겠죠. 설마 아까우신건가요?”

“······. 내가 어떻게 모은 아이템들인데, 내가 빌려주는 건 진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안된다고.”

“지난 번에는 빌려주셨잖아요.”

그때랑 지금은 상대해야 하는 마수의 레벨이 달랐다.

염태준이 망설이는데, 의뢰소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이진영이냐?”

염태준이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웬 외국인 아저씨 하나가 서 있었다. 수염을 잔뜩 기른 플레이어였다.

의뢰소 안으로 들어 온 그는 어수룩한 한국말로 말했다.

“의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플레이어의 행색에 염태준의 눈이 찌푸려질 뻔 했으나.

툭.

그가 테이블에 내려 놓은 주머니 가득한 코인을 보자,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환한 영업용 미소로.

“고객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에서는 어떤 의뢰라도 받아들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그거야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셨죠?”

이곳은 외국인 플레이어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해결사라는 간판을 딱히 걸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니 손님이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염태준의 고집이었다.

그런 곳을 찾아들어와 대뜸 물어보니,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무슨 일이든지 하냐니? 물론 하기는 한다만...`

애초에 염태준은 이진영의 납치 및 암살 의뢰를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이진영을 만난 뒤로는 의뢰의 내용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야, 꼬맹이랑 그 형. 잠시 나가 있어봐. 이 양반 하는 이야기 좀 듣게.”

“아뇨, 그건 좀···..”

“그렇게 말하니 무슨 일인지 더 들어봐야 할 것 같네요.”

이진영과 함께 하는 이상, 이 둘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염태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냥 얘기하셔도 됩니다.”

“으음···.”

“일단은 의뢰 내용을 자세히 들어봐야 가능한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염태준의 말에 머뭇거리던 외국인 남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며칠 뒤, 어떤 클랜 하나가 20층으로 올라 올 겁니다. 그들의 수장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하나를 가져 와주시면 됩니다.”

“평범한 클랜은 아닐 것 같군요.”

“아직까지는 평범한 곳이 맞습니다. 이름은 다크 스컬입니다.”

다크 스컬.

염태준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해외에서는 유명한 걸까? 싶었지만 남자의 말은 뜻밖이었다.

“아직은 평범하지만, 후에 굉장한 규모의 범죄 조직으로 성장할 겁니다. 미리 싹을 잘라 두고 싶지만, 아직 제 힘으로는 부족하군요.”

“후에 성장할 거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것이···.”

저벅-.

남자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의뢰소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가장 먼저 그 정체를 알아 차린 것은 외국인 남자였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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