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에리어(1)
게이트를 통과하는 느낌은 기묘하다.
얇은 막을 뚫어내는 듯한 묘한 저항감과 함께 다량의 마력이 온몸을 훑고 가는 느낌.
동시에 그 막을 뚫고 나올 때의 쾌감 또한 있다.
“푸하!”
가레논의 공격을 피해 간신히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온 진영이 숨을 토해냈다.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진영이 시선을 올리자, 익숙한 사람들이 있었다.
“진영씨!”
“성공하셨군요!”
진영이 나오자 사라지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까마귀 길드의 임재천과 유수아가 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트 내부의 시간은 바깥과 다르다.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진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다 뭡니까?”
“아, 진영씨가 언제 나올지 몰라서 준비해뒀습니다. 진영씨도 한 입하시죠.”
임재천과 유수아는 아예 캠핑을 하고 있었다. 유수아도 입가에 묻은 카레를 훔치며 진영에게 손짓했다.
“어서 드세요!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 아무도 없으면, 기분이 그렇잖아요. 원래대로라면 S급 게이트보다 공략하기 힘든 곳이었으니까요.”
“다 유수아씨 생각입니다.”
피식 웃음 지은 진영은 긴장을 풀고 카레를 건네 받았다.
“아, 그러고보니 진영씨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오성 길드 조사원 말씀하시는 거죠? 알고 있었습니다.”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일단 병원으로 보내놨습니다. 많이 충격 받았는지 자꾸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요.”
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카레를 모두 먹었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먹는 것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한 그릇 더 없습니까?”
“아, 당연히 더 있죠.”
“그런데···.”
아까 전부터 진영을 바라보던 유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뭐에요?”
그녀의 시선은 진영이 가져온 언월도에 꽂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가져왔었지.’
찰나의 순간, 가레논의 무기를 뺏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절대 회귀라는 찬스가 있다고는 하나, 진영은 가능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게 아니면 사용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전에 받았던 신탁도 그렇고, 신화준처럼 남용하고 싶은 기분도 안들었다.
‘그러나 써야하는 시기가 오면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진영은 바닥에 놓여 있는 언월도를 들어 올렸다.
“거기 보스가 사용하던 무기 입니다.”
“저 한 번만 봐도 돼요?”
“네.”
정확히는 보스보다 강한 존재의 물건을 빼앗아 왔다.
파지직!
유수아가 손을 대자, 언월도에서 강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야야···. 이거 사용자 제한이 걸려 있나 본데요.”
“능력치 제한 아니야? 내가 한 번 들어 보지.”
울상을 짓고 손을 털어내는 유수아를 뒤로 하고, 임재천이 나섰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크윽! 아이고···. 더럽게 아프네.”
진영은 곧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옆에 있던 임재천과 유수아도 마찬가지였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가레논의 언월도
등급 : 신화
효과 : 공격력 300, 전용 아이템
“시, 신화 등급?”
길드 마스터로서 아이템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자부하는 임재천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신화 등급은 현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는 레전더리의 윗 등급이었으니까.
“지, 진영씨 이거 어떻게 할겁니까?”
임재천이 말까지 더듬으며 진영을 바라봤다.
확실히 대단한 능력치였다.
진영이 가진 레전더리 단검 ‘카른 웨난’의 공격력이 80. 언월도의 공격력은 무려 4배에 가까웠다.
‘문제는 전용 아이템이라 타인은 사용할 수 없다는 건데···.’
이상하게도 진영만은 아무렇지 않게 언월도를 쥘 수 있었다.
‘훔치면서 소유권이 같이 넘어 온 건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단검이 편하기는 하지만 여차할 때 사용할 수 있겠어.’
전용 아이템만 아니었다면, 언월도의 가치는 감히 매길 수 없을 정도였다.
“그거 팔 수는 없는 건가 보네요. 저희 길드 전재산을 때려 박아서라도 사려고 했는데···.”
임재천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어차피 그림의 떡. 임재천은 고개를 젓더니, 품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 그러고보니 진영씨.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네요. 지난 특 S급 게이트 공략에 대한 보수입니다.”
스마트폰에는 43억이라는 액수가 찍혀 있었다.
진영의 계좌로 입금 되었다는 표시와 함께.
당초 예정 되었던 것보다 많은 액수였다.
“저희 길드를 구하신 건 진영씨니,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영이 표정이 굳어졌다.
줄곧 멸망의 탑에서만 지냈기에, 이렇게 큰 돈을 실제로 받는 건 처음이었다.
진영이 보수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췄을 때는 이미 세상이 멸망해 버렸기 때문.
진영이 가만히 있자, 임재천이 진영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혹시 부족하십니까?”
* * *
멸망의 탑 20층.
월드 에리어.
“와아···.”
“대단하군.”
김지훈 김영훈 형제가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플레이어 거주 지역의 수 십 배에 달하는 크기의 지형에, 각종 양식의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거야 뭐···. 대단하네.”
아이템 주머니를 칭칭 동여맨 염태준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새로운 장소가 열렸으면, 새 살림을 차려야지. 자고로 말야,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거든.”
이곳 20층은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장소.
염태준은 아예 의뢰소를 옮길 작정이었다.
“진영이 형이 저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염태준의 성화에 못이겨 뒤따라 왔지만, 김지훈은 걱정을 버릴 수 없었다.
“괜찮아, 메시지도 제대로 남겨뒀고, 솔직히 말해서 그 놈 17층에서 회귀했다는 거 뻥일거야.”
“그건 일리가 있네요.”
“물론, 지금 그 놈만큼 대단한 게 주오령이지만.”
염태준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커다란 비행선 하나가 공중을 날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달린 플랜 카드에는 주오령의 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었다.
[ 월드 에리어 최초 클리어 : 주오령 ]
세계 최초로 20층에 도달한 것은 그랑블루도, 레드리버도 아니었다.
주오령이라는 상식을 초월한 개인이었다.
“내가 그 놈을 가지고 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쳐다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구만.”
염태준이 아쉽다는 듯 말하자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확실히는 뭐가 확실히야. 내가 초월의 좌에 오르면 전부 끝이야.”
그런 염태준을 김지훈이 측은하게 쳐다봤다.
“그보다···.”
염태준의 시선이 월드 에리어 저 편을 향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마수가 죽은 듯 서 있었다.
거리가 멀어 희끄무레 했지만, 크기가 워낙 컸기에 똑똑히 보였다.
뼛가죽을 뒤집어 쓴 악마의 모습을 한 마수.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쳐다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크기였다.
“······. 저걸 누가 감당하냐.”
“진영이 형이나, 주오령 형이거나···. 누군가가 하겠죠.”
[ 남은 시간 : 3개월 21일 14시간 ]
허공에 떠오른 카운트 다운. 저것이 의미하는 것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월드 에리어로 이주해 오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타이머가 끝나면 마수는 움직인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구매하셨다는 장소인 것 같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전에 있던 곳보다 훨씬 큰 건물이었다.
“이제 이진영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 * *
그 시각 진영은 까마귀 길드에 있었다.
임재천에게 몇 가지를 더 일러주었다.
“그런 일이···.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대처하도록 하죠.”
“저희 가족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렴요.”
진영이 충고를 받은 뒤, 임재천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정말 다시 들어가시는겁니까?”
공략은 단 한 번이었지만, 임재천은 알 수 있었다.
이진영의 침착함과 따라 잡을 수도 없는 무력.
그리고 그런 힘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적을 완수하는 능력까지
탑 바깥에 있다면 SS급 헌터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이가 다시 탑으로 들어가려하고 있었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
진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야합니다.”
가장 많은 미래를 알고 있던 신화준은 죽었다.
이제는 이진영만이 유일하게 탑의 99층까지의 일을 알고 있다.
신화준은 탑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지만 진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에 얻은 ‘관리자의 열쇠’.
이게 있다면 또 다른 출구가 하나 생기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붙잡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뵙도록 하죠. 아, 유수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영씨가 가셔서 많이 아쉬운 모양입니다. 할 말이 있다네요.”
“그런가요.”
그녀에게 딱히 무언가를 해 준 기억은 없었다.
문제는 유수아가 후에 다크 스컬이라는 범죄자 길드의 중요 일원이 된다는 것.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연결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임재천과 인사를 나눈 뒤, 진영은 길드장실에서 빠져나왔다.
바깥에는 유수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는군요. 덕분에 감사했어요.”
“뭘 말입니까?”
“진영씨가 아니었으면 저희 길드 게이트 공략은 이번에도 실패했을 거에요. 그리고 진영씨를 보고 저도 뭔가 깨달은 기분이 들어요.”
“······.”
진영은 잠시 침묵을 머금은 뒤 입을 열었다.
“저도 덕분에 잘 있다 갑니다.”
그녀가 범죄자로 타락하게 되는 이유는 개인의 사정일 수도 있고, 어떠한 커다란 사고에 휘말린 것일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무언가 말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의 그녀에 대해 진영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대비를 해두자면.
“무슨 일이 있으면 그랑블루를 통해서 저한테 연락하세요. 그랑블루에는 연락 해 두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가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진영이 보여줄 수 있는 선의일 것이다. 그녀를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담에 뵈요!”
유수아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자, 진영은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멸망의 탑으로 들어 간다.
열쇠는 진영의 손에 있었고, 보물 또한 진영이 새로운 이계의 존재들을 끌어들이며 추가로 해방 되었다.
[ 이계의 근원이 많아진 이계의 존재에 수에 감탄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자신은 처음부터 주시 해왔다고 주장합니다. ]
[ 현재 이계 존재의 수 : 23 ]
관리자의 열쇠를 훔치자, 더 많은 수의 이계의 존재들이 달라 붙었다.
[ 다수의 존재들이 당신의 활약에 감탄합니다. ]
[ 상당한 보상을 모의 중에 있습니다. ]
[ 이계의 감시자가 자신의 아이템을 사용해 흡족해 합니다. ]
이계 시간축 최초의 업적.
그것은 더 많은 존재들을 불러 모은다.
이계 존재들의 증가는 곧 보물의 해방으로 이어진다.
‘공략은 이제 시작이야.’
[ 스물 셋의 이계 존재들의 모의가 끝났습니다. ]
[ 이계의 규율을 따르는 자에게 상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멸망의 탑 입구에 선 진영의 눈 앞으로 전에 없던 강렬한 붉은 빛이 솟아 올랐다.
[ 보상의 최소 가치 : 신화급 ]
관리자의 열쇠를 손에 넣은 진영에게 주어지는 보상.
손에 쥐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진영은 손을 뻗어 붉은 빛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