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88화 (88/152)
  • 관리자의 무덤(5)

    침입자를 처단하러 나갔던 자신의 부하 호클은 죽었다.

    물 밀듯 쏟아지는 관리자들의 군세는 호클의 짓이 아니다.

    바로 침입자가 벌인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가레논이 입을 쩌억 벌렸다.

    “크하하하!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

    탑의 주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숭고한 태도는 바로 집어던진 가레논이 호쾌하게 웃었다.

    부하 겸 자신의 감시자였던 호클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태도였다.

    탑의 주인들의 탐욕과 그들의 권력만을 위해서 세워진 관리자의 무덤.

    천 년 동안 아무런 일 없이 조용했던 그곳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우드득.

    가레논이 팔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이 몸이 초월의 좌에 오르기 전에 충분한 여흥이 되겠구나.”

    호클도 죽었겠다, 탑의 주인들에게 자신의 힘이 들킬 일은 없었다.

    수천 년 간 축적해 온 힘을 사용할 순간이었다.

    흥분되는 게 당연했다.

    이 정도 난리는 침입자만 잡아 낸다면 금세 정리될 터.

    고오오-.

    가레논이 창을 뒤로 빼며 자세를 취했다. 강대한 마력이 공기를 뚫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본심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크아아!

    먼저 가장 앞 열에 있는 관리자들이 가레논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윽-.

    가레논의 언월도가 느릿하게 앞으로 내밀어졌다.

    끈적한 마력이 마치 시간을 느려지게 한 것만 같았다.

    창 끝이 관리자의 얼굴 끝에 닿았을 때, 극도로 응축된 마력이 폭탄처럼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앙!

    붉은 폭발이 레이저처럼 곧게 쏘아졌다.

    그 일격에 맹수처럼 달려들던 수십의 관리자들이 무로 돌아갔다.

    진영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가레논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리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어도, 저런 걸 맞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50층의 보스격인 호클은 관리자들의 행렬에 손도 못쓰고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눈앞의 묘지기 가레논은 격을 달리 하는 존재였다.

    ‘녀석이 초월의 좌에 오르기까지 몇 년 남지 않았다.’

    탑에서도 필멸자들과 그 존재 자체를 달리하는 자들을 초월자라고 부른다.

    탑의 규칙에서 벗어나, 성좌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탑을 좌지우지하는 자들.

    ‘물론 정면 승부할 생각은 없다.’

    진영이 노리는 건 ‘관리자의 열쇠’ 뿐이었다.

    90층에 올랐을 때 마주한 초월자 가레논은 말했었다.

    자신이 필멸자였을 때, 관리자의 열쇠를 지키는 묘지기였다고.

    지금 가레논은 스스로를 무덤을 관리하는 묘지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관리자의 열쇠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였다.

    그리고 그 관리자의 열쇠는.

    ‘초월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멸망의 탑 제어 권한이다.’

    인류는 이제 20층에 다가서고 있었다.

    99층에 오른 진영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탑에 관해서라면 가레논보다 진영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콰아아아앙!

    다시 한 번 가공할 폭발이 일대를 휩쓸고, 관리자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어디냐! 어디에 있냐! 나와라! 당당하게 싸워보자!”

    콰직, 콰드득!

    미처 죽이지 못한 관리자들이 가레논의 가죽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나 가레논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충류 특유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냐!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진영의 스킬 절대 은신.

    물 밀듯 밀려드는 관리자들.

    그 사이에서 진영의 위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기냐!”

    그러나 가레논은 초월의 좌에 근접한 자.

    원한다면 자신의 직감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가레논의 언월도가 검붉은 마력을 흘리며 진영이 있는 곳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과과광!

    가공할 폭발이 일대를 뒤덮으며, 진영을 휩쓸었다.

    그러나 방금 전 관리자들을 처치할 때와는 마력의 농도가 달랐다.

    지레짐작으로 휘둘렀기 때문이다.

    [ 칠흑의 갑주가 대량의 피해를 흡수합니다. ]

    진영이 입은 피해는 없는거나 다름 없었다.

    가레논이 자신이 공격했던 장소를 잠시 살펴보는 찰나의 순간.

    진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관리자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장소는.’

    이곳 묘지기실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자, 열쇠의 존재 유무를 곧장 알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건.

    묘지기 가레논의 품 속이었다.

    진영의 왼손이 가레논의 팔에 닿았지만, 가레논은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었다.

    가레논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심지어 그는 지금 적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파아앗-!

    진영의 눈에만 보이는 새파란 빛이 퍼져나왔다.

    [ 탐욕의 왼손이 발동 되었습니다. ]

    [ 대상에게서 ‘관리자의 열쇠’를 훔치는데 성공했습니다. ]

    * * *

    가레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미세한 차이지만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리자의 열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호클 녀석도 이런 식으로 지팡이 빼앗겼던 건가!’

    깨달았을 때는 늦었다. 이미 열쇠는 가레논의 손을 떠났고, 누군지도 모르는 침입자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가레논은 이것이 천 년 간의 지루했던 직무를 달래 줄 유흥이라고 생각했지만, 침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노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지진이 무덤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관리자들의 만들어내는 진동이 아니었다.

    “뭐, 뭐지 대체?”

    얼이 나간 채 서 있는 가레논.

    그는 자신의 묘지기 직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무덤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열쇠 그 자체였다.

    무덤 자체가 타인의 손에 넘어 갔으니, 그의 역할은 끝나기 일보 직전인 것.

    쩌저적.

    황금빛 천장이 사정 없이 갈라지고, 바닥이 튀어 오른다.

    진영은 열쇠를 훔쳐낸 순간부터 망설임 없이 입구를 향해 뛰었다.

    수 없이 떠오르는 정보창을 일일이 읽어 볼 시간은 없었다.

    [ 이계 시간축 최초로 ‘관리자의 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 ]

    [ 당신의 업적에 이계의 존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

    [ 새로운 이계 존재들이 당신의 존재를 알아챕니다. ]

    터무니 없이 당하기는 했지만, 가레논은 뜨내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이곳의 탈출구는 한 곳.

    한 시라도 멈출 수는 없었다.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위치를 궁금해 합니다. ]

    절대 은신 상태의 진영은 이계의 존재들조차 찾지 못한다.

    뒤쪽에서 분노에 찬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붉은 안광을 내뿜는 가레논은 이제서야 모든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열쇠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찢어 죽여 버리겠어! 이 빌어먹을 새끼가!”

    침입자가 빠져나갈 균열은 단 한 군데다.

    콰아앙!

    무덤을 완전히 박살 낼 정도로 강력한 도약이었다.

    이미 무덤이 부서지는 건 가레논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관리자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게이트 출구를 향해 쏘아졌다.

    그 충격의 여파에 진영 또한 휩쓸렸다.

    ‘크윽!’

    바닥을 수 차례 굴렀지만, 갑옷 덕에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오는 공격은 견딜 각오를 단단히 해야했다.

    “열쇠를 내놔라!”

    가레논의 언월도가 땅을 내리 찍자, 핵폭탄 같은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진영은 충격을 대비해 단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콰과과과광!

    “크아악!”

    분노한 가레논의 공격은 무자비했다.

    땅까지 갈아엎어 버리는 강력한 공격에 진영은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 칠흑의 갑옷의 내구도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합니다. ]

    [ 일부 피해를 흡수하지 못합니다. ]

    “커허헉!”

    진영은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냈다. 머리가 아찔했지만, 그럼에도 진영의 두 눈은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가레논이 그 앞을 막고 떡하니 서 있었다.

    “나와라! 무덤을 모조리 무너뜨려서라도 죽여주마!”

    열쇠를 빼앗겨, 초월의 좌에 오를 수 있는 기회 조차 박탈 당한 가레논이 울분에 차 외쳤다.

    [ 이계의 붉은 마력석의 효과가 10초 남았습니다. ]

    진영에게 무한정 공급되던 마력이 끊기기까지 10초.

    그 안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다시 한 번 가레논의 언월도에 마력이 모아졌다.

    진영은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가레논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여전히 모른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바깥으로 달려 나갈 뿐.

    스윽.

    가레논이 언월도를 들어 올렸다.

    아직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가레논의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쿠과과과과!

    땅이 솟아오르고, 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천장이 쏟아진다.

    파괴적인 마력이 일대를 뒤흔들기 시작했음에도, 진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레논의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닿기만하면! 닿기만 한다면!’

    가레논은 휘두르기만 하면 이기는 승부였다.

    더 이상 진영에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므로.

    그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휘두르려고 했다.

    “죽어라!”

    가레논의 팔 근육이 꿈틀거렸다. 언월도를 움직이기 위해 그의 마력과 피가 생동했다.

    그의 언월도가 앞으로 움직이는 그 짧은 순간.

    진영의 손이 먼저 가레논의 머리에 닿았다.

    [ 숙련도의 상승으로 스틸 스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 스틸의 시전 시간이 매우 빨라집니다. ]

    [ 10% 확률로 탐욕의 왼손이 발동합니다. ]

    “······?”

    가레논이 들고 있던 언월도가 사라졌다.

    근처를 뒤흔들던 위압적인 마력도 일시에 사라졌다.

    가레논이 눈이 허망하게 허공을 향했다.

    “······. 젠장.”

    쿠과과과···.

    침입자는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가레논은 무너져 내리는 무덤의 파편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둑의 승리였고 그의 패배였다.

    * * *

    멸망의 탑 내부.

    염태준은 진영을 기다리며, 탑의 보물에 대한 조사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이미 5가지 보물 모두가 그의 손에 들어 오기는 했지만, 사전에 진영이 말해 둔 대로.

    초월의 좌에 오를 수 있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젠장, 멸망의 탑이 사기라도 치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기에는 이 고리는 특별하잖아요.”

    그 자리에 있던 짐꾼 김지훈이 보물 중 하나인 영원불멸의 고리를 들어 올렸다.

    분명히 그 고리를 차고 있던 목성교의 교주도 각성 상태에 들어갔었다.

    확인해 본 결과 사용자마다 효과는 다르지만, 클래스 능력의 극대화가 이루어진다.

    염태준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것만 특별하고 나머지는 쓰레기나 다름 없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그건, 그렇네요.”

    예전에 진영이 말했던대로, 능력이 해방 되지 않은 보물들은 모두 쓰레기나 다름 없었다.

    “이진영 그 자식은 어디서 뭘하고 다니길래, 연락이 안되냐. 내가 빌려 준 아이템 들고 튀는 거 아니겠지?”

    “진영이 형이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근데, 소식 못 들으셨어요?”

    “소식? 무슨 소식?”

    진영이 멸망의 탑을 나간지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일생의 목적이었던 보물을 다 모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염태준의 할 일은 왜인지 이진영을 기다리는 게 되었다.

    염태준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김지훈이 말했다.

    “까마귀 길드에서 특 S급 게이트를 공략했다던데요.”

    “뭐? 어디서 들었어?”

    “그랑블루에서요. 그 영상이 지금 엄청 화제래요.”

    “그 말은 이제 곧 온다는 거겠지?”

    김지훈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선 입을 열었다.

    “그보다 벌써 20층을 공략 됐다는데, 저희가 준비할 건 없나요?”

    “준비는 무슨, 주오령 그 놈이 자기 혼자서 마구잡이로 다 해 처먹는데.”

    세간에서 화제가 되는 일은 주오령이 단신으로 20층 글로벌 에리어까지 공략했다는 것.

    이진영도 그렇고 주오령까지 점점 닿을 수 없는 위치로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에휴, 이진영 그 놈이 와야 뭔가 시작을 할텐데.”

    염태준이 한숨을 내쉰 그때였다.

    샤아아아!

    한 군데 모아두었던 보물들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염태준이 뒷걸음질 쳤다. 김지훈은 오히려 테이블로 다가가 보물을 들어 올렸다.

    “뭐, 뭐야? 이거?”

    “진영이 형이 뭔가 한 걸까요?”

    경악스런 표정을 짓는 둘 사이에서 쏟아지는 빛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