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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86화 (86/152)

관리자의 무덤(3)

두근. 두근.

관리자의 무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심현식의 심장은 더 없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미친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다리는 계속해서 무덤 안쪽으로 향했다.

본래대로라면 게이트 바깥으로 향했어야 할 그가, 중심부를 향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기 때문이다.

- 바깥으로 나가려도 해도, 또 다른 기사들에 의해 가로막힐 뿐입니다. 계속해서 안쪽으로 움직여야 살 수 있습니다.

쨍그랑.

그 말과 함께 사라졌던 불꽃 기사의 창이 떨어졌다.

심현식이 자신의 곡검으로 불꽃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창이 사라졌기 때문.

전부 그 목소리의 도움을 받은 덕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오성 길드에서 구조대가 온다 한들, 이 게이트 안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심현식에게는 차라리 실낱같은 진영의 목소리에 의지하는 게 더 가능성 있게 느껴졌다.

목소리의 주인 이진영 또한 심현식과의 동행은 나쁘지 않았다.

진영은 절대 은신 상태에서 심현식을 바라보았다.

‘심현식의 회피 스킬은 쓸만하다. 내 존재를 숨기면서 이동하기에 아주 좋아.’

Lv2의 경지에 오른 회피 스킬은, 탑 50층에서 충분히 먹히고도 남는다.

이미 진영의 침입 자체는 들켰다. 그렇다면 다른 헌터를 내세워 눈을 돌리는 게 나았다.

진영은 주머니에서 붉은 돌을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게 있어서 가능한 작전이었어.’

이계의 감시자가 건네준 보상에서 나온 아이템이었다.

[ 이계의 붉은 마력석 : 사용시 1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다량의 마력을 제공합니다. ]

덕분에 마나 부담 없이 절대 은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심현식이라는 미끼에 이곳의 지배자들이 낚여 들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저, 저기···. 나타났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심현식의 앞으로 기사 두 마리가 걸어 왔다. 잔몹이기는 하지만 개체 하나 하나의 무력이 S급 헌터를 가볍게 압도한다.

진영은 일부러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기사 두 마리가 재빠르게 좌우로 퍼지며, 심현식을 향해 달려왔다.

“으악!”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심현식은 정확하게 두 기사의 창을 피해냈다.

심현식이 어그로를 끌었다면, 그 다음은 간단하다.

진영의 기사의 창을 훔쳐낸다.

불꽃 기사들은 무기 의존도가 높은 마수다. 무기가 없다면 전투력은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지, 지금이다!”

기사들의 무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심현식이 자신의 곡검을 휘둘렀다.

콰지직!

기사의 갑옷이 찢겨 나가며, 상황은 역전되었다. 심현식도 대한민국 세 손가락에 드는 오성 길드의 일원. 두 마리의 불꽃 기사가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계속 나아가라.”

진영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심현식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는 셈이었다.

목소리를 믿고 전진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근데, 목소리님. 하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관리자들의 석상을 지나며, 심현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안으로 들어가면 뭐가 있는 겁니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스읍···.”

심현식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너무 많은 길을 왔다.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목소리가 없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목숨이다.

‘믿자, 믿는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리고 목소리는 지푸라기보다는 도움이 됐다.

문제는 그렇게 다잡은 심현식의 마음이 흔들리는 건 바로 몇 초 뒤였다는 것이다.

쉬익-. 쿠웅!

S급 헌터가 인식하기도 힘든 속도로 날아온 무언가가 그의 앞에 떨어졌다.

뚜두둑.

그의 앞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새의 머리를 한 인간형 마수였다.

녀석은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심현식을 바라보았다.

“겨우 이런 놈한테 기사들이 당했을 리가 없는데요···.”

새머리 마수 호클이 도착하자, 근처에 있던 기사 몇 마리가 뛰어서 다가왔다.

호클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다리를 뻗어 기사를 공격했다.

콰지직!

불꽃 기사의 갑옷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이상하군요, 고장난 것도 아닌데···.”

“허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현식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저는 묘지기의 하수인 호클이라고 합니다.”

* * *

오성 길드의 조사대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간단했다.

게이트 내부의 마수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갑옷을 걸친 불길. 녀석들이 펼치는 무위는 조사대를 압도했다.

‘강하다, 여태껏 마주친 그 무엇보다도.’

심지어는 그들의 길드장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새머리 마수 호클이 기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부수는 장면을 본 심현식은 깨달았다.

‘그저 인간이, 헌터가 약했던 거다.’

멸망의 탑 등장 이후, 게이트들을 공략하며 사람들은 기고만장해 있었다. 멸망의 탑 따위 멸망을 불러오는 존재가 아니라고, 게이트를 통해 오히려 인간들에게 자원을 제공해 주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멸망의 탑 앞에서 인류의 능력은 무력했다.

“모, 못이겨···. 이런 괴물은 이길 수가 없다고···.”

심현식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눈 앞의 새 머리 마수는 진영조차 두려울 정도로 강력한 마수였다.

20층도 오르지 못한 헌터의 눈에, 50층 이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호클은 규격 외의 존재였다.

“당연하죠. 이길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건방지군요.”

호클은 눈이 그려진 지팡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의 상사인 묘지기 가레논은 호클에게 침입자의 처리를 맡겼지만, 그는 직접 침입자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흐음, 가장 최근에 목숨을 잃은 관리자로 하는 게 좋겠죠. 감각도 녹슬지 않았을 테니. 가일. 상위의 존재의 부름을 받으십시오.”

드드드드···.

쉬이익!

뒤편에서 회색의 형체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가고일.

녀석의 눈에서는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이곳 무덤은 결코 탑의 관리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다.

탑의 계약을 마치지 못한 그들의 영혼을 속박하고, 상위의 존재들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곳.

특히 탑의 계약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관리자들은 이곳에서 영원 불멸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관리자를 소환수처럼 부리는 마수라······. 확실히 50층의 보스급은 되는군.’

그런 호클을 바라보면서도 진영은 감정적이지 않았다. 진영이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멸망의 탑 바깥의 일은 그리 세세하게 알지 못하기도 했고.

자세한 것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들어라.”

진영은 진중한 목소리로 심현식의 옆에서 말했다.

압도적인 공포 속에서도 심현식은 얌전히 무기를 들었다.

목소리의 존재가 위안이 되었다.

- ······!

카가가각!

가고일 가일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발톱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심현식은 스킬의 성능으로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아, 회피 스킬. 어쩐지, 질기게 살아있더라니.”

떨어진 장소에서 심현식과 관리자 가일의 싸움을 지켜보던 호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 가일, 자폭하시죠.”

회피 스킬은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대상으로 발동한다. 일대가 터져나가는 공격이라면, 회피 스킬을 카운터 칠 수 있다.

호클의 명령에 가고일 가일의 눈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서걱-!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려는 찰나, 가일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호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응?”

심현식이 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몸이 굳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적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기척조차 없을리가···.”

호클의 기척 탐지 능력은 최상급이었다. 은신으로 숨는다 한들 대상의 숨소리와, 땅을 밟고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리 만무했다.

“거기 인간. 뭔가 숨겨 둔 수가 있다면, 지금 말하는 게 덜 고통스러울 겁니다.”

호클은 심현식을 바라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다시 한 번 그의 지팡이가 하늘 위를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

지팡이가 사라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뭐죠?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얼굴이 붉어진 호클이 소리쳤지만, 심현식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이 모든 게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진영은 확신했다.

호클은 특 S급 게이트에서 상대했던 검은 갑주의 보스와는 다르게, 예지나 직감 계열의 스킬이 없다.

그 말은 진영의 은신을 절대로 알아챌 수 없다는 것.

“잘 알겠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호클의 분노는 애꿎은 심현식을 향하고 있었다. 호클의 눈이 순간 빛나더니, 녀석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무수한 수의 깃털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하나 하나에 담긴 마력이 가공할 수준이었다. 묘지의 바닥에 무수한 구멍이 뚫리고, 공격에 휘말린 관리자 가일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스스스···.

호클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봤자, 또 다른 침입자겠죠. 고작해야, 인간. 광범위한 공격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녀석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심현식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심현식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굉장한데.’

진영 또한 갑옷의 성능에 놀라는 중이었다. 보스의 갑주였을 때보다 오히려 성능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호클의 쏟아지는 공격을, 진영은 갑옷으로 받아냈다.

갑옷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호클의 눈에는, 그저 심현식이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고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 놈! 버러지 주제에 꽤 하는구나!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춰 대우해주지.”

호클은 자신의 품에 있어야 할 무언가를 찾아 허우적거렸다.

지팡이를 도둑맞았다는 것을 까먹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심현식이 입을 열었다.

“역시 새대가리답군.”

“······. 네 놈은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주르륵.

심현식의 머리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진영의 말을 전할 뿐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호클의 움직임이 멈췄다. 심현식의 페이크가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진영은 침착하게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이 지팡이는 본 적이 있다.’

호클의 손에서 훔쳐 낸 지팡이.

한 때 멸망의 탑에서 이름을 떨치던 한 소환사가 사용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떠한 경위로 이 곳에 있던, 지팡이가 멸망의 탑으로 옮겨간 건지는 모르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아이템은 사기급 성능을 가진 아이템이라는 것.

그리고 설명을 확인한 진영은 확신했다.

이 곳 관리자의 무덤에서는 더더욱 사기라는 것을.

진영은 훔친 지팡이를 들고 아이템 설명에 나온 대로 읊조렸다.

“무덤에 잠든 모든 관리자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 상위의 존재의 부름을 받아라.”

드드드···.

무덤에 속박되어, 영겁의 세월을 보내 왔던 모든 관리자들이 일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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