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의 무덤(1)
“좋네요, 맥 실버. 연락은 SNS로 직접 하는 게 좋을까요?”
진영의 물음에 유수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그건 저희 까마귀 길드에서 직접 연락하는 게 빠를 거에요. 유출된 영상의 원본도 까마귀 길드의 소유니까요.”
진영은 까마귀 길드의 소속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명예 길드원 대접을 받고 있다.
트레이닝실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
진영은 공략에 실패할 뻔한 특수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그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저런 정보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닌데요, 뭐.”
진영이 게이트를 공략한 지 하루가 지났다.
그 동안 유수아는 중요한 정보를 진영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이제 가볼게요.”
“유수아씨, 잠시만요.”
진영이 자리를 떠나려던 유수아를 불러세웠다.
“혹시 형제나 자매가 있으신가요?”
“아뇨, 없는데요. 그건 왜요?”
유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뜬금없는 질문.
그러나 이 질문을 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 확실해진 것 같다.’
게이트 내에서 보았던 유수아의 움직임.
그것이 묘하게 익숙했던 이유는 진영이 회귀 전에도 유수아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같은 사람이 맞다.’
까마귀 길드에서 활동하던 유수아가 어째서 멸망의 탑으로 다시 들어 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멸망의 탑으로 돌아왔을 때.
지금 같이 쾌활한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
그녀는 최후, 최대의 범죄자 클랜 다크 스컬의 간부로 활동하게 되므로.
그 괴리감 때문에, 처음 그녀의 스킬과 움직임을 보았을 때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최후의 10인에 속해 맥실버보다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능력만 보자면 맥 실버, 임재천보다 대단한 인물이다.
진영은 표정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별 거 아닙니다.”
미래는 얼마든지 진영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지금 당장 섣부르게 접근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요? 더 좋은 소식 들고 나중에 올게요!”
어깨를 으쓱인 유수아는 트레이닝실 바깥으로 나갔다.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진영에게 30대 중반의 남성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우리 수아 애가 참 괜찮지?”
게이트 공략 당시 뒷열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고형이었다.
“남자 친구 없으니까, 한번 잘 해봐. 수아도 진영씨한테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싱겁긴, 진영씨가 관심이 없나 보구먼. 아쉽게 됐네.”
고형은 다시 자신의 운동을 하러 돌아갔다.
진영이 본 게 맞다면, 유수아는 불과 몇 년 뒤 범죄자 클랜의 간부가 된다.
그녀가 몸 담게 되는 다크 스컬은 지금까지 마주친 범죄 클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도둑, 강도, 사기꾼 같은 클래스가 존재 자체만으로 혐오를 받게 되는 이유가 그들 때문이었으니까.
‘다크 스컬은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길드가 아니니, 조치를 취해 두고 싶어도 당장은 힘들다.’
유수아도 유수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기 상으로 보아, 아포칼립스 이후인데···.
실력 있는 인물이니, 나쁜 길로 빠져드는 걸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영이 독심술사도 아니고 모든 문제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우선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
이미 진영이 움직이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탑이 공략되는 시기도, 미래에 존재하게 되는 클랜들도.
‘이번 EX급 게이트 공략이 중요하겠어.’
그곳에 존재하는 관리자의 열쇠가 있다면, 적어도 탑 바깥에서 벌어지는 세계 멸망 ‘아포칼립스’는 막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수아가 탑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진영은 이계의 감시자가 보상으로 지급한 돌멩이를 꺼내 들었다.
사용법은 정해져 있었다.
콰직!
돌멩이의 안에서 붉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보상을 확인하는 진영의 눈이 커졌다.
* * *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쇄도하는 문의 전화.
까마귀 길드는 지금 대한민국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길드장님! 해외 언론에서도 취재 요청이 수십 건입니다.”
“그래?”
“인터넷에서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까마귀 길드가 길드 브랜드 이미지 1위를 기록했습니다.”
“좋네. 좋아.”
소파에 거만하게 몸을 뉘인 임재천은 비서의 보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까마귀 길드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직접 스마트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던 임재천이 멈칫했다.
* 게이트 공략 실패, 붕괴 위험. 까마귀 길드 이대로 괜찮나?
* 붕괴 위험 대비한 법률적 보호 조치가 있어야···.
* 오성 길드, 대신 공략했다면 첫번째로 클리어 했을 것.
까마귀 길드는 앞서 게이트 공략을 한 번 실패했다.
두 번째 공략에서야 붕괴까지 몇 분을 남겨두고 간신히 성공했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전화위복이라고, 대중은 까마귀 길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 두 번째 공략도 실패 했어야한다는 거?ㅋㅋㅋ
- 까마귀 아니었으면 아예 처음부터 전멸이었을 텐데.
- 오성이 했으면 이미 그 근처가 마수 테마파크 됐을 듯.
댓글을 읽으며 가슴이 한결 편안해진 임재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여서 이 정도였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는 가슴 한 켠이 찔려 왔다.
‘물론 이진영이 아니었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그러고보니 이진영은 까마귀 길드가 게이트 공략에 실패한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진영이 경험했던 과거에서는 게이트가 붕괴했다는 의미.
‘다행이야. 그런 미친 일을 경험하지 않아도 돼서.’
모두 진영 덕분이었다.
“그 있잖아, 이진영씨 가족 호위하고 있는 거. 매일 매일 나한테 보고 해. 무슨 일 없나. 그리고 S급 몇 명 더 붙이고.”
임재천이 비서를 향해 말했다.
이진영을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그는 멸망의 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임재천은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돌아왔을 때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간간이 밖에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진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었다.
‘이진영도 나를 꽤 좋게 보는 듯했고.’
차라리 아예 길드에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이었다.
멸망의 탑 내부 클랜인 그랑블루와 레드리버의 수장들과 임재천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임재천은 넘볼 수 없는 그릇은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만 했기에, 그리고 그 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았기에.
그는 아포칼립스 이후 대한민국을 거머쥘 수 있었다.
‘로비에 이진영 기념비라도 세워놔야 하나.’
물론 임재천은 자신의 미래를 몰랐다.
그가 계속해서 이진영에게 어떤 선물을 전달할지 고민하던 사이.
길드원 하나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허억, 발견, 발견했습니다!”
“응? 뭘 발견해?”
허겁지겁 들어온 길드원은 숨도 쉬지 않고 뛰어 왔는지 얼굴이 빨갰다.
옆에 있던 비서도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그, 허억···. 찾으라고 하신거, 허억···. 있잖아요.”
“찾으란 게 한두 가지였어야지. 아, 그거구나.”
헌터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
그런 그가 숨이 찰 정도면 정말 엄청난 거리를 단숨에 왔다는 말.
임재천은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설마 찾은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일단은 설명해주신 거랑 딱 들어 맞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임재천의 표정이 묘해졌다.
진영이 S급 게이트 공략을 도와주는 대신 권한을 받기로 했던 그곳.
공략 불가 판정을 받는 EX급 게이트.
‘분명 조금 더 뒤에 발견 될 거라고 했는데···.’
정보원이 실수했을 리는 없다. 어쩌면 이진영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고생했어, 지금 그 게이트 소유권은 누구한테 있지?”
“오성입니다.”
“하필이면 거기야? 차라리 헌터킹이면 좋았을텐데.”
오성은 까마귀 길드와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곳이다.
“어쩔 수 없지. 확인 작업 거치고 나서 내가 오케이하면 바로 게이트 공략 권한 인수해.”
“비용은 어떻게 합니까? 저희가 손대려고 하면, 가격을 높일 텐데요. 아직 공략 불가 판정도 안 났을 겁니다.”
“진영씨가 필요하시다는데, 비용이 문제야? 오성이 따블로 부르던 따따블로 부르던 맘대로 줘버려.”
이번 S급 게이트 공략 성공으로 돈은 남아돈다.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임재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일반 사람은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 불길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검은 기운을 짙게 풍기는 원형의 포탈.
일반인과는 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 헌터에게는 그러한 불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정석과, 값비싼 아이템과 재료등을 파밍할 수 있는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진다.
“···이런 건 처음 보네.”
그런 헌터들조차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게이트였다.
게이트를 마주한 임재천이 혀를 내둘렀으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옆에 선 진영도 게이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EX급 게이트란 그런 존재였다.
헌터조차 겁을 먹고, 망설이게 되는 곳.
이곳이 산 한가운데가 아니었더라면, 근처는 이미 철저한 인원 통제가 이뤄졌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다가서는 것만으로 쓰러질 정도의 마력이 흘러넘쳤다.
‘내 기억이 틀린건가? 생각보다 발견이 너무 이른데.’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앞의 게이트는 진영이 찾던 EX급 게이트가 확실했다.
그러나, 그 등장 시기가 한참 빨랐다.
‘멸망이 가속화하고 있는 건가.’
탑이 공략될수록 바깥의 게이트들은 늘어나고, 어려워진다.
어쩌면 며칠 전 원래대로였다면 실패했을 공략이 성공한 것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잘 됐어.’
EX급 게이트는 수십의 헌터를 집어삼킨 뒤에야 공략 불가 판정을 받는다.
그 인원들 모두 세계 멸망을 막으려는 진영의 입장에서는 손해였다.
“정말 들어가실 건가요?”
따라 온 유수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진영 단독으로 게이트에 들어간다.
“네, 들어갑니다.”
“파이팅.”
유수아가 자그맣게 외쳤다. 자살처럼 보이는 일이긴 했으나, 자신보다 강한 진영을 막아설 이유는 없었다. 그럴 바에는 응원이나 하자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 맥 실버 헌터한테서 연락도 받아 놨어요. 돌아오시면 알려드릴게요.”
“네, 좋습니다.”
죽으면 약속도 무의미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철컥.
감춰두고 있었던 칠흑의 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영의 몸의 일부인 듯 착 달라 붙는 모양새였다.
“그러면 들어겠습니다.”
“네, 공략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파이팅!”
기이잉.
게이트는 순식간에 진영을 빨아들였다.
저벅-.
[ EX급 게이트 : 관리자의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 ]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게이트 내부의 존재들이 당신의 침입을 감지합니다. ]
게이트 내부로 들어온 진영의 앞으로 넓은 복도가 펼쳐졌다.
진영은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 절대 은폐
임재천은 공략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이곳은 공략은 불가능하다.
괜히 공략 판정 불가를 받게 되는 곳이 아니다.
탑 50층에 해당하는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을 진영은 공략할 생각이 없었다.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갈 필요는 없지.’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관리자의 열쇠’.
공략은 어렵다. 그러나 공략이 아니라, 열쇠를 훔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