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81화 (81/152)

이계 존재의 무장(2)

임재천은 진영의 앞에 와서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계셨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작전은 진영씨가 알려 주신대로 속행하겠습니다.”

임재천이 고개 숙인 것을 보고 길드원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저런 양반이 아닌데.’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독불장군인데.’

이번 작전의 핵심은 신뢰에 있었다.

진영이 보스를 1대1로 막아주는 동안, 나머지 마수들을 막아주는 것.

즉, 임재천이 진영을 확실히 믿지 못한다면 작전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변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진영의 전투를 두 눈에 새긴 임재천은 확신했다.

‘분명히 클리어할 수 있다.’

단순히 전투 뿐만 아니라 센스, 감각.

그 단련됨이 결코 이 시간대의 플레이어가 가질 수 없는 경지라는 것.

다른 누구도 몰라도 임재천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좋습니다. 제 계획대로 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임재천의 말에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라는 말이 모든 것의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신뢰를 얻기에는 더 좋은 법.

‘임재천 또한 상당한 실력자가 분명하다.’

진영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마수의 처치자가 누군지를 한눈에 짚어냈다.

진영의 숙련된 스타일은 그림자 속에 숨어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마수를 처리하며 팀을 돕는 방식이다.

눈썰미가 없다면, 그저 지나치기 마련이건만.

임재천의 클래스는 ‘히어로(hero)’.

실제 분류는 S급까지인 클래스 중에서도 SS급으로 분류 받는 클래스다.

후에 아포칼립스로 변한 한국을 단숨에 손아귀에 쥘 정도로 강한 클래스.

‘그런 임재천이 실패할 만큼 어려운 게이트란 말이지.’

이제 남은 건 3관문과, 4관문이다.

게이트가 공략대의 침입을 기억하고 있으니,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진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헌터킹 길드 마스터 강산범한테서 훔친 특성.’

이게 있다면 3,4관문은 쉽게 돌파할 수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SS급이라 불리는 클래스의 특성이었으므로.

휴식을 취하며 무기를 점검하던 와중, 누군가가 임재천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길드장, 솔직히 저 이진영이란 분이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길드원들이 보기에는 진영은 후열에서 가장 안전하게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대단하면 중열이나 전열로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임재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왜 그래야하는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후열에서 실력을 썩히는 건 아쉬우니까요.”

솔직히 이의를 제기하는 그에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 게이트에서 공략대의 후미는 가장 편하다.

소위 꿀빠는 자리.

실력자라는 게 별로 믿기지도 않았지만, 만약 실력자라고 한다면 더더욱 공략대를 이끌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니가 이진영씨 대신 보스랑 1대1 할 거라면 그렇게 해줄게.”

“네?”

시작 전 설명했던 작전.

각자 역할을 나누어 보스를 상대한다는 작전이었지만, 따지고보면 진영이 보스와 맞대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까지 진영의 컨디션을 최고로 맞추어 놓는 건 당연.

“잘 모르면 얌전히 내 명령을 따라. 이 공략이 끝나고도 내 지시가 맘에 안 들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아, 알겠습니다.”

그의 굳은 표정을 확인한 길드원이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임재천이 소리쳤다.

“휴식 끝. 움직입시다!”

* * *

3관문 언데드 파티.

거대한 관문을 통과하자, 끝도 없이 펼쳐진 공동묘지가 보였다.

그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시체들.

길드원들이 낯빛이 안 좋아졌다.

그들은 이미 최상위 중의 최상위 헌터. 겨우 마수를 보고 비위를 따지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저 한 번 들어왔던 게이트기에 상대해야 할 언데드의 수를 알고 있을 뿐.

“또 온종일 잡아야지 다음 관문이 생기는 건가.”

“끈질긴 언데드 놈들. 잘 죽지도 않는데.”

그어어-.

몸을 늘어뜨린 채 다가오는 언데드 무리는 마치 파도를 연상케 했다.

신성 부여를 받은 헌터들이 가장 먼저 앞 열에 서고, 뒤쪽에 있는 헌터들이 공격을 퍼붓는다.

전과 같은 공격 방식이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콰과과광!

현란한 빛무리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바닥에서 솟아오른다.

언데들이 하늘을 날고, 땅을 굴렀다.

지네처럼 땅을 재빨리 파고 들지 못하는 언데드들은 공략대의 밥이나 다름없었다.

“이거 힘들겠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 수가 압도적이라는 것.

“1번대 마나 제로입니다. 휴식 교대 하겠습니다!”

“아직 나도 별로 안 찼는데, 일단 교대부터···.”

“2번대 마나 제로! 교대 부탁드립니다!”

퍼부어지는 마법의 수 만큼 마법 계열 클래스들의 마력도 함께 바닥나기 시작했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임재천이 소리쳤다.

“언데드 다수 포진, 마력 물약 사용 허가다!”

그 말에 마법 계열 헌터들이 보조 계열 헌터로부터 마력 포션을 건네받았다.

한 병에 수 억 원이나 하는 고농도 마력 포션이 그들의 손에서 빛났다.

꿀꺽 꿀꺽.

마력 포션을 마시자 그들의 마력이 빠르게 차오름과 동시에 잠시간 스킬의 위력이 상승했다.

“이제 쓸어버리자!”

“팔 한 조각도 남기지 말아!”

공략대는 이전 공략을 통해 언데드가 얼마나 끈질긴 존재인지를 확인했다.

그들에게 있어도 이전 공략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콰과과과과!

다시 한 번 하늘에서 번개와 화염이 쏟아져 내리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세에 언데드들이 녹아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언데드 대열의 끝자락에, 음습한 마력을 뿜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여기 있을 법한 놈이라면···. 언데드 네크로맨서인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시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건 그 뿐이었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언데드로 살려내는데 성공한 저주 받은 네크로맨서.

녀석이 게이트로부터 마력을 빌려오고 있다면 물량전은 승산이 없다.

“크윽, 거기 새잖아. 더 잘 막아!”

“이게 최선이야!”

실제로 전열에 있는 헌터들이 지쳐가는 게 눈에 띄었다.

“어째 지난번 공략보다 더 힘든 것 같은데!”

“확실히···.”

언데드 하나 하나의 공략이 강한 건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몰려드는 놈들을 전부 처리하는 것 또한 까다로웠다.

자칫하면 언데드 무리에 헌터들이 깔릴 지경이었으니.

‘지금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겠어.’

[ 훔친 특성 ‘절대 군주의 폭정’이 발동됩니다. ]

스스슷-!

진영의 발 밑으로 붉은 선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자처럼 뻗어 나간 선들은 각 길드원들의 발 밑에 닿았다.

[ 분노한 농민 : 범위 내 플레이어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100% 향상됩니다. ]

[ 폭정 : 같은 소속 플레이어들이 일시적으로 폭군의 명령을 우선합니다. ]

[ 허기 : 일시적으로 플레이어들이 피곤을 느끼지 않으며 고양감을 획득합니다. ]

[ 가혹한 세금 : 범위 내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일부 폭군이 흡수합니다. ]

폭군의 특성인 절대 군주의 폭정은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기본 효과가 모든 능력치의 1단계 증가였으며, 사용 시에 주어지는 랜덤한 부가효과 세 가지.

‘말도 안되는 효과다.’

멸망의 탑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폭정이 끝난 후에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특성. 그러나 이 특성의 원래 소유자 강산범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길드 마스터의 자리까지 올랐다.

어찌되었든 사기급 스킬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갑자기 힘이 끓어 오르는데!”

“지금 공격 쏟아 부어!”

임재천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돌아갔다.

경악스런 표정이었다.

‘이진영···. 당신은 도대체···.’

이진영 말고는 없었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언데드와의 접전이 완벽한 까마귀 길드의 우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쏟아지는 언데드 무리를 빠르게 밀어내고 있었다.

진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폭군 특성의 발동에는 제한 시간이 있다.

- 절대 은신

30명의 S급 헌터들에게서 흡수한 능력치를 가지고, 진영이 하늘 높이 뛰어 올랐다.

언데드 파도를 밟으며 쏜살같이 뛰쳐나간 진영은 언데드 네크로맨서의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은신을 풀었다.

스걱-!

“!”

시퍼렇게 마력이 서린 칼날이 네크로맨서의 목을 베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데드는 목숨이 질기다.

촤자자자작!

진영의 연격이 순식간에 네크로맨서를 도륙냈다.

어느 정도까지 약해지자, 일격 스킬이 터지며 네크로맨서가 목숨을 잃었다.

“언데드들의 기세가 꺾였다!”

“계속 전진해!”

“좋았어!”

공략대는 순식간에 언데드들을 제거했다.

벌레떼처럼 들끓던 녀석들이 모두 사라지고 휑한 공동묘지만이 남았다.

드드드드···. 쿠궁!

동시에 4번째 관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영이 이 때를 놓칠세라 소리쳤다.

헌터들도 마침 기세가 올라 있을 때였고, 특성에 따라 플레이어들은 흥분에 있는 상태였다.

“계속해서 가시죠!”

[ ‘폭정’의 효과가 범위 내 플레이어들에게 적용됩니다. ]

[ 플레이어들이 당신의 말을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

“가자!”

“움직여! 쉴 틈이 없어!”

“다음 관문으로 넘어간다!”

임재천 또한 이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이진영이 만들어 준 기회 중 하나였으므로.

“대체 어떻게 하신거에요?”

진영의 뒤를 유수아가 따랐다.

* * *

4관문 맹수들의 둥지 또한 기세를 몰아 클리어했다. 맹수들은 공격력은 좋아도 재생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루만에 녀석들의 우두머리로 세워진 중간 보스 몹을 처리하니 금세였다.

“하아, 방금 전까지 우리가 왜 그랬던거지?”

“미친 듯이 싸우고 싶던데.”

“결과가 좋으니 괜찮은 거 아니야?”

헌터들은 5관문을 넘어가기 전 휴식을 취하며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S급 게이트 공략이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

진영을 호위하던 유수아가 말했다.

“진영씨, 아까 언데드 파도 끝에 있는 마수를 처리한 거. 저 봤어요.”

“잘 보셨습니다.”

“그게 끝인가요.”

“네.”

유수아는 확실히 호위로 두기 아까울만큼 강자였다.

진영의 움직임을 눈치 챈 사람은 여기 30명 중에 임재천과 유수아가 유일했으니.

“그리고 갑자기 공략대의 힘이 솟은 거. 그것도 진영씨가 한거죠?”

“그건 모르는 게 이상한 거죠.”

“다들 누가 했는지는 모르는 눈치던데요. 근데 대체 어떻게 하신거에요? 회귀자 클래스에 그런 스킬은 없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마치···.”

너무 눈썰미가 좋아도 탓이다.

[ 이계의 감시자가 유수아의 눈썰미를 주시합니다. ]

“헌터킹 길드장 폭군 강산범의 스킬하고 비슷했어요. 대체 멸망의 탑에는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 있길래······.”

[ 이계의 근원이 유수아의 반쯤 정답에 미소짓습니다. ]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특성을 훔친다는 이야기는 애초부터 별개의 이야기다.

클래스는 1인당 하나.

진영이 사실은 회귀자가 아니라 도둑 클래스라는 건 닿을 수 없는 논리의 비약이었다.

“자, 다들 휴식도 어느 정도 취한 것 같으니 간단한 브리핑 하나만 하고 5관문으로 들어가자.”

모든 이목이 임재천에게 집중 되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보스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관문은 몸풀기에 지나지 않았다.

동료가 세 명이나 목숨을 잃고도,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보스.

임재천은 진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진영씨,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5관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덜그럭, 덜그럭.

듣는 것만으로 공포감을 되새기는 철갑의 이음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공포에 질린 시선이 5관문을 향했다.

“도대체 왜···?”

“저게 왜 저기에···?”

보스가 관문을 자신의 발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철컥.

자리에 멈춰 선 전신 갑주의 기사가 새빨간 검을 들어 올렸다.

슥-.

그들이 봐왔던 어떠한 검술보다 유려하고, 신속한 움직임.

붉은 검의 끝부분이 날카롭게 빛났다.

[ 보스가 지정 장소를 이탈해, 해당 관문을 보스 스테이지화 합니다. ]

새파랬던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 아래로 검은 갑주를 뒤집어쓴 기사가 검을 뻗었다.

경악하는 길드원들 사이로 오직 진영만이 담담하게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오히려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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