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80화 (80/152)
  • 이계 존재의 무장(1)

    공략대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앞서 일어났던 실패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공략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애시당초 S급 길드의 공략 실패 따위 예상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의 각오는 더욱 진중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어찌어찌 틀어막았지만, 이 다음 실패는 용납되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회귀자 이진영의 방문은 우연에 가까웠다. 흥미 본위의 만남이 까마귀 길드의 사활을 건 게이트 공략으로 이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진영은 진짜 회귀자다. 17층보다 더 높은 곳에서 왔을 수도 있다.’

    게이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임재천은 이진영을 주시했다.

    던전을 확인하는 그의 시선부터, 전투 시의 그의 행동까지.

    ‘보통이 아니야.’

    까마귀 길드를 이끌어 온 임재천의 통찰력은 상당히 정확했다.

    ‘유수아가 호위하기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어. 그러면서도 생길 수 있는 빈틈을 정확하게 막아선다.’

    지금쯤이면 유수아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유는 정확하게 몰라도 평소보다 전투가 더욱 편해졌다는 것을.

    겉보기에 이진영은 호위를 받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틈을 없애 유수아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1차 관문을 통과하고 임재천이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휴식.”

    휴식이라는 말에 보초를 서는 몇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긴장을 풀었다.

    “휴, 그래도 한 번 공략에 나섰던 게이트라 그런지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왔네요.”

    “난 그게 오히려 씁쓸해.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걸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왔으니까.”

    임재천은 길드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웃음을 삼켰다.

    “쉽게 오고, 어렵게 오고 그런게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마지막 관문에 있는 보스지.”

    이곳 특 S급 게이트의 이름은 ‘버림받은 성지’.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종류의 마수가 등장하고, 5번째 관문에 가서는 검은 무장을 한 보스가 등장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라 칭송받는 까마귀 길드가 보스 하나에 의해서 무너졌다.

    “이번에는 작전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거, 회귀자라는 분도 있고요.”

    문제는 작전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였다.

    그걸 알고 있는 것은 이진영과 임재천 뿐이었다.

    ‘결국에는 이진영이 자신과 보스가 1대1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달라는 건데···.’

    겨우 그걸로 해결이 되는가? 솔직히 확신이 없었다. 이진영이 실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만큼 마주했던 보스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니 사실 어쩔 수 없지만.’

    이진영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보스를 직접 대면하는 이진영은 실패할 시에 목숨을 잃을 테니까.

    어떤 사기꾼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실패할 미래라면 걸어봐서 나쁠 일 없지.’

    15분 간의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공략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트 붕괴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빠르게 움직여야했다.

    * * *

    이진영은 공략대의 후미에서 움직였다.

    이 던전의 특징상, 배후에서 적이 출현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 회귀자라고 하셨나?”

    30명 가량 되는 공략대가 줄지어가던 와중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수염이 짙은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있을 미래도 잘 알겠네? 우리가 이 공략에 실패하나 성공하나?”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길드장만 알고 있다.

    이야기를 들은 유수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길드장님께서 그런 질문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수아야, 너는 안 궁금해?”

    “그거야 저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참고 있었거든요.”

    “뭐, 그거 하나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봐 회귀자 친구. 말 좀 해 주라고.”

    유수아도 궁금하기는한지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딴 곳을 바라보면서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게 듣고 싶어하는 모양새.

    “제가 있으니까 성공합니다.”

    “그 말은 그쪽이 없으면 우리가 실패한다는 말인가?”

    “글쎄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재미없기는. 그러면 앞으로 오를 주식 몇 개만 추천해 줘. 그것도 안 되나?”

    진영이 대답 대신 웃기만하자 남성이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유수아도 아닌 척하지만 어깨가 슬쩍 떨어졌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슬슬 마수가 나올 때가 됐군.”

    공략대는 2관문 초입을 지나, 마수들이 등장하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한 번 공략했었지만, 바깥에서 재정비 시간을 가지는 사이 마수들이 다시 생겨났다.

    보스를 잡지 않는 이상 게이트는 끝나지 않는 법이다.

    쿠구구구···.

    “전투 준비.”

    지면 아래 숨어 서서히 다가오는 붉은 지네들을 확인한 공략대가 대형을 갖추었다.

    파악!

    땅을 뚫고 올라온 지네 수 십 마리가 전열의 헌터들을 습격했다.

    “업그레이드 디펜스!”

    카앙!

    지네의 이빨이 전열에 있는 탱커들의 방패에 부딪히며 튕겨져 나갔다.

    “프로텍트 실드!”

    연이어 달려 오는 지네들의 공격에 탱커들이 지칠 무렵, 후열에서 실드가 걸렸다.

    “하이퍼 어그로!”

    “액티브 하이 오오라!”

    지네들의 공격이 조금도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다리에 내리뻗은 탱커들의 두 다리는 나무처럼 단단히 박혀 있었다.

    “헬 파이어!”

    “어스 크래쉬!”

    “스톰 브레스!”

    탱커들이 앞에서 버티는 동안 준비된 다량의 마법이 순식간에 터져 올랐다.

    콰과과과!

    불도저로 땅을 밀듯, 혼합된 마법이 지네들이 파고든 땅을 사정없이 파헤쳤다.

    - 키에에엑!

    화염과 전기에 휩싸인 지네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새까맣게 타올랐다.

    S급 헌터들로만 구성된 국내 최고의 길드다운 조직력이었다.

    “이 놈이 어딜!”

    공격을 피해 중열로 숨어든 마수들을 검술 계열 클래스의 헌터들이 베어 넘겼다.

    예외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후열로 한 마리 갑니다!”

    고고고고-!

    땅을 파고들며 빠른 속도로 근접하는 붉은 지네 한 마리.

    “나한테 맡기라고!”

    진영과 말을 나눴던 남성이 망치를 꺼내 들고 외쳤다.

    육중한 망치가 곧바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콰아앙!

    충격과 함께 땅을 파고 움직이던 지네의 움직임이 멎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진영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는 간단하지. 편하게 있으라고.”

    그러나 진영은 남성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파악-!

    그와 동시에 땅속 깊이 숨어들었던 지네가 솟아올라 남자의 목을 노렸다.

    ‘학습이라도 한건가.’

    지네는 땅이 남자의 공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공격받는 순간 땅속으로 기척을 감췄다.

    자그마한 기척이지만 진영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고형 삼촌!”

    놀란 유수아가 급히 움직였지만,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미리 단검을 꺼내 놓은 진영만이 막아낼 수 있는 공격.

    스걱-!

    지네의 독 이빨이 남자의 목에 닿기 직전.

    진영의 단검이 녀석의 몸뚱아리를 베어냈다.

    “고, 고맙네.”

    “휴···. 진영씨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감입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놈은 분명히 남자의 공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임재천씨, 이 녀석들 공략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

    파바바박!

    진영이 소리친 그때였다.

    공략대가 쓰러뜨렸다고 생각한 녀석들은 미끼에 불과했다.

    공격을 피해 땅 깊이 숨어 있었던 수십 마리의 지네들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예외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게 까마귀 길드의 미덕이라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으아악!”

    “크윽!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아!”

    “환자들은 독이 퍼지지 않도록 행동을 멈추고, 치유 계열 헌터는 해독에 나선다. 나머지는 전투 속행!”

    역시나 임재천은 침착했다.

    그러나 전투의 양상은 확실히 바뀌었다.

    공략대 안을 이리저리 파고드는 지네들 탓에 싸움은 난전으로 변했다.

    “진영씨, 조심하세요!”

    피슉-!

    유수아가 던진 단검이 지네를 꿰뚫었다. 진영의 호위가 임무인 만큼 그녀는 진영의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거기 서 있으세요!”

    피슈슉-!

    진영이 움직이기도 전에 지네의 머리통에 단검이 꽂혔다. 물론 한 번에 지네를 죽일만한 위력은 아니었다.

    단검을 털어낸 지네가 곧바로 땅으로 들어갔다.

    “계속 움직이시면 지키기가 힘들어요!”

    “······.”

    [ 이계의 근원이 유수아의 노력을 가상해 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그녀의 착각에 웃음을 머금습니다. ]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이계의 감시자가 그녀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음을 지적합니다. ]

    유수아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녀의 공격과 방어는 빨라지고 정교해졌다.

    극도로 미미한 정도이기에 그걸 눈치채는 건 진영 정도였지만.

    ‘이 움직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얼굴을 알았다면 금세 떠올릴 수 있었겠지만, 유수아는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움직임만이 묘하게 익숙할 뿐이었다.

    ‘안되겠어. 안 떠오르는군.’

    지금 당장은 전투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파악-!

    “크윽, 해독 부탁한다!”

    “오른쪽으로 온다!”

    “여기도 있어!”

    바닥으로 숨었다가, 뛰어오르고, 섰다가 기었다가 정신이 없을 정도의 기가 막힌 난전.

    진영은 결심했다.

    ‘이제 고작 2관문이야. 여기서 공략대의 힘을 많이 소모시켜선 안된다.’

    진영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계속 진영을 보호하던 유수아가 소리쳤다.

    “위험해요, 진영씨!”

    진영의 실력을 제대로 본 적 없는 그녀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진영을 호위하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 약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그녀의 걱정은 합당했다.

    “진영씨! 움직이시면 안되요! 호위하기가 어렵···.”

    그러나 다음 순간 유수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촤악! 촤악! 촤악!

    [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마주해 표식이 활성화 됩니다. ]

    [ 표식이 있는 적들에게 일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

    진영의 단검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지나치면, 그 자리에 있던 지네가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길드원들이 고전하며 싸우고 있는 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촤악! 촤악!

    유수아의 눈으로는 검의 궤적을 쫓는 게 고작이었다.

    그저 길드원의 사이를 지나갈 뿐인데, 그리 강하게 휘두르는 것도 아닌데 수십 마리의 지네가 몸을 비틀며 찢어진다.

    잠시 후,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길드원들이 점차 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네가···. 다 죽어있네?”

    “고형아, 니가 다 잡았니?”

    “저는 아파서 누워있었는데요? 길드장님 아닐까요?”

    어느새 진영은 다시 공략대의 맨 후열에 서 있었다.

    입을 벌린 유수아가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기···. 왜, 왜 말 안했어요?”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영을 지켜주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던 자신이 창피한 모양.

    “뭘요?”

    “그 쪽 엄청 강하잖아요···. 난 그것도 모르고···.”

    “유수아씨도 강하시던데요.”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인원들은 진영의 움직임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전투와 동시에 진영의 움직임도 잡아낼 정도로 유수아는 강하다.

    그리고 임재천도.

    임재천의 시선이 진영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자는 심정이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냥 괴물이었어.’

    공략할 수 있다는 진짜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감상에 젖어 있을 순 없었다.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3개나 있었으니까.

    “전투가 끝났으니, 다시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움직이도록 하자.”

    임재천은 곧바로 진영이 있는 후열을 향해 다가갔다.

    근처의 시선이 모두 임재천과 진영에게로 모였다.

    “진영씨, 말씀 좀 나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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