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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79화 (79/152)

헌터와 시프(5)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자신을 까마귀 길드라고 소개하자, 남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헌터킹 길드의 고승윤이라고 합니다.”

강압적인 태세는 어디가고 고분고분 자신의 소속까지 이야기 한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넙죽 엎드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할까요? 원하시면 감옥에서 10년도 썩게 해드릴 수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까마귀 길드에서 파견된 호위, 유수아의 말에 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사과했다.

진영이 둘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차는 제가 다른 곳에 대고 가겠습니다.”

남자는 부리나케 자신의 우그러진 외제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수아가 그런 남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면 알아 들었을 거에요. 헌터킹 놈들은 힘 차이가 난다는 걸 알면 꽁무니를 빼거든요. 근처 게이트를 공략하러 온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그보다 호위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저는 저희 가족들의 신변보호를 요청했었는데요.”

그 말에 유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족 분들의 신변 보호도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별개로 이진영님을 호위하기 위해서 온 호위고요. S급 게이트 공략 이전까지 무슨 일이 생겨선 안 되잖아요.”

헌터들의 위계 질서는 멸망의 탑과는 다르다.

철저하게 길드 위주로 돌아가는 바깥에서 길드의 순위는 곳 힘의 순위.

‘헌터킹이면 그럴만도하지···.’

헌터킹은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힘에 집착하는 놈들이었다.

실제로 헌터들은 자신의 강한 힘 때문에, 일반인들 앞에서 갑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멸망의 탑에서야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만나기 힘들다지만, 바깥에서 일반인은 그들보다 약자였으니.

“그러면 호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수아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랑블루의 민아영과 비견 되거나 그 이상일 정도.

그 뿐만 아니라 가진 능력치 또한 뛰어났다.

‘이 정도 헌터를 호위로 붙여줬다는 건···.’

그만큼 까마귀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었다.

‘내일 있을 공략이 실패하는 일은 없겠어.’

게이트에 관한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날 차례였다.

* * *

약 10년. 그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은 상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집 현관 비밀번호를 까먹어, 초인종을 누르자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빠야? 엄마! 오빠, 돌아왔어!”

“정말이니?”

가족들이 보기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멸망의 탑에 대한 정보는 정부와 협회에서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동시에 탑 자체에서 내부의 정보를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금언’의 제약이 걸려 있기도 했고.

‘당연하지만 달라진 게 없네.’

가족들은 진영을 훈련소에 보낸 기분 정도가 아니었을까.

“거기 서서 뭐하니? 어서 들어오렴.”

“아빠, 안 나오고 뭐해! 오빠, 이제 헌터 된 거야?”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진영은 담담했다.

담담해질 수 밖에 없었다.

멸망의 탑이 공략되지 않는 이상, 세계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에.

“들어갈게요. 모두 잘 지내셨죠?”

“오빠, 말투가 왜 그래? 3주 들어갔다 나오더니, 철들었나보네?”

“이게 혼날라고······.”

5살 터울 여동생, 어머니와 아버지.

멸망의 탑에서 그리웠던 가족들을 만나니 다시금 각오가 되새겨지는 것 같았다.

“여기 오래 있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멸망의 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거든요.”

“다시?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니?”

“거기 있는 클랜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랑블루라고···. 아마 아실 거예요.”

“탑에서 제일 큰 클랜이잖아? 근데, 그럴 거면 그냥 나와서 헌터하면 안 돼?”

진영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아이템 주머니를 꺼냈다.

비밀방에서 얻었던 보석류를 늘어놓자, 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 이게 다 뭐니?”

“제가 멸망의 탑에서 얻은 보물이에요. 탑에서는 쓸 일이 없으니까 드리고 가려구요.”

“우, 우리 부자 된거야?”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정말 가야하는 거니?”

마음 같아서는 바깥에서 헌터 생활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두 눈으로 세계가 스러져 가는 것을 보지만 않았더라도.

문명은 쇠퇴하고, 마수들은 인간을 노예와 식량으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인류는 멸망하고 남은 것은 인간이 없는 지옥 뿐.

멸망의 탑 위에서 바라본 바깥은 그랬다.

그런 미래가 찾아오게 둘 순 없었다.

“결심한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구나.”

“하여간 오빠 고집하나는 알아줘야한다니까.”

“내가 고집이 셌었나?”

“그걸 몰라? 멸망의 탑 들어가기 전만 해도···.”

진영은 어머니가 깎아주신 과일을 입에 넣으며,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깥에서 멸망의 탑은 그리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한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가족의 걱정도 생각보다 덜 해 다행이었다.

“와, 오빠 멸망의 탑 갔다 오더니 사람이 변했네.”

“진영이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줄이야.”

진영은 S급 게이트 공략 비용이 들어올 계좌와 비밀번호도 가족에게 알려줬다.

신변 보호에 관한 것도 이야기해 두었다.

멸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족들은 큰일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 * *

해가 질 무렵 진영은 집을 빠져나왔다. 바깥에는 유수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헌터이다보니, 집 안에서의 말을 다 들었는지 표정이 묘했다.

“그걸로 되겠어요?”

“어떤 걸 말입니까?”

“헌터, 아니 플레이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말하지 않아도 되겠냐고요.”

굳이 가족들을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첫번째고.

“저는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죠.”

그게 두번째였다.

돌아오지 못할 일 따위는 없다.

“그런가요···.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실 거에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유수아가 화제를 바꿨다.

바깥에 나와 있을 때의 계획은 이미 세워뒀다.

“서울에 있는 헌터킹 길드의 길드장을 만나러 갈 겁니다.”

“네? 설마 아까 그것 때문에 화나신건가요?”

“사람을 너무 옹졸하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정확히는 얼굴만 보면 됩니다. 운전 부탁드리죠.”

“아, 네.”

유수아가 진영이 빌려 온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서울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헌터킹 길드는 무력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전투 길드이다.

길드로서의 의무나, 약자를 지키는데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추구하는 질서를 지키는 데에만 관심이 많은 편.

특히 그들의 수장 ‘폭군 강산범’은 행동이 거침 없기로 유명했다.

바깥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던 진영조차 알만한 사람이니.

“강산범씨는 유명 술집에 있다고 하네요.”

잠시 전화 몇 통을 돌리던 유수아가 진영에게 말했다.

까마귀 길드의 정보력은 우수했다. 멸망의 탑보다 제한 되는 게 없어서인지 조직력도 한 수 위였다.

“그런데,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거죠? 막 싸움을 거신다거나 하면 저도 못 도와드려요. 아니 호위는 하겠지만 도움이 안될 거에요. 그 사람 무력으로만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할지도 몰라요.”

“저를 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싸움을 걸기는 왜 걸어요.”

진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 시내 유명 술집,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거대한 덩치가 눈에 띄었다.

두툼한 근육 위에 새겨진 타투와 짧은 머리. 풍기는 기운만으로 그가 헌터킹의 수장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응?”

진영이 짧게 쳐다만 보았는데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강산범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리고 지인들과 술을 마시는데 집중했다.

연예인 이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길드장임에도 강산범은 개의치 않고 술을 넘겼다.

개중에는 싸인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슥슥 싸인을 해주었다.

“유수아씨는 술 잘 드십니까.”

“호위 임무 중에는 안마셔요.”

“잘 됐네요. 마실 생각 없었거든요.”

“그게 무슨···.”

애초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자리를 잡기도 어려웠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진영은 손을 뻗었다.

‘강산범. 특성 좀 빌려 가마.’

정확히는 훔쳐간다는 게 맞았지만.

진영의 손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솟아나고.

[ 대상의 특성을 훔치는데 성공했습니다. ]

특성은 진영의 손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번뜩.

강산범의 고개가 정확히 진영이 있었던 자리를 향했다.

무언가를 느낀 강산범의 눈이 이글거렸지만, 이내 다시 술자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초직감 계열 스킬인가.’

재빠르게 먼저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들켰을 것이다.

영문을 모른 채 인파 사이로 끌어당겨진 유수아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갑자기 숨으시는거죠?”

“그런 게 있습니다.”

이걸로 내일 게이트 공략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 * *

탑이 공략되고, 특수 게이트가 등장하는 것까지는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것 같다.

‘게이트가 생성되는 건 랜덤이 아니란 의미군.’

까마귀 길드가 공략에 실패한 게이트는, 회귀 전 진영이 들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키의 세 배가 넘는 커다란 게이트.

게이트는 불길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유수아씨는 언제까지 호위하시는 겁니까?”

“저요?”

이미 주변에는 까마귀 길드의 사람들로 득실득실한 상태.

더 이상의 호위는 필요 없음에도 유수아는 진영을 따라다녔다.

“당연히 S급 게이트를 공략할 때까지죠.”

“어쩐지···.”

호위치고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까마귀 길드에서는 진영에게 생길 수 있는 불미스런 일은 방지해야 했다.

그렇다면 아예 게이트까지 들어갈 수 있는 호위를 붙이는 게 편했다.

아무래도 까마귀 길드장 임재천은 작정한 모양이었다.

“다들 모여라! 진영씨도 와주시죠.”

임재천이 소리치자 까마귀 길드원들이 일사 불란하게 움직였다.

길드에서 지급한 장비를 걸친 그들의 모습이 마치 까마귀떼를 연상케했다.

“게이트 붕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너희들은 까마귀 길드의 정예 중에 정예. 어제의 실패는 잊어라. 떠나간 동료에 대한 추모는 잠시만 가슴에 묻어둬라. 게이트 공략이 그 녀석들 가는 길을 위한 최고의 선물일테니까. 복수는 제대로 해줘야하지 않겠냐!”

임재천의 연설을 듣는 까마귀 길드원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 최고 전력의 길드.

진영은 바깥의 헌터들을 그저 탑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전장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연설은 길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정비하고, 전략을 다시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공략에는 멸망의 탑에서 온 회귀자께서 함께하신다.”

“이진영이라고 합니다.”

“회귀자?”

멸망의 탑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진영의 이름이 생소할 법했다.

“준비가 끝났으면 들어가자! 붕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옙!”

임재천의 말에 길드원들이 우렁찬 소리로 대답했다.

S급 게이트 재공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저희도 들어가시죠.”

유수아의 안내에 따라 진영이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들이는 순간.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특수 게이트의 존재에 흥미를 느낍니다. ]

[ 이계의 감시자가 게이트의 난이도에 경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

지금껏 조용했던 메시지가 쏟아졌다.

진영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여기는···.’

참 익숙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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