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와 시프(4)
이진영.
멸망의 탑 15층 공략의 포문을 연 사내이자, 17층을 공략한 실력자.
동시에 미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회귀자.
그것이 까마귀 길드 임재천이 알고 있는 진영에 대한 정보였다.
‘아직까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대부분 행적이 그랑블루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공식적인 공략 자리에 진영이 빠졌던 적은 없다.
임재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번 게이트 공략까지는 신뢰해 볼 만해.’
이진영은 17층에서 회귀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도 당연.
‘게이트 공략에 이진영의 정보가 꼭 필요하다.’
처음에는 흥미 본위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에게서 얻어낼 게 많았다.
끼익-.
임재천은 마음을 굳히고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푹신한 소파에 이진영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물론 임재천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 등장한 S급 게이트의 공략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다.
“길드 창고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군요.”
“네, 희귀한 아이템이 많이 있던데요. 멸망의 탑하고 다른 아이템들이 참 많네요.”
“멸망의 탑에서 나오는 것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닌 것들뿐입니다.”
능력치가 좋은 아이템들은 전부 멸망의 탑에서 나온다.
바깥의 길드가 탑 내부의 클랜에 대해 의존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상황이 급하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등장한 S급 게이트. 공략법을 알고 계시다고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미래에서 까마귀 길드는 게이트 공략에 실패합니다.”
이번 공략은 실패로 돌아간다.
게이트가 등장한 지역 일대는 전부 폐쇄 상태가 되고, 몬스터가 들끓는 땅이 되고 만다.
그렇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멸망의 탑에 신화준이 있었다면, 바깥에는 임재천이 있었다.
나름대로 폐쇄 지역을 잘 관리하면서, 사람들에게 게이트 공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진영은 자선 봉사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임재천과의 친분을 쌓아두고, 적당한 거래를 튼다.’
이후 그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공략법을 말씀 드리기 전에, 저도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이번 S급 게이트의 공략에 수백 억 가량의 투자를 유치 받은 상태.
실패한다고 길드 자체가 가라앉는 일은 없겠지만, 치명적인 타격은 피할 수 없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들어봐야겠지만, 진영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제 가족에 대한 신변 보호와 어떤 게이트 하나에 대한 권리 양도입니다.”
“흠···. 신변 보호 쪽은 좋습니다. 다만, 게이트에 대한 권리 양도 부분이 걸리는군요.”
현재 게이트들은 헌터 협회 아래 게이트들의 입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이트 공략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된 지금, 무턱대고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어떤 게이트입니까?”
“얼마 뒤 등장할 공략 불가 게이트입니다. 특수 게이트라 붕괴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게이트가 있단 말입니까?”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뒤에는 다른 길드에서 입찰하지 않을 게이트입니다. 가격도 쌀 거고요. 까마귀 길드의 이름으로 입찰 받아 권한을 양도해 주신다면, 이번 S급 게이트 공략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임재천이 턱을 괴고서 생각에 잠겼다.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한다.
임재천이 길드의 수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
침묵이 이어졌고, 진영은 기꺼이 이 침묵을 지켰다.
잠시 뒤 임재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습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죠.”
* * *
“진심이십니까?”
진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SS급 헌터 임재천을 놀라게 했다.
“네, 진심입니다.”
“잠시만요, 이러면 이야기가 또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임재천은 계산기를 꺼내 숫자를 두들겼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직접 공략에 참여할 줄이야···.”
예상된 반응이였다.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부담을 안고 가겠다는 의미다.
회귀자인 진영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터였는데, 그 지옥을 직접 들어가겠다니.
“제가 가지 않으면 공략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난공불락.
미래에서도 게이트 공략은 실패한다. 그런 곳의 공략법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진영이 가진 스틸 스킬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을 뿐.
진영의 진짜 목적은 이후 등장할 EX급 던전인 관리자의 무덤에 있다.
‘그 곳에 있는 관리자의 열쇠.’
그러려면 진영 혼자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상위 게이트의 입찰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특수 S급 게이트 공략을 통해 EX급 게이트의 권한을 손에 넣고, 친분을 쌓는다.
동시에 회귀자 이진영의 명성이 높힌다.
세상이 진영을 회귀자라고 생각할수록, 숨겨진 도둑 이진영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커지므로.
‘멸망의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연신 계산기를 두들기던 임재천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공략에 성공했을 시 저희 까마귀 길드에서 드릴 수 있는 보수는 24억 입니다. 이미 한 번 공략에 실패한지라, 이상으로 더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군요.”
그는 계산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진영은 생각치도 않은 보수에 대해 먼저 제시해왔다.
‘24억이라.’
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탑에서 나와 코인 대신, 현금을 제시 받자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들고 다니는 아이템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푼 돈에 불과했지만, 생전 받아 본 적 없는 액수인 건 맞았다.
진영은 곧바로 바깥으로 나오는 대신 멸망의 탑에서 힘을 길렀다.
D급 클래스 도둑과 빈약한 능력치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봤자, 위험한 게이트 공략이 계속 될 뿐이었다.
헌터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세계 멸망인 아포칼립스가 찾아왔지.’
24억이든, 100억이든 국가가 없고 사회가 없다면 무의미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탑을 오르면서도 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막아내겠다.’
세계 멸망 자체를 막아낸다면, 정상적인 세계가 계속 된다면 돈이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공략대가 준비 되는 대로 바로 저도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출발은 내일 오전이 될 겁니다. 사전 준비에 대한 정보는 미리 전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공략법이라고 알려 준 것은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진영이 직접 게이트에 들어가 공략해내는 일이었다.
“아,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임재천이 미간을 찌푸린 채 진영을 바라보았다.
“최근 15층이 공략되면서 상위 게이트의 출현과 변종 게이트가 늘어났는데, 혹시 이에 관한 의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가속화.
진영이 무엇보다 빨리 탑을 공략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탑을 공략할수록 바깥 세계의 멸망은 가속화 된다.
한국이 15층을 공략하자, 그것을 신호로 다른 국가에서도 속속들이 15층을 공략해내고 있었다.
‘모든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한곳에 모이는 20층에 도달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20층 월드 에이리어.
세계 곳곳에 솟은 멸망의 탑을 통해 모든 나라의 플레이어가 모이면 가속화는 빨라지고, 바깥의 길드들의 역량은 부족해진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바깥 길드의 역량을 키워놓을 필요도 있어.’
해야할 일은 많았다.
진영은 구태여 미래의 정보를 숨기지 않았다.
‘임재천 또한 내 사람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임재천은 아포칼립스에서도 리더쉽을 발휘한 사람이었다.
정의롭지는 않지만, 계산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므로.
“멸망의 탑 공략에 따른 가속화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진영의 눈빛이 깊어졌다.
* * *
탑 바깥의 공기는 신선했다.
까마귀 길드의 건물을 나온 진영이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S급 게이트의 공략은 내일이었다.
바깥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간단하게 가족들을 만나고, 보석을 전달하고 내일 있을 게이트 공략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차를 렌트 해 줘서 편하게 왔군.’
오래 된 빌라.
거의 10년만에 마주한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누가 차에서 내리더니 말을 걸어왔다.
“어이, 그 자리 내가 대야 되겠는데. 차 빼.”
감상에 잠겨 있던 진영이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언제부터 주차장에 전용 자리가 있었냐.”
“반말? 이 새끼 막나오네.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진영은 사내의 얼굴부터 발끝까지를 한 번 싹 훑었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타고 온 외제차는 그의 돈벌이가 꽤나 좋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
진영이 그를 무시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터억.
그가 자신의 손으로 진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헌터군.’
움켜쥐는 손의 힘이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돈이 많은 것도 헌터라면 이해가 되는 부분.
진영이 멈춰 서 있는 걸 자신의 힘 때문이라 착각한 남자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겠네. 차 빼시고, 내 차 주차해 놔.”
남자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진영에게 휙 던졌다.
아니, 던지려고 했다.
“뭐야, 열쇠가 어디갔지?”
“어디 길드 소속이지? 근처에 게이트라도 열렸나?”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열쇠를 찾던 헌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덩달아 진영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설마 이 놈이 우리 가족 호위를 맡은 건 아니겠지.’
하는 짓은 영락 없는 양아치였다.
임재천이 이런 사람을 보냈을 거란 생각 되지 않는데···.
“그걸 니가 알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데?”
남자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진영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깥은 멸망의 탑 내부와는 다르다.
엄연히 법이 존재하고, 규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암묵적인 예외는 있는 법.
헌터라는 존재들은 게이트를 공략하고,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다.
막상 재판에 들어가도, 그들은 쉽게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헌터는 건들여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회의 특권층이었다.
사람들이 헌터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남자는 다짜고짜 진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휘익.
주먹은 허공을 스쳤다.
“피해? 이 새끼가···.”
퍼억!
성질이 난 남자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남자의 말대로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응?”
진영의 단단한 복부에 남자의 주먹이 힘없이 막혔다.
남자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찰나였다.
콰앙!
돌연 뛰쳐나온 누군가가 남자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차에 쳐박혔다.
그의 외제 차가 볼품없게 우그러졌다.
“괜찮으세요? 까마귀 길드에서 파견 된 호위 유수아라고 합니다.”
“까, 까마귀···?”
까마귀 길드라는 말에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진영은 저벅 저벅,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 넌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