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와 시프(3)
그제야 여성 플레이어가 기절한 레드 리버 간부와 진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 이 사람은···?”
“레드 리버의 간부입니다.”
그 말에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면 다행이네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이진영씨.”
여성은 부축하고 있던 레드 리버 간부를 살포시 근처에 놓았다.
어디가 다행이라는 건지.
레드 리버 또한 멸망의 탑 제 2위의 클랜.
그러나 진영의 앞에 선 남녀 둘의 눈 앞에 긴장이나, 실수에 대한 후회라고는 전혀 없었다.
“저희는 까마귀 길드 산하의 플레이어들입니다. 이 곰 같은 놈은 김윤무고 저는 김서윤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멸망의 탑 바깥, 대한민국 1위의 길드에서 온 자들이었으므로.
바깥과 멸망의 탑 내부에서 각성자들과 그 집단을 부르는 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멸망의 탑 바깥에선 헌터와 길드, 내부에서는 플레이어와 클랜으로.
현 시점에서는 길드의 유명세가 클랜에 비해 높고, 실제로 실력자도 많이 포진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멸망의 탑에 머물러서 좋을 건 없으니까.’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돈이 급하다거나 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탑 바깥으로 나가 헌터가 되길 소망한다.
진영 앞의 두 사람은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점에 있는 까마귀 길드의 일원.
‘김윤무와 김서윤···.’
잘 알고 있는 사람 둘이었다. 아포칼립스가 가속화 된 이후, 멸망의 탑에서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사람들이었지.’
이 둘은 멸망의 탑에 파견 임무를 받은 까마귀 길드의 비밀단체 ‘흑익’에 속해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가.
진영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까마귀 길드의 마스터 임재천, 그의 성격이라면 나에 대해 궁금해해도 이상하지 않지.’
아니나 다를까, 김서윤의 입에서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사정을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동생 놈이 이런 쪽으로는 일머리가 없어서. 저희 마스터께서 이진영씨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신 게 있나 보더군요.”
“거절한다면?”
“그저 가벼운 초대이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절을 상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언제 가면 되죠?”
어차피 탑 밖으로 한 번은 나가야 했다. 1위 길드의 헌터와 친분을 쌓아 나쁠 것은 없다.
물론 그의 의도를 정확히 모르니, 조심할 필요도 있겠지만.
“저희 마스터께서 S급 게이트 공략 일정이 잡혀 있어서요. 3일 뒤 점심 시간 후면 괜찮을겁니다.”
“마침 나갈만한 일이 있어서요. 주소를 주시면 직접 찾아 가죠.”
“네.”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호전적인 김윤무와 달리 김서윤은 똑부러졌다.
‘김윤무와 이야기 했다면 오해할만한 부분도 있었겠지.’
김윤무는 무심한 표정으로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이의 타박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가능하면 오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라면 저희를 계속 보셔야할테니까요.”
그게 그 나름대로의 정중함이었다. 누이가 다시 한 번 그의 정강이를 찼다.
발목을 부여 잡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김서윤을 바라봤다.
“니가 무슨 조직 폭력배도 아니고···. 죄송해요. 하여튼, 오시는 거로 알게요. 까마귀 길드에 연락 넣어 두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서윤은 김윤무를 끌고 사라졌다.
진영은 바닥에 쓰러진 레드 리버 간부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
멸망의 탑 최상위 플레이어 중 하나인 레드 리버 간부를 간단히 제압할 정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레드 리버 간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거죠?”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다 주무셨으면, 돌아가시죠.”
“제가 잠을 잤나요?”
* * *
“다섯 개가 다 모였는데 왜···?”
염태준의 의뢰소.
김지훈 형제와 진영은 모두 모여, 다섯 개의 보물을 늘어놓았다.
전설에 따르면 5가지 보물을 모두 모은 자는 초월의 좌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다섯 개가 모두 모였음에도 무언가 일어날 기색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였다.
“탑이 지금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건가?”
절망스런 염태준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김목성 그 놈은 분명히 영원 불명의 고리를 사용했었는데···.”
“그렇네요. 목성교 본진에서 가져온 자료에도 고리에 대한 능력이 적혀 있었어요.”
여기서는 숨길 것도 없었다.
“보물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보물이 먼저 해방 되어야 해.”
“그렇다면 지금 해방된 보물은 영원 불멸의 고리 하나란 말이야? 젠장, 산 넘어 산이군.”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목성교가 다섯가지 보물을 모두 모은 시점도 20층 언저리였다.
그 정도 시기에 초월자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하는 것부터가 오버 밸런스였다.
‘모든 보물이 해방 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고.’
그 방법은 유령이 알려준대로 이계 존재들의 주시.
그들의 존재가 많아지려면 진영은 눈에 띄는 활약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 활약이라는 게 모호하단 말이지.’
특히 이계 존재의 수 같은 경우에는 훌륭한 아이템을 획득했을 때에 늘어났다.
‘그런 거라면 잘 알고 있다.’
이계의 존재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게임 체인저.
회귀 전에도 소문만 무성하던 아이템.
그리고 그 소문과 함께 사라진 아이템.
진영이 바깥으로 향하려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포칼립스 이전, 사람들은 멸망의 탑 내부와 바깥의 게이트 내부만이 변화한 세상의 주축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실제로는 이 세계 자체가 멸망에 탑에 의해 서서히 좀먹어가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깥에 꽁꽁 숨겨져 있다.
그것도 이 대한민국에 땅에 숨겨져 있다.
장소는 탑 바깥의 사정에 대해서는 그리 잘알고 있지 않은 진영조차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EX급 던전 : 관리자의 무덤’
처음에는 S급인 줄 알았던 그곳은 공략 불가 판정을 받고 EX급이 된다.
신기하게도, 가만히 놔두어도 붕괴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게이트였다.
‘그 곳에서 아이템을 훔쳐 온다.’
지금의 진영으로 공략하는 것은 불가한 난이도.
진영이 노리는 것은 공략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전투가 아닌, 필요한 아이템만을 가지고 나오는 방식.
EX급 도둑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곳에 숨겨진 아이템 ‘관리자의 열쇠.’
회귀 전에도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이계의 존재들이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았다.
진영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염태준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데? 이걸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잖아. 영원불명의 고리는 잘못 사용하면 김목성처럼 미치광이가 되버릴지도 모르는 거고.”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네. 그래도 소원은 이뤘잖아.”
“스읍, 뭐 회귀자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게 아니니까.”
진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염태준은 자신이 원하던 보물을 손에 넣었다. 그 실체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어야 했지만, 이번 회귀에서는 그런식으로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내 꿈은 초월자가 되는 거라고. 그걸 위해서라면 보물을 해방 하는 방법도 알아내겠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술이나 마시러 가자. 꼬맹이 너는 빠지고.”
“제가 꼬맹이로 보이세요?”
“미성년자면 꼬맹이지 뭐야.”
“가서 음료수 마시면 되잖아요.”
염태준과 김지훈의 실랑이를 보던 진영이 고개를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한데, 나는 못갈 것 같아. 1주일 정도 바깥에 나갔다 올 예정이거든.”
그 말에 염태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남은 사람 둘이서 갑시다.”
염태준의 말에 김영훈도 슬쩍 고개를 저었다.
“제가 술을 진짜 못해서, 조금···.”
“······. 그래 혼자 간다. 혼자 가.”
* * *
까마귀 길드의 S급 게이트 공략은 처음에는 순탄했다.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말이다.
“사, 살려줘!”
던전 내부를 울리는 처절한 비명.
그 비명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모두 S급 이상의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심지어 그중 하나는 까마귀 길드의 마스터 임재천이었다.
잘 프로들로 무장된 공략대에서, 작전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자가 나왔다.
퍼억!
보스의 일격에 S급 헌터 하나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일단, 퇴각한다.”
모두를 이끄는 임재천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까마귀 길드가 공략에 실패한다? 대한민국이 실패한다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임재천은 후퇴 명령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눈앞의 적은 강력했다.
“퇴각!”
“대열을 맞춰서 뒤로 빼!”
“주변 잘 보면서 움직여!”
콰앙! 콰앙!
보호 마법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보스의 주먹질이 이어졌다.
마법을 펼친 헌터들이 비틀거리는 사이, 힐러들이 그들의 기력을 회복시켜준다.
‘이런···.’
임재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게이트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안일했어.’
보스는 견고한 무장을 한 인간형 마수.
무장만 어떻게 벗겨낸다면 해볼 만한 틈이 생기겠건만.
‘너무 단단하다.’
S급 딜러들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무장.
화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크악!”
공격대의 빈틈을 노리고 보스가 창을 찔러 넣었다.
녀석은 바깥으로 향하는 게이트까지 따라올 심산이었다.
한 군데가 무너지자 이후 다른 쪽이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신우원, 8번 빈자리 메꿔!”
“알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했다.
임재천은 침착하게 헌터들을 자리에 배치해 공백을 메꿨다.
“텔레포테이션 준비 됐습니다!”
단숨에 게이트 앞으로 갈 수 있는 마법사의 공간이동 마법이 준비되었다.
긴 시전 시간을 가지는 스킬이었지만, 발동만 되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
“원 안으로 모여!”
그렇게 외친 뒤, 임재천은 다가오는 보스의 가슴팍을 향해 자신의 검을 내질렀다.
카앙!
검은 무장에 흠집을 주진 못했지만 보스를 원 밖으로 물러나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금이야!”
“텔레포테이션!”
샤아아아!
구원과도 같은 푸른 빛이 솟구쳐 오르며 공략대를 모두 이동시켰다.
이곳저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살았다!”
“죽는 줄 알았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빠져나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고오오···.
그 자리에는 그대로 게이트가 위치하고 있었다.
공략되지 않은 게이트는 시간이 지나면 붕괴한다.
내부에 있는 마수가 쏟아져 나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임재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실패했다.’
대한민국의 헌터들로 S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사실 모든 길드가 협력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만 그건 꿈 같은 일이었다.
‘해외 길드에 원조 요청을 해야하나.’
그 빌어먹을 갑주만 벗기면, 충분히 해볼만한데.
바보 같은 소리였다. 앞 뒤가 바뀐 소리. 보스와 한 몸과도 같은 갑주를 어떻게 해야 보스를 처치할 수 있는 것이다.
약 3일 간의 공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바깥 게이트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플래쉬가 연신 터져댔지만,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띠링, 띠링.
그 때 전화가 울려왔다.
임재천은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이진영? 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지금은 좀....”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부른 이진영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공략에 실패한 지금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확하고 전화를 끊어 버리려는 찰나,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잠시만요! 알고 있답니다!
“뭐? 알고 있다고? 그게 뭔 소리야.”
- 이진영님께서 S급 게이트 공략법을 알고 있다. 그렇게만 전해 달라시는데요? 그런데 이미 공략 하신 거 아니에요?
"······."
비서라는 놈이 정보가 이렇게 느릴 줄이야. 임재천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일단 거기로 바로 간다고 전해. 그리고 넌 조금있다가 보자.”
17층에서 회귀했다면, 이 게이트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이트를 공략할 찬스가 남아 있다는 의미.
그 때 마지막으로 전화기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리고 저희 길드 장비 창고 좀 구경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괜찮나요?”
“맘대로 하라고 그래!”
S급 게이트 공략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깟 창고 구경이 대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