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76화 (76/152)
  • 헌터와 시프(2)

    “이걸 이렇게 간단히 손에 넣을 줄이야. 운도 좋군.”

    숨겨진 옆 방은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는 방이었다.

    본래 택에 남아 있는 유령 잔당들을 소탕해야 들어 올 수 있는 숨겨진 방이었지만, 유령은 마음껏 벽을 관통할 수 있으니 그런 귀찮은 일을 전부 생략할 수 있었던 셈.

    “승자의 성취.”

    아이템 분류는 벨트다.

    17층 히든 피스 승자의 성취는 1대1 상황에서 모든 능력치를 30% 상승 시킨다.

    레전더리 단검 카른 웨난의 전투시 민첩 스텟 상승 효과와 중첩되면 그 시너지는 엄청날 터.

    ‘이런 히든 피스를 몽땅 착용하고 있었으니, 신화준이 무지막지하게 강했던 것도 당연하지.’

    진영은 차고 있던 벨트와 히든 피스를 교체했다.

    이걸로 진영이 가지게 된 히든 피스는 5층을 제외한 1층부터 17층까지 전부.

    ‘슬슬 바깥에 한 번 다녀 올 때가 되긴했으니, 돈이 될만한 것도 들고 가야겠다.’

    진영은 히든 피스 근처에 널린 보석 몇 개도 주워들었다.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돈을 가지고 있어 나쁠 것이 없다.

    ‘가족들도 잘 지내는지 확인해야하고.’

    멸망 후반기에 진영은 멸망의 탑에 있었고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후반기에 살아남은 건 헌터들 뿐이니, 죽었었다고 보는 게 맞지만.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가족들은 멀쩡히 살아있다.

    돈이 될만한 보석들을 마저 집어넣고, 진영은 비밀방을 빠져나왔다.

    창을 든 남자 신의 석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보물을 얻기만 하면 되겠어.’

    진영은 손에 쥔 뿔피리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부우우-.

    뱃고동 같은 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푸른색의 기운이 주변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신의 조각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 천상의 뿔피리 소리에 감명받은 석상이 자신이 품은 보물을 뱉어냅니다. ]

    부서진 석상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조금 전 석상이 들고 있던 창의 원본.

    타이탄의 창이었다.

    진영은 타이탄의 창을 손에 쥐었다.

    [ 5개의 보물을 모두 획득하셨습니다. ]

    [ 이계의 감시자가 당신에게 보상 이계 스킬 강화석을 제공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 ]

    알림이 난리였다.

    타이탄의 창을 아이템 주머니에 마저 넣은 진영이 주변을 쓰윽 훑었다.

    ‘더 남은 건 없군.’

    보물을 5개 전부 모았지만, 그것만으로 탑에 전해지는 전설을 이뤄낼 수는 없다.

    회귀 전 목성교는 보물을 모두 모았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5개를 모두 한 군데 둔다 한들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답은 이름 없는 유령에게서 들을 수 있겠지.’

    이계의 존재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존재인만큼, 분명히 그녀의 정보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진영은 보물 방을 빠져나와 영체 특성을 해제했다.

    “파트너. 나는 계속해서 탑을 오르겠다.”

    주오령은 어느새 회복을 마친 상태였다.

    “주오령···.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탑 공략에 집착하는 거지?”

    정말로 궁금한 부분이었다.

    자신이야 세계가 멸망하는 미래를 보고 왔다지만, 주오령은 그렇지 않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혹사해가며 탑을 공략해야 할 이유를 생각하기 힘들다.

    주오령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세계가 부서지기 전에, 그 끝에 올라야한다. 다음층에서 기다리지.”

    그 말과 함께 붙잡을 새도 없이 주오령은 다음 층으로 향하는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진영의 눈빛은 깊어져 있었다.

    ‘멸망을 알고 있는 건가?’

    현시점에서 멸망을 알고 있는 건 진영과 소수의 강력한 힘을 가진 세계급 예언가뿐이다.

    그걸 주오령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대체 어떻게?

    그 생각이 이어지려는 찰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대편 복도에서 보스의 공략을 보조했던 공략대였다.

    “형! 17층 공략 축하드려요!”

    “하나 실패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조마조마했는데 진짜 다행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해냈잖아! 진영씨 고생하셨습니다!”

    “진영씨가 다 한 거지, 우리가 한 게 뭐 있어?”

    * * *

    멸망의 탑 바깥.

    세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탑을 빠져나온 플레이어들은 헌터라고 불리며, 세계 곳곳에서 솟아나는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법이다.

    게이트가 등장하고,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일단 한 번 익숙해지고 나면 무감각해진다.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닌 활용해야 할 자원으로 느껴진다.

    대한민국 최상위 길드 까마귀.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그래, 갑자기 17층이 공략 됐다는 말이지. 거기에 포함 된 게 회귀자 이진영이라는 사람이고.”

    멸망까지도 예상하고, 혹시 모를 일까지 철저하게 대비했다.

    이곳의 수장 임재천은 멸망의 탑에서 빠져나온 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난립하던 길드들을 무력으로 통합시키고 대한민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A급 게이트의 수가 140% 증가하고 S급 게이트의 등장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거지.”

    어쩌면 탑은 공략하면 할 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쏟아 낼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탑을 공략하는 일은 봉인을 푸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임재천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이진영이라는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은데.”

    세상의 멸망 따위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만약 멸망한다면, 멸망하는 세계의 정점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탑 내에만 있기는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탑 내에 있는 흑익들을 보내자.”

    까마귀 길드는 탑 내부에 길드원들을 잠입 시켜 놓았는데, 바로 흑익이라고 부르는 비밀 단체였다.

    임재천의 말에 근처에 있던 간부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접속하게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S급 게이트 공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물어? 당연히 내가 직접 가야지.”

    임재천이 자신의 팔을 걷어 붙였다.

    S급 클래스 까마귀 군주.

    바깥에 나온 플레이어들은 같은 등급의 클래스에도 격이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경외를 담아 그런 자들을 SS급 헌터라고 부른다.

    임재천은 명실상부 SS급 헌터였다.

    “갔다 오면 이진영을 볼 수 있게 해 놔. 싸우려는 거 아니니까, 당연히 정중하게 모시고. 내가 얼굴 좀 보자는데 빼지는 않겠지.”

    임재천의 손목에서 푸른 팔찌가 빛을 내었다.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명령을 전달 받은 간부 또한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 영주 하칸델을 쓰러뜨리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답해 드리죠.

    일행이 모두 돌아간 뒤, 진영은 복도에서 다시 이름 없는 유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염태준이 보물 5개를 당장이라도 맞춰보고 싶다며 투덜댔지만, 절차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래···.”

    생각을 정리한 진영이 고개를 들었다.

    일전에 한 플레이어냐는 질문에 유령은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이계 규율의 위반은 존재의 말소기 때문.

    “탑이 품은 보물에 대해서 알고 있나?”

    - 네. 아는데까지는요. 물론 제 생전 기억 때문이 아니라, 탑에 종속되고 나서 얻은 정보이기는 합니다.

    유령은 슬픔을 머금은 채 설명을 이어갔다.

    - 다섯 개의 보물은 해방되어야지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이계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

    그렇다면 자연스레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는 어찌해야하는 질문이 나온다.

    - 지금 이 순간도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겠지요. 당신이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이계 시간축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할수록 모여들겠죠. 그럴수록 나머지 보물이 가지고 있는 힘도 해방 될 것입니다.

    “예컨데, 실력을 보여주라는 말이군.”

    - 맞습니다. 뛰어난 업적, 영웅과 신화급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면 그들의 시선은 모일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선 유령이 중요한 말을 뱉으려는 듯 침묵을 머금었다.

    이윽고 유령은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 멸망의 탑은 모든 이계 시간축을 통틀어 공략 된 적 없기에, 그들은 분명히 당신을 주시할 겁니다.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이계 시간축이라는 건 대체···?”

    [ 이계의 감시자가 유령의 조언이 선을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

    - 그들이 저를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군요. 그래도 이건 알아두시는 게 좋아요.

    이계 시간축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이계의 존재들이 이리 말하는가.

    - 이계 시간축이란 이계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회귀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회귀하며 여러 시간과 가능성들이 생겨나죠. 그들은 멸망의 탑을 공략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 헤매는 겁니다. 그들도 간절히 탑이 공략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대체 왜 이계의 존재들은 탑이 공략 되기를 바라는 건데?”

    - 그들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그들 또한 탑에 종속된 존재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유령은 허공으로 천천히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탑에 종속 되었다? 그게 무슨···.’

    의도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잠시 뒤, 진영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으므로.

    [ 이계의 유령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아하······.”

    잠시 멍하니 메시지창을 바라보던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알아낸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충분했다.

    * * *

    10층 거주 지역으로 돌아온 진영은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점을 돌아다니는 진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 레드 리버의 간부였다.

    “전에 말씀하신 플레이어를 찾아냈습니다. 그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멸망의 탑 커뮤니티를 구성 중입니다. 목성교의 조사는 말씀하셨던 해결사 보내 놨었는데 어째선지 종교가 와해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는···.”

    전에 레드 리버의 부마스터와 했던 약속에 대한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부마스터님한테는 나중에 뵙겠다고 전해주시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잠시만요, 혹시 이진영씨 되십니까?”

    레드 리버의 간부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얼굴 반 쪽에 문신을 새긴 남성 하나가 다가왔다.

    덩치가 있어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

    “누구십니까?”

    레드 리버의 간부가 경계하며 물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인상을 썼다.

    “그 쪽은 볼 일 끝나신 것 같은데, 빨리 갈 길이나 가시죠.”

    “······. 보자보자하니까, 이 놈이.”

    레드 리버의 간부도 한국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상위권이었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화를 내기도 전에.

    뿌득.

    문신 남자의 관절 기술에 허리가 꺾여 그대로 기절했다.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습니다. 따라와주시죠.”

    그가 내뿜는 분위기는 강압적이기 그지 없었다.

    그 때 뒤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뒤질래?”

    뻐억!

    여성은 문신 남자의 뒤통수를 사정 없이 갈긴 뒤, 땅에 쓰러진 레드 리버의 간부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이진영씨? 정신이 드세요?”

    “아니···.”

    “야, 이 미친 새끼야. 정중하게가 뭔지 몰라? 정중이 뭔지 내가 알려줘? 이리 와. 딱 대.”

    문신 남자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여성이 말을 쏟아냈다.

    남자는 폭언을 들으면서도 꿋꿋히 가만히 있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

    "아, 진짜 이거 어떻게 해. 기절을 시켰어....모셔오라고 했는데. 시말서로 끝날 일이 아니야. 이건. 너 이 분 깨어나시면 진짜 두 손 두 발 없어질 때까지 빌 생각해라."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 이진영은 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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