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와 시프(1)
콰아아앙!
가공할 충격이 유령 영주 하칸델을 덮쳤다.
“커허억!”
특성을 빼앗긴 유령 영주 하칸델은 더 이상 영체로서 물리 공격을 회피하지 못한다.
주오령의 주먹을 고스란히 맞은 하칸델이 바닥을 굴렀다.
그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특성을 가지는 것은 플레이어 뿐만이 아니다.
마수나 보스 또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진영이 훔쳐낸 ‘완전 영체’는, 플로어의 보스가 가지고 있던 특성인만큼 가공할 성능을 자랑한다.
보스는 플레이어 여럿을 상대하는 존재.
그만큼 특성의 사기성은 보장되어 있었다.
[ 특성 설명 ]
이름 : 완전 영체
등급 : S
효과 : 물리 면역, 마력 스탯 50% 증가, 부유, 은신, 받는 데미지 감소 40%, 신체 활동에 체력이 소모되지 않음, 신성 계열에 받는 데미지 3배
설명 : 신체가 영체로 변화합니다.
지금 진영의 모습은 조금 전 하칸델 마찬가지로 새하얀 유령처럼 변해 있었다.
허공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간단하게 회피할 수 있다.
“네 놈이 뭔가를 했구나!”
반대로 신체를 되찾은 하칸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소리쳤다.
그는 노기 섞인 음성과 함께 손을 휘저었다.
“다들 나와라! 주인이 습격을 받는데 보기만 하는 건가? 이 빌어먹을 놈들!”
스스스···.
[ 보스가 분노합니다. 1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지금껏 숨어 있었던 유령 기사들이 벽면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가 수 십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주오령의 붉은 눈빛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쿨럭···.”
주오령이 붉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진영이 오기 전 영주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탓이었다.
“이거 안 마실거냐?”
진영이 엘릭서를 내밀었지만, 주오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완고한 고집.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보스를 쓰러뜨리자.”
“당연하지.”
뚜두둑.
아직 스트레칭에 불과하다는 듯 팔을 돌리는 주오령.
유령 영주는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서 즐겁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싹 다 쓸어버려라!”
실제로 다가오는 유령 기사들의 수는 단 둘이서 상대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들 하나 하나의 능력치는 공원에서 상대했던 레드 언데드를 간단히 뛰어 넘는다.
‘하지만 나보다 강하지는 않다.’
붉은 표식이 유령 기사들의 머리 위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진영은 단검을 역수로 쥐고, 자세를 잡았다.
주오령 앞에서는 실력을 숨길 필요가 없다.
스슷-!
완전 영체가 된 진영은 더 이상 땅을 박차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될 뿐.
진영의 있던 자리에서 그의 인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스걱-.
단숨에 다섯의 유령 기사들 위로 푸른 직선이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정보창.
[ 표식이 있는 상대를 공격하여 일격 스킬이 발동 됩니다. ]
파사사삭!
유령 기사 다섯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그들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과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이점이 만나 발휘되는 압도적인 시너지.
영체가 된 진영의 공격을 막아 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걱-!
일검에 유령 기사 여섯이 다시 한 번 베어지고, 다음 공격에 넷이나 되는 유령 기사들이 단숨에 쓰러진다.
그들의 공격은 진영에게 닿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주 하칸델의 눈이 당혹감에 절여졌다.
“이, 이게 무슨···? 저 놈은 전설 속의 기사라도 되는 건가?”
그러나 오래 당황할 시간조차 없었다.
콰앙!
갑자기 나타난 주오령이 그의 안면을 후려치려 했기 때문이다.
“크윽!”
가까스로 자신의 검으로 방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충격이 전신을 훑고 올라왔다.
영체가 아닌 상태에서 갑작스레 받는 데미지는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하칸델도 헛으로 영주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생전에는 국가를 지탱하는 어엿한 실력자였다.
“적어도 멍청한 네 놈에게 죽어줄 수는 없지!”
“······!”
하칸델은 주오령의 이어지는 연격을 모두 회피했다.
주오령은 이미 많은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속도가 느려지는 건 당연했다.
결국.
촤악!
날카로운 검이 주오령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승기를 잡은 하칸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살아 있을 적의 감각이 올라오는군!”
하칸델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한때는 천재라고 불렸었던 자신의 전생을 떠올렸다.
영체를 잃고 인간의 신체를 얻은 그는 서서히 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하칸델의 검이 짙은 마력으로 타올랐다.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군!”
하칸델의 검이 정확하게 주오령의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지친 상태의 주오령이 피할 수 없는 일격.
그 찰나의 순간에 정보창 하나가 떠올랐다.
[ 105호실이 공략 되어 하칸델의 능력치가 1단계 하향됩니다. ]
공략대가 이뤄낸 성과. 1호실부터 차근차근 공략했기에 가능한 디버프.
그 앞에서 탑의 보스인 하칸델은 불가항력이었다.
“!”
그리고 눈에 띄게 느릿해진 하칸델의 움직임을 주오령은 놓칠 리가 없었다.
콰직!
주오령의 주먹이 하칸델의 턱에 날카롭게 꽂혔다.
* * *
하칸델이 인간의 몸에 익숙해졌듯, 진영 또한 자신의 영체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발을 딛지 않아도 움직이고, 공격은 받아도 회피한다.
‘마지막이다.’
전투는 신경 써야 할 요소가 굉장히 많다. 특히 여럿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상대 하나 하나의 동작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금세 뒤를 당하게 된다.
영체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 쓸 일이 줄었다는 말이다.
- 죽어라!
유령 기사의 공격 하나가 진영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왔지만, 구름을 파고들듯 허무하게 지나갔다.
진영이 가진 마력 양이 압도적인 탓이었다.
‘전투 시에만 영체가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군.’
땅을 밟는 스텝도,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일을 빼고 오롯이 자신의 공격에 집중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단 한대만 스쳐도 죽는 적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이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서걱!
진영이 마지막 유령 기사를 베어냈다.
[ 1차 웨이브를 클리어 했습니다. ]
1차가 있다는 말은 2차도 있을 수 있다는 말.
진영은 서둘러 유령 영주와 주오령을 향해 날아갔다.
그 자리에는 피를 잔뜩 흘린 채 쓰러진 주오령과 부서진 잔해 속에 등을 기대고 앉은 하칸델이 보였다.
‘진 건 아니군···.’
숨은 붙어 있었고, 명상할 때와 같은 마력이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 회복을 하고 있는 모양.
‘이걸 보면 마력을 쓸 줄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전투에 응용이 안되는 건가?’
주오령이 슬쩍 고개만 돌려 진영을 바라보았다.
“뒤는 부탁하겠다 파트너···.”
녀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방전 되었다.
그만큼 무모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하칸델 또한 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의 상태.
하칸델이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진영을 바라보았다.
“넌 대체 뭐냐. 내게서 영체를 빼앗아 간 것인가? 어이가 없는 놈이군···.”
하칸델에게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후의 순간을 위한 마력을 숨겨 두고 있었다.
“내가 일일이 답할 필요는 없겠지. 넌 죽게 될테니까.”
“······과연 그럴까?”
진영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자 하칸델은 숨겨 놨던 마력을 개방했다.
고고고···.
하칸델의 주변으로 붉은 마력이 샘솟고 있었다. 피를 토해내 듯 꿀렁거리는 마력과 함께 하칸델의 몸도 변형되기 시작했다.
[ 106호 공략에 실패 했습니다. 하칸델의 능력치가 정상적으로 돌아옵니다. ]
때마침 들려오는 안좋은 소식.
‘실패한 건가···.’
사실 105호 공략에 성공한 것만해도 회귀 전과는 다르게 흘러간 일이었다.
회귀 전 이곳은 신화준의 단독 돌파에 의해 클리어 되었다.
그를 돕겠다고 나선 인원들은 모두 호실 공략에 실패했으니까.
거꾸로 말하면 호실이 공략되지 않아도 공략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힘이 흘러 넘친다! 하하, 얼마든지 덤벼 보거라!”
투둑, 투둑.
거센 마력의 불길에 피부가 조각조각 떨어져나가고 있었지만 하칸델은 개의치 않았다.
차오르는 힘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진영은 그런 하칸델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즈. 영혼을 태워,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지막 발악.’
그런 진영을 하칸델이 비웃었다.
“겁에 질렸나보군! 덤비지 않을 셈인가?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가주지.”
콰아앙!
하칸델의 손짓 한 번에 저택의 천장을 뚫고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 사이로 밤하늘의 붉은 달이 비쳐 보였다.
하칸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지? 이게 아닌데···.”
진영을 노리려던 공격이 엉뚱하게 천장을 향했다.
“하칸델. 이제 끝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칸델은 착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탑에 은거하며 살아왔기에, 할 수 있는 착각이었다.
영혼을 태워 힘으로 바꾸는 자신의 능력은 자신이 영체일 때 개발한 스킬이라는 것.
[ 보스의 스킬에 이상현상이 감지 되었습니다. ]
[ 설정된 보스의 스테이터스에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
투두둑.
하칸델은 오래 구운 점토 인형처럼 한 조각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하는 마력의 불길에 의해서.
“이···. 이럴 리가!”
화르륵!
불길은 점차 거세지며 하칸델을 삼키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하칸델이 소리쳤다.
“너라도! 너라도 죽이겠다!”
진영은 무감하게 하칸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다.
어느새 하칸델의 머리 위에는 붉은 표식이 떠올라 있었다.
서걱-.
진영의 단검이 빛났다.
* * *
[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 18층을 향한 포탈이 생성됩니다. ]
[ 최고 기여자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최고 기여자 : 이진영 ]
[ 공략에 참가한 모두에게 적절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
쏟아지는 알림창을 무시한 채 진영은 주오령을 일으켰다.
“훌륭하군, 파트너.”
“너도 잘했다.”
이번에는 주오령의 역할도 컸다. 약간 체력을 회복한 주오령은 다시 가부좌 자세를 잡았다.
‘이제 몬스터는 없는 것 같으니.’
진영은 품 안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이름 없는 유령이 건네 준 장미를 따라가면 보물이 있는 방을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파아앗.
옅은 빛을 내뿜은 장미가 허공에 떠올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영은 장미를 따라갔다.
‘여기는···.’
보스가 있던 방 너머에는 수많은 창고가 있었다.
끼이익!
장미의 안내에 따라 창고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창고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와 남신의 석상이 있었다.
마지막 보물인 타이탄의 창을 들고 있는 석상.
‘물론 석상이 들고 있는 건 진짜가 아니다.’
진영은 가지고 있던 천상의 뿔피리를 꺼냈다.
여기서 이걸 불면 보물을 획득할 수 있다.
‘드디어 보물 다섯 개가 다 모이는 건가.’
그런 감상에 젖어 뿔피리를 불려는 순간, 진영의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창고 벽면 있는 희미한 표식.
평소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영체가 되어 있는 상황.
진영은 스르르 날아서 표식이 있는 벽면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면을 자연스럽게 뚫고 지나갔다.
‘이, 이건···.’
영주가 숨겨 놓은 보물과 17층의 히든 피스가 한 자리에 어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