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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74화 (74/152)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5)

“······. 이계 규율에 따르는 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유령의 말에 진영이 전투 태세를 갖춘 채 물었다.

‘히든피스로 보호되고 있으니 정신이나 정보를 읽어내는 건 아닐테고.’

유령에게서 공격적인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진영을 바라보고 있을 뿐.

[ 이계의 감시자가 유령을 방해자라고 여깁니다. ]

[ 이계의 근원이 유령의 출현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알림음.

이계 녀석들이 난리인 걸로 보아, 이 유령은 보통 유령이 아닌 건 확실했다.

- 한 때 저 또한 이계 규율을 따랐던 자로서, 멸망의 탑을 오르고자 했던 자로서 알고 있을 뿐입니다.

“······!”

- 지금의 저는 그저 한낱 유령에 지나지 않지만요.

유령의 수심 깊은 얼굴에 진영이 입을 열었다.

“멸망의 탑을 오르고자 했다는 건, 너도 플레이어였다는 말이야?”

- 아쉽게도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이계 규율의 위반은 존재의 말소입니다.

이계 외곽에서 이계의 근원에게 들었던 설명과 같은 말이었다.

‘존재의 말소라···.’

진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잠깐만, 지금 네 말은 네 이계의 규율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계의 규율은 본인도, 타인도 아무도 알 수 없다.

각자에게 다르게 적용되기에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이계의 근원의 설명이었다.

- 그 점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쫓고 있는 것들이 결국에는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테지요. 보물을 찾고 계신거죠?

“그래.”

유령의 두 눈에 깊게 내려앉은 통찰력.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반된 강력한 마력.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계의 존재들의 수 덕분에 간신히 당신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부디 실패하지 말아 주시길.

유령은 한탄스런 말을 내뱉은 뒤, 진영을 향해 스르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 제 마력으로 만들어 낸 장미꽃입니다. 이걸 따라가면 보물이 있는 방을 쉽게 찾을 거에요. 문제는 그 방으로 향하는 중간을 이곳의 보스가 막고 있다는 겁니다.

“알고 있어. 유령 영주 하칸달. 이미 그 쪽으로 향한 내 동료가 있을 텐데.”

- 어머, 그분이 동료였던가요? 그렇다면 더 빨리 가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상황이 좋다고는 못하겠거든요.

역시 주오령은 무턱대고 보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마력도 제대로 담기지 않은 공격이 유령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체력을 회복할 때는 마력을 운용할 줄 아는 듯했지만, 막상 공격 자체에 녀석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당장 그 쪽으로 붙어줘야 한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시간이 부족하군.”

- 하칸델을 처치하고 오면 얼마든지 답해 드리죠. 저는 탑에 묶여 어디로든 떠날 수 없는 몸이니까요.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저는 탑에 의해 이름을 잃었습니다. 이름 없는 유령이라고 불러주세요.”

진영의 눈이 일순 커지는 듯했으나 이내 진중하게 바뀌었다.

‘이름이 없다라···.’

이름 없는 신, 이름 없는 여신 그리고 유령까지.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껄끄러웠다.

하지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돌아와서 듣겠어.”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장은 보스를 물리치러 가는 게 우선이었다.

[ 이계의 감시자가 당신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당신을 주시합니다. ]

‘들키고 싶지 않은 정보라도 있는 건가?’

이계 놈들도 이참에 확실히 뭐하는 녀석들인지 밝혀둘 때가 되긴 했다.

타앗.

진영은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며, 최고 속도로 저택의 복도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저택 공략은 최전선 공략대 2인과 보조 공략대 수 십 명으로 나뉜다.

이것은 탑의 규칙이다.

보스의 방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은 단 2명.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은 강력한 마수와, 저택의 함정이다.

‘확실히 길어.’

은신 스킬을 쓰고 달려 나간다 한들 1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바깥에서 보았던 저택의 크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거리의 복도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건······.’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진영의 눈에 부서진 석상이 보였다.

부서진 모양새가 주오령의 짓이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

‘덕분에 편하게 가는 군.’

일격 스킬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어도, 하나 하나 발목을 잡히는 것과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려나가자, 복도 바닥의 색깔이 때 묵은 대리석에서 붉은색 카펫으로 바뀌었다.

[ 첫 번째 원한 : 배신 ]

스스스···.

복도에 난데없이 하얀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 101호에 영주에 의해 배신 당한 원혼들이 나타납니다. ]

[ 저택 복도에 원혼들의 한이 깔립니다. ]

안갯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서걱!

유령 영주 하칸달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악덕 영주였다고 한다.

영지민의 피를 빨아 먹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잡아먹는 기행을 일삼을 정도로 미친 영주.

‘배경 지식을 안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탑에 묶인 존재들은, 어딘가 다른 세계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저 탑이 허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세계들을 누더기처럼 짜집기한 결과물이 바로 탑이었다.

그 장소나, 배경도 다양했다.

플레이어들은 탑의 배경을 제대로 아는 게 탑을 공략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한 때는 진영도 그 중 하나였다.

‘신화준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싹 다 날아갔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그러한 정보들이 모이고 모이면서 탑 공략을 위한 단서가 되어가는 것이다.

99층까지 올라 본 진영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한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위령제를 지내야겠지.”

물론 무당을 불러 굿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녀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목숨을 끊어주면 충분하다.

서걱-!

마력이 담긴 검에 검은 형체가 절반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원한은 진영의 역할이 중요했다.

진영이 먼저 나타난 검은 형체들을 죽여주면, 한이 일시적으로 해소 되고 그사이에 101호실에 있는 일행이 유령의 본체를 잡아주면 된다.

‘설명은 충분히 하고 왔어.’

아니나 다를까 반으로 나뉘었던 검은 형체가 스르르 무너진다.

101호에서도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격 표식이 뜨기는 하는데, 본체까지 죽이는 건 불가능한가보군.’

어떤 검은 형체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본체와 연결된 분신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한 방에 처리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101호에 있는 클랜원들과의 합이 중요하다는 것.

‘일단은 쓰러뜨리면서 전진한다.’

스스스스···.

시야가 1m도 채 되지 않는 안갯속에서 진영은 오로지 감각에 의존에 검은 형체들을 모두 베어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이름 없는 유령은 분명 주오령이 보스의 방에 갔다고 그랬지.’

서걱! 서거걱!

그랬다는 것은 이 원한을 돌파해냈다는 것.

‘아마도···.’

진영이 상당한 거리를 달리자 눈앞에 문 하나가 나타났다.

복도를 떡하니 가로 막고 있는 문이었지만.

“역시 예상대로군.”

주오령은 시련을 치르지도 않고, 문을 부순 뒤 다음으로 넘어갔다.

녀석 다웠다.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안개가 좀 가셔 시야가 확보됐다.

저 멀리 밀려드는 검은 형체들이 뒤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유령 영주를 공략하려면, 제대로 원한을 돌파할 필요가 있어.’

고오오···.

진영의 칼날이 마력으로 붉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서거거걱!

파도처럼 밀려들던 녀석들이 조각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첫 번째 원한을 통과하셨습니다! ]

* * *

진영은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 두번째 원한 : 거짓 ]

공략대의 실력이 좋은지 거침 없이 달려나갈 수 있었다.

공략대가 제한 시간 내에 유령을 물리치지 못하면, 진영에게도 장애물이 생긴다.

‘아닌가···. 그냥 주오령이 다 부수고 간 건가?’

복도가 아수라장이기는 했다. 이것이 저택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면, 장애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주오령 때문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달려가자 이런 알림이 들려왔다.

[ 두번째 원한은 이미 통과하셨습니다. ]

하나를 날로 먹는 셈.

이제 남은 원한은 하나.

복도의 색이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했다.

[ 세번째 원한 : 죄 ]

쿠우웅!

육중한 쇠사슬을 온 몸에 칭칭 감은 갑옷이 걸어나왔다.

그 안을 푸른 영혼이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 어쩐지 우그러져있었다.

범인은 주오령 밖에 없었다.

“용서치 않으리라!”

대사를 뱉는 갑옷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린 것도 그 탓인 것 같았다.

[ 일격 표식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

타악.

진영은 땅을 박차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푸른 궤적을 그리며 진영이 단검이 그대로 갑옷의 심장부를 관통했다.

콰직!

갑옷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갑옷 유령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타오르는 푸른 영혼은 사라지지 않은 채 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

“수 백, 수 천의 영혼이 가진 한을 맛보거라!”

갑옷 영혼이 육중한 검을 휘두르며 반격해왔다. 일격 스킬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영혼이 모여서 하나가 되었다. 이건가.’

영주에게 억울한 죽음을 받고, 원한을 뼈에 새긴 자들이 뭉쳤다. 그들 하나하나는 힘 없이 당했을지 몰라도, 그런 그들이 뭉치면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그 한을 왜 나한테 푸느냐는 거지.’

쿠웅!

그때 갑옷 유령의 발치에 족쇄와 쇠구슬 하나가 생겨났다. 103호실에서 제대로 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속박 따위로 우리의 복수를 막을 수 없다!”

녀석은 족쇄에 굴하지 않고, 놀라운 움직임으로 진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진영은 몸을 숙여 검을 피한 뒤, 다시 한 번 녀석의 가슴팍에 검을 꽂아넣었다.

콰지지직!

본래대로라면 진영의 힘으로 부수는 건 불가능한 경도다.

다만 주오령이 우그러뜨렸던 부분이기에 검을 파고드는 게 가능했다.

카가가가각!

진영은 쉴새 없이 연격을 몰아치며 갑옷을 몰아붙였다.

[ 일격 스킬이 발동 됩니다! ]

[ 일격 스킬이 발동 됩니다! ]

···

..

.

갑옷이 말한 대로 수백까지의 영혼은 없었다.

기껏해야 몇십. 그것도 영혼을 잃어갈 때마다 갑옷은 반항할 힘을 잃어갔다.

“워, 원통하도다···. 복수를···. 부디 복수를···.”

마지막 진영의 단검이 녀석의 가슴팍을 꿰뚫을 때, 녀석은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진영은 무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세번째 원한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끼이익···.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화려한 문이 열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반쯤 부서져서 굳이 열리지 않더라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 원한을 해소하여 유령 영주의 힘이 대폭 약화 됩니다. ]

쿠웅! 쿠웅!

문 안쪽에서는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보나마나 주오령.

진영은 신속하게 걸음을 옮겼다.

“······. 죽인다.”

눈이 붉게 변한 주오령이 유령 영주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흔히 말하는 악덕 영주의 인상과는 다른, 잘 생긴 중년의 유령 하나가 있었다.

- 시덥잖군.

그가 걸친 고급스런 갑주는 살아 생전 가장 아끼던 것.

그러니 갑옷 또한 영혼 일부처럼 변해버렸다.

쿠웅!

주오령의 일격이 바닥을 깨부쉈지만, 영주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했다.

“멍청함에도 정도가 있지. 네 놈은 원숭이 정도의 지능밖에 없나보군.”

“커헉······.”

주오령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완전히 불리한 상성.

주오령이 흘리는 피의 양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주오령의 강철 같은 육체에 이곳 저곳 깊은 상처가 보였다.

서 있는 것조차 기적 같은 상황.

반면 유령 영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주오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진영의 등장을 눈치챈 영주가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놀잇감이 왔군.”

비릿한 미소를 짓는 그의 입가가 번들거렸다.

“그 전에 이 녀석부터 마무리 짓기로 하지.”

유령 영주가 검을 들어 올렸다. 주오령이 비틀 거리고 있었다.

영체화 되어 닿을 수 없는 상대와 힘만을 사용하는 주오령.

이 둘의 승부는 한 쪽이 일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버틴 게 용했다.

“죽인다···.”

“멍청한 놈. 그 말밖에 못하는 건가? 이제 재미도 없으니 죽어라.”

영주의 날카로운 검이 주오령을 향해 쇄도 했다.

그 순간에도 주오령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하고나 유령 영주를 향해 파고들었다.

“하하! 멍청한 놈! 학습 능력이 이리도 없다니!”

승리를 확신한 유령 영주가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순간.

터억.

주오령이 영주의 팔목을 붙잡았다.

“어? 이게 어떻게 된···.”

[ 대상 ‘유령 영주’의 특성을 훔치는데 성공했습니다. ]

[ 특성 `완전 영체`를 24시간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주오령은 죽어도 영주를 붙잡을 수 없다.

마력을 다루는 싸움을 할 줄 모르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가능했다.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유령 영주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진영이 있었으므로.

“···잡았다.”

영주의 팔을 움켜 쥔 주오령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잘 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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