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이 품은 다섯가지 보물(2)
“붉은 사자는 앞으로 다섯 걸음 걸은 뒤, 주력 스킬을 사용하라!”
눈에서 하얀 안광을 내뿜는 김목성이 외쳤다.
[ 이계의 근원이 보물에 의한 각성 현상에 놀라워합니다. ]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전 삶에서는 분명 아무런 능력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보물에 숨겨진 힘이 있었을 줄이야.
투콰아앙!
튀어나오는 간부의 손에 들린 해머가 주오령의 주먹과 맞부딪혔다.
강한 충격파가 터지며 한바탕 흙먼지가 일었다.
김목성은 계속해서 지시를 이어갔다.
“푸른 물개는 하늘 높이 뛰어 눈 앞의 남자를 향해 떨어져라! 검은 가재는 돌진하라!”
파앙!
김목성의 말을 들은 간부 둘이 지체 없이 명령을 따랐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염태준이 거짓말 같이 자세가 휘청이더니 바닥을 구르고, 진영마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파트너, 바로 가지!”
콰앙!
철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며, 주오령과 상대하던 간부의 망치가 우그러졌다.
그러나 간부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노란 범은 고개를 숙이고 구세주를 막아라!”
간단한 지시였지만, 그렇게 하자 주오령의 주먹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지는 명령도 마찬가지였다.
“팔을 틀어라, 허리를 돌리고, 뛰어 올라라!”
“······!”
김목성의 말에 따랐을 뿐인데, 주오령의 공격이 계속해서 빗나가고 있었다.
주오령이 가진 압도적인 능력치 차이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었다.
분명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리니, 반대로 움직이면 주오령의 공격이 적중해야 하는데, 김목성은 그것마저 읽은 듯한 지시를 내려오고 있었다.
원인은 김목성이 가지고 있는 팔찌 아이템이었다.
‘김목성에게서 팔찌를 뺏어내야 한다.’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공격을 전부 예언하고, 확실하게 간부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계의 존재 말대로 모든 게 팔찌의 힘에 의한 각성 현상인 모양.
[ 이계의 본질이 당신의 대처를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
“당신이 하려는 일이 모두 뻔히 보입니다! 구세주?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가 신이고, 제가 구세주니까요!”
대개 구세주를 자처하는 놈들치고 정상적인 놈은 없는 법이다.
진영은 앞을 가로 막은 간부와 검을 몇 번 주고받고서,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단순 무력으로 간부를 뚫기는 어렵다.’
- 절대 은신
진영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
염태준에게서 빌린 아이템인 움브리엘의 반지덕에 지속 시간은 약 50초 가량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목성이 외쳤다.
“푸른 물개여, 뒤로 세 걸음 물러나며 검을 크게 휘둘러라! 곧장 보조 스킬을 발동시켜라!”
김목성의 각성 된 예언 능력 속에는 어떤 결과가 존재한다.
진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는 없어도, 진영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앞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카앙!
예상했던대로 간부가 진영의 검을 막아냈다.
김목성의 예언을 듣고, 움직임을 예측해서 카운터를 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예언은 그것까지 계산된 예언이었다.
사람의 실수나, 예언을 들었을 때의 진영의 움직임까지 예측된 압도적인 예언.
‘보물의 힘이 대단하기는 한데.’
계속해서 소모전이 이어졌다.
팔찌를 훔쳐내기 위해서는, 진영의 손이 향하는 곳에 김목성이 있어야했다.
문제는 간부들이 계속해서 앞을 막는다는 것.
“아오! 더럽게 답답하네!”
염태준이 검을 휘두르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진영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뭔가 하려고만 하면 막히고, 계속해서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으니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발이 묶인 것은 진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전을 바꿔야겠어.’
이계의 존재들은 이계의 규율을 따르는 진영이 모든 시간축에 우선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예언류의 스킬을 깨부술 수 있다는 말.
보물의 힘으로 각성한 김목성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이 방법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근원, 본질. 너희 모두 나를 주시해라.”
* * *
[ 이계 주시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으윽?!”
효과는 바로 생겨났다. 이계의 주시도가 상승했을 때, 진영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예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시도가 상승하자 김목성이 크게 휘청거렸다.
계속되던 명령이 사라지자 간부들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예상대로야.’
진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간부 하나의 어깨를 쥐고, 스킬을 발동 시켰다.
- 특성 탐식
[ 대상의 특성을 24시간 동안 훔쳐옵니다. ]
[ 훔쳐온 특성 : 천상의 오오라 ]
[ 존재만으로 근처 파티원들의 모든 능력치를 35% 상승시킵니다. ]
S급 천상의 사자(使者) 클래스만이 가지고 있는 사기적인 특성.
진영이 특성을 얻자마자 그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투콰앙!
광폭화 모드의 주오령의 주먹 한 방에 간부가 바닥에 꽂혔다.
그 주위로 거대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6단계 - 역사(歷史)의 능력치에서 또 다시 35% 증가한 힘과 속도.
김목성의 예언이 끊긴 지금 견뎌낼 자는 누구도 없었다.
콰아앙!
주오령을 상대하던 나머지 하나의 간부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드높은 미로의 벽에 처박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스슥.
“뭐, 뭐야? 저 괴물은?”
간부 하나가 경악한 목소리로 주오령을 바라보았다.
콰직!
그와 동시에 주오령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기, 김목성님!”
하나 남은 간부가 급히 김목성을 부르짖었다. 주오령이 박차는 땅이 콰득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지막 간부가 목숨을 잃었다.
“간단하군.”
손에 흐르는 피를 털어내는 주오령의 눈은 번뜩이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기함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야, 대체 언제 그렇게 강해진거냐···?”
염태준이었다.
7층 그랑블루 거점에 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는데.
어느새 주오령의 힘은 그가 넘볼만한 수준이 아니게 변해있었다.
주오령의 염태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김목성에게 꽂혀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잠깐 뿐일텐데···. 예언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그러질 수 있는거지?”
정신을 차린 김목성이 입을 벌린 채로 일행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안광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제 끝난 것 같네.”
김목성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헛된 믿음을 심겨주고, 자신의 부하로 부리는데 재능이 있던 자다.
그 스스로가 가진 힘은 예언 말고는 그다지 크지 않다.
원거리 스틸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제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영이 김목성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 스틸
한때 멸망의 탑에서 천 단위의 신도를 이끌고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들의 왕 김목성.
어쩌면 보물의 힘을 사용한 지금이 그 당시보다는 더 선지자 같았을지도 모른다.
[ 스틸에 성공하셨습니다. ]
[ 보물 : 영원불멸의 고리를 획득하셨습니다. ]
푸욱!
진영의 나이프가 김목성을 베어냈다.
* * *
“이야, 이걸로 세 번째 보물이구나.”
염태준이 탐욕스런 미소를 지으며, 보물에 손을 뻗었다.
진영이 보물을 획 자신의 쪽으로 채갔다.
“아직 좀 알아봐야 할 게 있어서, 당장은 못 주겠다.”
“이건, 거래 했던 거랑 다른데. 너는 보물을 찾게 도와주고, 나는 너를 도와주고. 이거 아니였어?”
“안 준다고 한 적 없어. 당장은 아니란 거지. 방금 전 김목성처럼 되고 싶다면 못 줄 것도 없지만.”
눈에서 하얀 안광을 뿜어내는 김목성은 도저히 인간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월자 같으냐? 초월자를 직접 마주했던 적이 있는 진영의 눈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 뭐, 좋아. 어차피 5개가 전부 모이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쉬워하지만 진영의 말에 동의는 하는 모양.
진영은 팔찌를 살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보물 - 영원불멸의 고리
효과 : 착용자가 이계의 영역의 힘을 끌어 올 수 있게 해준다.
간단한 설명이었다.
자세한 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본인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주는 것 같았다.
‘회귀 전에는 분명히 보물에 이런 힘이 없었어.’
때문에 5개를 모아도 아무런 일이 없었고, 그 탓에 목성교는 해체된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리고 그 다른 점이란.
‘나다.’
자신의 움직임이 무언가를 바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진영의 눈빛의 깊어졌다.
회귀 전 자신의 역할은 팀의 뒤에서 지내며, 최선의 효율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언제나 주변에 있는 그림자.
그랬던 자신이었지만, 이번 삶은 달랐다.
자신에 의해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파트너.”
뒤쪽에서 주오령이 자신을 불렀다.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바지만 걸친 채, 옷과 신발이 귀찮다는 듯 벗어던진 야만인.
“나는 계속해서 탑을 오르겠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라. 나도 네가 필요하면 부르지.”
일방적인 말이었지만, 진영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주오령은 자신이 쓰러뜨린 상대들을 주욱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부족하군.”
무엇이 부족하다는 걸까. 단신으로 랭커급에 해당하는 간부들을 모두 쓰러뜨렸는데 말이다.
쿠웅!
주오령은 그대로 미로의 벽을 부쉈다. 그의 행동을 제지할 관리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미로의 가장 빠른 공략법은 미로를 부수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미로의 벽은 그다지 부수기 어렵지도 않았기에.
주오령이 미로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진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태준, 이제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마지막 다음 보물에 대한 단서도 찾아뒀을 거야.”
“누가?”
“그런 사람이 있어.”
짐꾼 클래스의 김지훈과 그의 형.
그 둘을 목성교로 잠입시켜 두었다. 김목성과 주요 간부들이 여기에 있으니,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충분했을 거다.
보물은 더 이상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탑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다섯 가지 보물을 모두 모으면 초월의 좌에 오른다···.’
그 말이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소리나, 탑의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탑의 100층을 공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설령 인간이길 포기하고 초월의 좌에 오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진영은 뒷정리를 마치고 미로의 바깥으로 향하는 포탈에 몸을 옮겼다.
그 때였다.
이계의 근원과 본질이 메시지를 보내 오기 시작한 것은.
[ 이계의 근원이 처음 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우리를 잊지 말라달라고 부탁합니다. ]
“잊지 말라고?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
그 이유는 뒤이어 들려오는 정보창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 이계 시간축 최초로 해방된 첫번째 보물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
[ 다수의 이계 존재들이 당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
[ 이계의 감시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