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3)
“쑥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나와주시죠.”
김목성의 마법으로 확성된 목소리가 둘을 불렀다.
“쩝.”
염태준은 마지못해 진영을 따라 앞으로 나섰다.
세미나에 모인 인물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이곳은 평범한 세미나처럼 꾸며놨지만, 새로운 신도를 모집하기 위한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두 분은 어떤 근심이 있어서 이 세미나에 참여하시게 된거죠?”
“근심? 그런 거 없는데.”
염태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김목성은 허허 웃으며 다시 질문했다.
“멸망의 탑에서 아무런 근심도 없는 사람은 없죠. 자신도 모르는 근심이 있을 겁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김목성의 클래스는 A급 예언가.
이전에 진영이 상업지구에서 만났던 포츈텔러와는 그 결이 다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하는 두려움이 있군요. 그리 많은 부분은 아닙니다만.”
포츈텔러에게는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 해석과 사람을 사로잡는 말주변이 부족했다.
반면 김목성은 예언의 능력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주변까지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찾아 헤매는 그것은···. 당신은 우리와 목적이 같은 사람이군요.”
김목성은 흥미롭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건방진 말투로 포장하곤 있지만 염태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미리 목성교에서 보물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왔으니까.
김목성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고개가 진영을 향해 돌아갔다.
진영에게는 정보 차단을 가능케 하는 히든 피스가 있다. 본인을 향한 예언 또한 일부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김목성은 아무런 내색 없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저로서는 가늠키 힘든 분이시군요. 분명 많은 사연을 가지고 계신 거겠죠. 이런 귀한 분이 저희 세미나를 찾아주실 줄이야.”
단순히 넘겨 짚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진영에게 직접적인 예언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김목성은 그의 주변부로 예언의 대상을 돌렸다.
이진영은 누구인가? 라는 것에는 스킬이 적용되지 않지만, 염태준에게 있어 이진영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는 답을 받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예언 스킬을 잘 활용하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두 분은 특별한 분들이시군요.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기적을 보여드리는 것보다는 그 기적을 잠시 미뤄두는 게 좋겠군요.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오늘 밤 열리는 집회에 두 사람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참여한 세미나였다.
목성교는 1차적으로 세미나를 통해 사람들을 선별하고, 2차 집회에서 광신도를 양산해낸다.
“동의하셨으니, 자세한 안내는 세미나가 끝난 뒤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 세미나에 오신 걸 다시 한 번 환영드리겠습니다.”
이후로는 평범히 좋은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같은 평범한 말들이 뒤를 이었다.
종교라 보기에는 애매할 정도.
그러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김목성의 말에서 한 시도 주의를 놓지 않고 있었다.
이 사람의 말을 모두 새겨들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운영하고 있어서, 문제가 될만한 꼬리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진짜는 오늘 밤 집회에서 시작 된다.
* * *
“모두 모이셨군요. 아직 목성님께서 오지 않으셨으니, 잠시 대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11층으로 넘어가는 포탈이 있는 장소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명 정도 되는 적은 인원이었다.
“기다리시는 동안 여기 이 팔찌와 가면을 착용해 주세요. 원하시지 않으면 상관없습니다만.”
팔찌와 가면은 익숙한 물건이었다. 진영이 10층에 오른 이후로도 간간이 이것들을 착용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팔찌와 가면 자체에 특수한 기능은 없었으나, 아이템을 확인하는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건···.”
가면의 생김새가 너무나 염태준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긴 까닭이었다.
염태준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이거,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 아니야?”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
영원 불멸의 고리, 창조자의 걸쇠, 육망성의 귀걸이, 영혼 파쇄자의 투구, 타이탄의 창.
그 중 가면의 생김새는 영혼 파쇄자의 투구를 본떠 만들어져 있었다.
“맞아.”
진영이 그랑블루 창고에 굴러다니는 걸 염태준에게 건네 주었기에,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목성교의 교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생김새는 탑에 숨겨진 수수께끼와 김목성의 예언 능력을 조합하면 알아내는 건 쉬웠을 테니.
“그러면, 이 팔찌는···.”
“영원 불멸의 고리랑 똑같이 생겼어.”
물론 진영도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 알고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김목성이란 자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김목성이 나타났다.
부티가 흐르는 이목구비에 여유로운 눈매.
40대 초반의 그는 꽤 든든한 풍채를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이비 교주라고 해야하나.
“모두 모이셨군요. 오늘 모이신 분들은 각기 다른 세미나에서 선택 받으신 분들입니다.”
선택 받았다는 말에 몇 명이 들뜨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경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김목성은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세미나와 더불어 하나의 종교 단체의 수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테니까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세미나에서 온 10명의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도 4명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우리를 안내했다.
그들이 목성교를 가장 광적으로 따르는 간부들이었다.
‘아직까지는 확실히 규모가 작군.’
세미나를 통해 이어지는 집회라고 한들, 진영이 미래에서 보게 되는 목성교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조그마했다.
간부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상당한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그만큼의 힘이 필요한 곳이었으므로.
“그런데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기적을 보여드리는 곳으로 갑니다.”
“거, 어딘지는 알고 갑시다!”
명확하지 않은 간부의 대답에 몇 사람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김목성의 말에 불만은 사그라들었다.
“유흥순씨, 느긋하게 마음 잡으셔도 괜찮습니다. 오늘과 어제 도박으로 잃으신 돈 이상의 것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김목성의 예언 능력은 미래를 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과거와 그간의 행적까지 읽어낸다.
모든 예언가가 그렇지는 않으니 아마 그가 가진 고유한 특성의 효과일 것이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김목성의 뒤를 따라 탑을 올랐다.
“자, 다 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16층.
몇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만. 당신 우리 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김목성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서 나오는 전리품과 부산품은 전부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른 말을 꺼내 사람들의 주의를 돌릴 뿐.
그건 대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캬아아-!
김목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로의 어둠 속에서 붉은 박쥐가 튀어나왔다.
성인 몸집의 녀석이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슥-.
가면을 쓰고 있던 간부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간부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달려드는 박쥐를 가볍게 밀쳐냈다.
투욱.
그랬더니 놀랍게도 박쥐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주, 죽었어!”
일행 중 하나가 마수의 상태를 확인하고서 외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마수가 아니었다. 16층을 활보하는 마수였다. 탑의 최정상에서 활동하는 자조차 쉽게 잡기 힘든 마수를 너무나 간단히 제압했다.
“이게 기적인가요?”
“아닙니다. 진짜 기적은 따로 있습니다. 계속해서 가시죠.”
이어서 몇 번 더 마수가 튀어나왔다.
김목성은 부산물을 플레이어들에게 기꺼이 양보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더욱 좋아하며 그 뒤를 따랐다.
실 아이템을 사용해 미로를 돌아가기 위한 장치도 해두었다.
플레이어들의 마음은 점점 놓여갔다.
그렇게 걸어 나가다 보니,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김목성이 입을 열었다.
“본래, 이 미로에는 관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보물의 힘으로 관리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김목성은 자신의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는 익숙한 모양의 팔찌가 있었다.
일행이 차고 있는 가짜 팔찌와 같은 것이었다.
“저건···!”
팔찌를 확인하는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그의 심장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가 찾는 보물 중 하나인 ‘영원 불멸의 고리’가 김목성의 팔목에 있었다.
샤아아-.
팔찌에서 빛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진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팔찌에서 빛이 난다고?’
보물 자체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연출이나, 또 다른 스킬의 효과일 것이다.
빛이 사그라들자, 김목성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사람들이 신음을 냈다.
“히익!”
“으···.”
머리에 검이 박힌 채 기괴하게 죽어 있는 가고일 한 마리가 보였다.
아직 관리자가 처리되었다는 것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김목성은 겁도 없이 가고일 앞으로 다가가 발을 올렸다.
“이 놈이 플레이어들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가지고 놀던 관리자입니다.”
“다, 당신이 죽인건가요?”
말도 안되는 질문이었지만, 앞에서 보여주었던 간부들의 퍼포먼스 때문이었는지 나온 질문이었다.
“아뇨, 아닙니다. 이건 탑의 랭커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겠죠. 제가 한 일은 그저 팔찌의 힘으로 미래를 확인한 것 뿐입니다. 여러분, 이 미로에 제가 온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냥 미리 와본 거 아니에요?”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게 당연합니다.”
김목성이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염태준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게 관리자 일리가 없잖아. 네 말대로 사이비도 저런 사이비가 없군. 16층의 관리자가 플레이어한테 죽는다고? 아무런 가고일이나 하나 데려다 놓고 쇼를 해도 저런 멍청한···.”
“아니, 저건 관리자가 맞아. 내가 죽였거든.”
그 말에 염태준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농담도 하네, 이거.”
“아니, 농담 아니야.”
진영이 진지하게 말하자, 염태준이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문제는 저기 죽어 있는 놈이, 관리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진영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한 마리밖에 없지?’
가고일 관리자는 가일과 마일.
이렇게 두 마리였다.
분명히 두 마리를 동시에 처리했을 터인데, 지금 죽어 있는 시체는 회색 가고일 가일 하나였다.
덧붙여 관리자의 공격으로 미로에 뚫려 있던 구멍들 또한 전부 메꿔져 있었다.
‘누군가가 손을 쓴 게 분명하다.’
죽인 마수의 뒤처리는 깔끔하게 했다. 이 부분에서 실수는 없었다.
한 번 죽은 관리자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여러분, 그러나 관리자는 여기 죽어 있는 한 마리가 아닙니다. 다른 하나의 검은 괴물이 살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 관리자와 마주칠 것입니다.”
김목성은 사람들을 상대로 선동하기 시작했다.
“팔찌의 힘으로 예언하건데, 그럼에도 여러분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늘밤 찾아올 구세주에 의해서 말이죠.”
그제서야 이진영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굳힐 수 있었다.
가고일을 살린 것은 목성교 놈이다.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시키기 위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예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겁먹지 마시고 구세주의 출현을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자신의 예언 능력을 활용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계획.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다면, 그 예언은 무엇보다 설득력 있으리라.
그러나 진영은 이들의 계획을 그대로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구세주라···. 좋지.’
김목성을 바라보는 진영의 눈빛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