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2)
플레이어 거주 지역 폐쇄 구역.
구석에 자리 잡은 염태준의 비밀 콜렉션 창고.
끼이익.
염태준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컬렉션들을 자랑했다.
“어때? 내가 모은 아이템들이. 그래, 아무 말도 못 할 법 해. 침묵에 잠겨 컬렉션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
진영은 창고에 이미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것뿐 아니라, 절대자의 비밀 창고에도 다녀온 상황. 놀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런 리액션을 염태준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여기서 두 개 정도 대여해 줄테니까. 마음대로 골라 봐.”
“정말이야?”
아이템 집착광이 남에게 아이템을 대여해주다니.
조금 생각해보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이곳에 있는 아이템들은 전부 레전드리 아이템이거나 매우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염태준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널 만나고 나서부터 벌써 보물 두 개를 손에 넣었어. 이 정도 협력은 당연한 거 아니겠어?”
일생의 목표였던 탑의 보물. 다섯 개 중 두 개를 찾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진영의 소문까지 생각하면, 이 정도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창고에 있는 아이템들은 내가 주로 사용하는 것들은 아니라서 말이야. 아무리 내가 아이템을 덕지덕지 두른다고 해도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긴 말 할 거 없고, 골라.”
진영은 망설임 없이 레전더리급 카른 웨난을 골랐다. 이미 훔쳐서 사용 중인 단검이었지만, 염태준에게서 빌린 것으로 해두면 찔리는 일 없이 쓸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나머지 하나가 남는데···.’
레드 리버의 간부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은 대부분이 전용 아이템이었다. 해당 클래스의 능력을 강화해주는 아이템인지라, 진영이 사용하기에는 아쉬웠다.
그리고 지금 진영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은 하나였다.
“마력 강화되는 아이템 없어?”
“당연히 있지. 잠시만.”
유리로 된 진열장 앞으로 다가간 염태준이 트랩을 해제하고, 아이템을 꺼냈다. 노란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그런데 염태준이 반지를 넘기는 대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왜 그래? 줄 거면 빨리 줘.”
“주는 게 아니라 대여라니까. 근데 막상 넘기려니 손이 떨리네.”
“······.”
진영은 염태준이 쥔 반지를 뺏다시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모조품으로 바꿔치기 되어 있던 카른웨난도 빌렸다.
“나는 단검은 안 쓰니까, 얼마든지 빌려주지.”
“이 손 좀 놓고 말하지 그래?”
카른웨난의 성능은 워낙 확실했고, 반지의 성능을 확인해 두어야 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움브리엘의 반지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마력 스탯 45% 증가
심플한 효과였지만 확실히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을 확인한 진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좋은 걸 안 쓰고 있었단 말이야?”
“이봐, 내 손을 좀 보라고.”
염태준의 손에는 이미 다섯 개나 되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플레이어가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 갯수에는 제한이 있었다. 아무리 덕지덕지 두른다고 해도 모든 아이템을 사용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 반지는 전용 스킬도 없잖아. 너는 마력 운용이 특기인 것 같으니, 쓸모 있겠지만 일반적인 회귀자는 능력치보다는 아이템에 붙은 스킬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
지난 전투를 떠올린 염태준이 말했다. 이진영은 이상하리만치 마력을 잘 다뤄, 두 단계의 능력치 차이를 극복하면서 자신과 전투를 벌였었다.
물론 진영의 본 속셈은 ‘절대 은신’의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이걸로 30초는 거뜬하게 은신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
존재 자체를 숨기는 강력한 스킬인만큼 소모되는 마력의 양은 압도적이었다.
맨 처음이 4초였다는 걸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과였다.
“준비는 끝났고, 내일 쯤 레드 리버에서 목성교에 대한 정보를 보내올 거야.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그래, 아주 재밌겠어. 그 놈들한테서 새로운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거라니까.”
아마 생각처럼 재밌지는 않을 거다.
목성교의 녀석들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 뿐이니까.
* * *
“S급 지원 프로그램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김지훈과 김영훈이 서로를 얼싸 안았다.
신병 훈련소를 수료한 것 같은 기쁨이었다.
“형! 드디어 끝났어!”
“고생했어. 믿기지가 않네. 우리가 S급 헌터 반열에 들었다는 게.”
그런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랑블루의 프로그램 담당 정칠원이 입을 열었다.
“두 분 실력이 뛰어나서 정말 금방 끝난 겁니다. 그래도 이제 막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다. 정도로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바깥 게이트나 탑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두 분이 끝까지 수료하시는 걸 보니 저도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정칠원은 S급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문제는 참여하기로 한 인원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
회귀자 이진영은 코인만 받고 훈련은 받지 않았다. 주오령이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김지훈과 쓸쓸하게 훈련을 이어나가던 와중 그의 형인 김영훈이 참여하게 되며, 보람찬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진영이 형 덕분이야.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이야.”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
진영은 김지훈의 형 김영훈 또한 S급 지원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제 두 사람은 탑을 오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능력과 기술을 손에 넣었다.
어디까지나 단기 속성인지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때, 멀리서 진영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두 분 다 잘 계셨습니까?”
“진영이 형!”
그 모습에 김지훈이 달려나갔다. 이미 김지훈에게 진영은 정신적 지주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이야기 들었어요. 16층의 관리자를 쓰러뜨리셨다면서요. 그런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죽인거에요?”
6층의 관리자 아몬을 떠올린 김지훈이 몸을 떨었다. 이어서 김영훈과 진영의 눈이 마주쳤다.
“진영씨, 감사 인사부터 다시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영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지. 게다가 이런 지원 프로그램까지 받게 해주실 줄이야.”
‘착실한 청년 같은 느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인상이나, 몸짓에 선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이런 자를 세뇌 시켜 레드 리버의 수족으로 부리려 했다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니까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맡겨 주세요.”
“형, 저도 할 수 있는 건 최대로 할게요!”
동생처럼 형도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남자인 모양. 두 팔 걷고 나서는 모습에 진영이 웃음을 지었다.
“S급 지원 프로그램은 끝난겁니까?”
“네, 방금 전 종료되었습니다.”
클랜원 정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죄송하지만 지훈이랑 영훈씨께 부탁 드릴 일이 있습니다.”
“아뇨, 저 쌩쌩해서 괜찮아요!”
“뭐든 돕겠습니다.”
이 둘이면 충분히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계획이 가지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쉽게 결정하긴 어려웠다.
두 남자를 살펴보던 진영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두 분 믿으시는 종교는 있습니까?”
목성교에 잠입하기 전, 판을 깔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 * *
목성교.
최근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신흥종교.
주교 김목성을 필두로 몸집 부풀리기에 한창인 집단이었다.
“레드 리버에서는 왜 목성교를 조사하려고 하는 거야? 그것도 배반자인 나를 써서.”
의뢰서에서 대략적인 정보를 확인한 염태준이 중얼거렸다.
“목성교가 후에 발목을 잡으니까.”
목성교는 사이비 종교이다.
후에 탑 내 거대한 종교로 성장한 목성교는 클랜 뺨치는 패악을 부린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신의 이름을 앞에 두고 타인을 죽이거나, 감금, 고문 하는데 주저 하지 않는다.
목적은 오로지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과 주교 김목성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
진영이 정의로워서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들 때문에 진정 탑을 공략하고, 마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고한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는다.
‘놈들 때문에 미래에 쏟아야 할 시간이 아까워.’
다 자란 성체가 되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낸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이 의뢰서에는 자세한 조사 말고는 다른 내용이 없는데···. 넌 왜 오는 거야?”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이진영은 왜 자신과 함께 가는가.
염태준의 물음에 진영이 답했다.
“너 혼자 가면 죽을 수도 있거든.”
“하, 탑 공략 좀 했다고 건방져졌네.”
“아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특히 녀석 중 핵심 간부 2인은 랭킹 3위 급의 실력을 숨기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부나 명예가 아니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뿐.
“그러면 움직이자.”
지금쯤이면 김지훈과 김영훈 쪽에서도 접촉을 시도했을 것이다.
알려준 방법대로라면 그들은 신도로서 목성교에 들어가는 중일 거다.
진영과 염태준은 상업 지구 A구역에서 판을 깔고 기다렸다.
염태준은 의심쩍은 표정이었다.
“정말 이런 데 있으면 놈들이 접촉해 온다고?”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북적거리는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 중에 목성교의 신자도 분명히 있을 터다.
최근 공격적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으므로.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
목성교의 신자들이 접촉해 올 수 있도록 진영은 거리를 활보했다.
염태준이 투덜 거리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굉장히 예쁜 여성이었다.
“저기, 혹시 괜찮다면 말씀 좀 드려도 될까요?”
투덜대던 염태준이 순식간에 목소리를 낮게 깔고 대답했다.
“아? 당연히 괜찮고 말고.”
“그러면 근처 커피숍에서 이야기 해도 될까요?”
“그래, 그래.”
염태준이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나를 꾹 찔렀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사람 도를 아십니까도 모르나.
나와 염태준은 여성을 따라 npc가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고 커피가 나오자 여성이 은근 슬쩍 말을 꺼냈다.
“두 분 다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이세요. 그런데 최근 근심이 있으신가봐요.”
“근심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는데···.”
“제가 두 분께 좋은 강의를 하나 추천 드리고 싶어서요.”
여성은 가지고 있던 토드백에서 주섬주섬 팜플렛을 꺼내 내밀었다.
-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멸망의 탑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세요.
싸구려 문구가 달린 안내 책자였지만, 묘하게 이끌리는 기분이다.
눈앞의 여자, 정신 계열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정말 강요하는 건 아니고요, 오늘 세미나가 있는데 여기 한 번 참여해 보세요. 정말 인생이 확 달라지실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말에는 마력이 넘실넘실 실려 넘어오고 있었다.
이들의 포교 방식은 간단하다.
문제는 범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계열의 클래스를 가진 플레이어가 어디까지나 권유 수준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은다.
애초에 눈앞의 여자 마력은 미약했다. 뿌리치려고만 하면 누구든지 가능했다.
이후 강의에 도착해도 별 다른 건 없다.
체이서 길드처럼 세뇌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세뇌하도록 만든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경험을 할 겁니다.”
어느새 세미나에 도착한 진영과 염태준은 강단에 선 남자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대주교 김목성.
A급 예언가 클래스를 가진 그는 천부적인 말솜씨와 스킬의 활용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데 소질이 있었다.
같은 예언가 종류인 포츈텔러가 길거리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거대한 종교를 세웠으니까.
“거기! 새로 오신 분들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주세요!”
스윽.
수 십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진영과 염태준 둘 뿐이었다.
진영은 빨리 자리에 앉으려는 염태준을 붙잡았다.
“오늘 두 분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쑥스러워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가 쌓아 올리려던 탑은 진영의 손에 모래성처럼 스러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