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66화 (66/152)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1)

16층 관리자 처치.

진영의 활약은 그랑블루 내에서부터 서서히 퍼져나갔다.

유일한 목격자인 박헌구와 백성현 둘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에 그랑블루 클랜원들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정말 관리자가 플레이어 손에 죽었단 말이야?”

“백성현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잖아.”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적.

탑을 올라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6층에서 8층까지를 관리하던 조그마한 악마의 모습을 한 관리자 아몬.

녀석은 힘은 공포 그 자체였다.

벌레를 싸움 붙이는 어린아이 마냥 난폭한 녀석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몬을 토벌하려던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전부 무위로 돌아간 지금.

관리자의 힘은 어지간한 보스보다 더욱 강력했다.

그런 관리자를 쓰러뜨린 진영의 위세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의 탄생인가.”

“너무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을걸.”

“그건 그래.”

스타 플레이어들은 으레 그래 왔다. 눈부신 활약을 보여 준 뒤 자신의 몸값을 높인다. 이후 그들은 탑 바깥으로 향해 헌터가 된다.

으레 하는 말은 이것이다.

‘좁은 탑 보다는 더 큰물에서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습니다.’

일부 정의감에 넘치는 자를 제외하면 탑에 거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편의 시설은 10층 거주 지역의 전부. 바깥에 비하면 별것도 없다.

그럼에도 탑에 남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고랭크의 헌터가 될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거나 애매한 힘으로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바깥에서는 D급 게이트나 클리어 해야 할 플레이어도 멸망의 탑에 서는 B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니까.

때문에 그랑블루 클랜원들은 이진영이 슬슬 바깥으로 나가 헌터가 될 것이라 예상하였다.

“16층 관리자를 처치한 회귀자라···.”

“그것만으로도 까마귀 길드나 오성 길드에서 데려가려고 줄을 설거야.”

“부럽네, 부러워.”

그때 그랑블루 클랜의 데스크에서 잡담을 나누던 두 클랜원의 눈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둘의 눈이 커졌다.

“저, 저 사람이 여기에 왜?”

“당장 연락 돌려 봐!”

이진영에 대한 건 싹 잊어버릴 정도로 놀랄만한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레드 리버 부마스터 유경규.

험상 궂은 얼굴은 그가 혹독한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붉은 코트를 걸친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

그는 진영과의 약속을 잡고 그랑블루에 도착한 참이었다.

S급 게이트가 3명에 의해 공략되고, 스파이 박헌구가 입원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다.

회귀자를 처리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실책이었다.

‘내가 왜 그런 실책을···.’

마음이 급해져 간부 모두를 소집해 긴급 지령을 내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결과가 레드 리버 최고 비밀 조직 최강의 5인을 잃는 결과가 되었으므로.

‘아니 지령 자체는 합당했을 텐데···.’

그랑블루에서는 유경규를 알아보고, 빠르게 준비를 완료했다. 안내받는 그의 기분은 참담했다.

‘하필이면 여기를 장소로 선택하다니. 머리가 잘 굴러가는 놈이구만.’

적대 관계에 있는 클랜의 심장부에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진영의 단호한 말에, 유경규는 하는 수 없이 수긍했다.

“이거 일이 되게 재밌게 굴러갑니다 그려?”

복도를 따라 진영이 미리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이동하던 그의 눈 앞에 가장 꼴 보기 싫은 상대가 나타났다.

그랑블루의 부마스터 진철이었다.

그는 대놓고 이죽거리며 유경규를 비꼬았다.

“스파이에, 회귀자 암살 시도에···. 우리를 간 보는 걸로는 부족하셨나 봅니다.”

얼마 전 레드 리버에서는 그랑블루 클랜원 살해 사건까지 있었다. 개인간의 분쟁으로 결론 났지만, 진철은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스파이 사건까지 터졌다.

레드 리버의 이름은 나락까지 실추될 것이다.

유경규가 시덥지 않다는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전 잘 모르겠군요. 정황과 추측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요.”

“그 능구렁이 같은 언변은 여전하십니다. 허허. 조만간 결과가 나올 테니 기다리시기만 하시죠.”

진철은 그 말을 끝으로 유경규를 스쳐 지나갔다.

두 클랜의 수장의 대화에서 직접 이야기할 정도란 건 확실한 증거가 모였다는 의미였다.

‘젠장···.’

꼬리가 제대로 밟힌 이상, 막대한 손해는 감내해야 했다.

이제 남은 건 그 리스크를 어떻게 줄이느냐였다.

끼익.

문을 열고 응접실로 들어가자 진영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7번째 회귀자···.’

유경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보낸 모든 암살자를 처치하고, 비밀 간부들까지 전부 제거한 미친 괴물.

유경규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긴장감에 한숨을 내뱉었다.

* * *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애초에 진영을 만나고자 한 것은 유경규였다.

“진영군이라고 불러도 되겠나.”

“마음대로 하시죠.”

“그래, 배려해주니 고맙군.”

그러고 나서 유경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 전체에 감싸인 침묵.

콰앙!

침묵을 깬 것은 커다란 파열음이었다.

“이게 무슨···.”

유리 테이블에 레드 리버의 유경규가 머리를 박은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이마에서는 옅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단은 사죄하지. 내 쪽에서 벌였던 일 모두 내 책임일세.”

진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인간은 진영을 세 번이나 죽이려 한 자다.

진영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지시에 간단하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는 어떤 것을 사죄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어떤 걸 사죄하시는 거죠?”

“모든 걸, 자네에게 심려를 끼친 모든 걸 사죄하네.”

두루뭉술한 화법이었으나.

레드 리버의 수장으로서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최대한 이었다.

“레드 리버의 입장도 고려해 주었으면 하네. 레드 리버에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지. 그들이 모두 나와 같지는 않다네.”

비밀 조직처럼 음습한 일을 맡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표면에서 평범한 클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도 있다.

레드 리버의 실질적인 수입은 음지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양지에서의 이권을 쥐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싹은 모두 잘라 버리는 것으로 세를 불려 온 클랜이었다. 모태가 범죄 조직인만큼 정상적으로 키워 온 세력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자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네. 과거의 일은 잊고 말일세.”

양지에 존재하는 레드 리버만이라도 살려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레드 리버의 기둥은 사라졌지만, 평범한 레드 리버의 일원들도 있기에.

진영은 무감하게 대답했다.

머리를 찧고, 사죄를 하고, 동정을 호소하든 말든 이 자는 믿을 만한 자가 아니다.

오로지 거래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그만한 성의를 보여주셔야 할 겁니다.”

“당연하고 말고. 이미 2만 코인을 준비해놨네. 자네에게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니···.”

“아뇨, 그건 당연히 주셔야 하고. 레드 리버에서 해 줄 일이 있습니다.”

탑 공략에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영이 직접 나서서 하기에는 귀찮은 일들.

이런 것들은 레드 리버의 인프라를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탑 내 신흥 종교 ‘목성교’에 대한 조사.”

“아, 그거에 관해서라면 우리도 이미 진행 중에···.”

말을 잇던 유경규가 고개를 떨궜다. 진행중이던 간부가 전부 죽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플레이어 영화수를 통한 탑 내 플레이어 커뮤니티 개설.”

“그건 뭐지?”

“나중에 차차 설명 드리겠습니다.”

“세 번째로 그랑블루에 심어 놓은 스파이에 대한 인정과 각종 사건에 대한 진상과 저를 향한 공개 사과입니다.”

“······!”

유경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만큼은 어떻게 안 되겠는가?”

사실상 세 번째 제안을 막기 위해 찾아온 셈이었다. 레드 리버의 이미지와 신용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진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클랜이 붕괴 직전에 가더라도 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것인지, 아니면 클랜의 몰락을 지켜보던지 둘 중 하나 고르시죠.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진영을 바라보는 유경규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 * *

“차, 찾았다! 이진영 이 미친놈!”

두 번째 ‘탑이 품은 보물’을 발견한 염태준이 소리쳤다.

다리는 쑤시고, 팔과 몸은 잔상처들로 욱신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두 번째 보물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 그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건 세 개인가.”

이걸 찾으려고 진영이 말한대로 15층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아무리 진영이라고 해도, 모든 보물의 위치를 세세하게 알 수는 없는 법.

누군가는 발품을 팔아야했다. 결국 보물은 15층 구석의 땅 밑에서 발견됐다.

염태준은 개처럼 일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가족도 아는 사람도 없는 염태준에게 있어 삶의 낙이란 아이템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탑의 보물이었다.

5개를 모으면 초월의 좌에 오르게 해준다는 보물들.

염태준은 이번에 발견한 영원 불멸의 고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자신의 의뢰소로 돌아왔다.

“찾느라 꽤 걸렸겠네.”

의뢰소의 문 앞에는 이진영이 서 있었다. 그를 확인한 염태준이 씩 웃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힌트를 주러 온 건가? 아니지, 아니야. 오늘 찾은 것만 해도 흥분되서 쓰러질 지경이니까 천천히 말하라고.”

“아니, 이번에는 내가 용건이 있어서 온거야.”

염태준은 잊어버린 듯하지만 이것은 거래였다.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신 염태준은 진영에게 협력할 의무가 있었다.

“오케이, 일단 이리 들어오라고.”

신이 나서 담배에 불을 붙인 염태준이 의뢰소 안으로 들어섰다.

찾은 보물을 신주단지 모시듯 전시해두고 의자에 앉았다.

진영은 본론을 말했다.

“레드 리버에서 조만간 너를 다시 해결사로 부를거야.”

“엥? 나를?”

이미 진영을 처리하라는 의뢰를 배반한 자신을 다시 부른다니.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하고 있자, 진영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쪽에서 운용할 수 있는 인원들이 다 죽었거든. 그래서 목성교라는 단체에 대한 조사 의뢰가 너한테 떨어질텐데, 받고 나서 나랑 같이 움직여야겠어.”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배신자를 다시 쓸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정이 넘치는 곳이던가? 하여튼, 조사라···. 어쩐지 마음에 안 드는데.”

진영은 염태준을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목성교는 미래에서 탑의 품은 다섯 개의 보물을 전부 모으게 되는 종교 단체야.”

“어?”

그 말에 염태준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반드시 없애야 할 단체 중 하나지.”

탑을 오르기 위해 반드시 멸해야 할 3대 거악이 존재한다.

첫 번째가 레드 리버.

두 번째가 목성교.

세 번째가 크라임즈.

레드 리버는 진영의 손에서 일단락 되어가는 추세이다.

두 번째 목성교는 탑 내 신흥 종교로서 빠르게 교세를 확장해 나간다. 그들의 주요 교리는 탑에 관련된 것들인데, 그 핵심이 다섯 개의 보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보물에 담긴 전설이 거짓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해체되지만···.’

광신도들이 저지르게 되는 만행은 차마 전부 설명하기 힘들 정도. 그들 때문에 탑 공략이 뒤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시점에서 적절한 제지가 필요했다.

“오호···. 보물을 다 모은 놈이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초월의 좌에 오르는 건 누구···. 아니다 말하지마. 직접 알아봐야 재밌지.”

“그래 궁금하면 목성교를 조사하면서 알아보고, 아마 보물 하나 정도는 더 건질 수도 있을거야.”

“좋아, 이거 동기부여가 빡세게 되는데?”

염태준은 웃음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더 없이 좋아보였다.

“야, 기분이다. 나 따라와. 기가 막힌 걸 보여주지. 내친김에 그 중에 원하는 게 있으면 빌려주마.”

“뭔데?”

“염태준의 비밀 컬렉션이라고 들어는 봤냐. 어디서도 보지 못한 진귀한 아이템들을 구경 시켜주지.”

신이 난 염태준이 자신의 창고를 여는 붉은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진영이 씩 미소를 지었다.

“뭐, 나야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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