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는 자와 도둑 맞는 자(4)
“우, 운이 좋았다고?”
진영은 가고일의 마력 브레스에서 살아남았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브레스의 파괴력이 비정상적이었다.
미로 벽을 뚫고 외벽까지 닿은 브레스를 운이 좋아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리가 없어.’
S급 불사자 클래스를 가진 비밀 간부의 리더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살아남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들이 그런 생각을 오래 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
“잠시만요, 아직 뭔가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간부 중 하나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외쳤다.
가고일은 명백하게 죽었다. 리더의 검이 두 마리의 머리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조금 전, 간부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머리가 발치를 뒹굴고 있었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
“이 미로에는 뭔가가 더 있는 게 분명합니다!”
간부들이 멍청하거나,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이어서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었다.
압도적인 정보의 차이에서 온 결과였다.
- 대체 어떻게 된거야? 리더는 사라지고 회귀자가 남아?
- 쟨 갑자기 왜 죽은거야?
- 설마, 이게 다 회귀자가 짠 계략은 아니겠지?
살아남은 세 명의 간부들이 열심히 수신호를 주고 받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은 정답에 근접했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 리더를 기다리자.
- 그래, 상황 보면서 리더를 기다리자. 아마 충격파에 멀리 날아가 버린 거겠지.
- 동의, 함부로 움직이지 말자.
의견을 모은 세 명의 간부들은 긴장한 태세로 주변을 살피며 진영에게 말했다.
“저희 리더는 불사자니까 곧 어디서 나타날 겁니다. 그보다는 아직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저희 클랜원 하나가 당하다니, 분명히···.”
그 말에 백성현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고고···.
살아남은 간부 중 네크로맨서의 스킬이 발동 되었다.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해골들이 일행의 주변을 감쌌다.
‘갑자기 왜 죽은거지?’
팔라딘 녀석의 목이 갑자기 떨어졌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긴장한 간부들 사이로 진영이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방금 당하신 분 때문이신가요? 아마 가고일의 저주 때문일겁니다.”
가고일의 저주.
진영이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에 레드 리버 비밀 간부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뭡니까?”
“자신이 목숨을 잃으면 표식을 찍어둔 상대의 목숨도 거둬가는 마수의 특성입니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방금 지어낸 거짓말인데, 진작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울그락 불그락해진 네크로맨서 간부를 바라보며 진영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가고일은 두 마리였죠. 그렇다는 표식이 새겨진 사람도 두 명.”
그 말에 간부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부 하나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지금 그쪽한테 표식이 새겨져 있네요.”
그 말에 네크로맨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간부라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의연하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푸, 풀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방법이 있다는 진영의 말에 네크로맨서 간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영이 그런 그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가지고 있는 장비와 옷을 전부 벗어주세요. 급합니다. 희미하게 숨이 붙은 가고일 하나가 죽기 전에 마쳐야 합니다.”
* * *
무장 해제 당한 네크로맨서를 처리하는 건 간단했다.
아무리 능력치와 경험치가 높다 한들, 아무 무기 없이 맨몸이 된 상대를 처리하는 것은 쉬웠다.
“이게 가고일의 저주를 푸는 법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네크로맨서의 목이 바닥을 뒹굴었으므로.
“그걸 믿어?”
“이런 씨···.”
진영이 이죽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간부 두 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황을 모르는 백성현이 얼떨떨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진영이 말했다.
“성현씨,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저들은 저를 죽이기 위해 파견 된 레드 리버의 비밀 간부였습니다.”
“네?”
확실히 뭔가가 이상하기는 했다. 탐사대원이라며 동행을 제안했던 사람들이 급하게 배신하고, 그러면서 가고일을 상대로 호각으로 싸우기까지 했다. 미로 탐사 초기부터 공략대이자 탐사대가 움직인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영의 말만 믿고, 간부들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진영의 말이 진짜인지도 알 수 없었으므로.
그러나 백성현은 검을 들었다.
“저는 진영씨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처음부터 진영에게 다가와, 관리자를 불러내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었다면. 충분히 대응할 이유가 있었다.
어느새 다 죽고 남은 간부 두 명이 무기를 겨누었다.
“회귀자 이 새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냐?”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는데. 너무 뻔해서 말이야.”
모든 계획은 읽히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모두 진영이 짠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다크 어쌔신 클래스의 간부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지금.”
레드 리버의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비밀 간부 다섯 중 셋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회귀자의 농간에 의해서.
그가 느끼는 황당함은 마치 토끼 한 마리가 사자 세 마리를 잡아먹은 듯한 감상.
고작 17층에서 온 회귀자일텐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지?
‘젠장, 젠장.’
더 이상의 방심은 없어야 했다.
간부는 뒤 쪽에 멍하니 서 있는 박헌구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 박헌구, 중요한 순간에 회귀자의 발목을 잡아라.
수신호를 본 박헌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박헌구가 스파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았을 터.
폭발 속에서 박헌구를 구해내는 진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실책.
박헌구는 진영을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황을 보다가 유리한 쪽에 붙을 심산이었다.
사사사사-!
다크 어쌔신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 다섯 개가 생겨났다.
옆에 있던 검은 사제의 저주를 통해 그림자 하나하나에 녹색 왕관이 생겨났다.
“제법 머리를 굴린 모양인데, 여기서 끝이야.”
이것으로 그림자 하나하나가 가진 힘은 본체와 맞먹는다.
회귀자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 리더도 돌아온다.’
충격파에 저 멀리 밀려갔을 거라는 헛된 망상.
그것이 간부 둘을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타다다닥!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백성현이 긴장한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백성현? 이진영은 어디에 있지?’
전투에 있어서는 프로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것이 비밀 간부진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비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상대를 굴복 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
상대를 확인하고 공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투가 될 수 없다.
절대 은신을 쓰고 달려나가는 진영의 단검이 바람처럼 다크 어쌔신의 목을 베어냈다.
“커헉?!”
스사삿!
기세 좋은 그림자들이 바닥으로 폭삭 주저 앉으며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은신을 해제한 진영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하나 남은 간부 어둠의 사제가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그의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고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기를 제물로 바쳐 상대에게 죽음의 데미지를 주는 어둠의 사제 궁극의 스킬.
- 최후의 제물
붉은 기운이 진영을 향해 정확히 꽂혔다.
‘됐어!’
이것을 직격으로 맞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맞는 순간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자신보다 더 심한 데미지를 받아 피를 쏟아내게 되니까.
“······!”
저주의 효과가 완벽하게 들어갔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진영이 피를 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어둠의 사제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후! 무슨 방식을 쓰는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하지.”
이제 리더가 돌아오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물론 그 전에 백성현도 처리해 두어야 했고.
- 박헌구, 이진영은 됐고 백성현이나 붙잡고 있어라.
이진영을 방해 하라는 조금 전 명령을 모른 척하고 있는 게 가증스럽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기세는 이쪽으로 기울었으니까.
검은 사제는 붉은 단검을 꺼내들어 바닥에 쓰러진 진영을 향해 내려 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터억.
진영의 손이 단검을 붙잡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내는 힘이 아니었다.
“뭐야?”
진영은 당황한 간부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그의 목에 단검을 꽂아넣었다.
“크헉!”
목을 부여잡은 간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영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간부를 발로 차 마무리했다.
‘불사자 특성···. 미친 사기 특성이잖아.’
[ 특성 ‘이계 규율 - 탐욕’의 효과로 훔쳐낸 대상의 효과가 조금 좋아집니다. ]
[ 훔쳐낸 대상은 특성 ‘불사자의 몸’입니다. ]
[ 랜덤한 기억을 일부 잃는 패널티가 사소한 기억을 잃는 패널티로 변화합니다. ]
진영의 특성으로 효과가 좋아진 불사자의 몸.
24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한 번 훔친 상대에게서 다시 훔칠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렇게 되면 상대가 이 능력을 알아챈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사용법은 차차 더 생각해 볼 문제였다.
진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머리에 검이 꿰뚫린 채 죽은 가고일과, 간부들의 시체. 그리고 박헌구와 백성현이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보고도 못 믿겠습니다.”
“히든 피스 덕분이죠. 일단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모아서 가져야겠습니다. 잠깐 도와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 때 뒤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박헌구가 걸어나왔다.
상황이 종료된 낌새가 보인 탓이다.
“머, 멋지십니다! 이놈들이 다 진영씨를 죽이려고 온 레드 리버 놈들이란거죠?”
진영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알고 계시네요.”
등골이 오싹해지는 웃음에 박헌구는 애써 태연한 척 따라 웃었다.
* * *
그랑블루로 복귀하자, 심각한 표정의 민아영이 일행과 마주했다.
그녀의 손에는 여러장의 문서가 들려 있었다.
“박헌구, 당신을 현 시간부로 레드 리버 스파이로 취급하고 구금하겠습니다.”
“에?”
순식간에 그를 둘러싼 클랜원들에 의해 박헌구는 질질 끌려갔다.
“제가 스파이라뇨! 뭔가 착각하고 계신게···! 이것 좀 놔주십쇼!”
백성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죠? 박헌구씨가 스파이였다니.”
“스파이 맞습니다.”
“그럼 스파이를 계속 데리고 다니신거에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더욱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으니까요.”
“와우···.”
멍하니 있는 백성현을 두고 진영은 민아영의 앞으로 다가갔다.
“잘 하셨습니다.”
“덕분에 할 만했어요. 더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진영은 계속해서 박헌구를 데리고 나가며 그의 행동을 유도했다. 그 사이 민아영은 편하게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새로운 증거를 만듦과 동시에 과거의 증거를 모았기에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증언을 받아내는 건 금방일거야.’
스파이가 특정된 이상 그랑블루에도 나름의 시스템은 존재한다. 박헌구는 저리보여도 상황을 빠르게 읽을 줄 아는 놈이니, 최대한 그랑블루의 편에 붙으려고 할 것이다.
레드 리버의 몰락이 가속화 되고 있었다.
반응은 금방 왔다.
그로부터 하루 뒤.
진영의 숙소 앞으로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찾아왔다.
레드 리버의 표식이 새겨진 배지를 단 남성.
“이진영님. 레드 리버 대표로 나온 노영후입니다.”
진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레드 리버에서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어제 있었던 사건이라면, 그랑블루에 물어보시죠.”
“아뇨, 그 사건과는 일절 관계없는 용건입니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레드리버 부마스터 유경규님께서, 이진영님을 직접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진영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씩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되겠죠?”
레드 리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전에 얻어먹을 건 얻어 먹어야 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