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는 자와 도둑 맞는 자(2)
이렇게 쉽게 동행을 허락하다니.
자신을 김신원이라 소개한 남자는 속으로 찐한 미소를 지었다.
진영의 생각대로 그들은 평범한 탐사대가 아니었다.
진영을 조용하게 처리하기 위해 결사된 5인의 비밀 간부.
‘회귀자 하나 잡는데 우리가 전부 나서야 한다는 게 맘에 안들지만 어쩔 수 없지.’
부마스터가 얼마나 삽질을 해놨던, 지령은 지령이었다.
범죄 길드가 모태가 되어 시작된 레드 리버. 그 본체는 레드 리버의 뒤편을 책임지는 그림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 전력이 나섰으니, 회귀자가 버티는 게 이상하다.
‘그래도 이번 회귀자는 두 번이나 레드 리버에서 보낸 암살자를 막아냈다.’
심지어 해결사 염태준까지 막아냈으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레드 리버에서 직접 나서는만큼 이번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어쩌면 무언가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김신원의 끈적한 시선이 진영에게 꽂혔다.
이번 회귀자는 보통이 아니다.
분명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동행을 허락했을 것이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김신원.
가장 앞서 나가는 이진영은 비릿한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열심히 생각해 봐라.’
이들은 진영이 그들의 정체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레드 리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 한군데 모여있다.
이 사실이 알려주는 건 간단했다.
이들이 죽으면 레드리버는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는다.
진영은 모두를 사냥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미로이기도 하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서로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며 일행은 계속해서 미로를 나아갔다.
16층 미로는 총 세 개의 중간 보스를 처리해야 출구가 나타난다.
문제는 그들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건데, 아니나 다를까 레드 리버의 김신원이 말을 걸어왔다.
“회귀자라고 들었는데. 혹시 미로의 길도 알고 계신가요?”
“아뇨, 그 정도까지는...."
“그러면 천천히 가시죠. 저희가 뒤쪽으로 특수한 실을 늘어뜨려 놓고 와서 돌아가는 건 염려 없습니다.”
아무리 진영이라고 해도 미로의 내부를 다 알지는 못했다.
일단 움직이면서 기억을 좀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
“막혀 있네요. 아까 갈림길로 돌아가죠.”
1시간이 넘게 걷다보니 드디어 막다른 길이 하나 나왔다.
그다지 흥미로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백성현은 진지한 눈빛으로 이진영을 따랐다.
기대를 한 껏 받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 오히려 부담스럽다.
“여기서 잠깐 휴식 할 수 있을까요?”
반면 박헌구는 계속해서 일행의 발목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백성현을 꼬드겨서 잠시 빼내려 한 작전이 안 된 모양이다.
“휴식 좋죠. 그런데, 저기 앞에 나온 마수 하나만 잡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일행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려던 그 때, 미로의 안 쪽에서 마수 하나가 기어 나왔다.
“리자드맨···.”
백성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랭커가 긴장할 정도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도마뱀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손에 든 쿠크리를 휘두른다.
평균 스탯 4단계(영웅)의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심지어 지능이 매우 높아, 조금만 불리해도 도망쳐 동료들을 불러오기 일 수 였다.
백성현이 소리쳤다.
“모두 뒤로 물러서세요!”
파티원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은 것은 그래도 자신이었다.
스릉-.
검을 꺼내 든 백성현이 망설이지 않고 리자드맨을 향해 달려 갔다.
동료를 부르면 상당히 성가셔진다. 아니, 잘못하면 파티가 전멸당할 수도 있었다.
이 파티는 전투를 위한 파티가 아니었다. 레드 리버 또한 그저 탐사대일 뿐이고.
카앙!
그런 착각 속에서 백성현과 리자드맨의 검이 맞부딪혔다.
탐사 대원들은 굳은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무서워서나,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 잠시 대기, 우선은 백성현의 실력을 본다.
-그냥 바로 여기서 다 처리하면 안 돼?
- 백성현이 너무 거물이라 안 돼. 이미 우리가 동행하는 걸 본 목격자가 많다.
진영이 다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녀석들은 비밀 수신호를 사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박헌구가 시원찮으니 플랜 B다. 관리자를 이용하자.
녀석들의 비밀 작전은 더는 비밀이 아닌 셈이었다.
* * *
“이 쪽으로 오시면 안됩니다!”
확실히 리저드맨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잔몹처럼 단숨에 썰어 버리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몇 번의 공방이 이어지는 와중에 레드 리버의 탐사대 중 하나가 슬며시 다가왔다.
“도움이 될만한 게 없을까요?”
“제 자리로 돌아가 주세···!”
리저드맨은 지능이 높고 똑똑할 뿐만 아니라 영악하다. 가장 약한 존재가 있다면 먼저 노리고, 인질을 활용할 줄도 알았다.
백성현의 공격을 피한 리자드맨이 땅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그 대상은 탐사대원이 아닌 백성현과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이런, 젠장!”
몇 번 칼을 주고받자 마자, 리자드맨은 알아차렸다. 백성현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도망쳐서 동료들을 불러 오는 것 뿐.
“아, 정말 죄송합니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 뺵빽한 공격에 틈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탐사대원이었다.
물론 의도된 방해였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백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장 도망가야 합니다. 리저드맨이 동료를 모아 올 겁니다.”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탐사대원이···.”
“그런 말 할 시간도 없습니다. 어서 돌아갑시다.”
“네, 여기 있는 실을 따라가면 곧장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미로의 내부에서 길을 찾는 일은, 종이에 프린트 된 미로를 찾는 것과는 격이 다르다.
높이 솟은 벽 때문에 시야는 막히고, 모든 길은 비슷하게만 보인다.
그렇기에 돌아가는 길을 표시하는 것은 필수였다.
“어···.”
하얀 마법의 실을 따라가던 탐사대장 김신원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이 여기서 끊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수의 짓인 것 같군요.”
“리저드맨 놈들이 아직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우선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돌아가죠. 한 군데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럼요, 그래야죠.”
사고를 가장 한 의도된 실수. 진짜 길을 가리키고 있는 투명한 실은 여전히 멀쩡할 것이다. 진영은 끊어진 실을 살펴보는 척 하며, 바닥에 투명한 실이 잡히는지 확인했다.
‘여기있군.’
진영은 재빠르게 자신의 단검으로 투명한 실을 잘라냈다. 이걸로 레드 리버 탐사대원들도 돌아갈 길을 잃었다.
그걸 모르는 김신원은 심각한 표정 연기를 하며, 일행에게 말했다.
“그런데, 함부로 움직였다가 완전히 길을 잃으면 큰일 아닙니까?”
“그래도 안 움직이다가 리저드맨들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 전에 길을 한 번 확인해보자는 거지요.”
김신원이 손가락이 하늘을 향했다.
아득한 높이의 벽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면 벽을 뚫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곳이 미로라지만 멸망의 탑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오, 탐사대장님 역시 똑똑하십니다.”
“그 생각 괜찮은데요?”
탐사대원과 박헌구의 바람잡이가 붙자, 김신원의 아이디어는 금세 괜찮은 돌파구처럼 변했다.
백성현도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이 진영을 향했다.
‘내 의견은 어떠냐는 건가.’
답은 정해져있었다. 진영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 * *
이 층에서 관리자가 나온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했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필드를 파괴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것이 지금 레드 리버가 당당히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였다.
관리자의 등장과 엮어 이진영을 처리할 계획.
그러나 한 편으로는 찜찜했다.
‘이 녀석 우리 꿍꿍이를 알고 있는 건가?’
회귀자면 16층의 관리자에 대해서 알 수도 있다. 미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관리자 가고일.
아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그러면 벽을 한 번 부숴볼까요.”
그런데 진영은 오히려 직접 나서서 미로를 훼손하려 하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이상 관리자가 위험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뭐라도 숨기고 있나?’
관리자가 나타나면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전멸이다.
왜냐면 평범한 탐사대원들이 가고일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진영과 백성현만으로는 가고일을 막을 수 없다.
‘근데 도대체 왜?’
당연히 진영이 비밀 간부들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평범한 탐사대원이 아니다.
가고일을 잡을 정도는 아니어도, 시간을 벌 수 있다.
콰직! 쩌저적!
어쨌든 진영은 미로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5단계의 마력이 실린 단검 주변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군요. 왜 이런 생각을 진작에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관리자가 오니까 그렇지.’
정말로 모르는 건가? 김신원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벽을 부수는 진영의 얼굴을 정말로 진지했다.
콰직, 콰직.
단검을 몇 번 휘두르자 벽이 과자처럼 떨어져 나가고 건너편의 길이 나왔다.
직접 넘어가는 것보다 확실히 빠르다. 이대로라면 입구까지 단숨에 이동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곳을 관리하는 관리자만 없었다면 그리됐을 것이다.
[ 누가! 대체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거지? ]
펄럭-.
녀석이 나타나는 건 금방이었다.
성인 남성의 3배 크기를 자랑하는 회색 가고일이 일행의 앞으로 내려앉았다.
백성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과, 관리자?”
그랑블루는 정보가 한 발 느렸다. 백성현이 관리자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 그래, 내가 관리자 가일이다. 치졸한 편법을 쓰는 놈이 있다길래 와봤지. ]
스윽.
가고일이 손을 들어 올리자, 구멍이 뚫렸던 미로의 벽면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관리자의 등장은 결코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었으나, 지금 이 순간 레드 리버 탐사대원들만은 녀석의 등장이 반가웠다.
- 생각보다 간단하게 나오는군.
- 백성현을 살려서 증인으로 사용한다.
- 연기 잘해, 실수가 생기면 결국 다 죽여야 하니까.
-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 미로를 제대로 즐길 생각이 없는 녀석들은 이 자리에서 죽여야겠다. 다 한 통속이지? ]
그 말에 탐사대장 김신원이 소리치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저쪽 일행끼리만 구멍을 파던 거라구요.”
“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갑작스런 태세 변환에 백성현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 오호,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너희는 가도 좋아. 최근 너무 많이 죽이기도 했고. ]
관리자가 그들을 놔준다고 말하자, 간부들은 비릿한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이거 손 안 대고 코 풀겠는데.’
상황이 너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관리자와 직접 싸우지 않아도 회귀자는 관리자의 손에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게 슬금 슬금 도망치려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밝은 전기 구슬 하나가 튀어나왔다.
파지직!
“크아악!”
간부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건 검은색 가고일이었다.
[ 관리자 마일입니다. 방관자 또한 그대로 지나칠 수 없습니다. ]
레드 리버 탐사 대원들이 겁도 없이 관리자를 부를만한 행동을 하려 할 때도 진영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16층의 관리자는 둘이다.’
쌍둥이 가고일 가일과 마일.
하나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적을 베어내고, 다른 하나는 푸른 전격으로 상대를 감전사 시킨다.
“이, 이게 대체···.”
예상했던 것과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자, 탐사대원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 중에서도 프로.
당황감에 먹혀도 할 일은 해낸다.
- 플랜 C로 간다.
- 알겠다.
- 바로 움직이지.
미리 준비해둔 계획은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까지 산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냈다.
“어?”
무기를 확인한 백성현의 눈이 커졌다. 탐사대원들이 들고 있기에는 심히 좋은 무기.
그러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카아아앙!
가고일의 발톱과 백성현의 검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가고일은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백성현의 온 몸이 고통에 떨리고 있었다.
“저도 일단 돕겠습니다!”
박헌구가 검을 꺼내들고 가고일 가일의 옆으로 돌아 검을 휘둘렀다.
간부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몰라도, 더는 이 작전에서 그의 쓸모는 없다. 죽고 싶지는 않았다.
챙-!
그러나 가고일의 피부는 박헌구의 검을 허무하게 튕겨냈다.
[ 그래도 전에 봤던 녀석들보다는 뭔가 할 줄 아는 놈들이군. 죽이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 ]
“거기 막아!”
“왼쪽 노려!”
“클리어!”
반면 탐사대 쪽은 굉장한 합을 맞추며, 가고일 마일을 오히려 몰아세우고 있었다.
“할만한데?”
“그냥 죽여버릴까?”
연기도 잊은 채 사냥에 열중이었다.
양쪽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고일이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영은 탐사대장이었던 김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관리자들을 처리하고, 비밀 간부들을 몰살 시키려면 특성을 하나 훔쳐야 했다.
‘훔칠만한 특성이 많군.’
- 적반하장
이계와 이곳의 시간 개념이 다른 듯했다.
하루에 한 번 발동 가능한 전용 스킬이 발동되었다.
[ 스틸Lv1 -> 스틸Lv2 ]
[ 원거리 스틸이 가능해집니다. ]
특성을 훔칠 대상은 여럿이었다.
진영은 나지막이 외쳤다.
- 스틸 ‘특성 탐식’
샤아아아-!
S급 불사자의 특성 '불멸의 신체'.
잘 받아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