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는 자와 도둑 맞는 자(1)
이 세계에 존재하는 클래스의 등급은 F부터 S까지이다.
EX급 아이템은 있었어도, EX급 클래스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진영은 EX급 시프 마스터의 클래스를 가지게 되었다.
‘시련의 보상이 이 클래스란 말이지···.’
클래스는 멸망의 탑에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클래스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스킬은 정해져있고, 특성의 효과도 천차만별.
‘클래스가 바뀌었다면 특성도 바뀌었겠군.’
주오령의 특성 광폭화가 모든 스탯을 2단계 올려주는 사기적인 효과인 것과, 진영의 도둑 특성이 12.5% 확률로 적에게 들키지 않게 해주는 효과인 것만 비교해 봐도 그 차이는 명백했다.
진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특성을 확인했다.
있으나 마나 한 특성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버텨왔던가. 이따금 도움이 되었던 때가 있었지만 다른 특성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쓸만한 특성이 있기를···.’
[ 특성 ]
1. 이계 규율 - 탐욕
2. - - -
보상을 통해 총 두 개가 된 특성창은 한 칸은 비어 있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긴 한데, 우선 설명부터 볼까.’
[ 특성 설명 ]
이름 : 이계 규율 - 탐욕
등급 : EX
설명 : 하늘 아래 훔치지 못할 것은 없으니.
효과 : 훔쳐낸 대상의 효과가 조금 더 좋아집니다. 또한 스틸 스킬에 특수한 부가효과를 부여합니다.
- 탐욕의 왼손
- 특성 탐식
- ??? ( 특정 조건 달성시 해금 )
설명창을 확인한 진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 자체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음표로 되어 있는 부분.
‘계속해서 스틸에 부가 효과가 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효과는 탐욕의 왼손에 버금가는 사기적인 성능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스킬이 성장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미쳤군.’
방금 얻은 특성 탐식의 효과를 확인하는 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부가효과 - 특성 탐식 ]
효과 : 스틸로 상대방의 특성을 훔칠 수 있게 됩니다. 훔친 특성은 24시간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짧은 한 줄이었지만 만족스러운 한 문장이었다.
특성창이 두 개로 늘어난 것은 다른 하나를 훔쳐서 사용하라는 의미였다.
[ 보상을 전부 확인하셨습니다. 원래 장소로 돌아가시겠습니까? ]
시련의 결과에 따라 이계 절대자의 권한을 뛰어넘은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었다.
진영이 획득한 보상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확실한 건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화준은 돌파하지 못한 100층 이후의 벽을 뚫어내기 위해선, 훨씬 강해져야 했다.
그 시작으로서 EX급 클래스의 획득은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본래 장소로 이동합니다. ]
새하얀 빛과 함께 진영의 시야가 일렁였다. 이내 익숙한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 이계의 근원이 시련의 결과를 묻습니다. ]
[ 이계의 본질이 당신이 통과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시련은 도중에 포기가 가능했다. 녀석들이 보기에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진영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클리어 했지.”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성공에 찬사를 보냅니다. ]
시련 자체는 목숨을 건 피의 혈투를 벌일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을 증명하라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자신과의 무의미한 싸움만 반복하다 시련에는 실패했을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의 해는 여전히 중천에 떠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련을 마친 진영의 몸 상태 또한 완벽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멸망의 탑에서 신기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이계 규율과 관련된 것들은 더욱 기이한 면이 있었다.
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16층을 공략한다.’
* * *
[ 16층 : 미로 찾기 - 출구 찾기 ]
설명 : 미로에 숨겨진 마수들을 처치하고, 출구를 찾으세요.
“허어···.”
탐사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 높이 솟은 벽 너머로 이어진 미로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15층이 공략 되고 바로 넘어와, 탐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별 다른 진척은 없었다.
참다못한 탐사 대원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안 되겠습니다. 아예 벽 위쪽으로 올라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괜찮겠어?”
벽은 고개를 완전히 들어올려야 보일 정도로 높았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떨어져 죽는다.
대원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저 바깥에 있을 때 암벽 등반이 취미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그래도 조심해라.”
푸욱, 단검을 벽면에 박아 넣은 대원이 미로의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대원이 상황을 확인할 때까지, 남은 탐사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시작했다.
식량과 커피를 먹으며 대원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15층이 정말로 공략될 줄은 몰랐어요.”
“대형 클랜에서는 공략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게 이번 S급 게이트. 그랑블루 클랜원 세 명이서 클리어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나도 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지.”
S급 게이트는 탑에서 손꼽는 실력자들을 모아놔도 힘들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정확히는 손해 없이 클리어하는 게 힘들다는 의미였지만, 공략이 지체되자 그런 소문이 돌았다.
“아뇨, 그거 진짜에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둘 다 봤어요.”
“아오, 이 새끼 또 뻥친다. 야, 이거나 먹어.”
“진짜라니까요.”
“거짓말을 해도 좀 그럴싸······.”
탐사대장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쿠웅!
하늘에서 검은 물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탐사 대원들은 멍하니 그것을 쳐다만 보았다.
누군가의 입이 열린 것은 조금 뒤였다.
“저, 저거 설마···.”
검은 물체의 정체는 새까맣게 타 버린 탐사대원이었다.
위쪽에서 지리를 확인하기 위해 올라갔던 그 대원이었다.
“이런 미친!”
“윤식아!”
경악스런 표정을 한 탐사 대원들 위로 거대한 가고일 한 마리가 나타났다.
펄럭.
회색빛 날개를 움직이던 가고일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그런 편법은 도저히 넘어갈 생각이 안드는데. 이거 무슨 벌을 줘야 하나. 목이라도 하나씩 자를까. ]
모두의 시선이 가고일에게로 모였다. 모두가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과, 관리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일반 몬스터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 그래 맞아, 나 관리자 가일이야. 그러니까 괜히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벌이나 받아. ]
“크아아악!”
“사, 살려줘!”
“도망, 도망가!”
가고일의 발톱이 플레이어들을 잔혹하게 파고들었다.
* * *
“네? 이번에도 직접 가신다고요?”
진영을 바라보는 고정민의 눈이 커졌다.
“굳이 직접 가셔야합니까? 필요한 게 있다면 여기서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이미 진영은 실력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고정민이 진영을 만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레드 리버나 타 클랜의 견제.
클랜들 중에서도 정보력이 뛰어난 곳은 이미 진영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의도된 것이었다.
대외적으로 그랑블루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그랑블루를 안 좋게 보는 레드 리버 계열 클랜들의 견제가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여기는 멸망의 탑.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랑블루의 의견은 진영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네, 직접갑니다. 인원들만 좀 빌려주시죠. 그 때 그 멤버 그대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박헌구 클랜원은 현재 회복 중에 있습니다. 다른 멤버를···.”
“외상은 전부 치유 됐을텐데요. 그 정도 정신력은 있는 사람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본인이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불러 보겠습니다.”
어지간히 지난 S급 게이트 공략 때 합이 잘 맞았나보다, 그리 생각하며 고정민이 연락을 돌렸다.
레드 리버의 스파이 박헌구.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파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레드 리버에서는 진영에 대한 견제를 통감하고 있을테니까.
슬슬 민아영이 그에 대한 증거를 다 모아두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박헌구의 농간 어느 정도 속아줄 필요가 있다.’
박헌구가 스파이로 밝혀지면, 모든 것이 레드 리버의 탓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레드 리버에서 등을 돌릴 것이다.
“박헌구, 온다고 하네요? 한동안 무조건 쉴거라고 했었는데···. 백성현도 바로 부르겠습니다.”
고정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 *
“이렇게 바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백성현이 미소를 지으며 진영의 손을 마주잡았다.
“헌구씨도 오셨군요. 지난번에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박헌구는 굳어지는 얼굴을 숨기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마수들에게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죽임을 당할 뻔한게 정말로 엊그제였다.
정말 오고 싶지 않았지만, 레드 리버의 지령이 있었다.
‘이진영을 처리해라···. 나 혼자는 절대로 안 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16층에 올라 온 진영의 일행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 일곱번째 회귀자 아니십니까? 직접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레드 리버 16층 탐사대장 김신원입니다. 이 뒤는 저희 탐사대원들이고요.”
얼굴에 화색을 띄며 다가온 사람들은 레드 리버의 탐사대였다.
박헌구는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 역할은 백성현을 떼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게이트와 다르게 이번 16층은 오픈형 필드다. 경쟁 미션도 아니니 다른 클랜원과의 동행이나 협력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부터 조사들어 가시는 거면 같이 가시죠. 먼저 들어갔던 탐사대가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만큼 같이 가면 더 안전할 겁니다.”
이진영이 동행을 허락하면 이야기는 더욱 간단했다.
그런 레드 리버 탐사대를 바라보는 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것들 봐라?’
아마 동행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들은 따라붙을 거다.
그러나 더 기가 찬 일은 따로 있었다. 이들은 그냥 탐사대가 아니다.
자신을 김신원이라고 밝힌 남자는 김신원이 아니었다.
심지어 뒤쪽의 클랜원들도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진영이 이들 모두의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니까.
‘날 잡으려고 아주 작정했는데?’
현 레드 리버 비밀 조직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몽땅 모여 있었다.
후에 클랜 전쟁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사람들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잡겠다는 건가.’
진영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지금, 레드 리버에서는 다소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개입하고자 했다.
‘나한테는 오히려 좋겠는데.’
진영은 레드 리버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폈다.
A급 다크 어쌔신, A급 팔라딘, A급 네크로맨서, A급 어둠의 사제.
그리고 S급 불사자.
‘레드 리버에서도 급하기는 어지간히 급한가보군.’
본래 역사대로였다면 레드 리버는 기울어가는 그랑블루와의 격차를 뒤집기 위해, 물밑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그것이 폭발한 것이 클랜 전쟁.
그러나 그러한 물밑 작업을 가능케 하는 체이서 길드가 증발했으니, 녀석들의 행동이 거칠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진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시죠. 사람이 많으면 더 좋은 건 당연하니까요.”
“네? 아, 네. 같이 가죠.”
진영이 허락할 줄 몰랐다는 듯 탐사대장이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진영은 레드 리버에게서 거의 직접적인 습격을 받았다.
그런 그가 동행을 쉽사리 허락할 줄은 몰랐던 것.
약간의 설득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탐사대시니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 한 번씩 하시죠.”
간부들은 찜찜해하면서도 진영의 손을 맞잡았다.
레드 리버라고 모든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평범히 좋은 사람도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진영의 행동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슈우-.
악수를 하는 진영에게로 소량의 코인이 흘러들어왔다.
진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