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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61화 (61/152)
  • 절대자의 비밀창고(4)

    검은 마력으로 이뤄진 분신들은 완벽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숨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모습뿐이었다.

    ‘완벽하게 내 스킬을 카피하지는 못한다.’

    진영이 가진 ‘절대 은폐’ 스킬을 그대로 사용헀다면, 작은 기척조차 진영이 느낄 수 없어야 할 터.

    분신들에게서는 움직임이나, 마력과 같은 기척이 분명히 느껴졌다.

    쉬익-!

    분신의 칼날이 진영의 머리 깨를 스쳐 지나갔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녀석들의 기척을 읽어내는 것은 간단했다.

    ‘나하고 정말 비슷하기는 하군.’

    그러나 자신의 행동 패턴을 생각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빗발치는 검격 속에서 진영은 진짜 절대 은폐 구역을 설정했다.

    우뚝.

    그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휘둘러지던 검격이 멈췄다. 분신들이 사라진 진영을 찾아내기 위해, 은신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분신이라고는 해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면, 어려울 게 없지.’

    서걱-!

    녀석들은 이성을 잃고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다. 능력치나, 아이템, 행동 패턴은 어느 정도 비슷할지 몰라도 그들은 진영이 아니었다.

    서걱, 서걱!

    은폐 구역에 숨은 진영이 스쳐 지나가는 분신들의 목을 베어냈다. 녀석들은 여전히 진영의 위치를 짐작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녀석들의 목이 전부 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시련치고는 어쩐지 시시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진영이 고개를 들자, 바닥에 쓰러졌던 분신들이 검은 마력으로 바뀌며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고고···.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는 진영과 완벽히 똑같은 눈을 한 분신이었다.

    차갑고도 고요한 눈빛.

    흔들리지 않는 올곧음을 담은 시선.

    ‘저 녀석이 진짜인건가.’

    느낌이 달랐다. 양산형으로 찍어내듯 나왔던 분신들과, 지금 눈 앞에 나타난 단 하나의 분신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스윽-.

    분신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게 전투 시작 신호라는 것을 진영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 * *

    카앙-!

    단검과 단검이 맞부딪히며 붉은 빛이 터져나왔다.

    검을 받아내는 진영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강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과 같다. 완벽히 같은 능력과 기술.

    검을 한 번 맞댈 때마다 여실히 느껴지는 기술의 숙련도.

    카아앙! 카앙!

    거울을 바라 보듯 이어지는 기술의 향연.

    99층까지 오르며 습득했던 기술과, 연마했던 재주들이 눈 앞의 분신에게도 녹아 있었다.

    한 걸음 앞서 나갈려치면, 분신이 그 수를 예측하고 앞으로 나선다.

    분신의 수를 읽고 자신의 수를 내지르려고 하면, 어김없이 가로막힌다.

    - 절대 은폐

    한 걸음 앞으로 은폐 구역을 설정하고 발을 들이는 순간.

    분신 또한 눈앞에서 사라진다.

    조금 전 양산형 분신들이 따라한 스킬과는 질적으로 다른 스킬이었다.

    진영조차 분신의 기척을 감지할 수 없었다.

    서로서로 볼 수도 감지할 수도 없는 상황.

    행동이 빠른 것은 분신의 쪽이었다.

    카아앙!

    기척을 알아챌 수 없는 은폐 구역이라 한들, 그 자리에 진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은폐 구역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했다.

    ‘이런···!’

    붉은 불똥이 튀어 올랐다.

    분신은 진영을 은폐 구역 내에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완전한 호각.

    카앙! 카앙!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듯한 느낌. 그러나 이 게임은 오래갈 수 없었다.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겠는데···.’

    아무리 은신으로 몸을 숨긴다한들, 상대는 자신의 행동까지 예측하고 있을 확률이 컸다. 오히려 틈을 주는 행동일 수 있었다. 상대는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진영이 각오한 듯, 백스텝을 밟아 뒤로 빠져나왔다.

    그새를 놓칠세라 분신이 진영에게 달려 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진영의 단검이 분신의 단검을 거세게 쳐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싸울 수는 없어.’

    분신과 진영은 서로의 공격과 방어의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치 혼자서 장기를 두는 것처럼 노림수와 그 방어법까지가 절묘하게 떠오른다.

    카가각!

    단검이 맞부딪히며 솟아오르는 불똥에 검날이 달아올랐다.

    이러한 공격이 몇 차례 더 이어졌으나, 결착은 좀처럼 나지 않고 있었다.

    진영이 차분하게 숨을 삼켰다.

    ‘시련은 분명히 증명하라고 했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

    분신과 자신의 차이점이 중요했다.

    완벽히 복사된 자신과 비교해서 진영 스스로가 더 나은 점은 무엇일까?

    철학적인 물음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분신의 공격을 흘려낸 진영이 다시금 은폐 구역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아깝지만 이대로가면 불리한 건 내 쪽이야.’

    분신은 시련의 던전에서 계속해서 마력을 공급받고 있었다.

    반면 진영에게는 마력과 체력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벌써 수 십 합도 넘는 공방이 오갔지만, 여전히 결판이 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증명이라······.’

    시련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진영의 눈빛이 깊어졌다.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진영의 손에 끼고 있던 장갑에서 일순 빛이 일렁였다.

    ‘장비 전용 스킬 - 적반하장 발동’

    스틸 레벨을 1 올려주는 헤르메스 장갑의 전용 스킬이었다.

    이것으로 Lv2가 된 스틸은 원거리에 있는 적의 아이템도 훔쳐 올 수 있었다.

    진영은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래, 분신은 분명히 나처럼 싸우고 있어. 하지만 이건 도둑의 싸움 방식이 아니다. 나는 도둑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살면서 도둑질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자신의 클래스가 왜 도둑인지.

    그러나 회귀를 겪고, 탑을 다시 오르게 된 진영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클래스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도둑 클래스였기에 훔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멸망의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면, 정말로 도둑이 된다 한들 상관없었다.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무너져 내릴 것들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쉬이익!

    노림수를 알아챈 분신은 곧바로 단검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그러나 진영은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 스틸

    그리고 정확히 다음 순간.

    분신이 들고 있던 단검이 사라졌다.

    “!”

    잠시 생겨난 틈을 진영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진영은 그대로 양손으로 분신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분신 또한 힘 겨루기를 하듯 진영을 꽈악 붙잡았다.

    [ 스틸 스킬을 사용합니다. ]

    [ 스틸 스킬을 사용합니다. ]

    [ 스틸 스킬을 사용합니다. ]

    분신에게서 아이템을 훔치고, 또 다시 분신이 아이템을 훔쳐간다.

    진영이 매고 있던 장비들이, 분신이 끼고 있는 정확히 같은 아이템 모두가 사라졌다가 손에 들렸다가를 반복한다.

    아이템이 벗겨지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최후의 순간.

    모든 아이템을 훔쳐낸 것은.

    진영이었다.

    “······.”

    스스스···.

    모든 아이템을 잃어버린 분신은 한 순간에 한 줌의 검은 모래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시련 : 존재 증명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시련이 보고자하는 것은 진영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가치를 증명하는 것.

    상대를 쓰러뜨리라고 한 적은 없었다.

    [ 이계 규율에 따라 시련의 결과를 판단 중에 있습니다. ]

    시련 자체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진영이 사용했던 완전무결 스크롤이 더욱 가치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보상을 기다리는 것 뿐.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있었지.’

    진영은 아이템 창에서 엘릭서 병을 꺼내들었다.

    비밀창고를 지키고 있던 사제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듣기로는 이계의 절대자가 찾던 물건이라고 하던데···.

    그만큼 중요한 게 틀림 없지만, 문제는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

    ‘비밀 창고에서 나온 아이템은 죄다 어떤 아이템인지 확인이 안 되는군.’

    절대자의 비밀 창고에는 진영조차 처음 보는 아이템이 정말 많았다.

    그곳을 보고 나니 염태준의 비밀 창고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 지경.

    ‘일단 이 엘릭서는 가지고 있는 게 좋겠어.’

    함부로 마시거나 하기는 꺼림칙하지만, 이계의 존재들에게 물어보면 정체를 알 수도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이계 외곽 같은 이계의 존재들과 대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해야겠지만.

    진영이 정리를 마치는 사이, 기다리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 시련의 평가가 완료되었습니다. ]

    [ 보상의 방으로 이동해주십시오. ]

    * * *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새로운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그에 맞춰 어찌어찌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낯설었던 것들이 원래 있던 것처럼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멸망의 탑과 시스템 또한 그랬다.

    처음에는 굉장히 생소했던, 마법 같은 일이었지만 일상이 된 이후로 사람들은 더는 신기해하거나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저벅, 저벅.

    복도를 따라 이동하는 진영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멸망의 탑에 대해 파헤칠수록. 이계의 존재들과 부딪힐수록 그러한 의문은 점점 증폭되었다.

    ‘이 시스템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걸까.’

    마치 게임처럼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방식.

    여기에 얽매여 있는 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보상의 방 앞에 도착한 진영이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우선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도둑 클래스기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터.

    끼익.

    문이 열리자 새하얀 장식품들로 가득 찬 방 하나가 나왔다. 천장 위로 뚫린 유리에서는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짝이는 완전무결한 빛.

    진영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당신은 이계 시간축의 유일무이한 도둑입니다. ]

    드드드···.

    진영이 매고 있던 아이템 주머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가지고 있던 스크롤 하나가 진영의 의지와 무관하게 바깥으로 나왔다.

    ‘클래스 업그레이드 스크롤? 체이서 클랜에게서 뜯어낸 아이템이었는데, 저게 왜?’

    스크롤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금빛 가루로 변한 스크롤은 진영의 주위를 수차례 돌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 당신의 클래스가 ‘EX급 시프 마스터’로 변화했습니다. ]

    메시지를 확인하는 진영의 눈이 커졌다.

    클래스에는 EX 등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EX급···?”

    놀랄 새도 없이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특성칸이 두 칸으로 늘어납니다. ]

    [ 스틸Lv1 : 부가효과 ‘특성 탐식’이 추가됩니다. ]

    특성칸이 두 칸이 되고, 새로운 부가 효과를 얻게 된 것은 좋았다.

    심지어 처음 보는 부가효과.

    “이건······!”

    설명을 확인하는 진영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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