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의 비밀창고(1)
‘절대자의 비밀 창고라···.’
타악.
진영이 허공에 떠오른 붉은 열쇠를 손에 쥐었다.
이계의 근원과 본질이 서로 경쟁하는 대신 합의하에 꺼낸 보상이었다.
이번 S급 게이트 공략의 보상도 겸하고 있으니, 확실히 의미가 있는 보상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름만 보아도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네..’
이계의 존재들은 지금까지 진영의 행적을 살펴왔다.
그만큼 진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보상은 그야말로 진영을 위한 보상이었다.
‘비밀 창고···.’
곧장 열쇠를 사용하기는 망설여졌다. 권장 입장 사항이 55층 이상.
지금 능력치로는 턱도 없는 장소였다.
지나가는 잡몹 하나만 마주쳐도 끔찍하게 살해당할 정도의 능력치 격차.
그런데도 이러한 보상을 주었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였다.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 오라는 것 같네.’
분명 비밀 창고 안에 있는 아이템들은 현재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들일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게 이름부터가 절대자의 비밀창고였으니까.
진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만약 안전하게 비밀 창고를 털어올 수만 있다면···.’
실제로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진영의 스킬 절대 은폐를 쓰면, 어떤 존재이건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었다. 은신 유지 시간은 아직 20초 정도가 한계였지만 말이다.
‘도전해 볼만한데.’
설령 거기에 있는 아이템 하나만 챙겨오더라도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터.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이 열쇠를 사용하기를 기대합니다. ]
이계 녀석들은 정확히 어떤 목적인지는 몰라도 진영이 탑을 클리어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지속된 보상들도 진영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들 뿐.
‘이번 보상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준 거겠지.’
들어가자마자 비명 횡사 당할 곳이었다면, 애초에 보상으로 나올 리도 없었을 것이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진영이 자신의 팔목에 있는 검은 팔찌를 바라보았다.
‘이계 규율 - 절대 회귀’.
가능하면 회귀를 사용하는 일 없이 가고 싶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굳이 아낄 필요가 없었다.
회귀 포인트를 다시 설정하고 회귀하면 된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죽음. 거리낌 따위는 없었다.
‘근데 히든 플레이스에서 받았던 이름 없는 여신의 신탁은 분명 회귀를 하지 말라고 했었단 말이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아쉬었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탑을 빠르게 공략하기 위해서는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야.’
인류가 멸망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있으니 말이다.
진영이 손에 들려 있던 붉은 열쇠를 허공에 가져다 대었다.
철컥.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 색의 게이트 하나가 방 안에 생겨났다.
“붉은색 게이트라···.”
게이트들은 대게 어두운 계열의 색상이다. 그런 게이트에 색깔이 생겼다면 무언가 기존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수 게이트이거나, 특별하게 생성된 게이트이거나.
진영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55층 이상의 플레이어의 입장이 권장되지만, 괜찮았다. 진영의 목적은 전투에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쓸만한 아이템을 가져온다.’
이걸 알고 이계의 존재들도 이러한 보상을 제공한 것이리라.
스르륵-.
진영의 몸이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순식간에 주위가 바뀌었다.
* * *
[ 이계 : 절대자의 비밀 창고에 입장하셨습니다. ]
[ 창고에서 원하는 아이템 1개를 골라 즉시 퇴장하실 수 있습니다. ]
[ 창고에서 2개 이상의 아이템을 챙기실 경우, 지배자의 주시도가 상승합니다. ]
염려와 달리 진영이 도착하자마자 공격이 쏟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타악.
진영이 발을 내딛자, 새하얀 바닥이 보였다.
건물 양식으로만 보았을 때 이곳은 거대한 신전의 일부처럼 보였다.
진영은 자연스럽게 벽을 향해 몸을 숙였다.
‘은신 스킬에 사용 제한이 있는 만큼,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말아야 한다.’
절대자나 초월자의 눈까지 속일 수 있는 스킬 절대 은신.
문제는 마력 소모가 너무 심했다.
‘일단 창고 안을 지키는 녀석은 없을 테니,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스킬 사용은 자제하는 게 좋겠어.’
창고 바깥을 지키는 이는 있을지 몰라도, 안쪽에서 지키는 녀석은 없는 법이다.
진영은 창고 안에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남은 건 원하는 아이템을 골라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이 아이템들이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른다는 거군.’
비밀 창고 안은 신화준의 비밀 콜렉션 이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중세의 고급 귀족들만이 사용할 법한 창고였다.
‘이런 창고를 마음대로 들여 보내줘도 되는 건가?’
신화준의 말에 따르면, 이계의 절대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녀석이었다.
그가 자신의 아이템을 나누어주는 것 같지는 않고···.
근원과 본질이 합심해서 이곳으로 들여 보내준 것 같았다.
‘나야 고맙지만.’
이곳에 도착한 뒤로, 이계의 존재들로부터의 메시지는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이계 외곽 숲에서는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려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었는데 말이다.
진영은 상념을 털어냈다.
‘일단은 아이템부터 골라야겠어.’
진영은 고개를 들어 쓱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검은빛이 흘러나오는 펜던트, 허공을 부유하는 황금빛 목걸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흡수하는 구체 등등···.
탑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이곳에 존재했다.
창고를 살펴보는 진영의 눈이 커졌다.
‘전부 모르는 아이템들 뿐이군.’
[ 전문 감정 스킬이 존재하지 않아,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심지어 일반 감정을 막아두는 특수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이었다.
등급조차 알 수 없는, 현시점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템들이었다.
99층까지 올라 본 진영이 모른다는 것은 정말로 희귀한 아이템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뭘 가져가야 할까. 마력을 챙겨야하나. 원하는 능력치가 담긴 아이템을 고를 수도 없겠지만···.’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은 단 한 개였다. 절대자의 창고에 있는 만큼 그 성능은 무엇을 들어도 압도적이겠지만, 가능하면 은신을 오래 사용하기 용이한 마력 아이템이 좋았다.
‘······.’
문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
눈앞에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그 가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진영이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콰앙!
창고의 문 거세게 열리면서 사람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흰색 사제복을 걸친 남자였다.
남자는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다가 거짓말처럼 진영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흐음···. 분명 무슨 느낌이 났는데.”
사제는 진영이 있던 것을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다른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절대 은폐 구역 안으로 숨은 진영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마 도둑?”
남자의 눈빛이 매섭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은 창고의 모습이었다.
아이템들이 깔끔하게 잘 정돈된 모습.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었나. 요즘 들어 이런 실수가 잦은 기분이군.”
그는 가볍게 걸어 다니며 창고 안의 물건들을 대충 확인하고서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은폐 구역에 숨어 있던 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체격은 왜소했지만, 그에게서는 아주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게 생생토록 느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상당했어.’
모든 걸 걸고 싸워도, 지금의 진영이 이기기에는 불가능한 녀석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볼 일을 마치고 나가야 했다.
‘일단 중요한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서 다행이군.’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창고 안으로 들어 온 사제.
창고 안에 들어 온 남자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있었다.
이 곳에 있는 아이템들은 모두 하나같이 강력한 아이템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난 것은 있기 마련.
그렇다면 사제가 그 훌륭한 아이템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당연했다.
보석이 여러개 박힌 강철로 만든 상자.
커다란 자물쇠가 잠겨 있기는 하지만, 진영에게는 상관 없었다.
‘스틸로 내용물만 꺼내면 되니까.’
* * *
‘뭔가 찜찜하군.’
사제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창고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안 쪽으로 나열된 아이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하나하나가 최소 레전더리 등급에 달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는 그런 아이템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오늘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거야.’
분명 평소와 같은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있었다.
사제는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물건인 금고를 바라봤다.
‘···잘 있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던 건가?’
분명히 인기척이 느껴져와 본 것인데, 막상 창고에 들어와보니 인기척은 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금고도 멀쩡해 보였다.
물론 그 내부는 이미 진영의 손에 의해 텅텅 털린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한 바퀴를 돌아 본 사제는 표정을 찡그리며, 창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괜히 시간 낭비했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영이 은신 스킬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그가 품에 숨겨 두었던 종이를 꺼냈다.
보석 금고에서 훔쳐 낸 것은 스크롤이었다.
그것도 기이한 상형문자가 새겨진 스크롤.
효과는 알 수 없었다. 귀중하게 보관하던 것이니 분명 쓸모는 있겠지만 말이다.
진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아이템을 선택하셨습니다.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시겠습니까? ]
진영은 정보창을 띄운채 사제의 뒤를 따라 비밀 창고 밖으로 나왔다.
시스템 때문에 아이템을 쓸어 오는 게 불가능했지만, 창고 밖으로 나와서는 안될 이유도 없다.
‘여차하는 순간에 바로 돌아간다.’
진영이 원래 있던 곳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창고에 있는 아이템은 하나만 가져와야 하지만, 바깥에 있는 아이템은 몇 개를 가져오가도 상관 없는거잖아.’
운이 좋다면 55층에서 쓸만한 아이템을 더 건져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은신을 오래 유지하면, 충분히 이 안을 탐사하는 것도 가능해.’
은신 스킬로 창고를 빠져 나온 진영은 곧장 은폐 구역을 만들어냈다. 은신과 달리 은폐 구역은 3분 정도만 지나면 적은 마력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은신으로 이동하고, 이동한 자리에서 은폐 구역을 만들어내면 들키는 일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창고 밖에는 거대한 모래시계를 짊어진 여신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어디서 많이 봤다고 했더니, 11층에 있었던 히든 플레이스의 이름 없는 여신상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진영은 그 아래에 자리를 잡고 은폐 구역을 다시 펼쳤다.
때마침 반가운 알림이 울렸다.
[ 절대 은폐의 숙련도가 상승해 구역의 크기가 50% 늘어납니다. ]
1m x 1m 의 크기였던 절대 구역이 가로 세로의 길이가 1.5m가 되었다.
“좋았어.”
진영은 한층 여유롭게 금고에서 훔쳤던 스크롤을 꺼냈다.
[ 이계의 근원이 창고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습니다. ]
[ 이계의 본질이 당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 당황합니다. ]
은폐구역 내부에 있을 때는 이계의 존재들조차 진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창고에서 사라진 것까지는 확인했을 터.
진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바로 사용한다.’;
진영은 망설이지 않고 스크롤을 찢었다.
그와 동시에 스크롤 안에 들어 있던 금빛 알갱이가 쏟아지며 진영을 감싸기 시작했다.
[ 이계 : 완전무결 스크롤을 사용하셨습니다. ]
[ 이계의 규율에 따라 시련을 치르게 됩니다. ]
[ 시련 결과에 따라 절대자의 권한을 초월한 보상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최소 25층 권장) ]
[ 시련은 자유롭게 포기 하실 수 있습니다. ]
[ 시련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 / N ]
진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고른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