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층 공략(5)
S급 게이트가 클리어 됐다.
그것도 단 세 명에 의해서.
“지금 S급 게이트가 공략된 거야?”
“들어간지 반나절도 안되지 않았어?”
“저 사람 회귀자 맞지?”
“당장 클랜 전체 회의 소집해!”
그랑블루의 클랜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5층 보스 레이드를 위해서는 보스 앞의 게이트를 모두 제거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는 다시 생성된다. 그러니 가장 성가신 S급 게이트가 공략되었을 때가 기회였다.
“저, 정말로 공략하신 겁니까?”
게이트가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고정민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진영은 아이템 주머니에 있던 보스의 S급 코어를 꺼내 보여주었다.
고정민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는 없었다.
‘굉장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S급 게이트 자체는 공략이 불가능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영은 S급 20명 정도가 달라붙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게이트를 단 세 명이서 해냈다. 회귀자 이전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박헌구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상처가 심했을 텐데···.”
“아, 박헌구 클랜원 말이죠. 대기하고 있던 힐러들이 응급처치를 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심각한 상처이기는 했지만, S급 게이트에 세 명이 들어가서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이송되면서, 무슨 장치를 찾아야 한다고 계속 중얼거리던데···. 살아 나왔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봐야겠죠.”
“그렇군요. 박헌구씨는 이번 공략에서 특히 고생하셨으니 신경 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고정민이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은 게이트 공략 사실에 정신이 팔려 박헌구는 제대로 신경 쓰지도 못했는데, 오늘 처음 만났을 동료까지 챙겨주기까지 할 줄이야.
물론 진영이 박헌구를 살려두고 신경 써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민아영이 레드 리버 스파이에 관한 증거를 꽤 모아뒀을 거야.’
박헌구는 자신의 정보를 숨기는데 그리 능한 자는 아니었다.
현재의 그랑블루가 무능한 정도가 심해서 그렇다. 민아영의 능력이라면 충분한 증거가 모였을 터.
‘박헌구의 공이 커질수록 민아영이 스파이를 밝혀냈을 때의 공이 커지는 법이지.’
안전지대로 다른 클랜 플레이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S급 게이트가 공략되었다는 말을 듣고 발 빠르게 뛰어온 자들이었다.
아직 15층 공략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저는 잠시 쉬다가, 레이드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이진영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백성현이 물었다.
S급 게이트가 공략된 것을 기점으로 플레이어들은 나머지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레이드가 시작될 확률이 높았다.
“저는 간부님하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레이드에 참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게이트에 들어갈 때와는 진영을 바라보는 백성현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의심이 신뢰로 바뀌어 있었다.
백성현과 인사를 나눈 뒤, 이진영은 곧바로 근처에 있는 고정민에게 다가갔다.
그 잠깐 사이에 통화를 하고 있었다.
“말씀 드릴 게 더 있습니다.”
“아, 진영씨.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통신석으로 통화를 하던 고정민이 급히 통화를 마치고 이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15층 공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아, 그러면 여기서 할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고정민은 안전지대 내의 그랑블루 텐트를 가리켰다.
“마실 차라도 준비할까요?”
진영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한층 공손해져 있었다.
* * *
그로부터 1일 후.
한동안 멸망의 탑에 대해 잊고 있었던 바깥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 한국 1위 클랜 그랑블루 15층 공략!
- 난공불락의 15층 무너지다.
- 그랑블루 부마스터 진철 “당연한 승리”
- 회귀자 후광을 뒤에 업은 그랑블루, 승승장구하나?
쏟아지는 기사들만큼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헌터들에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던 인터넷 게시판이 멸망의 탑에 관련된 글로 가득 찼다.
- 공략 안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랑블루에서 마정석 뽑아 먹는다고, 일부러 방치하고 있었던 거랬는데.
- ㄴㄴ 못한거임. 세계에서 15층 공략한 나라가 5개 밖에 없는데 무슨ㅋㅋㅋ
- 우리나라 플레이어들도 좀 하네. 국뽕 좀 차네.
- 미쳤다; 해외보니까 16층부터 새로운 아이템 나온다던데. 빨리 구해서 헌터들한테나 줘라.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반응에 그랑블루와 레드리버의 희비는 엇갈릴 수 밖에 없었다.
기사를 확인한 레드 리버의 부마스터 유경규가 신문을 집어 던졌다.
으드득.
이를 악문 유경규가 바닥에 떨어진 신문의 사진을 살폈다.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랑블루의 부마스터 진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아주 얼굴에 꽃이 폈구만 폈어. 회귀자 하나 운 좋게 주워 놓고, 지가 다 한 척 꼴 값은 다 떨고 있구만.”
회귀자를 영입하지 못한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
그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회귀자의 능력은 훨씬 뛰어났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이 직접 게이트까지 공략했다고 한다.
‘마수 폭주로 그랑블루 엿 좀 먹이나 싶었는데···. 젠장.’
케로베로스를 깨운 것은 레드 리버의 짓이 맞았다.
그랑블루를 제치고 15층을 관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15층이 공략 되버리다니.
이것은 모두 회귀자의 탓이었다.
‘우리 쪽에서 나서서 확 처리해버릴 수도 없고.’
이미 회귀자의 성장세가 엄청났다. 쉽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상 비장의 카드였던 염태준까지 배신을 하고 돌아선 마당에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 때, 레드 리버 비밀 조직의 간부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예정이 따로 잡혀 있었던가? 무슨 일로 온 거지?”
“긴급하게 전해 드려야 할 건인 것 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간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오늘 아침 예정된 시찰을 가는데, 체이서 클랜원이 모두 당했더군요.”
“······!”
“금고나 아이템 창고가 모두 털렸던 것으로 보아 단순 강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간부의 보고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유경규가 그의 배를 걷어찬 것이다.
“커헉!”
간부가 입에서 피를 토해낼 정도로 분노가 실린 일격이었다.
무릎을 꿇은 간부를 내려다보며 유경규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체이서 길드가 강도한테 당할 거라고 생각하냐?”
레드 리버에서 은밀하게 육성 중인 산하 클랜이었다. 강도한테 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간부라는 놈이 그런 얼빠진 소리나 하니까, 지금 클랜이 이 꼬라지인 거 아니냐. 클랜원이 전부 있지는 않았을 텐데? 교육 나가 있던 녀석들은 어떻게 됐어.”
“크흑···. 마찬가지로 전부···.”
그 뒤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다시 한 번 유경규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레드 리버의 시작은 범죄자 조직에서부터였다.
해외 클랜의 지원을 받으며, 이름을 바꾸고 이미지를 개선해 왔지만, 그들의 마스터였던 유경규의 본성은 숨겨지지 않는 법이었다.
피를 토해낸 간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단 최대한 조사중에 있습니다. 용의선상에 오를 법한 인물들을 뽑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유경규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랑블루는 이런 짓을 할 놈들이 아니다. 비겁한 수를 쓰더라도, 상대를 몰살 시키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번뜩 무언가를 떠올린 유경규가 말했다.
“야, 보물에 관한 건 어떻게 됐어.”
“아, 그게 원래는 관련 아이템을 저희가 받기로 했었는데, 그것 역시 도난당한 것 같습니다.”
체이서 길드에서 친히 꺼내주었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유경규가 숨을 내쉬었다.
“후우, 되는 게 없구만.”
그래도 보물에 관련된 것이라면 조금이나마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최근 탑 내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흥 종교에 관한 정보.
‘목성교.’
탑에 숨겨진 보물과 그 전설을 추앙하는 단체였다.
그 녀석들이라면 이런 짓을 벌이고도 남을지 모른다.
“목성교 녀석들 조사 좀 해봐.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박헌구 그 자식한테도 연락 넣어.“
그랑블루는 여전히 스파이가 누군지 감을 못잡고 있다.
스파이인 박헌구를 이용하면 회귀자를 꾀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회귀자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정보를 조금이라도 팔게 해야···.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 있던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박헌구는 지금 의식불명입니다···.”
* * *
진영은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15층 공략의 스타트를 끊었다.
수 십 개의 클랜들이 달려 들자 나머지 게이트들이 순식간에 공략되며, 케로베로스를 지켜주던 보호막이 사라졌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겠군.’
이전에도 게이트를 제거하고 케로베로스를 공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케로베로스의 공격 패턴과 능력치가 플레이어들의 예상을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보가 없었으면 힘들었겠지.’
그랑블루가 보스 레이드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던 것은 진영이 제공한 정보 덕이었다.
그 정보는 세 개의 머리를 쓰러뜨리는 순서였다. 순서가 틀리면 머리는 계속 재생한다.
덕분에 그랑블루는 주도적으로 15층을 공략할 수 있었다.
정보의 대가로 진영이 받은 것은 5천 코인과 그랑블루 레전더리 아이템 대여.
말이 대여였지,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제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그랑블루와의 연결고리는 제대로 마련했고···.’
진영에 대한 믿음이 확신으로 바뀐 상황.
더 이상 진영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주도권은 완전히 진영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진영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당신은 이계 시간축에서 유례 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
[ 이계의 존재들이 새로운 보상에 대해 논의합니다. ]
S급 게이트 클리어 이후로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창이었다.
진영은 침대에 앉아, 그 논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상만 받고, 염태준을 보러 가야겠군.’
녀석도 자신이 알려 준 곳에서 보물을 하나 찾아 왔을 것이다.
염태준에게서는 아직 뜯어 먹을 게 남아 있으니, 좀 더 이용해야 한다.
‘염태준에겐 방해가 되는 것들의 제거를 맡기고, 나는 탑 공략에 집중한다.’
15층이 클리어 된 지금, 16층을 클리어하고 그 자원이 탑 아래로 흘러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진영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파앗!
작은 황금빛과 함께 모습을 정보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꾀에 항복 선언을 합니다. ]
“항복 선언이라고?”
진영은 일부러 보상 두 개를 고르지 않고 있었다. 보상을 받는 이계의 존재는 위계가 상승한다.
때문에 그 둘을 경쟁시켜 보상을 지속적으로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효과적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항복 선언이란 건 무슨 소리지.’
[ 이계의 근원과 본질이 위계의 상승을 절반씩 나누기로 합니다.]
[ 두 개의 보상을 이번 보상과 합쳐 하나의 보상으로 제공합니다. ]
진영의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 둘도 나름대로 꾀를 낸 모양이었다.
샤아아아!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붉은 빛과 함께 진영의 앞으로 붉은 열쇠가 생겨났다.
[ 이계 : 절대자의 비밀 창고 입장권(55층 이상 입장 권장)을 제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