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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56화 (56/152)
  • 15층 공략(4)

    “이, 일단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진영씨,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당황하는 박헌구와는 달리, 백성현은 침착하게 진영을 바라봤다.

    게이트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제 쪽으로 붙으세요.”

    S급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마수는 하나하나가 위력적이다.

    한국 랭킹 4위의 백성현이 단숨에 처리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가죽을 베어내지 못해, 연약한 입안을 노려야 하는 번거로운 상대.

    그런 마수가 고블린 둥지의 고블린처럼 나온다.

    “히든 피스를 사용할 겁니다. 제 근처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벽으로 일행을 끌어당긴 진영이 스킬 ‘절대 은폐’를 사용했다.

    진영이 회귀자 클래스라고 알고 있는 일행은 이것이 히든 피스라고 생각할 것이다.

    크르르르!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오던 마수 무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눈앞에 있던 사냥감이 갑작스레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크르···.

    절대 은폐 구역 내부에 들어 있는 존재는 인식할 수 없다.

    냄새로든, 기척으로든 아예 알아낼 방법 자체가 없다.

    녀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동굴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수들이 사라지자, 박헌구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허억, 주, 죽는 줄 알았네요. 그 히든 피스 성능이 정말 대단한가 봅니다.”

    반쯤은 연기가 섞인 감탄이었다. 위험했다면 이스케이프링으로 탈출 했을 테니.

    반면 백성현은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 있었어. 역시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거야.’

    S급 게이트를 공략하는데 필요한 히든 피스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정보만 믿고 뛰어드는 회귀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쩌면 진짜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일행은 계속해서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크기가 커졌다. 백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좋은 징조는 아닌데···.”

    동굴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한 크기의 마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히 S급 게이트인만큼 보스의 강력함은 상상 이상.

    그런 백성현의 걱정에 진영이 말했다.

    “계획한 대로만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렇죠! 회귀자시니까, 믿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박헌구가 맞장구를 쳤다. 계획한 대로만 하면 된다. 이 말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큰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특히 이런 S급 게이트에서는 더더욱.

    이후로 마수를 몇 번 더 마주쳤지만, 일행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수가 적으면 사냥하고, 많다면 숨어서 지나가길 기다렸으므로.

    이윽고 거대한 공동이 드러났다.

    [ 보스의 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메시지창 너머로 거대한 크기의 사자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철갑으로 둘러싸인 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르르릉···.

    [ 보스 특성 ‘프레셔’에 의해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

    박헌구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랭커인 백성현조차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면 시작하죠. 제가 미리 말했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진영은 알고 있었다. 게이트는 충분히 공략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쿠웅!

    보스가 자신의 앞발을 바닥에 내리치는 것을 시작으로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보스가 난동을 피우자, 보스 방과 연결된 굴에서 사자 마수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출발하겠습니다!”

    박헌구가 우렁차게 외치며 그런 마수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믿음이 아닌 꿍꿍이가 있었을 뿐이지만.

    크르르르!

    “와이드 어그로!”

    박헌구가 빠르게 뛰어나가며 자신의 스킬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의 스킬과 몸동작은 마수들의 주의를 끌 만했다.

    스무 마리도 넘는 마수들이 박헌구를 동시에 노리기 시작했다.

    “이 틈에 저희는 움직이죠.”

    진영과 백성현이 몇 마리 남지 않은 마수를 처치하며 보스를 향해 다가갔다.

    계획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실행하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특히 박헌구에게는 불리한 계획이었다.

    박헌구가 마수 무리들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백성현과 이진영이 보스를 처치한다.

    이 때 백성현은 그저 보스의 발 부분을 노리는 걸로 충분하다.

    백성현에게는 쉽고, 박헌구에게는 어려운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현구는 받아들였다.

    “박헌구씨! 벽 틈을 잘 살펴보면 마수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전에 설명했던 이야기다. 박헌구가 표면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박헌구는 스무 마리나 되는 마수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틈새를 찾는 척 움직였다.

    ‘오래 끌면 나도 위험해진다.’

    그가 계획을 받아들인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포지션은 위험하지만, 계획을 망치기에는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뛰어다니면서 보스가 있는 쪽을 살폈다.

    “지금입니다, 백성현씨!”

    “알겠습니다!”

    콰가각!

    철갑으로 둘러싸인 보스에게 백성현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성현은 집요하게 다리를 노리고 들었다.

    진영은 근처에 등장한 한 두 마리의 마수와 상대하는 중인 상태였다.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가면 되겠군.’

    마수 무리를 이끌고 도망 다니던 박헌구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 이진영씨! 못 찾겠습니다! 장치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그는 패닉에 빠진 사람을 연기했다.

    잘 만들어진 계획이 한 사람의 실수 때문에 어그러지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살려주세요!”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백성현이 소리쳤다. 보스에게 집중하기도 힘든데, 박헌구가 마수들을 끌고 오면 대처가 불가능했다.

    박헌구는 요리조리 마수들을 피해 도망치면서 당황한 사람을 연기하며 외쳤다.

    “아, 안 되겠어요! 도와주십쇼!”

    절망스런 표정과 함께 박헌구는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장난합니까? 이러면 전멸입니다! 제발 시간이라도 끄세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성현이 소리쳤지만 박헌구는 계속해서 달렸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이제 적당히 타이밍만 봐서 탈출하면 되겠군.’

    마수들에게 둘러싸이면서 보스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세 명이서 공략할 수 있는 게이트가 아니다.

    이들이 몰살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일은 레드 리버한테서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겠어.’

    그랑블루 소속 백성현까지 처리되는 건 일석 이조의 일이었다.

    레드 리버에서는 그랑블루의 위세가 약해질수록 이득이니 스파이인 박헌구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 셈.

    그런 꿈에 부풀어 일행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박헌구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가 이상했다.

    ‘어, 어라?’

    게이트에서 탈출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이스케이프 링’이 자신의 손에서 사라져 있었다.

    ‘뭐야, 이게 어디갔지?’

    그 사실을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뒤에서는 스무 마리나 되는 마수가 자신을 찢어 죽이기 위해 쫒아오고 있었다. 방금까지는 여유로웠던 박헌구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이런 미친! 이게 왜···!’

    마수들을 몰고 가서 일행을 전멸 시키는 작전은 자신이 살아남을 때나 의미가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당연히 보상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일행을 향해 마수를 끌고 가면, 공략은 실패하고 자신도 죽는다.

    말 그대로 진정한 파탄.

    살기 위해서라면 원래 계획대로 해야했다.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휙!

    일행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던 박헌구가 방향을 틀었다.

    필사적인 턴이었다. 어그로에 끌린 마수들도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젠장, 내가 살려면 찾아야 한다.’

    동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마수들을 무력화시키는 장치를 찾아야 했다.

    회귀자의 계획이 올바르게 이뤄져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죽게 된다.

    ‘젠장, 젠장, 젠장!’

    뒤따라오는 마수들이 수십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등에 발톱이 파고들 것만 같은 아득한 공포.

    ‘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안전한 상황에서의 어그로와, 목숨을 걸고 미끼가 되는 것이 같을 리가 없었다.

    미친듯한 공포 속에서 박헌구는 진영이 말한 장치를 찾아 헤맸다.

    그런 박헌구를 바라보며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날 찾아봐라. 장치가 있나 없나.’

    마수를 무력화시키는 그런 편리한 장치가 있을 리 없다.

    그걸 모르는 박헌구는 목숨을 걸고 마수들을 끌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훌륭한 어그로였다.

    * * *

    ‘그러면 보스를 잡아볼까.’

    백성현은 계획대로 집요하게 보스의 다리를 노렸다.

    데미지는 없었지만 보스가 백성현을 의식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백성현씨, 버텨주세요!”

    “알겠습니다!”

    콰아아앙!

    근처로 다가가는 진영을 향해 보스가 마기를 발사했다.

    진영이 서 있던 자리에 구멍이 움푹 팼다.

    직격으로 맞는다면 즉사 혹은 치명상이었다.

    애초에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는 보스였다.

    시선을 둘로 분산시켜도 녀석은 확실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냥 올라타는 건 안 되겠어.’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여기가 코인을 사용할 때였다.

    화아아악!

    진영의 주위로 흰 무리의 빛이 모여들었다.

    [ 강화 성공! 마력 스탯이 5단계:초인(超人)에 도달했습니다. ]

    1만 2천 코인을 소모해 100% 확률로 마기 스탯을 강화했다.

    단숨에 진영이 가진 마력의 양과 농도가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세뇌 술사 이중훈에게서 빼앗은 반지와 자연 계열 NPC와의 친화력을 높여주는 목걸이를 합치니 그 상승폭은 어마어마해졌다.

    - 절대 은신.

    진영의 모습이 완벽히 감추어졌다.

    어떠한 대상을 상대로도 인식되지 않는 궁극의 은신 상태.

    ‘여전히 마력 소모가 엄청나지지만,버틸만 해.’

    체감상 유지가 가능한 시간은 대략 15초다.

    3초였을 때와 비교하면 굉장한 발전이다.

    진영은 곧바로 보스를 향해 뛰어올랐다.

    콰아아앙!

    “크아악!”

    보스의 앞발에 백성현이 튕겨 나가고 바닥으로 깊은 균열이 새겨졌다.

    백성현은 피를 토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진영은 재빠르게 사자의 등 허리로 올라갔다.

    그러고선 왼손을 가져다 대었다.

    여기서부터는 간단하다.

    게이트의 보스들, 그 중에서도 강력한 보스들은 더더욱 자신들의 특수한 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이라면 훔치지 못할 것은 없다.

    - 스틸.

    샤아아아!

    [ 탐욕의 왼손이 발동합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훔칩니다. ]

    10% 확률까지 올라간 부가효과가 단숨에 발동되었다.

    푸른 빛과 함께 진영의 왼손에 검은빛을 내뿜는 코어가 나타났다.

    쿠우우웅!

    충격파와 함께 보스가 거대한 몸뚱이를 바닥에 뉘였다.

    [ 게이트 보스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 기여도 최상위 플레이어 : 이진영 ]

    [ 보상 3000코인이 지급됩니다. ]

    [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활약을 뿌듯해 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떠오르는 정보창을 뒤로하고, 진영은 보스의 몸에서 내려왔다.

    “어, 어···.”

    백성현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진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강력한 보스가 아무것도 못 하고 목숨을 잃었다.

    랭킹 4위인 자신이 제대로 된 데미지조차 주지 못한 보스가.

    진영의 손에 쓰러졌다.

    ‘이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건가···?’

    뭔가 작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보스를 쓰러뜨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이 사람은 다르다. 정말로 달라.’

    진영은 씩 미소를 지으며 백성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니라고요?”

    그 말이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장치를 못 찾겠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진심으로 소리치는 박헌구. 마수들에게 이미 군데군데 물어 뜯겨 피범벅이 되었으면서도 열심히 도망치는 중이었다.

    * * *

    바깥에서 진영 일행을 기다리는 고정민이 입술을 씹었다.

    ‘들어가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짓이었다. 아무리 회귀자라고 한들 만능이 아니다.

    S급 게이트에서 세 명이서 들어가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백성현이 따라붙기는 했지만···.’

    회귀자를 탐탁지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게이트 내에서 다툼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

    아무래도 좋았다.

    ‘제발, 공략은 안 해도 좋으니까 죽지만 말고 돌아와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고정민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회귀자와의 거래를 통해서 그랑블루의 주가를 상승시키려는 지금, 회귀자가 죽어버리면 죽도 밥도 안된다.

    거기에 그랑블루의 귀중한 전력인 랭커 백성현.

    물론 박헌구도 전투원으로서 훌륭한 편이었다.

    그런 걱정 속에서 가장 먼저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박헌구였다.

    “빨리 이쪽으로!”

    그랑블루 클랜원이 재빠르게 박헌구를 안전지대까지 옮겼다.

    피투성이가 된 박헌구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으으윽···.”

    박헌구의 상태를 확인한 고정민이 표정이 굳어졌다.

    ‘마, 망했다.’

    괜찮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절망감.

    고정민은 박헌구의 멱살을 잡았다.

    환자고 말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

    박헌구의 말을 들으려던 그때 다른 클랜원이 크게 소리쳤다.

    “나왔습니다! 돌아왔습니다!”

    “정말이야?”

    고개를 돌리자,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진영과 백성현이 안전지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공략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살아만 돌아와다오.

    그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거짓말같이 S급 게이트가 검은빛을 쏟아내며 사라졌을 때.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클랜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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