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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55화 (55/152)

15층 공략(3)

끈적이는 마력을 지나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지자, 태양이 이글거리는 평원이 펼쳐졌다.

“다들 들어오셨죠?”

“넵.”

“예, 일단 오기는 왔습니다만···. 최대한 무리는 하지 말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후퇴하도록 합시다.”

멸망의 탑 안의 게이트는 바깥 게이트와 달리 원하는 때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들어왔던 게이트의 위치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S급 게이트 공략이 쉬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진영씨도 분명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요.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저는 제 판단을 고수하겠습니다.”

랭킹 4위의 백성현이 볼멘소리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진영은 7번째 회귀자였다.

나머지 회귀자 6명이 존재한다는 의미.

정확히는 했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5번째 회귀자 염태준을 제외하고는 현시점에서 살아 있는 회귀자는 진영이 유일했다.

‘회귀자들은 항상 자신에 가득 차 있단 말이야. 자신감이 과한 게 문제지.’

그러나 회귀했다고해서 모든 것이 해결 될 거라는 것은 망상에 가까웠다.

오히려 회귀자들은 자신들의 정보에 취해 자신의 수준 이상의 것을 취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이번 회귀자도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

그간 랭커로서 회귀자들을 봐 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기에, 백성현은 이진영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15층에 제공한 정보 정도로, 진영을 인정할 순 없었다.

진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두 분 다 전력으로 후퇴해 주세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백성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자기가 중요하니 지키라던가, 자기만 믿으면 문제없다던가 그런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단순히 자신의 정보만 믿고 덤비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까?

일단은 두고 볼 일이었다.

“그러면 슬슬 출발하시죠. 보스가 있는 곳은 제가 알고 있으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회귀자 클래스시군요. 될 수 있는 데까지는 돕겠습니다.”

백성현과 달리 박헌구는 진영의 뒤를 졸졸 쫓으며 그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백성현이 혀를 찼다.

‘회귀자라고 만능이 아닌데 말이야.’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사바나의 평원 위로 드문드문 강력한 마수들이 보였다.

필드형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선 필드 어딘가에 있는 보스를 처치해야 했다.

그 보스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 일행에게는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는 회귀자가 있었다.

“녹색빛 광석이 박혀 있는 동굴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도 보이는 동굴이 여러 개이니, 순서대로 확인하죠.”

첫 번째로 가장 가까운 동굴 앞으로 이동하던 와중, 일행의 시야에 마수 한 마리가 들어왔다.

검은 사자 마수가 유유자적하게 초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녀석이 지나다니는 자리로 흉흉한 마력이 남았다.

“제가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S급 게이트인만큼 한 마리 한 마리의 전투력은 강력했다.

일행 중에서 가장 강한 백성현이 스스럼없이 나섰다.

타앗.

땅을 박차고 쏘아져 나간 백성현이 검집에 들어 있던 검을 뽑았다.

쉬익-!

유려하게 바람을 가른 검이 사자 마수의 가죽 향해 휘둘려졌다.

카악!

그러나 마수의 가죽을 베어내려던 백성현의 생각과 달리, 검이 단단한 가죽에 막혔다.

당황할 법도 한 상황이지만, 백성현은 랭커였다.

콰아앙!

곧바로 몸을 틀어 검을 거둔 뒤, 달려드는 사자 마수의 앞발을 검으로 가드 해냈다.

그 충격에 바닥이 꺼져 들어갈 정도였다.

물론 백성현에게 데미지는 없었다.

전투를 바라보던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A급 황실 기사 단장 클래스···. 확실히 안정감이 있어.’

백성현에 대한 건 잘 알지 못했다.

회귀 전 그는 진영이 10층에 올라올 때 즈음에 바깥으로 나가 헌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랭커다운 실력이었다.

‘귀찮은 일 시키기 좋겠네.’

몇 번 더 사자 마수와 공방을 주고받던 백성현이 마수의 입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검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사자 마수의 내장을 뒤집어 놓았다.

쿠웅.

마수를 처리한 백성현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일행을 돌아봤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시죠.”

마수의 시체를 지나 도착한 동굴에는 녹색빛 광석이 박혀 있었다.

박헌구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 바로 찾은 것 같네요.”

“그러면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을 시작하는 진영을 일행이 바라보았다.

본래대로라면, 이런 인원으로 S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건 상식 바깥의 일이었다.

그러나 진영은 망설임 없이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

백성현이 진지한 눈으로 진영을 주시했다.

이제부터가 본방이었다.

* * *

“정말 그걸로 되는 겁니까?”

이야기를 들은 백성현이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반면 박헌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이신데, 다 뜻이 있으시겠죠.”

박헌구의 동의도 순수한 동의는 아니었다.

레드 리버의 스파이인 그는 이진영을 자연스럽게 제거할 틈만 노리고 있었다.

“하기 싫으시면 언제든 가셔도 됩니다.”

백성현이 사라져 준다면 오히려 진영에게는 좋았다.

박헌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잠깐 생각 좀 하겠습니다.”

백성현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약 회귀자의 말 대로라면 셋이서 S급 게이트를 공략하게 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막대했다.

문제는 이진영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진영이 믿을만한 회귀자인지, 아니면 자신감만 가득 찬 쭉정이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일행을 살핀 진영이 말했다.

“그러면 동의하신 거로 알고, 들어가겠습니다.”

박헌구는 진영을 노리고 있었으니, 돌아갈 리가 없었다. 백성현도 무슨 생각인지 진영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러면 오히려 편해지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밀려왔다.

짙은 마력은 덤이었다.

이곳에서 튀어 나올 마수 하나하나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감각.

크르르···.

한 방향으로 이어진 동굴에서 마수와 마주치는 것은 당연했다.

바깥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검은 사자 마수였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백성현이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뒤쪽에서도 검은 사자 마수가 나타났다.

동굴에 숨겨진 구멍을 통해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백성현은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앞의 녀석을 처리하는 동안, 뒤에 있는 녀석하고 시간이라도 끌어주세요. 괜히 정면으로 싸우려고만 하지 마세요!”

회귀자도 S급 지원프로그램으로 스탯 자체는 강할 것이고, 박헌구도 클랜 내에서 실력있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었다.

다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백성현은 눈앞의 사자 마수를 먼저 처리했다.

‘가죽이 거치적거리는 군.’

검은 가죽을 베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단단한 가죽을 뚫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결국 백성현은 전과 마찬가지로 마수의 입안을 노려 처리했다.

그 후.

“바로 가겠습니다!”

고전하고 있을 진영과 박헌구를 향해 백성현이 곧장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예상과 달리 눈에 들어온 장면은 놀라웠다.

촤아아아악!

진영이 역수로 쥔 단검이 사자 마수의 가죽을 일직선으로 그어내며 치명상을 입히고 있었다.

크오오!

촤아악, 촤아악!

울부짖는 마수를 상대로도 진영은 침착하게, 아니 침착하다 못해 일상적인 모습으로 상처를 계속해서 공략했다.

연거푸 치명상을 입은 사자 마수는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

백성현이 말없이 진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자신이 스탯도 더 높고, 무기도 훨씬 좋을 텐데.

자신은 베어내지 못한 가죽을 저렇게 가볍게 베어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성현이 모르는 점이 있다면, 진영의 무기는 자신과 같은 레전더리 등급이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마력의 운용 방식에 있었다.

진영은 마력을 한 점에 집중해 공격력을 높였다.

반면 백성현은 마력을 도포하듯이 검에 둘러, 그만한 파괴력이 나오지 않았던 것.

순전한 경험과 지식의 차이였다.

“계속 전진하시죠.”

“잠시만요, 어떻게 한 겁니까?”

“어떤 거요?”

“······.”

백성현이 얼굴을 붉혔다.

지금까지 진영을 은근히 무시해 오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 전투에 나머지 둘은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놓고,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기는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백성현을 보며 진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백성현이 일행에서 떨어져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길게 보면 랭커와의 인맥을 만들어 두는 게 좋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기회를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진영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죽을 베어낸 거 말씀하시는 거죠? 마력을 한 점에 집중하면 됩니다. 미래에는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진 기술인데, 개념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사용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백성현씨는 랭커시기도 하니 금방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백성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정보를 그냥 알려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귀자들은 정보를 숨기고 독점하려고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진영은 뭔가 달랐다.

‘이 사람은 다른 회귀자들하고는 다르다.’

마수를 처리하던 순간의 진영의 눈빛.

이때까지 보아왔던 허세에 찬 회귀자들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백성현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죄송합니다. 진영씨를 오해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앞으로 전력으로 서포트 하겠습니다.”

* * *

한 편, 박헌구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이진영을 처리하려면 백성현이 다른 곳으로 빠져줘야 하는데···.’

마수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선 완전히 마음을 돌이킨 것 같았다.

게다가 이진영 개인의 무력도 문제가 되었다.

‘생각보다 더럽게 세잖아, 이 자식.’

박헌구는 레드 리버에서 스파이로 파견 된 만큼, 그랑블루에 알려진 것 이상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영의 무력은 예상 외였다.

백성현이 번거롭게 처리하는 마수를 단숨에 베어내다니.

자신도 저렇게는 할 수 없었다.

‘전면전은 피해야겠어.’

굳이 불리한 전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진영의 계획대로라면, 자신은 중요한 순간에 발을 빼기만 해도 진영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거기에 대한 변명은 간단했다.

‘실수였다, 계획을 잘 못 이해했다···. 등등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럴 법한 변명이 많지.’

레드 리버에 제대로 된 공을 세울 기회가 충분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나는 이 아이템으로 탈출한다.’

박헌구가 진영의 비위를 맞추며 따라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품 안에 숨겨둔 게이트 탈출 전용 아이템 ‘이스케이프 이어링’.

이게 있으면 멸망의 탑 내부에 있는 게이트에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크르르···.

비릿한 미소를 짓는 박헌구의 앞으로 마수가 나타났다.

일행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제가 먼저 가겠···.”

자신 있게 나서던 백성현의 걸음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마수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박헌구도 당황할 정도였다.

“고, 고블린도 아니고 저게 무슨···.”

넓은 동굴의 건너편에서,

열 마리가 넘는 사자 마수가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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