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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54화 (54/152)

15층 공략(2)

진영은 염태준에게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고, 가지고 있던 아이템도 처분했다.

그렇게 얻은 코인 1만 6천 코인.

[ 소지 코인 갯수 : 31503개 ]

기계 장치 상인에게서 얻었던 아이템과, 레드 리버를 습격하고 얻은 잡다한 아이템을 판매한 금액이었다.

‘보물은 염태준이 알아서 찾아낼 테고, 코인은 이 정도면 당분간 충분하다.’

‘4단계:영웅(英雄)’에서 ‘5단계:초인(超人)’을 향하는데 필요한 코인은 약 1만.

여기서부터는 랭커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스탯이다.

코인의 사용처가 여러 곳인 만큼 지금 당장 스탯에 투자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될 따름.

‘코인이 많으니 든든하기는 하네.’

회귀 전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었다. 그 때는 코인 하나 하나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심해가며 스탯을 올렸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행복한 고민이었다.

진영은 정리를 마치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때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진영을 불렀다.

“이진영님! 계셨군요. 찾고 있었습니다.”

그랑블루의 간부 고정민이었다. 진영의 정보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부터, 진영을 부르는 호칭이 씨에서 님으로 바뀌었다.

고정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진영에게 다가왔다.

“지금 15층에 잠들어 있던 마수가 다시 깨어나서 난리도 아닙니다. 그것도 마주 폭주 상태로요.”

당장 이진영을 데려오라는 부마스터의 지시에 고정민이 곧장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봐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당연히 이번에도 공짜는 아니었다.

진영은 그랑블루에 정보 하나도 허투루 넘겨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랑블루가 진영의 정보에 의지하게 만듦과 동시에 그들의 자원을 소모해 성장에 투자해야 했다.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시죠.”

아무것도 모르고 화색이 된 고정민이 진영을 안내했다.

* * *

회귀자는 얼마만큼 유능한가?

초반부 멸망의 탑에서 꽤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오갔던 문제였다.

몇 번의 회귀자를 거치면서 플레이어들은 결론을 내렸다.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다 알지는 못한다.

알고 있는 것만 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자신이 겪어 온 경험에 비례해서 회귀자가 알고 있는 것도 달라진다.

아무리 높은 층에 올랐어도, 모든 층의 공략 방법과 숨겨진 비밀들을 전부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회귀자들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진영은 달랐다.

탑에 떠도는 소문과, 과거의 공략법과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과거의 공략법이 앞으로 나올 시련의 공략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

효율적인 탑 공략을 위해서라면 그러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스를 깨웠다는 겁니까?”

그리고 그것이 지금 진영이 다시금 시작된 마수 폭주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이유였다.

진영이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번 잠에서 깬 케로베로스는 다시 재울 수 없습니다. 공략을 하거나,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하죠.”

회귀 전에도 마수 폭주는 일어났던 일이다. 그 당시 플레이어들이 찾아낸 방법은 마수를 잠재우는 게 아닌, 그러한 폭주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위험을 제거하는 게 아닌 관리하는 방식.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알아낸 게 악사들을 통해 보스를 잠재우는 특별한 방법.

‘그 이후로 케로베로스가 깨어났을 때는 신화준이 나타났을 때뿐이었지.’

즉, 이번에 케로베로스를 깨운 건 외부의 누군가라는 뜻이었다.

마수 폭주를 막아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누가 의도적으로 케로베로스를 깨운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건 레드 리버일 확률이 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진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고정민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이미 지난 폭주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 지속하였다가는 15층을 완전히 포기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보스가 난동을 피운다 한들 해당 층을 버리고 내려오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15층에서 채취할 수 있는 마정석 때문이었다.

멸망의 탑에서 나오는 마정석은 특히나 고순도의 품질을 자랑한다.

A급 게이트 이상의 품질을 별 리스크 없이 지속적으로 채취할 수 있다.

‘차라리 잘 됐어. 타이밍으로만 보면 15층을 공략하기에 가장 적절하다.’

마수 폭주로 인해 플레이어들의 피로가 극심해진 상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가장 적절한 상태였다.

도둑으로서의 이진영은 숨겨야 할 존재였지만,

회귀자로서의 이진영은 겉으로 드러날수록 강한 영향력이 생긴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상황.

진영이 대답했다.

“제가 직접 마수 폭주를 막도록 하겠습니다.”

“예? 정말이십니까?”

믿을 수 없다는 고정민의 표정. 그리고 한 편으로는 불안 또한 섞여 있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해결할 방법을 주시면, 저희 쪽에서···.”

“아뇨, 직접 제가 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회귀자임이 증명된 이진영이 혹시나 15층에서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그랑블루 입장에서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가뜩이나 회귀자는 특성이나 제대로 된 스킬도 없어 약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S급 지원 프로그램에 상응하는 코인을 받았다지만, 15층에 그를 던져 넣기는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하지만 진영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잠시 눈을 마주 보던 고정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 그러시면 저희 쪽에서도 유능한 플레이어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 혹시나 진영이 성적을 냈을 때, 그랑블루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계산.

진영은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 올라갈까요?”

“아뇨, 올라 가기 전에 보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끝내야죠.”

“······그, 그렇죠.”

이건 자원봉사가 아니었다.

진영은 정보를 제공하고, 그랑블루는 자원을 제공하는 엄연한 거래였다.

“이번 15층 마수 폭주 제압, 어느 정도까지 가치가 있으시다고 봅니까? 만약 공략할 수 있다면 제게 어느 정도까지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온다! 준비해!”

“프로텍트 실드 준비 완료!”

“마력 강화 버프 발동합니다!”

콰아아아!

흉흉한 눈을 빛내는 세 개의 머리가 일제히 붉은 불길을 토해냈다.

스치기만해도 단숨에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를 최선단에 선 플레이어들이 그대로 받아냈다.

“역시 그랑블루야! 굉장하다.”

“고맙습니다!”

뒤쪽에 있던 다른 클랜의 클랜원들이 감사 인사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 번 불길을 쏘아낸 케로베로스의 행동이 멈춘 동안이 기회였다.

“플랜 클랜 게이트 입장합니다!”

“그린 클랜 게이트 입장합니다!”

그 앞에 생긴 수십 개의 게이트 중 하나를 골라 플레이어들이 뛰어들었다.

15층 보스 레이드.

보스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앞에 생성된 게이트를 모두 제거 해야 했다.

보스 레이드가 길어지고 있는 이유였다.

단순히 케로베로스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보스를 처리한 뒤에야 케로베로스를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게이트는 점점 늘어나기까지 한다.

“상황은 나쁘지 않은 듯하네요.”

15층에 도착한 진영이 안전지대에서 보스가 있는 쪽을 둘러 본 뒤 말했다.

“나쁘지 않다고요? 제 눈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폭주한 케로베로스만을 보면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폭주 상태에서도 플레이어들은 침착하게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케로베로스의 공격에 대비하느라 고랭크의 게이트는 클리어할 수 없지만, 저랭크의 게이트들은 착실하게 공략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관리 정확한 관리 방법이니까.’

이대로 놔둬도 15층 플레이어들이 전멸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다만 진영은 공략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 이 친구입니다. 여기는 한국 랭킹 4위, 백성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약간 언짢은 얼굴의 백성현이 진영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진영입니다.”

그의 기분이 나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랭킹 4위면 그랑블루 내에서 손에 꼽는 강자.

강하지도 않은 회귀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박헌구입니다. 둘 다 도움이 될겁니다.”

“안녕하십니까. 박헌구입니다.”

그런데 박헌구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회귀하고서 처음 마주하는 얼굴이었지만 진영은 이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레드 리버의 스파이.’

민아영에게 알려줬던 스파이가 바로 박헌구 이 사람이었다.

박헌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나누며, 진영은 그의 표정을 읽었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군.’

레드 리버가 진영을 완벽히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포기한 척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자신을 활용하려고 할테니까.

“그러면 슬슬 알려주시죠.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고정민의 물음에 진영이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저희는 S급 게이트로 들어갑니다.”

그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눈이 커졌다.

지금 이 사람이 제정신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랭커조차 당황할 정도.

그만큼 황당한 말이었다.

“이봐요, 아무리 회귀자라고 해도 S급 게이트가 어떤 곳인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주제를 알라는 거죠. 당신처럼 회귀했다고 설치다가 죽은 회귀자가 몇 있죠.”

백성현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15층이 공략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그건 바로 S급 게이트 때문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끈적한 마력이 혐오스럽게 주변을 감싼 게이트.

바깥에서도 S급 헌터 20명이 목숨을 걸고, 공략에 나서야 할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심지어 절반 이상이 죽어서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이곳을 공략하게 누군가가 목숨을 잃기에 공략이 미뤄지는 중이었다.

바깥과 다르게 15층은 게이트가 붕괴해서 몬스터가 뛰쳐나오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래도 회귀자이신데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의외로 박헌구가 진영의 의견에 찬성하며 나섰다.

참 속 보이는 의견이었다.

‘내가 S급 게이트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가 보군.’

박헌구는 레드 리버의 스파이다.

레드 리버에 입장에서는 진영이 게이트 안에서 비명횡사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일 테니까.

진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시든 안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들어갈 겁니다.”

다시 한 번 케로베로스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게이트로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타앗.

진영이 바닥을 박차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백성현이 소리쳤다.

“젠장, 위험하면 나는 바로 빠져나올거야! 알겠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백성현은 진영의 뒤를 따랐다. 남은 것은 박헌구.

진영이 슬쩍 뒤를 살피자 박헌구도 곧장 S급 게이트를 향해 달려 오고 있었다.

박헌구는 속으로 숨죽여 웃고 있었다.

`회귀자가 S급 게이트를 자기 발로 걸어가다니. 멍청하긴.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레드 리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기회였다. 망설임 없이 S급 게이트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런 박헌구를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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