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53화 (53/152)
  • 15층 공략(1)

    “뭐야, 안에 사람 있었네. 이 사람은 되고 나는 안될 게 또 뭔데?”

    이시안은 막무가내로 염태준을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한민국 5위의 랭커였다. 손님 중에서도 격이 달랐다.

    염태준은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결국 이시안을 들여보냈다.

    동시에 손을 들어 진영에게 말했다.

    “아쉽지만 일단 아까 하던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자고. 그래, 이시안. 무슨 의뢰가 그렇게 급해서 그러는거야?”

    “여기서 바로 하기에는 조금 그런데···.”

    이시안이 진영의 존재가 신경 쓰이는 듯 쳐다봤다.

    주점에서 진영은 이시안을 한 번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술자리를 하고 있던 이시안은 진영의 얼굴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윽고 이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뭐, 상관 없겠지. 사람이 하나 사라져서 그러는데. 좀 찾아봐.”

    이시안은 품속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염태준에게 건네었다.

    사진을 확인한 염태준이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놈이 누군데 그래?”

    멸망의 탑 랭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찾을 리가 없었다.

    이시안은 멋쩍은 듯 볼을 긁으며 말했다.

    “신화준이라고, 내 친구 놈인데 싸가지가 없어도 갑자기 사라지거나 할 놈은 아니거든. 뒤질 놈은 더더욱 아니고.”

    “사라진지 얼마나 됐는데?”

    “이틀.”

    “지금 장난해? 지가 탑 밖으로 나갔는지 파밍하러 갔는지 어떻게 알아.”

    염태준의 말에 이시안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아냐, 그놈 입으로 당분간 10층에 머물거라고 했었거든. 하여튼, 보수는 원하는대로 줄 테니까. 잘 좀 찾아봐. 그놈은 탑 밖에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어서 말이야.”

    진영은 무감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솔직히 신화준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런 친구를 두고 죽이느니 어쩌느니 중얼거렸던 건가.’

    술에 취해 골목을 지나며 신화준이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회귀를 반복하며 몇 번 죽였다고 했던 거로 보아, 신화준은 이시안을 친구로 여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손님을 막아?”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지. 의뢰는 접수됐으니까, 이제 꺼져.”

    염태준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시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 쪽은 뉴페이스인 것 같은데. 내가 또 발이 넓어서 멸망의 탑에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이시안이라고 합니다.”

    이시안이 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이 덕지 덕지 박힌 투박한 손이었다.

    진영은 손을 맞잡았다.

    “이진영이라고 합니다.”

    랭킹 5위의 이시안은 마수 학살자로 유명했다. 도살자 클래스는 마수들을 살육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기에, 그가 탑에서 이름을 떨치기는 어렵지 않았다.

    ‘신화준을 찾고 있다라···.’

    진영에게 있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신화준에게서 가져온 히든 피스는 두 가지였다.

    첫번째가 죽음의 위기에서 부활 기회를 주는 ‘회생의 불꽃’.

    두번째가 독 속성 공격에 99% 저항력을 주는 ‘맹독의 반지.’

    회생의 불꽃은 몸에 흡수되는 식으로 장착된다.

    문제는 맹독의 반지였다.

    신화준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임을 알아채면, 의심이 진영에게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손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의하는 게 좋겠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디선가 구했다는 변명이 가능했지만, 당분간은 반지를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이시안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진영을 바라봤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염태준이 손님을 안 받을 정도면 보통 이야기가 아닐 텐데, 나도 끼워주시죠.”

    그에게선 랭커 특유의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데 니가 이야기를 안하겠냐? 같은 느낌.

    염태준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의뢰는 접수됐으니까, 행패 그만 부리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염태준의 으름장에도 이시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본래 랭커들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자신만만하기 마련이다.

    이시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대놓고 언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랭커가 가지는 힘이 그만큼 굉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성격 더러운 염태준이 입 다물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이야기만 들어봅시다. 나도 그쪽이 있는데 내 의뢰 이야기했잖아.”

    끼리끼리 논다더니, 이시안도 신화준과 마찬가지로 정상은 아니었다.

    궁금한 것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그리고 그걸 해결할 힘까지 갖추고 있는 자였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팔씨름 한 번 해서 내가 이기면 말해주기로. 내가 지면 그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시안이 테이블 위로 자신의 팔을 올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한국 5위 랭커와 회귀자의 싸움이었다.

    보나마나한 승부.

    염태준이 경악하려는 찰나, 진영이 기꺼이 이시안의 손을 붙잡았다.

    이시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패기 하나는 좋네.’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없었다.

    멸망의 탑에서 염태준 정도 되는 플레이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눈 앞의 상대는 본 적도 없는 플레이어.

    ‘처음에는 적당히 봐주다가···.’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건 다음 순간이었다.

    쿠웅!

    “이제 나가주시죠.”

    “어? 이게 왜···?”

    팔씨름의 승자는 진영이었다.

    * * *

    “내가 졌단 말이야?”

    그래도 이시안은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염태준의 의뢰소를 빠져 나온 이시안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힘을 안 주고 있었다고는 해도 단숨에 넘어갈 줄은 몰랐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력 또한 느껴졌다.

    ‘그 정도 되는 플레이어를 내가 모를 줄이야.’

    심지어 마력의 운용까지 자연스러웠다.

    마력을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 없었으니,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랭커인 자신을 꺾을 정도니, 스탯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괜히 기분만 잡쳤네.”

    뭔가 큰 건이 있으면 자신도 끼어들까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입맛을 다시며 이시안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자주 가던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기다리고 있었다. 신화준 그 새끼가 뭐라고 그러냐.”

    술집에서 기다리던 일행이 이시안을 반겼다.

    파밍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매일 같이 모이는 일행이었다.

    이시안은 쓴 웃음을 지었다.

    “됐다, 그놈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먹자.”

    “그래, 그래.”

    술자리 자체는 평소와 다름없게 흘러갔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건 술자리가 끝나고 나서였다.

    정확히는 계산을 할 때였다.

    “야, 내가 낼 게. 니들이 뭔 돈이 있다고 그러냐.”

    “이야, 역시 랭커. 씀씀이부터가 다르셔.”

    “덕분에 잘 놀다 갑니다.”

    이시안은 늘 하듯이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응?”

    코인을 찾기 위해 품을 뒤지는데, 이상하게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개인 코인 계좌에서 꺼내는 건 폼이 안나서, 따로 코인을 넣어 다니는데 그게 전부 사라졌다.

    “내 지갑이 없는데?”

    “아,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아니, 진짜 없어.”

    “잘 좀 찾아봐. 어디 떨어뜨린 거 아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지갑이 어디에 있었다 생각해봐도 잃어버릴만한 곳이 없었다.

    ‘설마···?’

    팔씨름할때 사라졌나라는 생각이 잠시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 비약이 심했다.

    상대가 도둑 클래스가 아닌 이상 지갑을 훔쳐갈 수도 없었으니까.

    어찌어찌 계산을 마치고 이시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뢰소를 다시 찾았다.

    진영은 이미 돌아가고, 염태준 혼자서 언짢은 표정으로 나왔다.

    “아까, 그놈 클래스 뭐야?”

    “자려고 하는데, 무슨 행패를···. 아니다. 말을 말아야지. 누구? 아까 나랑 있던 사람?”

    “그래. 혹시 도둑 클래스냐?”

    염태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놈도 내 의뢰인이라 자세히 알려줄 수는 없지만 도둑 클래스는 절대 아니야. 그랬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부터 털렸겠지.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염태준이 알기에 진영의 클래스는 100% 회귀자였다.

    그의 당당한 대답에 이시안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잃어버렸나···. 기분 더럽네.’

    자신의 실수를 말이다.

    * * *

    멸망의 탑 15층.

    그곳의 보스 ‘케로베로스’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세 개의 머리 모두 편안한 모습으로 미동도 않고 수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며칠 전까지 폭주가 일어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구만.”

    그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그랑블루의 클랜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당분간은 안전하겠지.”

    마수 폭주.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보스가 폭주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케로베로스의 마력이 마구잡이로 분출되며 근처에 게이트를 생성하는데, 이것을 제한 시간 내에 공략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내부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게이트도 공략하고 눈 앞의 케로베로스도 막아내야 했다.

    ‘우리 클랜 덕분에 용케 케로베로스를 잠재웠지만 말이야.’

    그랑블루 내부 소문에 의하면, 7번째 회귀자와의 거래를 통해 얻은 정보랬다.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지금쯤이면 다른 클랜에도 소문이 돌고 있을 것이다.

    소문은 원래 그런 법이었다.

    알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새나가는 법이었다.

    ‘듣자하니 17층에서 왔다던데. 확 15층 공략 좀 해줬으면 좋겠네.’

    보초를 서는 것도 지루할 지경이었다.

    사실상 모든 전력을 투입한다면 15층은 공략하지 못할 벽도 아니었다.

    다만, 대형 클랜들의 입장에서는 현상 유지가 가장 좋았다.

    이미 유능한 플레이어들이 탑 밖으로 나가 헌터가 되고 있는 지금, 무리한 공략은 전력의 손실 이외에는 얻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냅둔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니까.’

    인류가 멸망의 탑과 공존해 나가는 방향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멸망의 탑이 인류 멸망의 원인이 될 거라고 생각치 않았다.

    충분히 통제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자원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알 방법이 없으니 당연했다.

    “흐음, 슬슬 다음 교대자가 올 때가 됐는데.”

    남자가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펴는 그 순간이었다.

    번뜩.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던 케르베로스의 눈이 일제히 뜨였다.

    그것도 세 마리의 눈이 모두다.

    “이런······.”

    노란 눈동자가 그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플레이어들을 주시했다.

    쿠구구구···.

    옅은 진동과 함께 케로베로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잠은 이제 충분한 모양이었다.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일테니까.

    원래 15층을 지키던 케로베로스가 깨어났을 뿐이다.

    아니 그래야 했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쿠오오오!

    고개를 치켜 든 케로베로스의 울음소리와 함께 녀석의 눈에서 붉은 마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명백한 폭주의 증거에 남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빠, 빨리 연락을!”

    연락은 곧바로 그랑블루 클랜에 닿았다.

    베이스 캠프에서 있던 플레이어들이 보스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착했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만일을 대비한 악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급하게 케로베로스의 앞으로 모였다.

    띠리링~.

    넓은 방 안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랫소리에 잠시 케로베로스의 움직임이 멎는 듯했으나.

    콰아앙!

    보스가 앞 발을 휘두르자 땅이 갈라지며 수십 갈래로 튀어 오른 파편들이 악사들을 덮쳤다.

    “끄아악!”

    보스를 잠재우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대기하고 있던 15층의 클랜들이 일제히 그 소식을 듣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곧장 그랑블루 상부로도 전해졌다.

    긴급하게 연락을 받은 그랑블루의 간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수 폭주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대체 왜?’

    문제는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없었다.

    지금 당장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이진영, 그 회귀자를 빨리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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